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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강준만, <강남 좌파>




문제의 <강남 좌파>, 순서를 기다리고 기다려 드디어 읽었다.



개인적으로는 강남 좌파라는 개념을 반기지 않는 이들에 대해 마뜩치 않게 여기는 감정이 있었다. 강남좌파라

는 단어
의 출현은 첫째로 그 단어를 접하는 사람들에게 지역이나 이념 등의 구태의연한 틀에서 벗어나 마침내

계급이라는 도
구를 통해 현실사회의 진면목에 대해 한 발 더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인식을 갖게 하는 전기가 되

어 주었고, 둘째로 민
주당과 같이 개혁의지가 없거나 야3당과 같이 세가 부족하여 국민들의 이목을 끌어모으지

못하던 개혁-진보 진영에
일정한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물론 강남 좌파의 실체를 파보면, 한국과 같은 기형적 소득원 구조의 사회에서 그들
이 소유한 부가 세금 완납한

근로소득일리는 만무한 일이고, 이른바 '진보적'이라는 정치 성향 또한 헐리웃 여배우들
이 유행시키려고 들고

다니는 에코 백과 같이 저열한 수준의 자기 만족이나 허영심 정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백보 양보

하여 그것이 진실이라 할지라도, 굳이 강남 좌파들의 논리적 허점을 들춰내어 상대적으로 사회적 영
향력이 큰

그들의 등을 저쪽으로 돌리게 하거나, 혹은 기나긴 박근혜 독주의 레이스에서 마침내 한 동력원을 찾아낸
개혁-

진보 진영의 지지자들에게 실망감을 줄 필요가 있겠는가? 학자로서의 양심 때문에 침묵할 수 없었다는 변명이


있을지 모르나, 결과로 보면 입다물고 있던 사람보다 사회에 더 큰 해악을 미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해 왔던 것

이다.



강남 좌파의 허구성과 위악성을 체계적으로 밝힌다고 하는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그 생각이 크게 변한 것

은 아니
다. 노무현과 유시민도 그 펜 끝에서 목이 뎅겅거리는 판인데, 조국이 눈에 차겠는가? 이 책에서는 부당

하게 집권하느
니 차라리 재야에 남겠다는 식의 오래된 '불임'의 냄새가 난다. 그러나 강남 좌파의 기원과 성격

에 대해 꼼꼼히 분석함
으로써 이들을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신뢰해도 좋을지 등에 대한 판단의

근거를 제시한 점은 큰 미덕
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울러 강남 좌파 비판에 그치지 않고, 그를 통해 학벌 사회이

자 계급 사회인 한국을 구조적으로
분석하고 실상을 고발한 점, 그리고 정치적 대안의 하나으로서 '인물 정치'

에서 벗어나 '정책, 이슈정치'로 나아가자는
구호를 다시 한 번 되새겨준 점은 높게 평가할 만 하다. 종합하여,

시대의 한 면을 분명히 반영하고 있는, 필독서다.



읽으면서 독후감을 써야겠다는 느낌이 오는 책의 경우에는 나중에 다시 펴 볼 수 있도록 인상적인 부분마다 이

면지를
오려 만든 책갈피를 꽂아둔다. 다 읽고 세어보니 이 책에는 총 30매의 책갈피가 꽂혔다. 쓰고 싶던 것을

줄줄이 다 쓰
자니 읽는 사람이 없을 것 같고, 편을 나누어 분리해서 써 보자니 그러면 앞으로 부담스러워 독후

감을 쓸 마음이 선뜻
들까 싶기도 하고. 저자와 제목, 목차를 설명하는 '책 소개', 나중에 참고하기 위해 적어 두

는 '정보', 그리고 개인적인
'감상'을 나누어 세 파트로 구성을 해 볼까? 아무튼 여러 모로 고민거리가 생겼다.

오늘은 일단 짧게나마 감상을 덧붙
일 수 있는 것들만 골라내어 짧게짧게 적어둔다. 



- p 173. "조국은 <중앙일보>인터뷰에서 자신은 '정치근육'이 없다고 했는데, 실은 그게 그의 강점이다. 기존

정치판에
서의 근육이라는 게 주로 이전투구 잘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조국의 치명적인 단점으

로 꼽는 '전투력'
에 대해 정반대의 평을 해 놓는 것이 재미있다.


- p174 - 176. 조국 현상은 오마이뉴스의 오연호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오연

호의
'킹메이커 병'이 도졌다는 글을 자주 접해 왔는데, 위에 표시한 세 쪽에서 강준만은 '노무현 띄우기'와 '문

국현 띄우
기'로 상징성 뿐 아니라 경제적 실익도 챙겼던 오마이뉴스가 구행을 답습한 것 뿐이라고 분석하고 있

다. 경제적 실익
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제시되지 않았다.


- p 186 - 187. 조국은 '진보적'인 교육관을 설파하는 한편으로 딸을 외고에 진학시킨 것에 대해 '나의 진보적

가치와
아이의 행복이 충돌할 때 결국 아이를 위해 양보하게 되더라'라고 변명 혹은 술회한 사실이 있다. 이 일

은 조국 개인
뿐 아니라 강남 좌파의 위선성을 고발한다는 비판의 근거로 꾸준히 사용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

강준만은 그러한 현
상을 만든 구조 자체를 탓해야지 개인을 탓해서는 안 되며 '(흠이 단 하나도 없는) 성인이 아

니면 입 닥쳐' 식의 비판은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견 조국과 강남 좌파들의 스탠스를 이해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긴 호흡의 문맥에
서 어쩐지 '그 사람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이니 기대한 너희(우리)가 잘못이다.

기대하지 말자. 어차피 저 쪽의 사람이
다'라는 시선이 느껴진다.


- p 193 - 220. 6장인 이 부분은, 정치인들이 '강남 좌파'라는 허구의 이미지 외에 무엇으로 뿌리깊은 정치 불신

을 해
소시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한 '모델'로서 박근혜를 분석하고 있다. 강준만에 따르면 박근혜

의 '성공' 원
인은 준수한 외모, 원칙과 신뢰, 적절한 침묵이며 그의 가장 큰 문제라면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의

구태의연함이다.

제점 하나. 강준만이 꼽은 박근혜의 강점은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에서만 유효한 것이거나 혹은 많은 이들이

박근혜의
최대 약점으로 꼽는 항목들이다. 둘. 박근혜의 문제점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며 이는 '용인술'을 통

해 해결할 수 있다
는 언술은, 뒤집어보면, 박근혜 개인에게는 흠결이 없다는 말이다. 셋. 그래서, 어쨌든 대권

후보 중 지지도 1위이니 박
근혜에게서라도 배울 건 배우자, 는 취지였을지 모르지만 글 전체의 느낌은 명백히

박비어천가이다.



- p 231. "분당을 선거는 결국 손학규와 민주당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 선거 역시 한국 정치의 오랜 철칙에 충실

한 선
거였다. 지역을 막론하고 한국 유권자들을 움직이는 최대 동력은 반감(反感)이다... ...쉬운 이해를 위해 좀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그 절망의 심리는 이런 것이다. '정치인은 자신의 권력욕 충족을 위해 국민을 뜯어먹고

사는 집단이며,
정치는 그들 개인과 가문의 영광을 위한 출세 수단일 뿐이다. 뜯어먹더라도 돌아가면서 뜯어먹

어라. 조폭 세계에도
'분배의 윤리'는 필요하다. 고로 물갈이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시원하긴 한데, 그건 쌓여있던 분통을 욕설과 같은 과장된 언사로 풀어버릴 때 느껴지는 일종의 배설감이지, 보

편적으
로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논거를 통해 주장을 증명하는 것을 지켜보켜 느껴지는 명쾌함은 아니다. 욕 먹을

때 먹더라도
하고 싶은 말은 시원하게 한다, 공격받지 않으려고 어려운 단어 써 가며 말을 배배 꼬지는 않는다,

는 태도는 참 멋있
긴 한데, 논거가 뒷받침되지 않는 호통은 평론이 아니라 독설의 수준에 머무르고 만다. 안타

깝다.



-  p 253 - 305. 유시민에 관한 8장. 유시민에 대한 강준만의 인상을 짐작할 수 있는 한 부분을 인용해 보자.

"행사(국민참여당 창당대회를 지칭) 말미에 등장한 유시민이 연설을 끝내자 3000여 명의 당원 대다수는 자리에

서 일
어나 '유시민'을 연호했다. 유시민은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있느냐' '옆에 있는 동지들을 믿느냐'는 등 질문

을 던지는
화법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그런 그가 '모든 이가 이익을 탐할 때 홀로 올바름을 추구했던 노무

현 정신으로 돌아
가자'고 외쳤을 때 청중의 환호는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국민참여당 창당에 줄곧 반대해온 이

해찬, 한명숙 전 국무총
리와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 등 주요 친노 인사들은 이날 창당대회에 불참했다."

이 부분은 중앙일보의 기사를 인용한 것이긴 하지만, 글 중에는 따로이 인용부호가 없고, 통째로 인용한 이상

강준만
의 의도가 일치한 글이라고 보아도 좋겠다. 3000여 명 되는 정치적 행사에서 일상적인 화법으로 연설을

하는 정치인
은 없다. 게다가 '청중의 환호는 극에 달했다'에서 '그러나 친노 이사는 빠졌다'는 연결은 가히 악의

적이기까지
하다. 사실 유시민 비토 세력의 비판 가운데에는 차분히 팩트로만 구성해도 설득력을 갖는 것들이

실제로 꽤 많다. 굳
이 중앙일보의 기사까지 인용해 가며 감정적인 차원의 비난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개인적으

로는 강준만의 참여 정부
에 대한 혐오만을 되새겼을 뿐이다.


- p 264 - 265. 강준만과 최장집의 용어. '영남 민주화 세력의 한'. 재미있는 지적인데, 글만으로는 잘 모르겠다.

정치를 공부하는 사람을 만나면 
물어보자.


- p 349 - 350. "불법 폐기물을 쌓아두었다가 홍수가 날 때에 슬쩍 휩쓸려 가버리게 만드는 폐기물 처리법이 있

다. 욕
먹어 마땅한 수법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홍수 처리법'은 우리에게 익숙한 관행이다. 특히 그 어떤 사회적

홍수가 났을
때에 좋지 않은 것들을 일거에 해치우려는 습성은 한국 사회의 오랜 전통이다. 그런 특성에 '홍수

민주주의'라는 딱지
를 붙일 수 있겠다... ...화끈하고 역동성이 있는 건 좋은데, 국민적 면책심리를 부추겨 잘못

된 일을 똑같이 반복하도록
하는 게 문제다. 어떤 사회적 문제가 터졌을 때, 공동 책임을 져야 마땅한데도 주범

을 하나 지목해서 모든 책임을 떠넘
기고 다른 모든 사람은 면책될 뿐 아니라 피해자인 양 오히려 큰소리치는 풍

토는 한국 사회의 익숙한 풍경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에리카 김만 비행기 타고 몇 번 왔다갔다 하다가 끝나버린 BBK 의혹. 은진수 하나 감사하고

끝난
부산저축은행 비리. 이인규만 열 달 살고 나온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PD수첩에 실명 뜬 박기준만 옷 벗고

변호사 개
업한 스폰서 검사 사건. 이런 사건들의 실상을 고발하는 프로그램과 간행물이 더 늘어나야 한다. 큰

규모의 비리나 사
기는 불세출의 악당 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구조를 개혁하지 않는 이상 비극은 일상처

럼 일어나게 되어 있다.



- p 356. 강준만은 임혜현 기자의 입을 빌어 '오세훈은 우파의 노무현'이라는 명제를 제시한다. 근거로는 네 가

지가 제
시되었는데, 일일이 반박해서 쓰다 보니 혹 노무현을 위해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팩

트와 연관된
부분만 추려 남긴다.

오세훈과 노무현을 연결짓는 네 가지 근거 가운데 첫 번째는 성공 이력.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대학도 못 갔지

만...고
시를 통과한 노 전 대통령과 비슷한 이력을 오시장도 가졌다. 오 시장은 넉넉하치 않은 환경에서 자라 대

학을 마치고
변호사가 됐다." 간단한 지적 하나. 노무현이 나온 고등학교는 60년대 부산의 상고. 오세훈이 나온

고등학교는 70년대
중후반의 서울 일반고다. 둘. 오세훈의 최종 학력은 대학원 법학 박사이다. 학교는 대통령과

같은 고려대학교. 학사와
석사도 고려대 졸업이다. 

두 번째는 '언론이 만든 스타'. "노 전 대통령은 5공 청문회 명패 사건의 보도되면서...유명세를 탔고, 오 시장 역

시 <오
변호사 배 변호사>에서 선배 배금자 변호사와 함께 방송에 출연해 유명인이 됐다." 방송에 얼굴이 비쳐

유명해졌다는
것은 거짓말은 아니다. 그러나 부산지역 노동자들의 변호를 도맡다가 전두환의 청문회에서 일갈

을 날렸던 노무현과
가정법률 전문 출신으로 TV 컨설팅 프로그램에 출연해 말끔한 외모로 인기를 끌었던 오세

훈에게 'TV출연'이라는 이
름표를 함께 붙이는 것은, 비열하지 않은가? 

두 번째에 대한 반론도 그렇긴 하지만, 세 번째 '정계의 혜성'과  네 번째 '비판 여론에 대한 전투적 대응'에 대

해 쓴 글
은 특히 팩트가 아니라 가치관에 근거한 반론이라 다시 읽어 보고는 삭제하였다.



쓰다 보니 비판 일색이 되고 말았는데, 사실 이렇게 흠잡을 데가 많았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저자가 비록 거칠더

라도
자신의 소신을 확실히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니 상생하자'는 식의 선순환적 결론을 냈다거나 양비론적 평

가를 동시에
인용함으로써 안위를 고려하는 글은 시체말로 '깔' 곳이 없다. 책의 내용에는 동의하는 부분도, 그

렇지 않은 부분도 있
지만, 적어도 솔직함을 높은 수준으로 담보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소통의 의지가 강하게 느

껴진다. 일단 나는 알라딘
보관함 리스트에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