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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1

꿈을 꾸었다





아침 해를 보고 잤다가 오후에야 일어나던 수면 습관이 삼십 분 한 시간씩 차츰 늦춰지다가 급기야 몇 개월만에 열한
 
시 취침, 여섯 시 기상의 새마을 인간이 되었다. 어딘가의 찌라시 과학상식에서 인간의 수면 주기는 실은 25시간이기

때문에 24시간에 맞춰 매일 반복되는 '규칙적' 취침 시간이란 실은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읽은 바 있는
 
나는 이러한 생활에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하루가 길어졌다든지, 야식을 먹지 않으니 소화불량이 없어졌다든지 하는 장점이 있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없지 않

은데,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꿈을 적게 꾸게 되었다는 것이다. 낮에는 커튼으로 창을 가려도 사방이

환하기 때문에 가수면 상태가 길어져 꿈이 많았던 것은 아닌가 추측을 해 본다. 눈을 가려도 피부에 햇빛을 쬐어 주면

각성 상태가 된다는 또 하나의 찌라시 상식이 있기 때문인데, 어쨌든동 그렇다면야 수면의 효율은 올라간 것이니 몸에

는 좋은 일이겠지만 어지간한 예능보다 다채로운 꿈을 꾸는 나로서는 생활의 낙을 잃어 기분이 별로다.


와중에 며칠만에 꿈을 꾸었다. 토요일, 학교에서 돌아와 MBC에서 해 주는 긴급출동 911과 AFKN에서 해 주는 WWF

레슬링을 보고, '자연의 소리'나 '생명의 소리', '금성에서 온 여자의 육성' 등을 들려주던 유료 전화에 귀를 쫑긋 세

우던 것이, 꼭 지금 일어나는 일처럼 생생하게 펼쳐졌다. 옛 TV 프로그램들이야 스스로 회상하기도 하고 이따금 글의

소재로 써먹기도 하기 때문에 꿈에 나왔다 해도 별달리 놀라울 것은 없지만, 라디오의 전파 소리와 별다를 것이 없었

던 금성여자의 육성 유료통화는 정말 십수 년 만에 떠오른 일이다. 전화세가 많이 나와 엄마한테 혼나면 어쩌나 싶으

면서도 외계 문명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끊을 수가 없던 그 심정이 그대로 다시 느껴졌다.


발단은 아마도 후배 신각이가 어딘가의 문구점에서 사 온 팽이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막상 잡으면 금세 돌리며
 
즐거워할 거라고 여겼는데 전혀 돌릴 수가 없었다. 끈을 매는 것부터 잡는 것까지 뭔가 중요한 걸 까먹고 있다는 느낌

이 내내 들어, 베개를 베고 누워서도 갸웃거리다 잠이 들었는데 그 덕에 옛 생각이 난 모양이다.


신각이는 몇 명의 후배들과 다음 주에 모여 팽이를 돌려보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해 주었다. 당시에는 실은 날이 추워
 
귀찮았으면서 스케줄이 어떨지 모르겠다며 짐짓 사양했는데, 혹 또 즐거운 꿈이 꿔질까 기대되어 나가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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