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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記/2012. 캄보디아

3일차 오전, 반띠아이 쓰레이.

 

 

 

3일차 오전의 아침. 엄청나게 대범한 캄보디아의 신호등이 출발길을 알린다.

 

 

 

 

 

 

 

 

 

 

문제는 반대쪽에서 오는 차량들의 신호도 위와 같다는 것. 좌든 우든 직진이든 가보고 싶은 데로 가봐라, 라는,

법어(法語)같은 시그널.

 

 

 

 

 

 

 

 

 

 

 

 

오늘의 탈것은 '뚝뚝'. 오토바이에 일종의 마차를 연결해 놓은 것으로, 구성 자체는 인도의 오토 릭샤와 다를 것

이 없지만 관광용으로 특화되어서인지 차체의 디자인이나 색깔 등이 훨씬 예쁘다. 젊은 운전사들은 차체에 트랜

스포머나 배트맨 등 인기 헐리웃 영화의 로고, 포스터 등을 도장하기도 하였다.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 1달러를 주고 잠깐 타고 내리기도 하지만, 유적지를 돌아다닐 때에는 하루를 통째로 탄

10-20불 정도를 후불하는 식. 유적지들이 대부분 근처에 모여있기 때문에 운전사도 손해볼 것이 없고, 여행

자 입장에서도 후불인지라 유적 안에 들어가 있는 동안 운전사가 도망가면 어떡하나, 엉뚱한 데 데려가서 기념

품 사게 하면 어떡하나 걱정할 필요 없는, 쌍방 만족의 방식. 누가 만들었는지 머리 좋다.   

 

 

 

 

 

 

 

 

 

 

 

의외의 속도감에 깜짝 놀랐다.

 

 

 

 

 

 

 

 

 

 

 

 

유적군 가운데에는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는 편인 반띠아이 쓰레이. 이름의 뜻은 '여자들의 요새'라고 한다.

 

 

 

 

 

 

 

 

 

 

 

대체로 흰 색 위주인 다른 유적군에 비해 강렬한 붉은색의 사암이 인상적인 유적. 왕이 아니라 힘있는 신하이자

왕자의 스승인 인물이 지었기 때문에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으나, 뛰어난 조형미와 붉은 벽

면에 더해지는 석양이 일품이라 여러 권의 책에서 다투어 추천하는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일몰 때에

는 사람이 지나치게 몰린다는 설명을 들은 나는 일부러 아침에 이곳을 방문하였다.

 

 

 

 

 

 

 

 

 

 

 

학교에 가지 않은 소년. 관광객들이야 지나가든 말든, 마치 선승(禪僧)처럼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

이지만

 

 

 

 

 

 

 

 

 

 

 

사실은 카메라마다 V자를 그려주는 멋쟁이였다. 시크한 표정도 일품.

 

 

 

 

 

 

 

 

 

 



 

 

씨엠 리업으로부터 대체로 십 분에서 십오 분 정도 거리에 있는 다른 유적군에 비해, 반띠아이 쓰레이까지는 사

 

오십 분 정도가 걸렸다. 오전에는 그리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길을 따라 뚝뚝으로 쌩쌩 달렸는데도 이 정도이

 

니, 도로가 깔리지 않았고 밀림이 무성했을 백 년 전이라면 오죽했을까. 그래서, 1860년대에 서양인들에게 발견

 

된 여타의 유적군들과 달리 반띠아이 쓰레이는 50여 년 뒤인 1914년에야 군인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후

 

에도 비교적 작업이 용이한 앙코르 와트 지역 유적군에게 복원의 우선순위를 뺏겨 오다가, '앙드레 말로 사건'으

 

로 인해 주의를 끌게 되고, 이후 1930년대에 들어 본격적인 복원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앙코르와트를 공부하다

 

보면, 여러 권의 책에서 프랑스의 유명한 문인인 앙드레 말로가 유적품들을 도굴하여 밀반출하다가 적발되었고,

 

그 과정을 뻔뻔하게도 소설로 썼었다는 기록을 접할 수 있는데, 그가 도굴하였던 유적이 바로 이 반띠아이 쓰레

 

이이다. 1923년에 일어난 이 사건이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어, 1924년부터 주변의 밀림을 정리하는 작업이 시

 

작되었다 한다. 이 양반은 나중에 프랑스의 문화부장관까지 올라갔다 하니, 제국주의 주체들의 파렴치한 이면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본격적인 입장 전. 나도 소년을 따라 V.

 

 

 

 

 

 



 

 

 

 

여행 내내 멋지게 활약해 준 현지인 바지. 얇고 통풍이 잘 되어, 왜 현지인들이 이 바지를 입지 않는지 의아할 정

도였다. 출국하는 날 오전에 호텔 로비에 서서 햇살을 쬐다가 큰 거울을 보니, 다리의 실루엣은 물론 곤란한 디

테일의 실루엣까지도 그대로 비추어지고 있어서 조금은 납득할 수 있었지만, 사람 죽일 판인 습도에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속옷만 잘 챙겨 입으면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올 여름 한강변 산책길에 입어 보고

경과를 보고하겠다.

 

 

 

 

 

 

 

 

 

 

오랜만에 밥값한 카메라. 아이폰 산 뒤로는 내내 홀대받았는데. 하지만 아이폰이 없었을 때가 결과로만 놓고 보

면 더 좋았던 것 같다. 무거운 카메라를 일부러 들고 나갔으니 뭐라도 찍어야 하고, 찍고 나면 컴퓨터에 폴더로

착착 정리해 놓고 해서, 이후에 돌아볼 기억들이 많았다. 아이폰을 산 뒤로는 인상적인 장면이나 피사체를 만나

조금만 귀찮으면 찍지를 않고, 그나마 몇 장 찍은 것들도 바로 홈페이지에 올릴 수 있으니 따로 폴더를 만들

어 관리하지도 않고 해서, 결과로는 영 꽝이다. 이 경우는, 편한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라는 말이 딱 들

어맞는 것 같다.

 

 

 

 

 

 

 

 

 

 

아름다운 장식미도 좋았지만, 뭣보다 사람이 적어서 찬찬히 볼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았다.

 

 

 

 

 

 

 

 

 

 

참혹한 캄보디아 현대사의 증인들. 이들은 그 중에서도 지뢰 피해자들이다. 여기 뿐만이 아니고 다른 유적군에

서도 입구나 출구 근처에 이런 지뢰 피해자 악단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캄보디아의 전통음악을 연주하고, 그

음악이 녹음된 음반을 판다.

 

 

 

 

 

 

 

 

 

출구에서 만난, 유적보다 반가운 얼음 더미. 따로 냉동 장치도 없는 것 같은데 씨엠 리업에서 한 시간 거리까지

용케 녹이지 않고 가져왔다. 보기만 해도 시원했으나, 눈을 돌리자 금세 다시 더워졌다.  

 

 

 

 

 

 

 

 

 

 

 

유적 밖에 앉아 있는 아이. 조금 뻔뻔하고 유쾌해 보였던 V자 소년과 달리, 이 아이는 어딘가 힘이 없고 슬퍼보였

다. 아이들이 구걸하더라도 돈을 주지 말고 학용품을 주라는 말을 가이드 북에서 읽고는 색연필 세트를 두 개 사

갔는데, 너무 더워서 굳이 가방을 열어 꺼낼 생각조차 하지 못하다가, 이 아이를 만나 처음으로 하나를 건넸다.

별 관심이 없어 보이길래 연습장의 종이를 찢어 그 위에 간단한 선을 몇 개 긋자, 그제서야 받아들고 장난을 치

기 시작했다.

 

 

 

 

 

 

 

 

끝 부분을 돌리면 색연필의 심이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원리를 가르쳐 주니 그게 재미있었던 듯, 떠날 때까지 몇

번을 뒤돌아보아도 계속 빙글빙글 놀이만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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