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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記/2012. 캄보디아

2일차 오전. 따 쁘롬






자유 여행이지만 역사와 신화가 얽힌 유적지들이 많아, 4박 5일 가운데 하루는 가이드를 신청했다. 그와 함께

찾은 첫 번째 유적지는 인기 코스 가운데 하나인 따 쁘롬.


 

 

 

 





 






들어가는 길부터 심상치 않다. 이 유적을 만든 이는, 우리나라로 치면 장수왕 쯤이라고 할 수 있는 자야바르만 7

세. 앙코르 유적군을 공부하고 둘러보면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왕의 이름은 딱 둘인데, 그 중 하나가 강력한 군사

력으로 앙코르 제국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우리 나라로 치자면 광개토대왕과 그 이미지가 흡사한 수리야바르만

2세이고 다른 하나가 그를 바탕으로 한층 더 융성한 통치를 자랑했던 그의 다음다음 대 왕, 자야바르만 7세이

다. 다음다음 대라고는 하나 모계사회인 크메르 왕조의 특성상 손자는 아니다.  이 유적은 자야바르만 7세가 그

의 어머니를 위해 지은 것인데, 모계사회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버지를 위해 지은 쁘레아 칸보다 더 크다.



 

 

 

 




 





사원의 입구에는 대체로 이와 같은 문지기가 양쪽에 조각되어 있다. 남성인 경우도 있고 여성인 경우도 있다.

무척 아름다운 부조이기는 하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인도에서 보았던 신상들에 비해 조형미가 좀 떨어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훨씬 훼손이 많이 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따 쁘롬이 전 세계적인 유명세를 탄 것은 뭐니뭐니해도 이 나무 덕분이다. 나무의 이름은 스펑. 우기에

는 물을 잔뜩 흡수했다가 건기에는 바싹 쪼그라드는 탓에, 건축물의 사이로 파고들어가기 시작하면 붕괴를 가

속화하는데, 하필 따 쁘롬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사암. 사암은 틈새에 많은 수분이 있어 스펑 나무가

번식하기에 좋은 조건을 형성한다고 한다. 아무튼 그 덕에 찬란한 유적의 폐허와 자연의 거친 생명력이 공존하

는 기묘한 공간이 생겼고, 거기에 주목한 영화 자본에 의해 '툼 레이더'의 촬영지가 되었다. 다른 유적지들은 대

부분 프랑스, 일본 등에 의해 유지, 보수, 재건축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따 쁘롬만은 위와 같은 광경의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일부분만 공사가 행해지고 있다.



 

 

 

 




 






나무가 번식하지 않는 곳은 다른 유적들과 마찬가지로 보수 공사가 한창이다. 초기에는 빈 공간이나 갈라진 틈

에 시멘트를 흘려넣는 무식한 공정이 이루어졌다고 하나, 현재는 설계도를 그려가며 유적을 해체한 뒤 나무를

제거하고 다시 쌓는 식으로 보수 공사를 하고 있다. 일제 시대에 석굴암 벽면을 시멘트로 발라버려 계속해서 습

기가 차게 되었다는 유홍준 선생님의 글이 생각났다.


 

 

 

 





 






언젠가는 다시 찬란한 유적의 일부분으로 재구성될 타일들. 현재는 백묵으로 넘버링만 된 채로 이렇게 널부러

져 있다. 여기뿐만이 아니라, 따 쁘롬은 어디를 찍더라도 대체로 쓸쓸한 느낌을 준다.


 

 

 

 





 






유적의 훼손은 세월과 자연 때문만은 아니다. 불교 문화와 힌두교 문화가 교대로 융성했던 문화적 특성 덕분에,

한 종교적 문화가 흥성할 경우에는 이전의 종교 문화의 흔적을 지워내는 작업이 행해졌다고 한다. 자야바르만 7

세는 스스로를 관세음보살로 자처할 만큼 불교문화에 심취해 있었는데, 이후 들어선 힌두교의 왕들이 위의 사

진에서와 같이 불상의 부조를 떼어내 버렸다. 이런 현상은 따 쁘롬만이 아니라 다른 사원들에서도 여러 차례 찾

을 수 있었다. 위와 같이 아예 떼어내 버린 경우도 있고, 수염을 깎아 넣거나 장식을 다르게 하여 불상을 힌두교

사제의 상으로 바꾼 경우도 있다. 무상한 느낌에 한 몫 더하는 광경이다.



 

 

 

 




 






마치 진액처럼 파고든 스펑나무 뿌리.


 

 

 

 




 






천 년 유적도 오늘을 사는 이에겐 그저 돌무더기일 수도 있다. 얼굴이 뭉개진 문지기 상을 찍다가 머리 뒤의 구

멍으로 쏙 들어가는 도마뱀 꼬리가 찍혔다.

 

 

 

 






 






아침 샤워를 하며 G20 개최국의 문명국 국민답게 깨끗이 제모했으나 덥고 습한 남국의 날씨 덕에 겨드랑이에

털이 금세 다시 났다.



 

 

 

 




 






이 광경을 보고, 나는 산 밑에 깔려버린 손오공을 떠올렸다. 따 쁘롬을 최대한 그대로 두기로 한 결정이, 지금의

광경을 아름답게 여겨서라기보다는 엄두가 안 나서 그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이드 형이 재미있는 장소라며 가르쳐 준 곳. 사진으로는 별다른 장애물 없이 잘 찍혔지만, 실제로는 눈 높이

에 공사를 위해 쳐 놓은 천이 걸려 있어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잘 보면, 왼쪽 아래부분에 나

무 뿌리 사이로 조각상을 발견할 수 있다.

 

 

 

 






 






가까이서 찍으면 이렇게 나온다. 눈이 다 보이지 않는 것도, 활짝 웃는 것이 아니라 조금 머금다 만 미소도 어쩐

지 쓸쓸한 마음을 더욱 자극한다. 해가 쨍쨍 떠서 이번 여행에 찍은 사진들은 대부분 잘 나왔는데, 나는 이 장면

을 다시 보기 위해서라도 칙칙한 우기에 캄보디아를 다시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마음없는 조각상일 뿐이

지만, 눈 앞에서 보면 마치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도 상관없다는, 바로 그런 표정으로 보인다.



 

 

 

 




 






내부 회랑의 천장 구조는 위와 같다. 왜 이렇게 놀라운 건축 기술이 발달한 문명에서 아치 기술은 출현하지 않

았을까? 지반이 안전하여 큰 지진은 없다고는 하지만, 인근에서 수류탄 하나만 터져도 와르르 무너져버릴 것만

같은 모양새. 보기에도 썩 좋지 않다.





 

 

 

 


 






통곡의 방. 정식 명칭은 아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이 방에 들어가 가슴을 치면 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그

소리가 크면 클수록 불효가 많은 이라 한다. 어머니를 기리며 지은 사원이라 있는 공간일까? 실제로 단전에 힘

을 주어 발성을 해 보니 그리 퍼지지 않는데, 가슴을 치니 텅, 텅 하고 소리가 크게 울린다. 큰 소리 나는데 부끄

러울 뿐, 의아하지는 않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는 곳이 찍기 좋은 곳. 잠깐 멈추어 섰다.

 

 

 





 






소불알 같은 뿌리를 부여잡고 찰칵. 차례를 기다리는 외국인 할아버지에게, 우리 가이드가 여기를 잡고 사진을

찍으면 예쁜 아들을 낳는다고 말해 줬다고 뻥을 쳤더니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아름답다. 덧붙일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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