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지2014.05.14 19:37

 

 

 

 

이제는 두 말 할 필요 없이 이 독서일지 카테고리의 최다 출연 작가,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中村好文의 2013년 신작. 국내에는 2014년 3월에 번역, 출간되었다.

 

'prologue'에 작가가 직접 소개해놓은 내용에 따르면, 이 책은 한 계간 건축 잡지에 'Architect at Home'이라는 코 명으로 연재하였던 24편의 칼럼을 모은 결과물이다. 작가는 이전에 이미 같은 방식을 통하여 세계의 명작 주택을 직접 방문하여 독자에게 소개하고 그 칼럼들을 모아 <주택 순례>라는 책으로 낸 바 있었다. 칼럼을 쓰고 책을 출간할 때까지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 책에서 소개한 열일곱 채의 집 가운데 반 정도가 되는 여덟 채의 집이 건축가 자신이 살기 위해 지은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다. 생각해 보면 자신이 살 집을 지을 때야말로 취향을 마음껏 살리면서 기획 의도 또한 충실히 반영할 수 있는 것이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에 착안하여, 작가는 이번엔 건축가가 직접 지어 살고 있는 집만 돌아다녀 보기로 한다. 이것이 'Architect at Home' 코너의 기본적인 방침이었다.

 

대부분의 전작들에 비해 이번 책은 분명한 차이점을 갖는다. 우선, 당연하지만, 자신의 건축물이나 설계 및 시공 과정만을 소개하였던 다수의 전작들과 달리 이번 책에서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24명의 건축가들과 그들의 집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 나는 집 전체에 유기적이고 조화로운 '분위기'를 부여하고자 하는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건축관과 그 결과물에 홀딱 빠져버렸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그 시각에 동의할지언정 결과물인 집은 별로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혹은 집은 멋지지만 이러니저러니 철학을 덧붙이려고 하는 그 시각이 불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는 나카무라 요시후미가 멋지다고, 소개할 만하다고 생각한 것만을 공통점으로 가질 뿐 전혀 다른 건축관을 가진 건축가들이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어 굉장히 넓은 스펙트럼의 집들을 만나볼 수 있다. 못해도 하나쯤은 자신의 취향에 걸려드는 집이 있을 것이다. 일본 전통식 집도 있고 북유럽 풍의 집도 있다. 효율성을 중시한 집이 있는 한편 살기에는 조금 불편해 보이지만 낭만적인 분위기를 한껏 풍기는 집도 있다. 여기에서는, 살기에는 조금 불편해 보이지만 낭만적인 분위기를 한껏 풍기는 집의 사례를 하나 보자.

 

 

 

 

 

 

 

 

이 건축물은 홋카이도의 삿포로에 있는 건축가 아카사카 신이치로赤坂眞一郞의 '보통의 집'이다. 일반적인 주택가가 아니라 홋카이도의 설산 중턱에 집을 지어놓고 '보통의 집'이라고 이름붙인 것만 보아도 이 건축가가 독특한 건축관이나 유머 센스를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차를 주차시켜 놓고 집까지 긴 다리를 걸어 들어가게 만든 점도 눈에 띄고, 다리 밑의 널찍한 공간을 일부러 활용하지 않은 점도 재미있다. 집의 단면도를 살펴보면 2층을 벽 끝까지 붙이지 않고 굳이 복층구조로 만들어 놓은 데에 눈이 간다. 추운 지역의 산 속에 사는 것을 감안해 보면 난방비를 더 내고라도 반드시 만들어야겠다는 의지가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책장을 더 넘기기 전에 내가 이 건축가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진짜로 이런 집에 살면 어떤 점이 정말 좋을까, 얼마나 좋길래 난방비 폭탄을 감수하면서 지었을까, 등을 상상해 보는 것도 무척 즐겁다.  

 

 

 

 

 

 

 

 

이것은 '보통의 집'을 위에서 내려다 본 그림이다. 다리가 연결된 위의 그림이 2층, 아래의 그림이 1층이다. 나카무라 요시후미 특유의, 직접 손으로 그린 우둘투둘한 선과 색연필로 된 채색이 따뜻하고 귀엽다. 다리를 살펴보면 다리의 오른쪽 부분에 '마릴린 먼로처럼 걷게 되는 통로'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이 다리는 공사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멍이 뽕뽕 뚫린 철제 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이힐을 신은 손님이 방문하였다가 이 구멍에 구두굽이 빠질까봐 딱 한 사람이 직선으로 걸을만한 넓이로만 구멍 없는 철제 판을 덧대었다 한다. 판의 양쪽 넓이가 좁기 때문에 이 판 위로만 걸어가다 보면 걷는 모습이 자연스레 마릴린 먼로처럼 된다는 설명이다. 나는 이것만으로도 처음 방문한 손님에게 자연스레 건넬 이야기거리가 생기는 기막힌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괜한 공간을 놀리거나 쓸데없는 불편함을 만드는 돈지랄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  

 

 

 

 

 

 

 

 

 

 

'보통의 집' 사진 마지막 장을 보자. 이 사진은 위의 설계도에서 '라운지 피트'라고 명명된 공간이다. 노천탕을 연상시키는 이 공간은 그 용도가 애매하다. 단차가 있어 매력적이긴 하지만 왜 굳이 단차를 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놓아둔 가구나 인테리어가 없는 것으로 보아 건축가 자신도 앉아서 창 밖을 보거나 누워서 책을 읽는다거나 하는 이상의 용도를 찾기 어려웠던 것도 같다. 심지어 설명을 읽어 보면 이 공간은 건축 계획 때에는 없었던 곳이라 한다. 당연히 이 공간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인 단차도 계획에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콘크리트로 평평하게 깔았다가 공사 도중 에잇, 하는 마음으로 이미 굳은 콘크리트와 그 밑의 지반을 까 내려간 뒤 다시 만든 것이다. 남의 집 공사였다면 허투른 설계로 시공 비용과 기간을 괜스리 늘린 데에 대해 입주자로부터 큰 봉변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것은 상냥한 나카무라 요시후미 할아버지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왠지 마음이 편해지는 듯했습니다. 사실 그렇잖아요. 아직 젊은 아카사카 씨가 아무 결점도 없고 너무 완벽하기만 하다면 귀여운 구석이 없는 건축가가 되어버리는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특유의 귀여운 옹졸함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번엔 신기하고 재미있는 집을 하나 살펴볼까 한다. 사이타마 현 도코로자와 시에 있는, 건축가 아베 쓰토무部勤의 '중심이 있는 집'이다.

 

 

 

 

 

 

 

책장을 넘기면 두 쪽을 꽉 채우는 사진에 가슴이 다 시원하다. 주변을 둘러싼 유리창과 그 밖으로 보이는 수풀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휘 둘러보면 이런저런 물건이 띄엄띄엄 늘어선 창가의 선반, 집 밑에서부터 뚫고 자라난 듯한 나무가 보인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이 공간은 일종의 통로처럼 생겼는데 끝을 따라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꺾어져서 또 이어지는 것 같다. 어디까지 이어진 것일까. 그리고 책상 오른편에 보이는 문도 높이가 이상하다. 책상 정도 높이의 오른쪽 선반에 올라서야 비로소 문턱을 넘을 수 있다.  

 

 

 

 

 

 

 

 

평면도를 보면 이 집이 정말로 괴상한 공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왼쪽이 1층, 오른쪽이 2층이다. 큰 그림을 가져 오느라 하나하나의 설명이 잘 보이지 않게 된 것을 사과드린다. 하지만 그림만 얼핏 보아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중앙에 정사각형의 방이 하나 있고 그 방을 둘러싼 주위의 연결된 공간을 부엌, 티룸, 연주실, 작업실, 낮잠 자는 곳, 작업실, 테라스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잠에서 깨어나 침실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하루종일 문 여는 일 없이 저 많은 공간들을 다 돌아다닐 수 있는 셈이다. 건축가의 의도도 재미있는 한편 그것을 쉽게 풀어주는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설명도 재미있다. 설명 가운데에는 '(가운데 방에서 피아노 쪽을 바라보았을 때 방문의 틀이) 액자틀처럼 보이도록 콘크리트 벽을 다 칠하지 않고 틀 모양으로 남겨두었다'처럼 건축가의 의도를 충실히 전달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복도의 모서리에 있는 테이블과 2인 의자는) 내부 같기도 외부 같기도 한 공간. 왜 이런 공간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걸까?'하는 순수한 감상도 있고, '작업 공간이기는 한데 주변에 재미있는 게 너무 많아서 아무리 봐도 일하는 곳 같지 않다'와 같이 순수하게 감탄하는 척 한편으로 질투하거나 비난하는 작가 특유의 개그도 틈틈이 섞여 있다.

 

 

 

 

 

 

 

 

그리고 이 집에 녹아 있는 건축가의 건축관, 인생관에 대한 에세이도 있다. 여기에서는 건축가 아베 씨의 습관 중 하나인 '썰렁한 말장난'을 소개한 뒤, '어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곧이어 자신이 보기에는 그것이 '진지함이라고도 농담이라고도 할 수 없는 아베 씨만의 절묘한 대화법'이며 '고지식한 부분과 농담을 좋아하는 부분이 러 겹 포개어지는 상자처럼 구성된' 것이어서 마치 장난감 상자와 같은 이 집을 낳은 것이라 설명한다. 작가 자신이 심리학 전공자도 아니고 특히 개인적으로도 과도한 겸손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건축가의 한 특성이나 에피소드 등을 뽑아 저택의 건축관에까지 연결짓는 이 부분은, 나는 크게 공감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도 볼 있겠네, 하고 무척 즐겁게 읽었다. 같은 직종에 일하는 사람끼리 서로를 존중하며 따뜻한 인간 관계를 이어나가는 모습이 부럽고 흐뭇하기도 했다.

 

정리하자. 때깔 좋은 사진을 통해 남의 집 보는 재미, 넉넉한 여백에 귀엽고 재미있는 내용을 편하게 읽어나가는 재미, 여러 디자인의 집을 보며 내 주거 취향을 가늠해 보는 재미, 그리고 언제나와 같이 대부분의 사물은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 주는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손그림을 보는 재미. 거기에 이번엔 다행히도 분량 대비 가격이 적당한 수준으로 나와 주었다. 나는 책 들일 곳이 없어 당장은 못 사지만 넉넉히 빈 책장 하나 마련하게 되는대로 바로 살 생각이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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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누구나 자신이 직접 지은 집을 꿈꾸죠.
    건축가의 집이라 뭔가 특별할 줄 알았는데
    특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평범하게 보입니다.
    아마도 실용성 때문이겠지요.
    전 거실 주방 방 구분없는 통으로 된 집을 꿈꿉니다.
    그래도 화장실은 구분해야겠고요...ㅎㅎ..

    2014.05.14 19:4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런 집도 멋있네요. 생각해 보니 공간을 어떻게 분할하고 사용할지를 궁리하는 것이 즐거울 것 같습니다. 세모그룹 불매운동에 관한 오늘의 기사는 달아주신 답글을 보고나서야 선생님의 홈페이지에 들러 읽게 되었지만, 정미홍 씨 사과에 관한 기사는 올리신 다음 날에 읽고 감탄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그 사건이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독후감과 얽어쓰자니 어울리는 책이 떠오르지 않고 그저 사건을 적자니 저 말고도 이미 말과 정보가 많은 건이고 해서 찜찜한 채로 그냥 넘어갔었거든요. '아는' 것만으로도 허덕이는 처지라 '엮어내는' 경지를 보자니 한숨나고 경탄하고 그렇습니다.

      2014.05.14 21:17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