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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5.12.21 취미 근황
  3. 2015.12.06 첫 녹음
  4. 2015.11.04 제자들에게
  5. 2015.10.11
일기장/20152015.12.21 05:33

 

 

 

뭔 일이 없는데 무슨 일기를 쓴담, 하고 지내긴 하지마는 뭔 일이 없다고 안 쓰면 어느 세월에 쓰려고, 하는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다. 와중에, 그 때 그 때 읽은 책과 영화 제목을 적어놓은 친구의 기록을 보게 됐다. 그런 것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나한테는 둘째치고 자기 자신한테도 그게 무슨 재미가 있으랴 싶었다. 막상 보게 되니 남의 관람 및 독서기인데도, 맞아 이 해에 이 영화가 있었지, 이 책이 나왔었지, 하고 무척이나 즐거웠다. 그런 기록까지 쓰게 될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집 밖에 나가서 한두 장이라도 사진을 찍은 날에는 일기를 좀 쓰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그래서 쓰고 있는 12월 셋째주 토요일의 일기.

 

 

 

 

 

 

 

 

오랜 친구 빛나가 결혼을 했다. 연극부의 선후배로 만난 빛나는 함께 만나는 모임 등이 없는데도 일대일로 오랫동안 믿고 지내는 좋은 벗이다.

 

 

 

 

 

 

 

 

이제는 친한 친구들과 앉아 수다를 떨면서 보더라도 결혼식은 지겹다. 하지만 빛나의 결혼식에는 대학 동문들이 거의 오지 않아 혼자 식장 뒤쪽에 서서 결혼식을 보았는데도 끝까지 흐뭇하고 즐거웠다. 나도 누군가한테 그런 사람이어야 할텐데 하고 뜬금없는 반성을 했다.

 

식이 끝나고 사진을 찍을 때에야 99학번 선배인 윤선이 형이 와 있는 것을 알게 됐다. 20대를 돌아보면 잘했다고 평가할 만한 일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그래도 개중 스스로 장하게 여기는 것은 블로그를 끈덕지게 운영해왔다는 것이다. 윤선이 형은 첫 블로그 페이지를 만들어 줬던 형이다. 자신의 계정 중 일부를 떼어내어 내 페이지를 만들어주고, 주변에 알려도 주고, 나중에는 큰 포털인 티스토리로 옮기는 데 조언까지 해주었었다. 말하자면 은인인 셈이다. 하지만 두 학번 차라 군 시절이 엇갈리는 바람에 실제로 같이 학교를 다닌 시기는 거의 없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있고 고마운 마음도 있지만 정작 친해질 기회는 별로 없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근처의 찻집에 앉았을 때에도 그런 마음이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긴 한데 무슨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멀건하니 앉아서 서로 자신의 무릎이나 몇 번 툭툭 치다가 헤어지면 차라리 으레 하는 덕담이나 나누고 식장에서 바로 헤어진 것만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형한테 묻고 싶고 듣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했다. 형은 차분하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 주었고 나는 이런 형이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었다는 것이 기억이 났다. 결혼식은 한 시쯤 끝났다. 미리 잡아두었던 다음 일정이 없었더라면 나는 자정까지도 형을 붙잡고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찻집을 나와, 형과 얼굴을 알게 된 뒤로 가장 반가운 마음으로 헤어졌다.

 

 

 

 

 

 

 

 

빛나의 결혼식은 연대 동문회관이고 다음 목적지는 홍대였다. 현대백화점을 지나 철길 쪽으로 가다가 오랜만에 중고서점 '숨어있는책'에 들렀다. 올 여름까지 신촌에 지낼 때에도 최근 몇 년 동안은 알라딘 중고서점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에 계단을 내려가는 것이 얼마만의 일이지 기억도 안 났다.

 

그런데 웬걸. 잠바를 벗어들고 땀이 나도록 서가를 누비고 결국에는 택배를 부탁할 정도로 책을 사댔다. 알라딘 중고서점처럼 중고서적의 상태가 균질하게 높지도 않고 또 한번에 알아보기 쉽게 진열되어 있지도 않았지만 소가 풀을 씹듯 몇 차례고 거듭해서 살피다 보니 환호성을 지르고 싶을 정도의 책들이 잔뜩 숨어 있었다.

 

위에 사진으로 올린 것은 최근 몇 년간 벼르고 벼르던 ACE88 전집 중의 한 권이다. 예전에 일기로도 썼던 것 같은데, 어린 시절 독서록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전집류는 서른이 넘은 시점에 몽땅 인천시립도서관에 기증한 바 있었다. 안 읽더라도 계속해서 갖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지만 나는 신촌서 골방 신세를 전전하고 있었고 본가는 작은 집으로 이사를 계획하고 있었던 터라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중에도, 언젠가 나는 큰 돈을 들여 저 책을 다시 사게 될거야 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몇몇 권이 있었다. 그 중 하나를 이 날 찾은 것이다. <중국 왕바오>라는 작품인데 나중에 단권으로 재발간된 바 있으나 저학년의 청소년 용으로 고쳐져서 읽기가 영 껄끄러웠었다. 그 때 읽던 그 표지 그 판형 그대로 다시 찾게 됐으니 얼마나 기뻤겠나.

 

거의 새것과 같은 학민문화사의 <남화경> 영인본 상하 권을 삼만 원에 산 것도 기쁜 일이었다. 눈에 띄는 책이 있을 때마다 카운터에 바로바로 가져다 놓고서는 나중에 계산하니 육만 원이 조금 넘게 나왔다. 이천 원 삼천 원 하는 책도 있었으니 여남은 권쯤 되었을 것 같다. 서점을 나와서는 홍대 쪽을 걸어야 하고 또 밤에는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광진구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혹시나 택배가 되는지 여쭙자 주인 누나는 정해진 규칙은 없지만 오만 원쯤 넘으면 무료로 해 드리는 경우가 있다고 말해 주었다. 돈을 내라 하더라도 감지덕지일 판에 무료로 부쳐주기까지 한다니 고맙기 짝이 없었다.

 

밖으로 나와 문득 찬바람을 맞으며 정신을 차리니 속이 허해 있었다. 결혼식 뷔페서 두어 접시 점심을 먹은 것이 서너 시간 전인데. 어지간히 흥분했었나 보구나, 생각이 들었다. 신촌과 홍대 쪽 생활을 끝낸 뒤로 가장 그리웠던 것 중 하나, 괜찮은 라멘 집을 다시 찾아 교자와 함께 맛나게 먹었다.

 

 

 

 

 

 

 

 

오래 전부터 잡혀 있던 이 날의 주요 일정은 저녁의 공연 관람이었다. 새로 시작한 녹음방송 <방과후 수업>의 음악감독 면목동 맥주요정은 평소에도 이런저런 음악들을 추천해 준다. 그이는 십 대 때부터 지금까지 각종의 음악을 섭렵하고 있고 나는 같은 시기부터 지금까지 가요도 잘 안 듣는 편이라, 같이 앉아 추천곡을 듣고 있자면 좋다 싫다를 떠나서 '모르겠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든다. 그런데 개중 가수 손지연의 음악만은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평소에 부러 시간을 내어 들을 정도로 좋았다. 그렇게 좋으면 연말의 공연에도 가보지 않겠냐는 제안까지 받아서, 용기를 내어 가게 된 것이다.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직접 보는 것은, 솔직히 말해 태어나 처음이다.

 

 

 

 

 

 

공연은 홍대 정문 근처의 '앰프 라이브 클럽'에서 있었다. 지정 좌석제가 아니었다. 다들 앞에 앉으려고 몇 시간 전부터 줄 서 있으면 어쩌나, 생각하며 갔는데 입장 시간쯤 도착했는데도 일등이었다. 무대 맨 앞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공연까지는 사십 분 정도가 남아 있어서, 카운터에서 산 손지연 4집의 부클릿 사진을 따라 그리며 놀았다.

 

 

 

 

 

 

 

공연은 여러 가지로 상상 외였다. 장르가 포크여서 그랬을지 공연장이 아늑해서 그랬을지 소극장 라이브 공연 관람은 처음이었는데도 상상보다 편안했고, 최근에는 몇십 몇백 번을 들었던 노래들인데도 가수가 직접 부르는 노래는 상상보다 훨씬 좋았다. 그리고 손지연 누나는, 상상보다 훨씬 말을 못했다. 가르치는 학생은 물론 우연히 만난 어린아이까지 합쳐, 최근 수 년간 본 어떤 사람보다도 말을 못했다.

 

 

 

 

 

 

 

 

그런데도 노래만 시작되면 사람을 쥐고 흔드는 멜로디를 토해내니, 반하지 않기 어려웠다.

 

 

 

 

 

 

 

 

얼마나 반했느냐면 옆에 있는 기타리스트 형한테까지도 반할 정도로. 기타 형도 그렸다.

 

 

 

 

 

 

 

 

1부 끝에는 '신촌블루스'의 엄인호 씨가 게스트로 출연했다. 신촌블루스는 아버지가 지금 내 나이 무렵 나를 당신 곁에 앉혀 두고 듣던 노래이다. 이따금 이런 곳에 모시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공연은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특히 2부에 내가 무척 좋았던 노래들이 주루룩 이어 나와서 넋 놓고 들었다.  

 

 

 

 

 

 

 

 

함께 관람한 관객들 중에는 50대와 60대가 제일 많았다. 20대는 거의 없는 것 같고 나는 30대 중에서도 제일 어린 축 같았다. 장르가 포크니까, 예전 그 시절을 기억하는 분들이 예뻐해 주시는 것은 아닐까, 하고 면목동 맥주요정은 추리했다. 그러고 보니 카운터에서 티켓을 팔던 분도 엄마 뻘이었고, 내 뒤로 들어오는 동년배의 관객들과는 잘 아는 사람들처럼 서로 대화를 나누던 것이 기억났다. 공연이 끝난 뒤 귓등으로 훔쳐들어 보니 그 분들은 아마도 인근의 고깃집서 손지연 씨와 함께 뒷풀이를 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좋았던 공연, 안 친하니까 뒷풀이는 못 따라가더라도 사인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 싶어 기다려 보니 과연 손지연 씨가 나와서 사인을 해 주었다.

 

 

 

 

 

 

 

 

기타리스트 형도 그림을 보고서는 슬며시 웃으며 사인을 해 주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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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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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52015.12.21 04:19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광진구 중곡동으로 이사 오며 세웠던 목표 중에 하나. 문화센터의 프로그램 중 하나 이상을 꼭 들어보리라.

 

8월 말에 이사하자마자 광진구 문화센터 홈페이지를 찾아 검색을 해 보았다. 수영이나 피트니스 같은 체능 프로그램은 매 달마다 신청자를 받아 월 단위로 운영되는 반면, 캘러그래피나 양초 만들기와 같은 예능 프로그램은 석 달 마다 분기 단위로 운영되고 있었다. 8월부터 11월까지의 일정은 이미 진행 중이었고 중간에 가입은 불가능했다. 마침 가르치는 학생들의 중요한 수업도 많이 겹쳐있고 하여, 십일 월 말부터 신청을 받는 새 코스부터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이러구러 지내다보니 11월 말이 금세도 왔고 나는 여러 개의 프로그램을 살펴보다가 스트레칭과 우쿨렐레, 두 개의 강좌를 신청하였다.

 

스트레칭은 이사 후 부쩍 뻐근해진 목 때문에 신청한 것이었다. 당장 좋아지지 않더라도, 간단하면서도 효율적인 스트레칭 방법을 배워두고 생각날 때마다 집에서 하면 좋을 것 같아 신청하였다.

 

우쿨렐레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것은 오랜 바람이었다. 첫 우쿨렐레를 산 것은 오륙 년이 지난 일이지만 이따금 생각날 때에 꺼내어 두어 시간 뚱땅거리는 것으로는 실력에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기타 등의 다른 현악기 또한 배워본 적이 없어서 애당초 줄을 튕기는 것조차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불안한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바랐던 일인데, 빠지기 어려운 약속과 업무가 이어져 석 달 동안의 총 12회 수업 중 첫 2회를 빠지고 말았다. 2회 씩이나 빠지고 나니 귀찮은 마음 반, 두려운 마음 반 하여 3회차의 저녁에도 고민고민을 하였지만 뭐라도 하나 배워는 오겠지 싶어 무거운 발걸음을 떼었다. 

 

한겨울의 수요일 밤 여덟 시. 중곡동에는 단독 주택 주거지구가 넓게 퍼져있어 동네는 이미 캄캄한데 문화센터 안은 환하였고 또 즐거운 얼굴로 오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로비에서 출입증을 교부받고 고개를 돌려보니 사람들이 수영장에 들어가기 전에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엇샤엇샤 소리를 질러가며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양새들을 보니 초급반부터 다시 시작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각 강의실에는 앞 타임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글씨 쓰는 사람, 춤을 추는 사람, 요가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모두 즐겁게 집중하고 있어서 보는 것 만으로도 흥분이 되었다.

 

애석하게도 내가 신청했던 자세 교정 및 스트레칭 요가 클래스는 정원을 채우지 못해 폐강되었다. 폐강 문자를 받고는, 그렇다면 다른 요가 수업이라도 들어볼까 생각하며 다시 검색을 해 보았으나, 천을 죽죽 늘어뜨리고 그 위에서 그네를 타듯 하는 플라잉 요가나 요기 다니엘 정도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어려운 이름의 요가 수업들만이 있어서 일단은 보류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날 가서 보니 꼭 잘하지 않더라도 열심히 하다보면 아무튼 남는 것은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체능 프로그램은 한 달 단위로 수강생을 받으니 다음 달엔 고민 좀 해봐야겠는 걸, 하며 내 강의실로 갔다.

 

 

 

 

 

 

 

 

다행히도 우쿨렐레 수업은 폐강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창문을 들여다보니, 내가 듣는 '우쿨렐레 B'의 앞반인 '우쿨렐레 A'의 수업이 한창이었다. 예닐곱 명 정도가 자신의 손과 우쿨렐레를 쳐다보며 각자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이 정도의 인원이 일제히 우쿨렐레를 치고 있는 장면을 두 눈으로는 처음 본 나는 좀 흥분되고 한편으로 위축되고 하여서 별로 요의가 없었는데도 화장실을 찾아 억지로 소변을 보았다.

 

앞 반 수업이 끝나고 사람들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강의실로 들어갔다. 스물대여섯 쯤으로 보이는 선생님은 두 번이나 수업을 빠진 학생도 웃으면서 맞아 주었고 오십 분 수업 중에 나만 붙잡고 삼십 분 가량 수업을 해 주었다. 왜냐하면 우쿨렐레 B반의 학생은 용곡 초등학교 5학년의 여자친구와 나 둘이었기 때문이다. 신청자는 세 명으로 내 또래의 남자가 하나 더 있었다 하나 그는 3회차의 이 날까지 한 번도 출석하지 않았다 한다. 정말, 다음 시간부터는 빠지실 거면 전화를 주시라구요, 하고 말하는 선생님께 고개를 굽실거리며 사과를 했다. 말도 없이 빠진 것도 우쿨렐레를 잘 못 치는 것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한 명 밖에 없는 내 짝꿍은 사죄하는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혼자서 문득 화려한 연주곡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한층 더 위축이 되었다.

 

그래도 몇 년 동안 혼자 뚱땅뚱땅 친 가락이 있어 C와 F, G 등의 기본 코드는 잡을 줄 알았다. 선생님은 첫 날이니까 고고 리듬부터 마스터 하자고 말하였다. 고고 리듬은 4/4박자 정박에 맞춰 업-다운-업-다운만 성실하게 치면 되는 리듬이다. 집에서 먼저 커리큘럼을 보았을 때에는, 혼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고고 리듬 같은 것으로 괜히 시간 보내지 말고 내가 못하는 걸 더 많이 가르쳐 달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해야겠다, 나도 돈 냈으니까, 같은 생각을 했는데. 바위처럼 팔짱을 끼고 있는 선생님 앞에서 막상 치려니 손이 나무등걸처럼 굳어서 우쿨렐레에서 거문고 뜯어지는 소리가 났다. 

 

선생님이 5학년 짝꿍을 봐주는 동안 나는 십 분 정도 구석에서 혼자 고고리듬을 연습했다. 강의실에 난방이 잘 되어서 몸도 따뜻했고 십 분 동안이나 계속 위아래위아래만 치고 있다보니 이제 좀 알겠다 싶은 생각에 마음도 따뜻해질 무렵, 다시 내 자리 쪽으로 온 선생님은 중간에 비트 넣지 말고 정직하게 고고리듬만 치라고 혼을 내었다. 남이 시키는 대로 이렇게 성실하게 무언가를 한 것은 제대한 뒤로 처음 있는 일인 것 같은데 무슨 말이람, 하고 억울한 표정을 짓자 선생님은 우쿨렐레를 함께 치며 자신의 고고리듬과 내 고고리듬을 비교해 주었다. 과연 나는 첫번째 음은 좀 길게, 두번째 음은 짧게 치면서 멋을 부리고 있었다. 얼굴이 빨개진 것을 스스로도 느끼다가 고개를 돌려보니 5학년 짝꿍은 어느새 연주를 마치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결국 첫번째 수업은 50분 내내 고고리듬만 쳤고 숙제로도 고고리듬만 받아왔다. 용기를 내어 짝꿍에게 인사를 하고 강의실을 먼저 나서니 강의실 밖의 소파에는 짝꿍의 엄마로 보이는 누나가 앉아있었다.

 

날은 춥고 오십 분씩이나 줄을 쳐댄 손은 얼얼했지만 그래도 스스로 원했던 것을 배우는 일이 얼마만인가 생각하니 무척이나 즐거웠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십여 년 만에 다시 시작한 뜨개질을 마저 했다. 위 사진에 나온 것을 한 것은 아니다. 위의 것은 11월 중순에 하면서 처음 시작했던 목도리로, 지금은 주인 찾아 떠난 지도 오래 되었다. 

 

 

 

 

 

 

 

 

신촌에 살 때에는 출퇴근 시간이 짧아도 네 시간은 되었다. 이동만으로도 고되어 버스에 앉아 졸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좋았던 것은 원하는 팟캐스트를 몇 개 씩이나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일하는 곳에 가까운 중곡동으로 이사를 온 뒤로는 짧게는 십오 분 내에 출근할 수 있는 경우도 생겼다. 덕분에 느긋하니 팟캐스트만을 듣고 있는 시간이 줄고 말았다. 집에 일찍 들어오게 되면 책을 읽든지 컴퓨터를 하든지 하지 가만 누워 팟캐스트만 듣고 있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미 삼아 듣는 것 말고도 이것은 꼭 들어야 할텐데 하는 프로그램이 쌓이고 쌓여 아이폰의 용량마저 위협할 판이었는데 뜨개질을 하면서 틀어놓으니 딱 좋았다. 라디오 들으면서 바늘을 놀리던 옛적 엄마의 모습도 생각나고.

 

 

 

 

 

 

 

 

이건 그래도 첫번째 목도리라 늘어나는 틈틈이 찍어두었던 사진 중에서 석 장만 골라낸 것이지만

 

 

 

 

 

 

 

 

이 다음부터는 누군가한테 선물하기 직전에야, 에이 그래도 한 장 찍어둬야 기억에 남겠지 싶어 완성 샷 한 장 툭 찍고 말었다.

 

 

 

 

 

 

 

그나마 가장 마지막에 완성한 이 목도리는 완성한 모양도 안 찍었다.

 

 

 

 

 

 

 

 

그 뒤로는 늘어난 실뭉치의 색과 굵기에 따라 위처럼 얇은 목도리도 떠보고 펜 넣는 필통도 떠보고 하며 즐겁게 지냈다. 잠시 시들해질 무렵, 추억이 서려있기도 해서 무척 아끼던 장갑을 잃어버려 지금은 장갑을 떠 보려고 노력 중이다. 목도리나 모자, 파우치 등에 비하면 훨씬 어려워서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지만 맨손으로 자전거를 타고 나면 손등이 아파서 못난이 모양이라도 어떻게든 빠른 시일 내에 하나 완성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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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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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52015.12.06 13:07

 

 

 

전날 감기몸살의 여파가 있는 몸을 이끌고 토요일 아침 일찍 서초동의 국립중앙도서관으로 향했다. 스튜디오 녹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서 우쿨렐레도 쳐보고 그림도 그려보고 한다지만 여러 사람과 함께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은 학부 졸업 뒤로 적은 경험이었다. 일기에도 자주 등장하는 동생 신각이와 함께 이렇게도 구상해 보고 저렇게도 구상하기를 몇 년에, 올 여름 오랫동안 격조했던 동생 원준이를 다시 만나 계획에 힘이 붙었던 것이다. 원준이는 신각이와 마찬가지로 연극부의 후배이자 친동생처럼 아끼는 동생이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고 특별히 기대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우리의 구상에는 제한이 별로 없었다. 각종의 아이디어들을 수합하는 과정에서 크게 영상 아이템과 음성 아이템으로 구분이 되었고, 그 중 현실적으로 시작이 용이한 음성 아이템의 파일럿을 먼저 떠보기로 한 것이다.

 

셋 중에 행동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난 신각이가 대뜸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하는 녹음 관련 수업을 수강하였고 그 과정에서 국립중앙도서관 내의 녹음 스튜디오를 무료로 대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가지고 왔다. 덕분에, 12월 5일 토요일에 모이게 된 것이다.

 

 

 

 

 

 

 

 

몸이 찌뿌둥한데 마음이 흔쾌한 것도 오랜만의 일이었다. 한 시간이 넘는 이동 시간 동안 페퍼톤즈의 '노래는 불빛처럼 달린다'와 손지연의 '춤추는 머슴'을 돌려돌려 들어가며 갔다.

 

스튜디오는 넓고 깨끗했다. 준비해간 대본과 연습장, 볼펜 등을 꺼내어 늘어놓는데 가볍게 흥분이 됐다.

 

 

 

 

 

 

 

 

장소 대여와 관련 수업 수강, 당일에 녹음 및 기기 조정까지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준 신각이. 편집이 남았으니 궂은 일이 끝난 것도 아니다.

 

 

 

 

 

 

 

 

광주 사는 지희도 잠시 서울 올라왔다가 내려가는 길에 스튜디오에 놀러와 주었다. 원준이와 사이 좋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보기 좋아 냅다 찍어보았다. 또 다른 친동생 같은 동생 지희도 연극부의 후배이다. 사실은 뭘 하는 것보다 이렇게 모여앉아 있는 것 만으로도 기쁜 일이긴 하다. 아니, 뭘 하기 때문에 이렇게 모여앉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큰 아이템들을 앞두고 일단은 스튜디오 녹음에 익숙해지기와 원준이와 호흡 맞추기가 가장 중요한 미션이었기 때문에, 파일럿 녹음의 주제로는 내 강의록 중의 일부인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택했다. 출강하는 고등학교에서 1960년대의 문학 중 대표주자로 자주 소개하는 작품인데, 시간이 모자라면 시대상과 작가 소개에만 그치고 정작 작품 해설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학생들이 들어줬으면 한다, 고 생각하고 녹음했다. 주제와 타게팅이 좁고 명확해야 연습하기가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녹음은 생각보다 원활하고 재미있었다. 첫 녹음이니까 그랬을 거야, 다음부터는 잘 할 수 있을거야 라며 서로 쓸쓸히 격려하는 결말까지도 예상했는데 적어도 뭐가 좋았는지 뭐가 고쳐야할 지점인지 다 같이 떠들면서 마무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한 편 뜨는 데에도 우리 셋의 많은 시간은 물론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중간에 응원 와 준 지희와 저녁에 합류한 망원동 망나니, 작품에 어울리는 음악을 추천해주어 프로그램에 색깔 넣어준 상봉동 맥주요정, 몇 종류나 되는 대본 포맷을 선뜻 건네어 준 새신부 최작가 등등. 앞으로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키고자 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과 관련된 모든 사람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 마음을 잊지 않으면 어떻게든 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 스스로는 무척 행복했던 하루였다. 조만간에 완성된 편집본을 올릴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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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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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52015.11.04 19:33

 

 

각별히 정이 들었던 기수의 제자들이 다음 주에 수학능력시험을 보러 간다. 딱히 해 줄 것이 없어 떡을 샀다.

 

 

 

 

 

 

 

 

흰 찰떡 한 상자, 콩찰떡 한 상자, 삼색의 두텁떡 세 상자를 샀다. 모든 제자들에게 나눠줄 수는 없는 일이고 세 명씩 네 명씩 직접 얼굴 맞대고 앉아 오랜 시간 가르친 제자들 열댓 명의 것만 준비했다.

 

 

 

 

 

 

 

 

다이소에서 마끈과 투명 포장지를 사다가 엄베덤베 쌌다. 투박하면서도 인간적인 맛 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인데 투박하고 후지기만 해서 신경질이 좀 났다. 친구들하고 나눠 먹으라고 서로 다른 색깔의 떡 다섯 개를 싸고 시험 한 주 전이라 소란스러울 것 같은 마음이 다스려질 법한 문구를 써서 넣었다.

 

 

 

 

 

 

 

 

내가 합격을 기원해 준다고 합격이 되는 것도 아니고. 살아온 결과 이상의 성과를 거두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니 그것을 바라 주기도 어렵고. 해서. 다 지나가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생각해 보면, 재미가 있든 의미가 있든 참 좋은 때였다고 생각할 수 있는 스무 살이 되길, 하고 빌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끈 감는 것이 힘들어서 봉지를 쌀 때엔 아무 생각도 안 났고 다 싸고 난 다음에 빌었다. 고생들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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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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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52015.10.11 21:24

 

 

 

 

 

 

 

 

종일 가을비가 왔다. 열흘 전만 해도 더워서 창이란 창은 다 열고 있었는데 여름 소나기 같은 비가 몇 시간 내리고 나니 긴바지 추리닝을 입어도 발끝이 시렸다. 빗소리 들으면서 해물파전 부쳐 먹고, 이사하느라 먼지를 잔뜩 뒤집어썼던 난로를 꺼내어 일일이 분해해서 깨끗이 닦고 나니 하루가 다 갔다. 노후 복지 잘 된 나라였다면 그것 참 멋스럽게 게으른 하루였네, 하고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었겠지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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