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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1

2006년 10월





인도에 다녀온 뒤로는 가을 바람이 불면 갠지스 강이 생각난다. 여전히, 수중에 돈이 넉넉히 있어도 해외여행

은 부자들이나 가는 거라고 홍콩조차 가지 못 하는 깜냥인데, 생각해 보면 신기하다. 인도 여행은 준비할 때부

터 돌아올 때까지 한 번도 그것이 신기한 결정이라거나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야할 곳에 가서

해야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학교의 서문 밖에 있는 내 방으로, 노천극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연고전의 응원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부럽

고 배가 아파 쌓인 일 제쳐두고 블로그의 재미있는 글들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지금 인도 여행을 하고 있는 이

가 인도의 바라나시에서 쓴 일기를 읽었다. 요새 세상에는 이 억을 준 사람은 감방에서 추석을 보내는 판에, 십

수 억을 받고도 여기저기서 감싸주는 사람이 있다. 그 두터운 인맥조차 부럽지 않을 정도로 나름 자족하며 살고

있는 한 때인데, 구월의 따뜻한 갠지스 강에서 사진을 찍고 일기를 쓰고 있다니, 연고전에 참가하고 있는 스무

살 들보다 백 배는 부러웠다.


인도 사진 폴더를 뒤져 가을맞이 삼아 몇 장을 올린다. 다른 사진들은 못 해도 한 번씩은 이 일기에 올린 것이라

아직 한 번도 쓰지 않은 것이 확실한 것을 대문에 올린다. '셀카' 찍는 것을 무척 부끄러워 하고 그 결과물은 더

욱 부끄러워 하는 탓에 한 번도 쓰지 않은 사진이다. 배경은 바라나시에서 한국인들에게 가장 유명한 '바바 게

스트 하우스'의 숙실. 저 수염이 무려 3주나 기른 수염. 그 뒤로는 덧없어서 기르지 않는다.








바라나시에는 여행 기간동안 두 번 방문했는데, 두 번째 발걸음에는 아주 친해진 동행이 있었지만 첫 번째 때엔

함께 하는 이도 없고 아직 여행에도 익숙해지지 않아 무척 쓸쓸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덕분에 혼자 생각도

많이 하고 내가 가고 싶은 이곳저곳에 더 많이 가 보기도 해서, 사진이나 일기, 그린 그림은 첫 번째 쪽이 훨씬

재미있다. 이 사진은 나와 동갑인 인도인 보트 드라이버 '철수'가 찍어준 것이다. 








인도 피리를 사서 멋대로 불고 다니던 하루. 저 피리는 다음 여행지인 다즐링으로 가는 길에 기차에서 쪼개지고

말았다. 바라나시에서밖에 살 수 없는 것이었고 혼자 있을 때 파적삼아 부는 것이 제법 입에 익는 참이었기 때

문에 당시에는 무척 아까워 했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면 크게 마음에 들어하는 이 사진을 남긴 것만 해도 어

디랴 싶다.








위의 사진들은 사실 예전 사진 느낌이 나라고 일부러 채도를 약간씩 낮추는 보정을 가한 것인데, 이 사진만은

찍었을 때 그대로로 올린다. 바바 게스트 하우스 옥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일출을 기다리다가 찍은 것.

바라나시에 수천 마리 출몰하는 깡패 원숭이들도 아직 추워서 나오지 않은 새벽에 침낭을 뒤집어쓰고 덜덜 떨

며 찍었다. 오금이 저리도록 쓸쓸하고 사람, 그리고 사람과 나누는 감정이 사무치게 그립고 머리속은 한없이 맑

고 또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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