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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낙서 묶음 셋 딱히 정해진 주제 없이 눈에 띄는 것을 그렸던 예전과 달리 요새는 되도록 사람의 얼굴을 그리려고 노력한다. 영화 포스터의 호아킨 피닉스. 별로 닮은 것 같지 않아 누구를 그린 것인지 함구하고 있었는데 흘깃 본 한 학생이 어, 그 영화의 주인공 아니예요, 하고 말해줘서 기뻤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자주 간다.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책을 사면 문인들의 캐리커쳐가 그려진 비닐 봉투에 책을 넣어 준다. 그 봉투를 들고 수업을 하러 간 날, 학생들에게 나누어준 문제의 한 제시문에 마침 기형도의 이 나왔길래 신기해하며 따라 그려 봤다. 원래보다 좀 야비하게 그려져서 미안하다고 생각했다. 한창 공사중인 연대 정문 앞에서 만날 사람을 기다리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그린 이한열. 그림을 그리고 있던 그 근처에서 죽었던 것이다.. 더보기
김충식, <남산의 부장들> (폴리티쿠스. 2012,11.) 열 살 무렵까지 살았던 동네에는 기묘한 건물이 있었다. 교도소도 아닌데 철책은 높았고 드나드는 차는 하나같 이 80년대의 인천에는 흔치 않았던 중형 세단들이었다. 유년기의 관찰이라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부분 위압적인 인상을 풍기는 각그랜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초등학교 공교육 과정에 영어 과목도 없었고 동네에 학원이라고는 피아노 학원과 태권도 학원 정도 뿐이었던 시 절이라 우리의 방과후는 자기 전까지 대개 동네 탐험과 저녁 식사, 그리고 제 2차 동네 탐험으로 이루어져 있었 다. 이곳저곳을 쏘다니는 와중에 문방구에서 혀가 새빨개지도록 불량 식품을 사먹어도, 뒷산 절간에 바쳐진 사 탕을 훔쳐먹어도, 심지어는 동네의 무고한 창문을 깨먹어도 꿀밤 몇 대로 끝나곤 했지마는, 앞서 말한 '기묘한 건물' 근처에서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