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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1

다녀왔다.




엄마가 입원을 했다. 목이 아픈 것 반, 좋은 병원에 자리가 난 것 반이라고 했다. 박지성이 선전을 해서 더 유명해졌다

는 한방 병원은 송래에 있었다. 혹시나 해서 검색해 보니 신촌에서 바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며칠 날씨가 풀리나 싶었

는데 버스를 기다리는 머리 위로 눈이 내렸다.


중동역 근처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놀이공원이 있다. 크기는 초등학교 운동장의 반만큼이나 될지 어떨지, 버스를 타

고 지나가며 볼 수 있는 것은 관람차와 청룡열차 정도이다. 원래는 어떤 모양이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본 바로

는 항상 양쪽으로 이차선 도로와 공사판을 두고 사이에 끼어 있었다. 말하자면, 양 옆의 도로가 빵, 공사판이 햄인데
 
그 사이에 들어간 치즈나 상추 꼴로 정작 놀이동산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우연이겠지만 지나가

며 무심코 그 놀이동산을 보던 때는 항상 병원이나 장례식장을 향하던 길이었다. 갑작스레 추워졌는데 해는 눈치도

없이 시뻘겋게 지고, 와중에 끼익끼익 움직이는 관람차가 을씨년스러웠다.


병원은 환락가의 끄트머리에 있었다. 근처의 노점상과 편의점에서 딸기와 요구르트 등을 사 들었다. 병원 입구를 들어

서는데 박지성과 김연아가 직접 홍보를 하는 사진이 수도 없이 걸려 있었다. 한방병원이라 수술은 없고 침이나 한약으

로만 치료를 한다고 해서인지, 엄마의 안색이 나쁘지 않아 마음이 놓였다. 그래도, 가족을 병실에 남겨두고 일어나는

마음은 항상 무겁다.


아홉 시가 다 되어서 아버지와 동생, 셋이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아버지가 몇 차례 찾은 적이 있는 고깃집이라고 했

다. 구제역의 여파는 끝날 기미가 없는 것인지, 메뉴 판의 가격은 온통 덕지덕지 견출지가 더 붙어 있었다. 그닥 내세

울 것이 없었던 이십대 후반에서 그나마 스스로라도 좋게 평가하는 것은 아버지와 술을 마시는 습관이 생겼다는 것이

다. 소주 두 병을 마시고 가족이나 인생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간의 화제는 주로 정치나 아버지의 추억이었는

데, 아버지가 말하고 싶었는지 내가 듣고 싶었는지, 아니면 엄마를 병원에 두고 와서인지 아무튼 그런 얘기가 나왔다.

방이 아니라 테이블에 앉았는데도 그 자리서 밤을 새워도 좋을 분위기였지만 술을 마시지 않는 동생이 마음에 걸려 두

어 시간 마시고 일어났다. 운전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생은 본래 술을 마시지 않는다.


아버지는 사랑한다는 표현을 잘 하지 않는다. 아마 할아버지로부터 비롯된 것일 것이다. 나 또한 보고 배운 것이 그 것

이라 가족들에게는 별다른 표현을 하지 않는다. 할 줄 모른다고 해도 좋다. 그런 아버지와 나라, 서로 마음이 통하고

의지하고픈 마음이 드는 때에는 헤어지는 길이 몹시 어색하다. 아버지는 밥을 잘 챙겨먹어야 한다든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어서 석사를 끝내라는, 평소에는 엄마더러 다 큰 애한테 잔소리하지 말라고 핀잔을 주시는 내용의 말들을 하다가

꽉하고 악수를 하고는 동생이 운전하는 차에 올라탔다.


눈은 송내에도 왔다. 새벽같이 아침을 먹고 다음으로 늦은 저녁을 먹는 공복에 소주를 집어넣은 터라 발걸음이 큰 팔

자였다. 버스가 돌고 돌아서 오는 것을 보았던 터라 상경길은 지하철을 택했다. 철로의 왼쪽은 서울 행, 오른쪽은 인천
 
행이다. 오랜만에, 왼쪽이 아주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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