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엎드려서 어려운 책을 읽다가 설핏 잠이 들었다. 꿈의 시작에, 나는 내 발걸음을 보고 있었다. 여기가 어
디지, 하고 뒤를 돌아보니 걸어온 것은 2층짜리 목조 건물의 현관 계단이었다. 처음 보는 집인데 꿈답게 '내 집
인데 왜 못 알아 봤을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집의 양쪽으로는 비슷한 모양의, 그러나 각자 소소한 특
색이 있는 다른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왼쪽 끝은 쭉 이어져 어디까지 간지 알 수 없고, 오른쪽 끝은 얼마 가지
않아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보이지 않는 쪽으로 꼬리를 틀었다. 뒤를 보던 시선을 돌려 고개를 앞으로 향하자 눈
앞에는 차가 지나다니지 않는 조용한 이차선 도로가 있었고, 그것을 타박타박 건너니 무릎과 허리 사이 정도 높
이의 나무 울타리들이 있었다. 울타리와 울타리 사이의 틈을 지나자 잡풀들이 밉지 않게 자란 경사가 완만한 각
도로 내려가고 있어 걸음을 옆으로 하여 조심조심 내려갔다. 경사의 끝에는 시내보다는 좀 크고 강보다는 많이
작은 개천이 있었다. 문득 손이 차가와 내려다 보니 한 손에는 살얼음이 맺힌 유리 맥주병이, 다른 손에는 맥주
잔 두 개가 들려 있었다. 꿈을 꾸는 내가 왜 잔이 두 개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꿈 속의 내가 머리를 돌려 '여기
야'하고 웃음 섞인 소리를 냈다. 시선의 끝에는 꽃이 그려진 예쁜 옷을 입은 아내가 경사를 따라 내려오고 있었
다. 역시 꿈답게, '내 아내로구나'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올려다 보니 해는 봄날, '팔자 좋구나...'하고 맥
주병의 냉기를 즐기다가 잠에서 깼다. 몇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그 광경이 생생하지만 그려낼 재주가 없어, 언젠
가 써먹어야지 하고 그려 두었던 꿈 몽(夢)자의 캘러그래피를 붙여 적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