유명하지만 의외로 모르는 사람도 꽤나 있는 이야기이다. 책의 한 부분을 인용해 보자.
"기쁜 소식이 있다. 독일은 한 해 평균 80만 명이 일하다 다치는데, 한국은 고작 그 10분의 1도 되지 않는 8만 명이 다친다는 소식이다. 우리가 '선진국이긴 선진국'이라 좋아하려는데, 좀 찜찜하다. 안타깝게도 다른 말을 하는 통계수치가 있다. OECD 국가 중 한국 산재사망률 1위.
이 상이한 수치는 한국 산업재해의 재미있는 현상 중 하나이다. 한국의 산업재해율은 소위 선진국이라 일컫는 국가들보다 낮다. 한 예로, 2009년 미국의 전체 노동자 중 2.5%가 일하다 다친 반면, 한국은 고작 0.7%의 산재율을 보였다. 그러니까 미국에서 천 명이 일해 2-3명이 다치는 동안, 한국에서는 1명이 다칠까 말까라는 이야기이다. 산업공동화 현상으로 제조업이 거의 사라진 미국이 우리에 비해 2배 이상의 산재율을 보인다.
여기까지라면, 아 우리나라 좋은 나라 안전한 일터구나, 하고 말겠는데 문제는 사망률이다. 업무에 관한 사망 수를 표시한 산재사망률은 한국이 타 국가들에 비해 월등히 높다. 미국이 10만 명당 4명의 사망률을 보인 그 해, 한국은 21명의 노동자가 죽었다.
산재율과 사망율의 과도한 격차는, 한국 노동자들은 '덜 다치지만 많이 죽는다'는 결론을 낸다." (p176)
산재율은 낮은데 산재 사망율은 높다. 이 나라의 노동자들은 좀처럼 다치지 않지만 한 번 다치면 쉽게 죽음에 이른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같기도 하고 심심풀이 지능개발 책의 예제 같기도 한 이 이야기. 그러나 지금의 한국에서 남의 돈 받고 일하며 사는 사람들은 이미 해답을 잘 알고 있거나 아니면 삽시간에 추론해 낼 수 있다. 한 스웨덴 교수는 스웨덴의 산재 사망율을 묻는 한국 사람에게 의아해 하며 '아니 왜 사람이 일을 하다가 죽습니까?' 라고 반문했다 한다. 그런 반문을 하는 교수가 세상에 있다는 것이 의아한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에겐, 위의 수수께끼는 수수께끼로서의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
'노동자, 쓰러지다'라는 제목도, '르포, 한 해 2000명이 일하다 죽는 사회를 기록하다'라는 부제도, 수십 개의 철근이 꽂혀진 현장에서 고개를 수그리고 주저앉아 있는 건설현장 노동자가 그려진 표지도, 아무 것도 숨기지 않는다. 이 책은 2014년 현재 대한민국의 노동 현장을 기록한 '빨갱이 책'이다.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 제고', 따라서 나아가 '국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취해졌던 조치와 그 영향들 가운데 굳이 '소수의' 악질적인 것들만을 파고 들어가 까발린 '불손-불순'한 책이다.
책은 총 7부에 걸쳐 각종의 현장을 소개한다. 조선소, 건설 현장, 철도, 우체국, 택배, 퀵서비스, 배달... 모두,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던 사건이 못해도 한 건 씩은 연상되는 글자들이다.
내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테면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취업한, 혹은 전문직을 가진 당신. 당신의 부자 부모가 당신의 전세, 혹은 자가 주택을 사주고도 여전히 풍족한 노후를 누릴 수 있을까? 당신이 펀드로 주식으로 부동산으로 죽을둥살둥해서 돈을 모아놓았다 치자. 당신의 자녀가 당신 만큼의 학력을 갖고 그만한 재능을 갖고 그만한 성취를 이룰 수 있을까? 아니, 우리 집안은 모두 상관 없는 이야기이다, 라는 사람이 있다 치자. 당신이 다니는 회사, 당신이 맡는 사건, 당신이 보는 환자가 점점 이렇게 '쓰러져' 간다. 그 때가 되면 누구한테 무엇을 팔아서 살 작정인가. 그러니까, 여기에 '내 얘기가 아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러 종의 신문을 매일매일 비교적 열심히 읽는 편인 나는, 자세한 수치는 익숙하지 않아도,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현장 분위기나 특정 사건 중 모르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개별의 기사로만 접하던 것을, 각종 노동 현장의 이야기를 모두 묶어놓은 결과물로 읽어보니, 그것도 짧은 기사가 아니라 한 필자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꾸려진 르포의 형태로 접해보니, 익숙하기 짝이 없는 '미친 나라'라는 단어에 실제로 무게가 있었음을 새삼 잠시나마 느낀다. 내일도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오래 느낄 틈은 없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나는 이 책을 고등학생들에게 반드시 읽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의 삶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노동'의 가치가 이 나라에서 얼마나 치졸한 동기와 비열한 방식으로 더럽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 내용에 의문을 갖고 개선을 고민해야 한다. 정의감이나 시민 의식과 같은 고상한 차원에서가 아니라, 식탁에다 밥과 국을 차려놓고 앉아서 먹기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을 때 결혼하기 위해서, 새끼들의 자는 모습만 보며 키우지 않기 위해서, 영문도 모르고 죽거나 그렇게 죽고도 돈 한 푼 못 받지 않기 위해서. 딱 그 차원에서.
이번 책에서는 그야말로 '쓰러진' 노동자들을 주로 다루어주었다. 다음 책에서는 쓰러지고 있는, 그리고 반드시쓰러질 현장들도 가 보아주었으면 한다. 더 많이, 더 자세하게. 비극적인 말이지만, 몇 권의 시리즈를 내도 소재는 한동안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작가는 사회문제 관련 서적 란에서 지속적으로 이름을 드러내고 있다.지치지 말고 계속해주길 부탁한다.
줄줄이 쓰고 있을 생각 없다. 이 책을 대여해서 읽고 있던 열흘여의 기간만 살펴봐도 된다. 그 동안 있었던 일 몇 개만 소개하고 독후감을 마무리 지으련다.
그 열흘 동안. 현대중공업에서는 올해 일곱번째로 사내하청 노동자가 죽었다. 이 회사의 올해 산재 은폐 건수는 11월 초 현재 '밝혀진 것만' 39건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국감에서, 건설현장의 안전 문제를 고용노동부에 제보한 노동자가 제보전화를 끊은지 두 시간 반만에 팀장에게 불려가 해고당한 사례가 공개됐다. 거창한 용어로 보이는 '안전 문제'가 무엇이었느냐 하면, 건설 현장에서 안전화와 마스크를 안 준다는 것이었다. 고용노동부는 내부 제보자의 실명을 기업에 알려줬느냐는 의문에 '(담당자에게)물어봤는데 그런 일 없다고 한다'고 답변하고 이 사건을 끝냈다.
그리고 엊그제인 11월 6일,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정규직 노동자로 판결을 받은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노동자가 자살을 시도했다. 그 좋다는 정규직이 됐는데 왜 죽으려고 했을까. 정규직이 되겠다고 일으켰던 파업 때문에 현대차에 손해를 끼쳤다고 울산지법에서 위 노동자를 포함한 조합원 122명에게 손해배상 70억을 때렸기 때문이다.
더 쓰라면 백 줄이고 천 줄이고 얼마든지 더 쓸 수 있다. 각별히 똑똑해서도 글재주가 뛰어나서도 아니다. 그런나라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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