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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2

명동에서





약속이 있어 명동거리를 지나는데 죽을 것 같은 사람이 눈에 띄었다. 옷인지 이불인지 번데기처럼 칭칭 두르고 건물의 벽면에 기대 섰는데, 푹하고 쓰러질 것처럼 천천히 허물어지다가 흠칫하고 몸을 세우고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지나는 동안 그런 모습을 너댓 번이나 본 것이다. 바로 앞의 버스표 판매소에 가 물어보니, 중년의 여사장님은 얼마 전부터 서 있다고, 예전에는 바로 앞에 있는 명동성당의 주차장에서 자주 보였었는데, 증축 공사를 시작한 뒤로는 이렇게 인근을 돌아다니며 밤이고 낮이고 마냥 서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인도에 갔을 때 그런 모양새로 있다가 결국 죽은 사람을 본 일이 있었다. 흰 우유라도 먹이려 두 팩을 샀는데 작은 것 하나가 팔백 원 씩이나 해서 깜짝 놀랐다. 소 한 마리가 만 원인데 흰 우유 작은 팩이 팔백 원. 드시라고 밀었더니 손까지도 꽁꽁 싸매고 있어 뜯지를 못하기에 내가 대신 팩을 따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등을 치더니 '신고도 많이 하는데, 한 달째 이러고 있어'라고 하고는 가 버렸다. 그도 우유 한 팩을 사주지 못한 것에 못내 마음이 쓰여, 난생 처음 보는 청년에게 말을 걸지 않았을까. 아니,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약속시간까지 마냥 앉아있을 것이 아니라 명동성당에라도 가 봐야겠다. 신고도 했었다니 경찰은 어찌할 바가 없다는 것이고, 어쨌든간에 그이를 몰아낸 꼴인 성당에서는 해줄 말이 있을 거 아닌가.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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