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여행 카테고리에 속해 있는 것이니 무엇보다 여행 관련 정보부터 먼저. 남한강자전거길에서 슬쩍 옆

 

으로 빠져 몽양기념관으로 올라가는 500m는 굉장한 업힐이다. 몽양을 만날 자 이 정도는 각오하라는 것일까.

 

아무튼 참고 바란다. 씩씩대며 올라가면 먼저 몽양 유객문이 방문자를 맞는다.  

 

 

 

 

 

 

 

 

유객문(留客文)은 머무를 류 자, 손님 객 자, 글월 문 자의 글자 그대로 풀면 '손님을 머무르게 하는 글'이다. 그

 

러니까 '몽양 유객문'이라 하면 몽양이 손님을 머무르게 하려 쓴 글, 이라는 뜻이 되겠다.

 

 

 

몽양 유객문의 출전은 '주자 유객문'이다. 주자는 성리학의 집대성자인 그 주희 맞다. 주희는 귀한 손님이 오면

 

반가운 마음에 그가 빨리 일어나지 않고 좀 더 머물렀다 가도록 일종의 퀴즈를 내었다 한다. 다음의 문장을 해석

 

할 수 있으면 가도 좋지만 만약 해석하지 못한다면 묵었다 가도록 하는 퀴즈였다. 한자로 쓰여진 원래의 문장은

 

다음과 같다.

 

 

 

人我人我不喜人我不人我不怒我人人我不人我人我不人人我人我不人欲知我人不人我人我不人人之人不人

 

 

 

고문 한문은 본래 띄어쓰기가 없다. 게다가 한 글자가 몇 개의 품사 역할을 하는 한자의 특성상 여기에서 끊어읽

 

어도 말이 되고 저기에서 끊어읽어도 말이 되는 통에 원래의 뜻을 알기 어려운 것이 한문 번역의 난점 중 하나이

 

다. 멀쩡한 문장이라도 그러한 어려움이 있는데 위의 문장처럼 너댓 개의 한자를 가지고 장난질을 쳐놓은 것이

 

라면 주희가 친구를 먹을 정도 되는 수준의 인물이라도 땀을 뺄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못 풀고 주희와 하룻

 

밤을 보내며 우정을 나누었다는 것이 '주자 유객문'에 얽힌 이야기이다.

 

 

 

몽양은 종종 이 '주자 유객문'을 인용했다고 한다. 손님을 묵었다 가게 하려는 본래의 의도에서가 아니라, 그 문

 

장에 담긴 뜻 자체에 공명하여 그리했다는 설명이 <여운형 평전>에 전한다. 위 사진의 비석에 적힌 '몽양 유객

 

문'을 읽기 편하게 다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사람이 나를 사람이라 하여도 내가 기뻐할 바 아니요,

사람이 나를 사람이 아니라 하여도 내가 노여워할 바 아니니라.

 

내가 사람이면 사람이 나를 사람이 아니라 하여도 내가 사람이요,

내가 사람이 아니면 사람이 나를 사람이라 하여도 내가 사람이 아니니라.

 

내가 사람이냐 아니냐를 알고자 할진댄

나를 사람이다 아니다 하는 사람이 사람이냐 아니냐를 알아보도록 하라.

 

 

 

사후에는 물론이거니와 생전에도 '인민의 벗'이라는 존칭과 함께 일각으로부터는 '기회주의자', '회색분자'라는

 

혹평까지 들어야 했던 몽양의 삶이 그 내용 안에 보이는 것 같다. 유객문을 지나 한 차례의 오르막을 더 오르면

 

몽양기념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차분한 외양의 기념관 건물 위쪽으로 생가로 추정되는 한옥 건물이 눈에 띈다. 주차장의 그늘을 찾아 자전거를

 

세워두고 일단 기념관에 먼저 들어가보기로 한다. 입장료는 천 원이다.

 

 

 

 

 

 

 

 

 

몽양의 친필과 유품들 사이로 관광객을 위한 몽양의 조각상이 있다. 조각상의 위치와 자세가 설정샷을 부른다.

 

 

 

 

 

 

 

 

 

유혹을 피하지 못하고 설정샷의 늪에 빠졌다. 사진을 찍을 때엔 둘째 치고 기념관을 나올 때까지도 관람객은 나

 

뿐이었기 때문에 손을 부들부들 떨어가며 힘든 자세의 셀카를 찍었다.

 

 

 

 

 

 

 

 

 

조각상의 오똑한 콧날이 눈에 띈다. 하지만 이것은 과장이 아니다. 남아있는 사진으로 접할 수 있는 몽양은 독립

 

운동가 가운데에서도 손꼽히는 미남이었다.

 

 

 

 

 

 

 

 

 

 

게다가 쾌남이기까지. 왕갑빠 덕분에 <현대철봉운동법>이라는 책에 모델로 등장하기까지 했다. 어렸을 때부터

 

친척 동생들과 무술 수련 등에 힘을 쏟았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지만 1933년이면 몽양이 쉰을 앞두고 있을

 

때이다. 그 때까지 몸매를 유지했다는 것이나, 신문사 사장이면서 모델에 나설 생각을 했다는 것이나 여러 모로

 

재미있는 인물이다.

 

 

 

 

 

 

 

 

 

 

사진 밑의 설명도 좀 읽어보자. '스포-쓰맨으로서의 여운형 선생의 최근 사진 (48세)'.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21

 

세기 여성들이 좋아하는 잔근육 예쁜이 몸은 아니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두두룩 두두룩한 몸. 나도 좋아한다.

 

그의 마리오 콧수염 만큼이나 부럽다.  

 

 

 

 

 

 

 

 

 

 

한 바퀴 돌아 나오는 길에 거의 마지막으로 전시된 물건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몽양은 본디 참여정부 중반기

 

인 2005년에 한차례 건국훈장에 추서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보수 층의 반발을 예상한 보훈처는 1급인 대한민

 

국장이 아니라 2급에 해당하는 대통령장을 서훈하였다. 유족들은 즉각 반발하였고, 비록 2급이라도 몽양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하려 한다는 소식에 보수언론의 반대 또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이에 서훈을 보류하였던 참

 

여정부는 공식 임기 종료가 사흘 가량 남은 2008년 2월 21일, 위 사진에서 보듯 몽양에게 1급 건국훈장인 대

 

한민국장을 서훈하였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이 '기습적'인 시도에 분노하는 보수 논객들의 기사를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던 방향으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몽양과 합성사진을 찍을 수 있는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여러 기념관에 가 봤

 

지만 이런 코너는 처음이라 재미있어하며 들어가봤다.

 

 

 

 

 

 

 

 

 

스크린 앞에 서면 카메라를 통해 촬영된 내 모습이 화면에 잡힌다. 이 모습이 원래의 사진에 합성되는 것이다.

 

배경으로 쓰이는 원본 사진은 10여 장 이상이다.

 

 

 

 

 

 

 

 

 

발 밑을 보면 버튼이 세 개 있다. 왼쪽과 오른쪽의 화살표를 통해 내 모습이 합성될 배경사진을 선택한 뒤

 

오른쪽의 빨간 버튼을 발로 누르면 잠시 후 촬영이 시작된다.

 

 

 

 

 

 

 

 

 

촬영이 끝난 뒤 스튜디오를 나와 바로 앞에 있는 프론트로 가면, 위에 보이는 계산기처럼 생긴 기계를 통해 방금

 

찍은 사진을 현상해 준다. 사진은 1인당 1매씩 현상할 수 있다 한다. 손님 없을 때 애교를 잘 부리면 한 장 더 현

 

상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만약 안 된다면 천 원 내고 입장권을 한 장 더 사도 될 일이다. 

 

 

 

 

 

 

 

 

나는 '1944년 가을 봉안논촌쳥년들과 함께' 찍은 사진에 슬쩍 끼어들었다. 택할 수 있는 배경사진은 여러 장이

 

있지만 사진 속의 인물들과 화면에 잡히는 내 몸 크기의 비율이 어울리는 사진은 몇 장 없다. 몽양의 왼편으로

 

멋들어진 헤어스타일의 영화배우 유해진 씨가 눈에 띈다. 

 

 

 

 

 

 

 

 

 

사진이 출력되면 프론트의 아저씨가 뒷장에다가 몽양의 낙인과, 몽양의 사인을 새긴 도장의 낙인을 찍어준다.

 

필기체로 된 사인이 멋지다. 그러고 보니 몽양은 영어도 잘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몸짱에 영어도 잘 하고

 

마리오 콧수염까지. 배가 좀 아프다.

 

 

 

 

 

 

 

 

 

기념관의 한켠에는 올해 11월까지 하고 있는 몽양 여운형 사진전의 부스가 있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한 번씩 보게 되는 조선건국동맹 깃발.

 

 

 

 

 

 

 

 

 

많은 사진이 있었지만 이곳에 전부 소개하지는 못하고, 마음을 가장 크게 움직였던 한 컷만을 골라 올린다. 19

 

29년과 1930년인 쇼와 4년, 쇼와 5년에 작성된 서대문형무소의 수형기록표. 신분은 양반, 본적은 경기, 거주

 

지는 지나支那 상해上海 등의 정보 등이 눈에 띈다. 서대문형무소는 매일같이 버스 타고 지나는 독립문역 인근에

 

있다. 80여년 전에 몽양이 바로 그 길을 걸어 구치소로 들어갔고 사진을 찍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한층 더 와

 

닿는다. 이래서 현장교육을 시켜야 하나보다 싶다. 

 

 

 

 

 

 

 

 

 

기념관 한켠에는 생가로 바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다. 밖에서 보았을 때 기념관 위쪽으로 생가가 얹혀있는

 

것처럼 보이던 비밀이 여기에 있었나보다. 계단을 통해 올라가서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생가의 마당이 펼쳐진

 

다.

 

 

 

 

 

 

 

 

 

마당에 세워진 비석과 그를 둘러싼 손판들. 무식이 부끄럽게도 대부분의 이름은 낯선 것들이다. 와중 함께 건준

 

을 세웠던 6촌 동생 여운혁 등의 이름이 간간이 눈에 띈다.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인물들도 있다. 얼마 전 있었던 6대 지방선거의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지사 야권 단

 

일화 후보 경선에서 패한 전 경기도 교육감 김상곤 씨의 손판.

 

 

 

 

 

 

 

 

 

힘없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곳에는 언제나 가 계시는 함세웅 신부님. 귀엽고 소박한 필체가 눈에 띈다.

 

 

 

 

 

 

 

 

 

인적 하나 없는 생가에 들어가봤다. 좋은 데 사셨네, 하고 둘러보다가, 앗!, 하고 소리를 질렀다. 정말 앗!, 하고

 

소리를 질렀다. 보이시는가? 사진 중앙의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왼쪽 창 곁에 숨어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듯한

 

저 시선.

 

 

 

 

 

 

 

 

 

은 다가가보니 면도를 하고 있는 몽양의 마네킹. 좀 잘 보이게 두든지 아니면 좀 어설프게 만들어서 멀리서 보

 

고도 마네킹인지 알게 하든지. 진짜 사람처럼 만들어서 사각에 숨겨 놓으니 나 같은 마음튼튼이도 놀랄 수밖에.

 

 

 

 

 

 

 

 

생전의 모습 중 형상화할 수 있는 것이 많았겠지만 검소한 차림으로 깔끔하게 면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나는 인

 

간적으로 느껴져 참 좋았다. 올라가지 마시라는 안내판만 없었더라면 면도를 돕거나 아니면 몽양 할아버지의 무

 

릎을 베고 누운 설정샷이라도 찍고 싶을만큼 친근한 모습이었다. '인민의 벗'이라는 그의 애칭도 새삼 더욱 정겹

 

게 느껴졌다.

 

 

 

집에 돌아가면 책장 구석에 박힌 여운형 평전을 다시 들춰 봐야지, 하고 생각하다가 앗차 나 저때 남한강자전거

 

타는 중이었지 지금은 남한강자전거길 일기 쓰는 중이었지 하고 자전거로 돌아간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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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주수첩의 남한강자전거길 소개글을 읽어보면 '옛 기차길을 활용하여 만들어진 구간으로서 기차가 달리던 폐

 

철도, 폐교량, 폐터널 등이 아름다운 자전거길로 재탄생되었다'는 문구가 있다. 이 설명은 대체로 남한강자전거

 

길의 마지막 구간인 '양평군립미술관 - 능내역' 구간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폐교량, 폐철로 위를 달리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지만 무엇보다 특별한 경험은 역시 폐터널. 23km의 길지 않

 

은 구간에서 여남은 개의 폐터널을 만나게 된다. 뒤에서 오는 자동차 걱정할 필요 없이 터널 안을 달려도 된다는

 

것도 신나지만 잠시나마 햇빛을 피하며 냉골 같은 바람까지 쐰다는 것도 짜릿한 쾌락이다.

 

 

 

그 터널 가운데에서도 또 눈에 띄는 것이 위 사진에 보이는 '아트터널'. 다른 터널들은 안내판에 그냥 'OO터

 

널'이라고 적혀 있는데 반해 두 개인가 세 개 밖에 없었던 아트터널은 터널의 이름 옆에 '아트터널'이라는 글씨

 

가 따로 적혀 있다.

 

 

 

 

 

 

 

 

 

아트터널의 내부는 위와 같다. 평범한 형광등이 달린 다른 터널과 달리 아트터널의 상단부는 백열등, 혹은 LED

 

와 같은 조명장치로 꾸며져 있다. 여기에, 한 아트터널은 조용했지만 다른 아트터널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함께

 

흘러나왔다.

 

 

 

전구는 내처 그냥 켜져 있는 것이 아니고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며 마치 춤을 추듯 일정한 패턴을 형성한다. 잘

 

라 말하자면 도시의 아케이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땡볕 아래 있다가 갑작스레 터널 안으로 들어

 

와서, 에어컨 바람 같은 찬바람 시원하게 쐬어가며, 씽씽 달리는 자전거 위에 앉아 머리 위로 펼쳐지는 빛의 춤

 

을 보면, '우우와-'하는 소리가 절로 난다. 나는 실제로 '우우와-'하는 소리를 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저 멀리서부터 빛의 가로줄 한 줄이 확 하고 달려오는 패턴이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짧

 

은 시간동안 가로줄 한 줄의 전구만을 켰다가 끄고 바로 다음 가로줄 한 줄을 켰다가 끄고 하는 식으로 이루어진

 

착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자전거로 씽씽 달리고 있을 때에는 빛의 줄이 괴수처럼 왁 하고 달겨드는 느

 

낌을 받아 나도 모르게 브레이크를 잡고 말았다. 

 

 

 

아트터널은 또 다른 일반터널에 비해 유난스레 시원하다. 처음에는 우연한 결과이거나 아니면 아트터널에 홀딱

 

빠진 나의 따끈따끈한 편견이라고 생각했는데, 달리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애당초 여러 터널 가운데 전구나

 

LED를 설치할 만한 충분한 길이가 되는 터널을 선정했을 것이고, 따라서 그 터널은 이미 길이가 길기 때문에 바

 

깥의 더운 공기가 침입하는 영역도 상대적으로 더 짧았을 것이다. 그러니 더 시원할 수 밖에. 맞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나는 오랜만에 발아한 내 안의 사이언티픽 마인드에 스스로 감탄했다. 남양주의 셜록 된

 

기분. 

 

 

 

추가로 한 줄만 덧붙이자면, 충주-남양주 방향에서 가고 있다면 터널은 예외없이 내리막이기 때문에 멀리서 터

 

널이 보일 때마다 매번 즐겁다. 반대 방향에서 가시는 분들은 반대로 참고하시라.

 

 

 

 

 

 

 

 

마지막 구간에서는 중앙선의 지하철 역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그 가운데 하나인 국수역. 한자로는 수려하기 짝이 없는 이름이지만 한글로만 써 놓으면 짤방 신세를 면할 길이

 

없다. 부끄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고양이를 마스코트로 삼아 화제를 모았던 고양高陽시의 사례를 참고한다면 지

 

자체 홍보와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좀 도움이 되지 않겠나. 면발로 이루어진 캐릭터도 만들고, 국수 역 앞에 '국

 

수라면' 같은 이름의 가게도 만들어서 '국수라면 역시 국수라면'과 같은 트위터도 좀 날리고.

 

 

 

 

 

 

 

 

 

다행히도 지역 내에 그런 창의력 넘치는 아이디어들을 실천할 수 있는 인재들이 이미 많이 계신 듯. 국수역 바로

 

앞의 막국수 집에선 낙타가 삐끼를 본다.

 

 

 

 

 

 

 

 

 

우리 집엔 막국수 말고도 뭔가 특별하고 이국적인 것이 있다는 듯한 미소에 나도 모르게 발길이 이끌렸지만, 마

 

지막 거점인 능내역의 유인 인증센터가 닫기 전에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겨우 정신을 차렸

 

다. 꼭 다시 만나자. 언젠가 그냥 지하철 타고 국수역까지 와서 막국수 한 그릇 먹고 다시 지하철 타고 돌아갈게.

 

약속한다. 

 

 

 

 

 

 

 

 

 

국수역 다음으로 나타난 것은 신원역. 역 앞인데도 고즈넉한 풍경에 잠시 안장에서 전립선을 떼고 주위를 둘러

 

보는데.

 

 

 

 

 

 

 

 

 

앗. 길 이름이 몽양길. 혹시나.

 

 

 

 

 

 

 

 

둘러보니 그 몽양이 그 몽양 맞았다! 검색을 해 보니 몽양 여운형 선생의 생가가 근처에 있었고, 길가에 걸린 현

 

수막에서는 그 생가에서 사진전까지 하고 있다는 정보를 볼 수 있었다. 부랴부랴 경로 검색을 하자 '몽양기념관'

 

은 남한강자전거길에서 500m 거리. 이 때 시간은 오후 네 시 반이었고, 여섯 시에 문을 닫는 능내역 유인 인증센

 

터는 고작 10여 km 정도만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몽양 선생을 뵈러 한 번 가 볼까!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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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2011.08.09 04:10





공부를 포함해 책을 여러 권 읽은 탓인지 뒷목이 좀 아파 오늘의 독후감은 되도록 간단하게 적으려 한다.


부제는 ''만약에'란 프리즘으로 재해석한 우리 역사'이다. <한겨레 21>에 네 명의 필진이 돌아가며 연재했던 꼭

지를 묶
어 책으로 냈다. 필진은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함규진 성균관대학교 국가경영전략연구소 연구

원, 최용범 페이
퍼로드 대표, 최성진 한겨레신문 문화부 기자이다.


제목에서와 같이 한국사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고, 1903년 러시아와 일본 간의 한반도 분할안부터 2002

년 신
의주 특구 건설 계획 발표까지의 34개의 소 챕터로 이루어져 있어, 분류를 하자면 근현대사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한
소 챕터는 대체로 열 장 남짓이며 좀 더 많은 배경지식이 필요한 주제의 경우 이십여 장 정도가 할

애된다. '대원외고가
생기지 않았다면' 등의 교육에 관련된 글도 몇 개 있지만 대부분은 정치 상황에 대해 쓰고

있다.



역사에서의 가정은 말 그대로 소일거리에 불과하다. 제목에서부터 '만약에'를 내세운 이 책을 집어든 내 심사도

거기
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직접 읽어보니 실제의 공력은 대부분 주제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데에 실려 있었다. 마지막의 한두 장에 덧붙여지는 '만약에 그렇지 않았더라면' 일어났을

일들에 대한 전망
또한 단순히 선정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수준의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결과와의 꼼

꼼한 비교를 통해 역사를
'공부'하게 하는 훈련교본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본래 기사의 형태로 연재된 잡지가 <한겨레 21>이었음에도 알 수 있듯이 주제의 선정이나 '만약에'의 가정에

내포된
시선은 기본적으로 진보 진영의 그것이다. 그러나 근현대사에서 일어난 논쟁적 성격의 사건들이 대부분

보수(수구)
진영의 이해 관계에 따라 좌우되는 결과로 수렴되었던 것이 사실이고, 주제와 관련된 사건들의 구체

적 진술과 역사
적 가정에 사용된 논거가 객관적이라고 생각되어, 정치 성향에 관계 없이 근현대사의 복습 삼아

일독하실 것을 권하
고 싶다. 


다음은 전체 독후감과 관계없이, 읽으면서 따로이 표시해 두었던 사실들을 메모장 삼아 적는 것이다. 개인적으

로 확
인해 보고 더 알아보고 싶어 적는 것이니 관심이 없는 분은 넘어가셔도 좋겠다.


- 고종의 장례일은 1919년 3월 3일. 3.3 운동이 아니라 3.1 운동이 된 이유는 노제가 치러지는 당일은 고종의 장

례를 방
해할 수 있고, 2일은 일요일이어서 거사에 참여한 기독교 지도자들이 강력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 1947년 7월 19일 저격당한 몽양 여운형. 그는 당일 미군정 민정관 E.A.J. 존슨과 비밀회동을 갖기로 하고 가는

길에
참변을 당했는데, 회동의 실질적 내용은 양 극단의 이승만과 박헌영을 위험시한 미국이 새로운 대화창구

이자 실세로
여운형을 택했다는 것이었다.


- '사사오입 개헌'에서 재적 의원 203명 중 가결 정족수는 136표. 가(可) 135, 부(否) 60, 기권 6, 무효1, 결석 1.


- 5.16의 디데이는 본래 5월 12일이었다. 그런데 쿠데타의 주력부대로 계획되어 있던 공수특전단이 12일 당일

에 안성
으로 내려가 훈련을 실시하게 되어 연기된 것이다.


- 전태일이 1969년 만든 재단사들의 모임 이름은 '바보회'이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책 소개에 올라와 있는 목차를 끝에 덧붙인다.


20세기 초 한반도가 분할됐다면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쏘지 않았다면
고종이 망명정부를 세웠다면
‘신간회’가 무너지지 않았다면
반탁운동, ‘동아일보’ 오보가 없었다면
여운형이 미군정의 민정장관이 됐다면
김구·김규식의 남북협상이 성공했다면
해방 뒤 토지개혁이 실패했다면
북한군이 사흘간 서울에 머물지 않았다면
만주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다면
미국이 이승만을 제거했다면
제네바 회담이 타결됐다면
‘사사오입 개헌’ 실패했다면
조봉암이 사형되지 않았다면
5.16군사쿠데타가 불발되었다면
베트남에 파병하지 않았다면
무장공비 침투 등 북한 도발 없었다면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늦춰졌다면
전태일이 분신하지 않았다면
일본에서 납치된 김대중이 암살됐다면
임시행정수도 계획 실현됐다면
김재규가 박정희를 쏘지 않았다면
아웅산 테러가 성공했다면
대원외고가 생기지 않았다면
박종철 죽음이 은폐됐다면
YS·DJ 후보 단일화가 됐다면
서울올림픽이 열리지 않았다면
문익환 목사가 방북하지 않았다면
김일성 조문 슬기롭게 대처했다면
작전통제권 온전히 환수했다면
IMF 구제금융 대신 모라토리엄 선언했다면
금강산 관광이 5년 먼저 시작됐다면
대북 쌀 지원을 하지 않았다면
북한이 신의주를 홍콩처럼 개방했다면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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