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다리는 삼랑진교이다.
삼랑진교를 넘어가면 삼랑진역이 나온다. 삼랑진역은 춘원 이광수의 <무정>의 마지막 무대이다. 비교적 능숙하게 교직해 왔던 인물 간의 첨예한 갈등을 홍수 앞에서의 대화합이라는 장치로 한 쌈 크게 싸서 꿀떡 삼켜버린 그 장면이 펼쳐진 곳이다. 그 삼랑진에 진짜 왔구나, 하는 감회가 들어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멈춘 건 아니고 무릎이 욱신거려서 멈춘 거지만 멈춘 김에 찍었다.
젊은 사람이 다리 사진을 찍고 있으니 신기했던 모양이다. 먼저 앉아 쉬고 있던, 화려한 자전거 의상을 입은 오십대 초반 쯤의 부부가 으데서 왔습니꺼, 하고 말을 붙여왔다. 서울에서 왔어요.
안동 사람인 아저씨와 하동 사람인 아주머니가 부산 옆의 양산에 살기 시작한 지는 십 년이 조금 못 되었다 했다. 마침 나와 큰 차이가 지지 않는 연배의 아들이 있다는 부부는 직업 이야기나 결혼 이야기 등에 대해 흥미를 갖고 이런저런 질문을 해왔다. 무릎은 까지고 얼굴은 벌건 것이 안돼 보였는지 아주머니는 연방 물을 먹인다, 과일을 먹인다 하며 이것저것을 내주어서 나는 재미나게 쉬었다.
자전거 이야기도 하고 양산의 유명한 사람 이야기도 하고 하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질문을 했다. 그런데 평일 낮에 이렇게 함께 운동 나오신 것을 보니 자영업 하시나 봐요. 부부는 잠깐 서로를 보며 얼굴을 굳혔다. 아저씨나 아주머니가 실직이라도 당하신 모양이다, 고 생각하고 다른 질문을 하려는데 아저씨가 갑작스레 내 얼굴을 보더니 몇 월에 났습니꺼, 라고 물었다.
- 팔월 말인데요.
- 음력으로예?
- 제 또래는 양력 밖에 안 써서...
- 음력이어야 하는데.
그쯤 해서 감이 왔다. 부부가 같이 하는 자영업이고 낮에는 쉬는데 지나가다 만난 이의 생일을 물으시니, 옳지, 사주 보는 분이시구나.
- 철학관 하세요?
- 그런 건 아이고...
- 저 음력으로 숫자 날짜는 잘 모르고 신유년 병신월 병자일 인시인 건 아는데요.
음력 숫자 날짜는 모르면서 간지는 다 알고 있었던 괴상한 꼴인 건 주역을 읽기 시작할 무렵 언젠가는 스스로 사주 한 번 봐봐야지 마음 먹고 외워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 어디 보쟤이.
아저씨는 눈을 반쯤 감고 뭔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나는 슬슬 몸이 달았다.
- 공부 쪽이 아인데.
- 저는 항상 공부를 하고 있는데요. 그게 좋고.
- 이 사주는 돈을 버는 사주라. 어디 보자... 레스토랑, 횟집 겉은 요식업, 아이면 모텔이나 호텔 겉은 숙박업. 그리 하면 대박 맞고 넘들 넉넉히 거느리고 사는 사주라. 그리고... 삼십 대가 힘든데, 올 해만 넘기면 된다. 올 해만 넘기면 내년 칠 월에 이동수가 있다. 거서부터 풀려가 처만 잘 얻으면, 이런 사주 잘 없어. 넘 밑에 서는 사주가 아이라.
어느새 반말로 바뀐 건 신경도 못쓰고 나는 눈을 좁게 뜨고 집중해서 들었다. 몸이 아파서 그랬는지, 실제로 삼십 대 초반이 고되어서 그랬는지, 내 인생의 키는 부인이 잡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그랬는지. 작은 돈에 쪼잔하고 큰 돈에 틔미해서 사업은 글렀다고 스스로 생각한 것이 물경 이십여 년 전의 일이라 요식업과 숙박업 얘기는 흘려들었지만, 일일이 적지 않은 나머지 말들은 흔한 철학관식 멘트인데도 즐겁고 위안이 되었다. 이래서 점들 보러 댕기는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주머니는 아저씨의 말이 다 끝나자, 이 양반이 어데 가도 먼저 말을 안 하는데, 슨생님이 여서 오늘 우리를 만날 인연이었는갑네, 라고 말했다. 아저씨는 씩 웃더니 올해꺼지만, 올해꺼지만 이라고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지장보살처럼 사라지는 부부의 뒷모습에 방금 부상 당한 허리와 무릎을 굽혀 인사를 했다. <무정>의 주인공들처럼 나도 결국 삼랑진에서 소설 같은 순간을 겪은 셈이다. 일기를 쓰다가 엄마에게 전화해서 확인해 보니 인시가 아니라 축시 출생이긴 했지만 아무튼 마음에 큰 위안 얻었다. 이렇게 잠깐 잘 쉬고, 낙동강 자전거길의 끝에서 두 번째 지점인 양산 물문화관 인증센터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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