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異談

비건국(毘騫國

 

 

<남사(南史)> 남만전(南蠻傳)에 실린 이야기이다.

 

 

 

"남해에 비건국(毘騫國)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의 왕은 키가 오 척이고 얼굴은 삼 척이었으며 만고토

 

록 죽지 않았다. 그 자손들과 나라 사람들은 평범하게 태어나고 죽었다."

 

 

 

근래 소설들 중에 <자불어(子不語)>라는 책이 있는데, 황당하고 불경한 이야기가 많다. 그 책에 비건국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일찍이 한 어부가 그 나라로 표류해 왔다. 국왕이 불러다 보고서는 말했다.

 

"그대가 이 땅에 표류해 온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그 사람이 크게 놀라 말했다.

 

"저는 평생 바다에 표류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번이 처음인데, 대왕께서는 어째서 세 번째라고 하십니

 

."

 

왕이 말했다.

 

"그대가 믿지 못 하는구나."

 

그리고는 좌우에 명하여 첫 번째 <반고성안>((개벽부터 종말까지가 쓰여진 책)을 가져오게 하였다. 왕이

 

쭉 읽다가 한 조목을 가리켰는데, 과연 몇 년 몇 월 몇 일에 어떤 나라 사람인 누구가 비건국에 표류해 올 것

 

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그 사람이 크게 놀라며 보니 과연 그의 이름이었고 년, , 일 또한 그 날이었다.

 

왕은 다시 명하여 두 번째 <반고성안>을 가져오게 하였는데, 또한 그와 같았다. 왕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은가?"

 

그 사람이 답하였다.

 

"이것이 어찌 된 일입니까?"

 

왕이 말하였다.

 

"지금 세상은 세 번째 개벽한 것이다. 만물과 만사를 만드는 것에는 모두 한 차례 정해진 차례가 있다.

 

러므로 한 번 개벽할 때마다 바꾸기가 어려워 모두 처음에 정해진 것을 따라서 하는 것이다. 그대가 이렇게

 

표류해 온 것이, 이후에 몇 번이나 반복될지도 알 수 없다."

 

 

 

 

이 이야기는 참 허황된 것이라 우스울 뿐이다. 내가 일전에 유하(遊荷, 조병귀)에게 이 이야기를 하며 말했다.

 

 

 

"사람이 오래 사는 것을 비록 좋아한다고는 하나, 죽지 않으면 하늘로 올라가거나 산에 들어가는 것이 옳습니다.

 

비건국의 왕은 몇이나 되는 아내와 아들을 잃고서 홀로 장수와 부귀를 누렸으니, 슬프지 않습니까."

 

 

 

유하가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이것이 어찌 슬플만한 일이겠습니까. 아내와 아들들이 맨 처음 죽었을 때에야 혹 슬펐을지도 모르지만 몇십 명

 

이 죽었을 때쯤 되면 슬퍼하지도 않았겠지요. 하물며 손자나 증손자 이후로는 그냥 오다가다 만난 사람이 죽은

 

것과 같지 않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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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기록을 찾아보니 비건국의 왕은 머리가 두 개였다는 글이 있었다. 조병귀는 저렇게 말을 했지만, 나는 이

 

글을 해석하면서 세상 모든 일의 순서를 알고 처자를 순서대로 하나씩 떠나 보내는, 왕좌에 앉아 두 머리에서 네

 

줄기 눈물을 흘리는 거인을 내내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