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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이철희, <뭐라도 합시다> (알에이치코리아. 2014, 2.)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이철희 씨의 신작. 연구소나 저자의 이름이 낯설다 할지라도 사진을 보면 '아, <썰전>

 

서 강용석 맞은편에 앉은 그 아저씨' 할거다. 부제는 '알아서 기지 맙시다. 담벼락에 욕이라도 합시다.'.

 

 

 

책은 총 2부 4장으로 나뉜다.

 

1부는 주로 '리더급 정치인'에 관한 인물 평론이다. 먼저 1장에서는 '진보' 진영을 다룬다. 전임 대통령인 김대중

 

과 노무현에 대한 분석이 먼저 나오고, 뒤이어 현재 야권의 대선 후보급 정치인 3명을 언급한다. 재미있는 것은

 

지난 대선에서 후보로 경합을 벌였던 안철수, 문재인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먼저 호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2

 

장에서는 '보수' 진영의 인물들을 다룬다. 전임 대통령인 이명박과 현 대통령인 박근혜에 대한 분석이 나오고,

 

이어서 현 정부의 시스템을 관장하고 있는 김기춘 비서실장을 언급한 뒤, '차기권력'의 자리에 가장 유력한 한

 

사람으로 김무성 의원을 해부한다.

 

2부에는 3장과 4장에 걸쳐 한국정치의 문제점과 제언, 대안이 실려있는데, 그 내용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아 다소 아쉽다.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문제는 정당정치의 중요성, 지역주의의 폐해, 부활하는 관료

 

주의, 정언유착, 지금 필요한 리더쉽 등등이다. 

 

 

 

오늘의 독후감은 그리 길지 않을 것 같다. 일단 책장을 덮고 가장 먼저 든, 다소간 사적인 독후감부터. 썩 신선하

 

지 않다. 나는 개인적인 관심을 갖고 있어 정치/시사 분야의 도서, 논문, 기사, 팟캐스트 방송 등을 접하는 데 여

 

가 시간의 대부분을 쓰고 있다. 하지만 그런 쪽에 나보다 관심이 덜 있거나 시간을 덜 투자하는 이라 할지라도,

 

책날개의 소개에 나오듯 '지난 대선 정국에서 가장 많은 방송 출연 횟수를 기록한 바 있는 시사 평론가'인 이철

 

희와 그의 주장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 평론계에서 가장 명성 높고 영향력

 

큰 이 가운데 한 명이므로 그의 의견은 거의 모든 사안마다 지면과 방송을 통해 자세히 발표되고, 또 언론 등에

 

의해 수차례 재확산된다. 이런 다종한 루트를 통해 이미 대강의 내용을 접한 바 있는데도 활자로 굳이 다시 접하

 

는 건, 좀 더 깊거나 새로운 분석을 원했던 독자에게나 '<썰전>의 귀여운 이 소장님'을 상상하며 책을 집어든 독

 

자에게나 큰 만족감을 주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애석하지만 이건 유명 평론가가 내는 평론집의 필연적인 한계

 

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 책의 내용에 깊이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진보 계열의 평론가' 들이 지난 정권부터 시작해

 

하나둘씩 방송가에서 퇴출되고 지금은 출판이나 팟캐스트에서 암중모색하고 잇는 한 때, 공중파는 물론 종합편

 

성채널, 그리고 퇴근길 라디오에서까지 이철희가 종횡무진으로 활약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의 화술에

 

허허실실의 전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을 '박정희의 유산을 날로 받은

 

상속자'로 폄하하지도 않고, 문재인 의원을 '노무현 정신의 현현자'로 치켜세우지도 않는다. 독재 정권에 저항하

 

고 지역주의 조장에 분노하고 부당한 대통령 탄핵에 절망했던 이라면 같은 하늘을 이고 싶지도 않을 김기춘 비

 

서실장이라 하더라도 그가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어떤 정책을 냈다면 이철희는 그 정책에 한정해 분

 

명히 칭찬을 한다. 젊은 시절 민주화 운동과 국민 주권 실현의 전위에서 싸웠던 투사라 할지라도 그가 국회의원

 

이 되어 자리 보전이나 계파 형성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면 이철희는 실명을 들어 비판을 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분노와 저주의 목소리가 오가는 말의 전장에서 '여유'와 '소통'의 자세를 갖추었다는 인상을 얻었으며 나아가 평

 

론가서는 최대의 찬사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공정하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그런데 작심하고 싸우는 사람들이

 

많은 중에 상대방을 인정하면서도 조곤조곤 맞는 말을 하는 그의 자세가 꼭 모든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본질보다는 전략을 앞세우는 '화술꾼'으로 폄하하는 이도 있고, 뼈가 없다고 비난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는 보다 분명한 자기 목소리가 들어가 있다. 특히 인물의 분석이나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점으로

 

시하는 분야를 살펴보면 그가 고민하고 탐구해온 바와 지향하는 방향이 선연하게 드러난다. (사실 앞 문단에

 

서 소개한 '평론가 이철희의 특성'은 대체로 MBC <100분 토론>이나 JTBC <썰전> 정도만을 통해 그를 접한 이

 

들이 갖는 인상에 지나지 않는다. 프레시안에서 진행하고 있는 <이철희의 이쑤시개>나 TBS에서 방송 중인 <퇴

 

근길 이철희입니다>를 들어보면 때로 허지웅 뺨치게 시니컬한 지경에까지 이르는 그의 날카로움과 냉철함을 한

 

껏 맛볼 수 있다.)

 

 

 

묶어서 다시 한 번 총평. 나는 사실 '이철희 빠'에 가깝기 때문에 아무러나 즐겁게 읽었다. 하지만 위에서 지적한

 

바를 읽고 우려의 마음이 드신 분이라면 굳이 이 책의 독서를 강권하지는 않겠다. 특히 1부 인물평론 같은 경우

 

는, 한국 정치의 역동성을 고려해 볼 때 3년 후인 다음 대선 쯤에 가면 이미 다시 읽어야 할 필요가 크지 않은 글

 

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정치의 주요한 문제점과 몇몇 제언 등을 포함한 2부는 정치에 막 관심을 갖게 된 이

 

들이 읽어보면 좋을 듯 싶다.

 

 

 

추가로 덧붙이는 아쉬운 점 하나. 일단 글은 쉽게 읽힌다. 전문 분야에 관한 글을 쉽게 쓰는 것은 보통 내공이 아

 

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철희의 '말'은 쉽게 이해되는 수준을 넘어 강렬한 재미나 큰

 

감동, 카타르시스를 주는 경지에 르러 있다. 무의식 중에 그 경지를 기대하고 있었던 탓에 글로 쓰여진 이 책

 

의 독서가 덜 재미있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쉬운 점 둘. 인물평론과 사회평론보다 내가 정말로 읽고 싶은 이철희의 저작은 화술과 정치에 있어서의 전략

 

에 관한 것이다. 여러 사람과 함께 한 토의의 형식이거나 혹은 외국의 참모들이 보여준 전략을 케이스 스터디한

 

저작들은 있었지만,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전략이나 혹은 지금 여기에 꼭 필요한 전략을 제시한 것은 아직 없었

 

다. 사회인으로서의 마지막 목표로 '2017년 대선 전략가'를 꿈꾸는 이이자 '가장 토론을 잘 하는 패널' 중 하나

 

로 꼽힌 그가 직접 말해 주는 자기 이야기가 듣고 싶은 것이다.

 

방대한 정치전략을 여기서 거론하기는 어렵고, 보다 범위를 좁혀 화술에 관해서 그의 전략의 한 예를 들자면. 평

 

소 <100분 토론>을 보면서 내가 의문점을 가졌던 것은 그의 '웃음'이었다. 상대방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 때,

 

'말씀하신 것 가운데 이런이런 것은 분명히 일리가 있습니다. 다만...'이라고 발언하는 것은 무작정 싸울 것이 아

 

니라 일단 줄 건 주고 받을 걸 확실히 받아오자는 그의 허허실실 전략이다. 그 뿐 아니라 많은 평론가, 정치인이

 

취하고 있는 효과적인 전략이기도 하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들으면서도 해

 

맑게 띄고 있는 그 미소. <이철희의 이쑤시개>나 <퇴근길 이철희입니다>를 통해 내가 알고 있는 이철희라면, 속

 

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썩소'도 아니고, 저렇게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이라니. 와

 

중 얼마 전 <딴지일보>와 함께 한 인터뷰를 읽고 마침내 그 의문이 풀렸다. 부분 인용을 해 보자.

 

 

 

 

김창규 (이하 김): <썰전> 때문에 일반 사람들 머리 속에 강용석의 반대는 이철희, 이철희의 반대는 강용석. 이런 구도가 있잖아요. 그런데 강용석의 반대는 절대 이철희가 아닌데?

이철희 (이하 이): 강용석 류가 내 카운터파트라고 한다면 그건 좀 불만이지. 대중적인 평가를 떠나서. 난 그건 아니라고 봐. 더 멋진 보수와 맞짱 뜨고 싶어.

김: 그럼 누가 반대편에 앉아 있음 좋겠어요?

이: TV토론 했던 사람 중에 젤 상대하기 힘들었던 사람은 이혜훈이에요. 잘해. 테크닉도 좋고 관점이 좋아. 쉽지 않은 사람이야.

김: 상대로 인정이 된다?

이: 난 그런 과들은 해 볼 만해요. 막 투지가 생겨. 함 붙어보자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급도 안 되는데 주장만 내세우는 사람 있잖아.

김: XXX같이?

이: 그런 사람은 그냥 웃어버리면 돼. 한 번 해맑게 웃고 한 번 비릿하게 웃으면 끝나. 사람들이 다 평가해. 논박할 것도 없어요.

 

 

 

 

'한 번 해맑게, 한 번 비릿하게'. 풀어 설명하자면, '무슨 말을 하든 일단 들어줄게'라고 포용력을 보여 일단 전략

 

적 우위에 올라선 뒤, '네가 하는 말이 그렇지 뭐'나 '여러분,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다 들으셨죠?'라고 승부를 

 

끝내버린다는 것이다. 나는 한 번 칼을 휘두르지도 않았는데 상대가 제풀에 힘이 빠져 쓰러져버린 셈이다. '싸우

 

지 않고 이긴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전략을 체득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당대 일급으로 활용

 

하고 있는 사람이 쓴 전략의 비술서. 돈 주고 열 권이라도 사고 싶다. 기회를 봐서 그가 진행하는 팟캐스트의 게

 

시판이나 관심 있어 할 출판사에 건의 메일이라도 한 번 보내봐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