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한문학과 강사이자 '자칭 전업 글쟁이'라고 하는 김재욱 씨의 신작. 부제는 '삼국지로 풀어보는 대한민국 인물열전'.
제목과 부제가 책 내용의 거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이 책은 2014년 현재 특히 정치상황과 관련하여 시의성 있는 인물을 선정해, 그의 언행에서 연상되는 <삼국지>의 등장인물과 짝을 이뤄 함께 소개하고 평을 하고 있다. 등장하는 인물은 정치인, 교수, 작가 등을 비롯해 총 32명에 달한다. 각각의 인물에 짝이뤄진 <삼국지>의 인물까지 더하면 총 64명이 호명되는 셈이다.
이러한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와 경과는 책 끝의 '에필로그'에 실려 있다. 짧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13년 말, 학술지에 투고할 논문이 써지지 않아 고민하던 필자는 술을 먹고 홧김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즉흥적 인물 평'이라는 제목으로 몇 개의 정치평을 썼다 한다. 책으로 나온 것보다는 훨씬 짧은 분량이었지만 정치적 인물의 장단을 삼국지의 등장인물과 연결해 품평하는 형태는 이미 이 때 완성되어 있었다. 이 '즉흥적 인물평'은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조국 서울대 교수가 주목하고 페이스북 친구를 맺으며 한 차례 유명세를 타게 되고, 또다른 등장인물 중 한 명인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페이스북 친구를 맺고 내용을 퍼뜨림으로써 더더욱 이름을 알리게 된다. 와중 조국 교수가 내용을 보강하여 책으로 내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하고 직접 출판사까지 소개를 시켜 주었다. 저자는 '얼떨떨'한 상태로 이 출판사와 계약을 하였고, 본래 올렸던 글들을 새로운 구성에 맞추어 재집필해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2013년 말 시점에 술을 먹고 정국에 분통이 터져 글로 포효했다는 데에서 짐작되듯, 저자는 명백히 개혁-진보 진영의 시점에 서 있는 이이다. 독자가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도 없이 저자는 '머리말'부터 본인의 정치적 입장을 숨기지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이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기 전 후한의 상황과 비슷하다', '후속편을 쓸 생각은 없지만, 만의 하나 쓰게 되더라도 보수 진영의 인사를 좋게 쓸 일은 없을 것이다' 등의 발언을 읽다 보면 단지 비슷한 정치적 입장을 갖고 있어서만이 아니라 그 호방함에 덩달아 시원함을 느끼게 된다. 뒤집어 말하자면, 새누리당을 지지하시거나 혹은 개혁-진보 진영을 지지하지 않으시는 분이라면 내내 불쾌한 독서일 수 있으니 주의 바란다.
등장하는 32명 가운데 '보수 인사'는 3명, '민주-진보 인사'는 29명이다. 저자는 여기에서도 '보수 인사는 무능한 악당에 비유했으며, 진보 인사는 능력 있는 참모나 장수에 비유했다'는 집필 의도를 분명히 밝혀두었다. 딱 3명 뽑는데 당당히 이름을 넣은 보수 인사는 '민심을 거스르면 반드시 무너진다'는 한줄평으로 화웅에 비유된 전전 서울시장 오세훈, '뇌물, 사람을 죽이는 흉물'이라는 한줄평으로 양송에 비유된 서청원, '앞잡이의 대명사'라는 한줄평으로 화흠에 비유된 김문수이다.
400여 쪽의 분량에 '머리말'과 '에필로그'를 제하고 32개의 꼭지가 들어가 있다. 한 꼭지의 분량은 약 10여 쪽 정도 된다. 한 꼭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먼저 3-5쪽 가량의 전반부에, 주인공과 관련된 <삼국지>의 등장인물이 소개된다. 그리고는 한 쪽을 통째로 차지하는 김재훈 화백의 캐리커쳐가 실린다. (독서일지 카테고리에 <라이벌>과 <디자인 캐리커쳐>의 작가로 소개한 바 있었던 그 김재훈이다.) 캐리커쳐의 뒤부터는 역시 3-5 쪽에 걸쳐 주인공의 언행이 소개되고 작가의 간단한 평이 덧붙는다.
쉽고 효율적인 구성이지만 굳이 다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꼭지인 ''유표' 문재인' 편을 예로 들자면, 먼저 3-5쪽 정도 유표의 일생 중 어떤 한 장면이나 사건이 소개된다. 그리고 한 면을 통째로 차지하는 김재훈 화백의 캐리커쳐가 실린다. 이어 문재인이 소개되고, 굳이 유표에 비견된 그의 특성을 위주로 품평과 제언 등이 진행된다.
분량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삼국지>의 등장인물이든 오늘날 한국의 인물이든 이력의 전체가 다루어지지는 않는다. 그 사람의 캐릭터를 강렬하게 보여주는 언행, 혹은 사건 정도가 언급되고 있기 때문에, <삼국지>의 매니아나 연구자, 혹은 현실정치 참여자라면 겉핥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불만을 품을 수도 있겠다. 김한길을 원술에 비유한 것이나 진중권을 예형에 비유한 것은 제목만 읽어도 공감이 되어 웃음이 푹, 하고 나오지만, 이광재를 여몽에, 정청래를 주태에, 홍세화를 유비에 비유한 것 등은 내용을 다 읽고 나서도 다소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 책이 철저한 주관의 산물임을 숨기지 않았다. 본인의 정치적 입장, 집필 동기, 그리고 이 책의 현실적 한계까지를 당당히 밝혀놓은 판에, 객관적이지 못 한 내용이 있다고 비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학위를 따는 논문도 아니고 연구용역비를 따오는 보고서도 아니다. 특정한 입장을 가진 시민이자 학자가 본인에게 편한 비유를 들고 또 대중에게 쉽게 전달될 수 있는 문체와 구성을 택해 풀어 놓은 한 편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혹 명예훼손에 걸릴 내용이 있으면 당사자가 고소를 하면 그만이고, 그 외의 사람이라면 재미있으면 계속 읽고 재미 없으면 안 읽으면 될 일이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잘 읽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오면 팬심의 재미로,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나오면 같이 뒷담화 까는 재미로, 혹여 나와 생각이 다른 내용이 있더라도 '이 형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하고 남의 얘기 듣는 재미로, 그리고 오랜만에 <삼국지> 인물들의 이름 보는 반가운 재미로, 이 재미 저 재미 돌려가며 읽다 보니 금세 독서를 마치게 됐다. 한국의 현실정치와 <삼국지> 양단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라면 비슷한 감정으로 가볍고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덧글. 언제나 감상하는 재미 가득한 김재훈의 캐리커쳐 또한 이 책의 맛 중 하나여서, 출판사에서 제공한 고화질의 캐리커쳐 두 장을 덧붙여 둔다. 유표에 비유된 문재인과 원술에 비유된 김한길의 캐리커쳐이다. 나 개인의 선호와 관계 없이 출판사가 제공한 그림이 이 두 장 밖에 없어 두 장만을 올린다. 나머지 그림들도 대단한 매력이 있으니 서점에서 지나가다 이 책을 발견하게 되시면 그림만이라도 일단 들춰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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