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장/2003

잡담






일기가 게을러서 미안합니다.


이번 학기에는 15학점인데다가, 수업이 대개 오후에 있어서 저녁이 넘어가고 새벽이 되어도 노는

것에 도무지 거칠 것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후배들과 흥청망청 놀고 집에 들어가서는 같이 사는

동기들과 흥청망청 놀고(빛나씨, 깜찍 고스톱 땡큐! 집들이 선물로 받은 것들 중에 단연 군계일학

이로세!), 새벽에 자기가 일쑤입니다. 또 비척비척 일어나 학교에 올라와 수업을 듣고, 다시 신촌에

내려가 놀고. 이러다 보니 도무지 차분히 일기를 쓸 시간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술마시고 일기

를 쓰는 것도 가끔 괜찮은 작품이 나와 그리 싫어하는 행위는 아니지만 지금 사는 집에는 컴퓨터가

없는 탓에 학교에 올라왔을 때에야 일기를 쓸 수가 있습니다. (게임방 가서 돈내면 아깝잖습니까)

그런데 노교수님들의 지루한 수업을 들은 이후에는 전날의 싱싱한 기억들, 03들과의 즐거운 시간들

이 그 때 그 느낌 그대로 살아나지 않아 썼다 지우기도 하고, 쓰기를 포기하기도 하고, 여하튼 그렇

습니다.

다행히 어제는 사진을 많이 찍었으니 다음에는 후배들과 같이 찍은 사진을 올릴 것입니다.필명으로

만 알고 있는 제 대학교 후배들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감상하실 좋은 기회입니다. 이름과 얼굴

은 얼마나 매치되는지, 이런 거.


유종호 교수님의 '문학이란 무엇인가' 두시간만 째고 아이들과 청송대에서 밥을 먹는 것이 애초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날씨가 좋으니 밖에 나갈까, 요새 날씨가 좋으니 목요일쯤 한강 한 번

갈까, 목요일날 갈 거 에이 그냥 오늘 갈까, 오늘 갈거 지금 갈까 이렇게 되어 결국 어제 수업을

몽창 빼먹고 한강에 놀러 갔었더랬습니다.


동생들에게서 꼰대꼰대 소리를 들어가며 자전거를 타 봤습니다. (애들이 어찌나 빠르던지, 꼰대는

꼰대인가, 이제,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후배 셋이 한참을 앞에서 달려나가고, 나는 그 뒤에서

햇살을 쬐며, 바람을 맞으며 아이들의 뒷모습을 망연히 바라보았습니다. 그 모습에 슬핏 웃음이 배어

나오는 걸 보고는 역시나 꼰대가 되었나 하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을 쳐다 보다가, 정확히

2년 전 요맘때, 사랑하게 될 사람과 거닐었던 길을 기억해 내고는 소리를 내어 웃기도 했습니다.


저녁이 되어 수업이 끝난 다른 아이들이 또 와서 선유도의 작은 카페테리아로 놀러갔습니다. 김현

철의 '서울도 밤에 보면 괜찮은 도시'인가 하는 노래제목이 생각났습니다. 배꼽이 빠질 정도로 웃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어제는 대학생활에서 드물게 보는, 평화롭고 안온하면서도 즐거운 시간

이었습니다. 뭐랄까, 잠시 후에 또 할 일이 있고 어제 일이 잘 생각나지 않기도 하고 해서 글이 엉망

입니다만, 여하튼 최대호, 근래는 정말이지 행복한 날들의 연속입니다.


길고 엉망이지만 어쨌든 아무것도 안 쓰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 갈무리도 안 하고 대충

올려둡니다. 헤헤. 미안.


동봉하는 사진은 선유도 산책로로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하는 죽음의 다리. 어, 끔찍해.

'일기장 > 2003'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2년 가을, 대전.  (11) 2003.03.21
선배 최대호  (3) 2003.03.20
어머님  (5) 2003.03.16
근래 사진입니당.  (10) 2003.03.15
딸기가 좋아  (5) 2003.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