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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3

독서일기-안자(晏子)

사직(社稷)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 왕조의 수호신을 가리키며, 사는 하(夏)왕조의, 직은 주(周)

왕조의 신이다. 자세하게 말하면, 사는 토지의 신이 아니라 실은 물의 신이고, 직은 곡물의 신이지

만, 주 왕조가 함께 제사를 지내서 땅을 결실의 신으로 만들어 버렸다. 주 왕실이 사직을 제1의 신으

로 하는 한, 주 왕실에 속해 있는 나라들의 공실도 사직을 받들었다. 다시 말해 국가의 존립은

사직에 걸려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부터 사직이라고 하면 국가를 가리키게 되었다.


한 나라에 있어 가장 주요한 것은 군주인가, 사직인가. 이 질문에 있어 제나라의 명재상 안평중영,

안자(晏子)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군주라는 것은 백성 위에 서 있지만, 백성을 깔보면 안 되고, 사직을 받드는 사람이다. 신하라는 것

은 녹봉을 위해 군주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사직을 키우는 사람이다."



-역사소설, 이라 하면 그 비중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실(史實)로 남아 있는 성긴 얼개의 사이를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워 넣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작가 중에서는 도몬 후유지와 미야기타니

마사미쓰 등이 이 방면에 능한 작가로 손꼽히는데, 둘의 작품을 비교해 가며 읽어 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많다. 주로 일본 역사를 다루고 있는 도몬 후유지는 공무원 출신의 작가인 탓인지 글에 낭비

가 없다. 정확히 필요한 정보만을 전달하고 있는데, 그 짧은 길이가 때로는 가치판단까지도 지니

고 있어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그래서 이따금 마음이 어지러우면 그의 책을

꺼내어 읽는다. 회사원들에게 자주 읽히는 '인간경영' 시리즈도 볼 만 하지만 추천하고 싶은 책은

우에스기 요잔의 생애를 다룬 '불씨'라는 작품이다. 다음 내용을 쉬 예측해 가며 읽을 수 있는 것

이 흡사 동화책을 읽는 것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이에 비해 중국 춘추시대를 주로 서사하고 있는 미야기타니 마사미쓰의 글은 그야말로 용과 같다.

[논어]에 보면, 맹자를 만나고 돌아온 공자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하늘을 나는 것은 화살로

잡을 수 있고 물에서 헤엄치는 것은 그물로 낚을 수 있으되 용이란 물건은 도무지 어디로 갈지 알

수가 없다. 오늘 용을 보았다.

미야기타니 마사미쓰의 글이 과연 그렇다. 도몬 후유지의 글이 갈 길을 잘 닦아 놓고 밟을 곳까지

상세히 가르쳐 주고 있다면 마사미쓰의 글은 흡사 절벽 사이에 놓인 징검다리와도 같다. 한발짝 한

발짝 훌쩍훌쩍 뛰어 넘어 어느새 저만치서 새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는 데에는 도무지 당할 노릇이

없다. 그 사이를 채워 나가는 즐거움을 알고 있다면 가히 능동적 독자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필체에 있어서도, (비록 번역된 것이긴 하지만) 이 정도 수준이면 세권짜리 시집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디자인 센스 만점의 현대시집이 아닌, 한지 냄새가 푸욱 나는 옛 종이의 더미, 모음집.

중이, 맹상군등이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그의 작품인데, 나는 안자(晏子)를 권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개인으로서의 그의 취향을 담뿍 담고 있기로 유명하다. 표와 기등의, 그 성격

에 따른 '챕터'의 '장르'를 개척했다고도 일컬어지는 사기에서 특이하게 보이는 챕터는 '열전'이다.

역사의 한 사건을 독립시켜 인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는 -이는 하나의 문학 형태라고 해도 좋을만

한 것인데- 이 열전의 두번째가 '관안열전'이다.

'관안'의 '관'은 제환공을 도와 그를 춘추오패의 으뜸으로 세워 놓은 명재상 관중(잘 알려진 숙어

관포지교의 관도 이 사람이다.)을 말하는 것이고, 그 뒤의 '안'이 바로 안평중영, 안자를 가리키고 있

는 것이다. 수많은 인재가 그 재주를 뽐내었던 춘추전국시대에서, 사마천이라는 천재가 첫번째 두

번째 손으로 꼽은 인물이라는 것만으로도 그의 가치가 능히 짐작된다 할 수 있겠다.


안자(晏子)라 할 때에, 이것이 반드시 안영만을 지칭한다고는 할 수 없다. 익히 알듯이, 고대 중국에

서 자(子)는 공경을 받을 만한 인물에게 붙이는 일종의 칭호였다. 따라서 안씨 집안에 따로이 유명한

인물이 생긴다면, 그때부터는 안영만을 안자로 부를 수는 없게 된다. 이 소설도 거기에 대한 것을

충분히 고려한 것으로 보이는데, 다행히도 안씨 집안에서 따로이 안자라고 불릴 만한 인물은 안영의

아버지, 안약(晏弱)이다. 이 소설은 안약과 안영, 이대 부자의 생을 그리고 있다.


법가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안영은 중국민이 오래도록 추앙할 만한 인물형은 아니다. 그

럼에도 중국에 있는 안자의 사당에는 각지에서 몰려드는 사람들의 참배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와 같은 독특한 향취를 가진 사람의 행보를, 유려한(그렇다. 유려하다는 말을 세상 단 한군데에만

써야 한다면, 나는 그것을 소설 안자에 바치겠다.) 글로 따라간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처음 이 책을 손에 잡았던 것도 육칠년이 다 되어간다. 책을 고쳐 읽는 것이 내 오랜 습성이라지만

이 책만큼 손때를 묻혀 가며 놓지 않는 책도 많지 않다. 느지막히 일어나 신문을 읽다가 사직, 이라

는 말이 남용되고 있는 것을 보고 문득 생각이 나 책을 들추어 보았다. 굳이 일부러 읽을 것 까지는

없고, 가을이라 책이나 한 번 읽어 봐야겠다 싶은데 딱히 읽을 책이 없는 분들에게 권한다.

출판사가 한경인 것은 신경쓰지 말자. 내용만 재미있으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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