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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記/4대강 자전거길

6. 낙동강 우회 자전거길 -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적교장에서 푹 자고 출발. 빵빵한 배터리 사진은 여행이 다 끝난 지금 봐도 흐뭇하다. 계기판 왼쪽에는 휴대폰과 4대강 수첩 등을 넣을 수 있는 주머니가 있다. 그 안에 보이는 작은 지도는 적교장 명함의 뒷면이다. 국토종주 자전거길은 표지판과 도로에 새겨진 표식만 잘 따라가면 인천부터 부산까지 갈 수 있게 해 놓은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따로 지도가 필요한 이유는.

 

한강과 낙동강의 모든 자전거길이 효율적으로 건설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곳은 터무니없이 크게 돌아가는 곳이 있는가 하면 어떤 곳은 에누리 없이 강에다 딱 붙인답시고 엄청난 경사를 올라가야 하는 곳도 있다. 그래서 네티즌들은 짤막짤막한 지름길과 우회로 등을 공유하곤 한다. 해당 정보를 찾아 볼 만한 시간이 없거나 정보를 알게 되더라도 막상 현장에서 적용할 자신이 없는 라이더라면 그냥 길을 따라가면 된다. 원래의 길도 시간과 힘을 들이면 다 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낙동강 자전거길에는 자전거 여행기 책들에도 공통적으로 소개되어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자전거길 자체에 '우회로'라는 안내가 붙은 길이 세 구간이나 있다. 달성보에서 합천창녕보 사이에 있는 '다람재 우회길'과 '무심사 우회길', 그리고 합천창녕보를 벗어나면 있는 '박진고개 우회길'이다.

 

우회길에 대한 평은 크게 둘로 나뉜다. 반대 쪽의 목소리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소조령, 이화령을 넘어왔으면 여기도 넘어갈 수 있다. 세 개만 지나면 을숙도까지는 평평한 길이다. 우회길을 택할 거면 무엇하러 국토종주를 하나.

 

찬성 쪽의 목소리는 이러하다. 상대적으로 완만한 경사를 오랫동안 올라가야 하는 새재길에 비해 낙동강의 세 난코스는 중거리에 급격한 경사라 체력 소모가 심하다. 다른 자전거길도 모두 강 바로 옆을 지나는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 돌아가는 길도 있다. 공식적으로도 우회로를 소개할 정도인데 체력에 자신이 없다면 이용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우회길 덕분에 무사히 종주를 마쳤다는 글도 읽었고 고민하다 우회길을 택했는데 역시 후회되어 나중에 혼자 원래의 길을 달렸다는 글도 읽었다.

 

사실 인천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로 달린다는 것이 효율로만 따지면 멍청이 같은 일이긴 하다. 기차로 가도 되고 차로 가도 되고 하다못해 오토바이로 가도 되는데 굳이 자전거로 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건 결국 '의미' 때문일 것이다. 일정한 길이의 구간을 내 힘으로 달려 냈다는 성취감, 그리고 그 성취감에서 오는 자존감 등이 의미의 실체일 텐데.

 

그렇다고 시원하게 결론이 나는 것은 아니다. 진짜로 자기 힘만으로 가고 싶다면 걸어서 가면 될 일이 아닌가. 자전거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쨌든 차나 오토바이와 같은 '도구'가 아닌가. 그 중에서도 특히 일반 자전거가 아니라 전기 자전거를 이용하는 나 같은 이에게는 더더욱 쉽게 답할 수 없는 질의이긴 하다.

 

쉬지 않고 몇 시간씩 달리다 보면 이 문제에 대해 수 차례는 생각해 보게 된다. 심심하고 외로울 때 이리저리 궁리를 하다보면 질러갈까 돌아갈까 하는 수준으로 출발한 고민이 끝내는 인생과 인생을 대하는 자세에 가 닿기도 한다. 나는 내 삶에서의 차원에까지 어떤 결론을 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자전거길에 한해서만큼은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됐다.

 

결국 얼만큼의 의미를 부여하는지는 다 자기에게 달린 일이라고 본다. 갈림길을 앞에 두고 마음이 괴로우면 원래의 길로 가면 될 일이고 몸이 괴로우면 우회로로 가면 될 일이다. 인천에서 부산까지는 육백 키로가 훌쩍 넘는다. 어차피 이 정도의 거리라면 자기만의 속도로 달릴 수 밖에 없다. 무리해서 몰아친다고 해서 자기 깜냥을 넘어 한 번에 도전할 수 있는 거리는 아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면 내 호흡대로 가는 것이 좋다.

 

 

 

 

  

 

 

 

아무튼. 길 위에 있으면 몸과 마음이 지쳐 이런 개똥철학을 생각할 시간이 많아 좋다. 중요한 깨달음은 두툼히 쌓인 개똥철학의 밭에서 피어난다고 생각한다. 전일의 누적 주행거리는 106km. 이틀째 아침. 출발.

 

 

 

 

 

 

 

 

이번 종주길을 떠나기 전에 세웠던 목표 중에 하나는 돌아와서 우회길에 대한 자세한 블로깅을 하리라, 였다. 나는 공간인지감각이 좀 떨어지는 편이라, 책과 블로그에서 지도를 보여주고 설명을 해 줘도 영 머리에 그려지질 않았다. 직접 밟아보고 사진도 많이 찍어서 나 같은 라이더들에게 꼭 도움을 주어야지! 하고 상냥하게 다짐했던 것인데.

 

결과는 꽝. 쓰기 귀찮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왜 꽝이냐 하면. 

 

국토종주 자전거길은 일단 대부분이 동일한 형태의 자전거 도로로 이어져있기 때문에 멍 때리고 쭉 달려가도 크게 잘못될 가능성이 적다. 자전거 도로를 벗어나 잠시 일반 도로로 들어갈 때에는 바닥에 자전거 표시를 해 준다거나 다른 구간보다 안내 표지판을 더 많이 세워 놓았다거나 하는 등의 배려가 분명히 있다. 무의식이 인식하는대로 따라가도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회로는 어디까지나 우회로이기 때문에 이런 조치가 적다. 신경 바짝 곤두세우고 천천히 달리며 주위를 살펴도 도무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나도 브레이크를 잡고 미어캣처럼 두리번거렸던 것이 몇 번인지 셀 수조차 없다. 게다가 달성 인근은 현재 대규모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길이 험하거니와 길인지 아닌지조차도 모르겠는 곳이 많다.

 

고생고생을 하다가. '우회로'이니까 어쨌든 우회하려고 했던 지점을 다 우회하고 나면 원래의 자전거길과 합류하게 된다. 아, 이제 다시 자전거길로 들어가는구나, 하고 마음을 놓으며 합류점에서 물을 마시는데 반대편에서 다른 라이더가 달려온다. 아유, 원래 길로 오셨나봐요, 저는 우회로로 왔는데, 하고 말을 붙여보니 다른 라이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저도 우회로로 왔는데요, 라고 말한다. 나는 이런 경험을 두 번이나 했다. 세 번의 우회로 중에서. 그래서 자세한 사진과 함께 하는 안내는 못 하게 됐다. 다만 이렇게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저도 완주했습니다.  

 

 

 

 

 

 

 

 

마지막 우회로인 '박진고개 우회로'를 벗어나면 창녕군의 남지읍에서 자전거길과 합류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을숙도까지는 자전거길 일직선이다.

 

 

 

 

 

 

 

 

저 용산이 서울역 그 용산이면 얼마나 좋겠나. 내 집에 가서 한 시간만 누워 지치고 상처 받은 사타구니를 달랠 수만 있다면. 나중에 알고 보니 한자도 같은 龍山이긴 했다.

 

 

 

 

 

 

 

 

백 키로 깨졌구만.

 

 

 

 

 

 

 

 

창녕함안보에서 인증샷. 1일차 밤에 숙소에서 벌겋게 익은 코를 보고 식겁하여 2일차에는 겸손하게 마스크 쓰고 댕겼다. 

 

 

 

 

 

 

 

 

너무 길쭉하게 파노라마로 찍다보니 중간이 크게 휘긴 했지만 아무튼 이것이 낙동강 자전거길을 달리며 무시로 보게 되는 풍경이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진짜로 바람 소리 나는 밀밭 사이를 몇 시간이고 달려, 멀리 봉화산과 봉하 마을 보이는 낙동강변의 정자에 앉아 쉬다가, 목월 박영종의 <나그네>를 처음 듣게 된다면 평생에 기억에 남지 않을 이 몇이나 되겠나.

 

 

   

 

 

 

 

 

정자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이렇지만

 

 

 

 

 

 

 

 

정자에서 누워 있는 내 모습은 이렇다. 2박 3일 중 이틀 째에 달릴 만큼 달려 놓고 삼일 째에는 부산을 좀 돌아다녀야지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발라당 누워 있는데 동네 어르신이 지나가다가 땡감 하나를 던져줬다. 그냥 먹기 죄송해서 갖고 있던 사탕을 몇 개 드리고 말을 붙여 봤더니 노무현과 동갑이고 바로 강 건너 마을 출생이라는 어르신의 연대기가 펼쳐졌다. 현대사 중에 경남이 얽힌 몇 가지 사건에 대해 여쭤 보니 확실히 경남이 경북하고 속결까지 같지는 않구나, 싶은 답이 돌아온다. 운동 나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할아버지께 댁까지는 얼마나 걸리시냐고 물었더니 시오 리 더 가면 된다고 하신다. 시오 리면 육 키로가 조금 안 되는 거리인데도 탈진한 내게는 할아버지가 철인경주하는 선수처럼 보인다.

 

 

 

 

 

 

 

 

힘들다 싶을 때 더 쉴 걸 그랬나 보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좁고 급한 커브를 돌다가 앗, 하는 사이에 쇠기둥에 무릎을 세게 박고 자전거는 내동댕이쳐졌다. 무척 아파서, 항복하는 레슬링 선수처럼 엎드려 바닥을 탁탁탁 쳤다. 아야야 소리를 지르다가, 이전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는데 그 때에도 내 아야야 소리가 몹시 높고 경박하여 아픈 와중에 웃음이 났던 기억이 났다. 이번에도 눈물 나게 아픈데 웃음이 나서 결과적으로는 짜증이 났다. 자빠진 김에 쉬어간다고 조금 넓은 곳까지만 자전거를 끌고 가서 에랏 하고 벌러덩 누워 노래 들으며 사탕을 까 먹었다. 구름에 달 같이 가기는 이왕에 틀렸지 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