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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5.08.11 이사
일기장/20172017.10.21 15:57

 

 

 

 

 

 

오랜만에 쓰는 일기이다.

 

팟캐스트 <방과후 수업>은 구성원의 변화로 인해 정리를 했다. 손꼽게 즐거운 시간이었던 만큼, 예전만큼 즐겁지 않은데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것은 자신에게나 결과물로서나 좋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지금도 이따금 술을 많이 마신 날에는 이전에 올렸던 에피소드들을 자기 전에 한 차례씩 듣는다. 어떤 것은 무척 재미있어서 듣다가 몇 시간이 지나는 수도 있다.

 

고양이와 함께 하는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난 글에서 소개했던 첫 고양이 흰둥이를 들인 뒤, 몇 달의 격차를 두고 샴 고양이 한 마리와 러시안블루 고양이 한 마리를 차례로 데려왔다.

 

집 안을 가득 채운 철제 캐비닛에 수십 마리의 고양이를 가둬 놓고 키우는 곳에서 비실거리는 모습이 눈이 밟혀 데려온 러시안블루 고양이는, 데려온 지 열흘이 조금 넘었을 때 고양이 키우는 사람들이 이른바 '범백'이라고 줄여 부르는, 고양이 범백혈구 감소증으로 죽었다.

 

일본신화에는 일왕을 포함하여 인간의 직계 조상으로 여겨지는 호노니니기라는 신이 있다. 이 신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만났던 두 여인이 나무와 꽃이라는 이름의 고노하나(木花)와 바위라는 이름의 이와(巖)였다. 호노니니기는 못생긴 이와가 아니라 예쁜 고노하나와 혼인을 하여 인간을 낳게 되는데, 영생의 바위가 아니라 필멸의 꽃과 나무를 택했기 때문에 인간이 신의 후예이면서도 결국은 죽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 신화를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데려올 때부터 작고 병약했던 고양이에게 이와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인데 몇 차례 불러볼 기회도 없이 헤어지고 말았다. 분양자는 몇 차례의 연락이 오가던 도중 전화번호를 바꾸고 사라져 버렸다.

 

한 달 뒤 나는 새 러시안블루 고양이를 들였다. 먼저 들인 샴 고양이가 쥐처럼 생겼기 때문에 쥐순이라고 불렀던 것을 따라 회색곰과 같은 털색을 갖고 있어 곰순이라고 불렀다. 이번에는 애교가 많으니 사람을 따르느니 하는 것을 보지 않고 그저 건강한 것만을 따졌기 때문에 곰순이는 같이 산 지 반 년 여가 넘은 지금도 튼튼하다.

 

구월 말, 나는 첫 전세집의 계약이 끝나 광진구 중곡동에서 중랑구 상봉동으로 이사를 했다. 광진구 내의 중곡동과 건대입구에서만 일을 해도 되었던 때가 지나고 노원구 하계동까지 출근의 범위가 넓어져 그 중간쯤 되는 곳으로 이사를 한 것이다. 그간 번 돈으로 새 책장과 큰 책상을 넣을 수 있는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새로 이사 온 동네는 이전 동네만큼 골목이 많지 않아 정겹지는 않지만 지하철역이나 백화점 등의 편의시설이 이어져 있어 편리하기는 하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서울의 동쪽으로 이사 오면서 정을 붙인 중랑천이 여기에도 흐르고 있어 마음이 좋다. 함께 국토종주를 다녀왔던 전기 자전거는 배터리의 양이 좀 줄어들기는 했지만 아직도 현역이다. 중곡동에 살 때와 똑같이 전기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 함박눈이 내려 길이 미끄럽거나 하지 않으면 좀 춥더라도 겨울에도 쭉 자전거로 출퇴근을 할 생각이다. 다행히도 관련 법안이 통과되어 내년인 2018년부터는 자전거 도로에서의 통행도 합법이라 한다.

 

이사를 오면서 첫 고양이였던 흰둥이를 원래의 임시 보호자에게 돌려주었다. 주인이 함께 살고 있는 빌라 형태의 새 집은 전세계약서에 반려동물을 키울 수 없다고 기재가 되어 있는데, 수컷인 흰둥이는 덩치도 크고 울음소리도 컸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이가 좋았다면 어떻게든 들였을 것이지만 흰둥이는 일 년여가 지나도록 나를 보면 피하거나 겁을 먹곤 하였고 나도 그 모습이 탐탁치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따금 내 집을 방문하는 다른 손님들에게는 비교적 살갑게 구는 것을 보면서, 다른 집에 가 편하게 사는 것이 저나 나나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다 자란 고양이의 분양은 쉽지 않지만 그래도 흰둥이는 사람들이 돈 주고 데려가는 품종이라, 길에서 볼 수 있는 코리안 숏헤어보다는 훨씬 빨리 좋은 사람 만나리라 생각했다. 곧 분양을 갔다고 들었으나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

 

이사하고 한 달쯤 지난 뒤, 새끼 때에 데려왔지만 어느새 여덟 달의 나이가 된 러시안 블루 곰순이의 중성화를 결정했다. 평소에도 튼튼했던 곰순이는 수술이 끝난 뒤에도 곧 마취가 풀리고 잘 돌아다녀서 마음을 놓았다. 곰순이보다 넉 달 나이가 많은 샴 고양이 쥐순이를 먼저 중성화하지 않은 이유는, 언젠가 출산과 육아를 시켜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 여름이 지나면서부터 갑자기 살이 빠지기 시작해 진료부터 일단 받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성화 수술을 한 병원에서는 이렇게 마른 것은 더 큰 병원에 가서 여러 검사를 하셔야 한다고 유명한 동물병원 몇 군데를 소개해주었다.

 

추천받아 찾은 병원에서 쥐순이는 건식 복막염으로 의심된다는 판정을 받았다. 몇 달 전 이와가 걸렸던 범백과 함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병 중의 하나이다. 이 병은 고양이 치료에 관한 서적에도 치사율이 100퍼센트로 소개되어 있다. 다만, 복막염에는 복수가 차오르는 습식 복막염과 그렇지 않은 건식 복막염이 있는데, 건식 복막염의 경우에는 치료를 잘 하면 몇 년 정도는 사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고 했다.

 

고양이를 상대로 한 의료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무슨 병인지 확진을 받기도 어렵고, 받았다 하더라도 마땅한 처방이 없다. 범백이나 복막염 같은 치명적인 병조차 수액을 맞추고 강제로 고단백질의 사료를 먹여 스스로 극복하기를 기다릴 뿐이다. 병원에서 수액을 맞춘 뒤 집으로 데리고 돌아오면서, 시간과 돈이 들고 일상이 피곤해지더라도 오랫동안 버텨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유명한 병원이라 예약이 밀려 있었던 탓에, 평소와 달리 아침 일찍 일어나 움직여야 했던 나는 쥐순이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나도 한숨 잤다. 사람을 좋아하는 쥐순이는 잘 때에도 내가 자는 이불에 들어와 자는 것을 새끼 때부터 좋아했다.

 

몇 시간가량 자고 일어나는데 느낌이 좋지 않았다. 샴 고양이는 본래 크기가 작은 품종이고, 암컷인데다가 근래에 무척 말라버린 쥐순이는 더더욱 작다. 게다가 웅크리고 자기 때문에 이불의 어디에서 자고 있든 나와 닿는 지점은 기껏해야 손바닥 하나 정도의 크기이다. 그런데 양쪽 허벅지에 모두 무언가와 닿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벌떡 일어나 이불을 젖혀 보니 쥐순이가 옆으로 죽 늘어져 있었다. 머리와 엉덩이가 각기 내 양쪽의 허벅지에 닿아 있었던 것이다. 어릴 때에는 마음이 편안할 때 곧잘 그러고 잠에 들어 나를 웃긴 적이 있었기 때문에 혹 수액을 맞고 상태가 좋아진 것일까 생각하며 이불을 더 젖히자 똥과 오줌을 싼 흔적이 있었다. 깔끔을 떠는 쥐순이는 그런 실수를 한 적이 거의 없다.

 

불안한 마음에 쥐순이를 들어서 세워보자 쥐순이는 젖은 휴지를 세워놓을 때처럼 스르르 옆으로 쓰러져 버렸다. 다급히 병원에 전화를 거는 도중에 쥐순이는 움찔움찔 하더니 누운 채로 똥을 쌌다.

 

내 마음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던 것 같다. 나는 범백으로 죽은 새끼 고양이 때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병원은 바빴는지 통화가 되지 않았지만 나는 통화 버튼을 한 번씩 누르면서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 남은 시간이 고작 몇 시간 안짝일 것 같다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아침까지 활발했던 쥐순이이고 그 사이에 한 일이라고는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수액을 맞은 것뿐이지만,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황망해하거나 분노하기보다는 남은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병원에 다녀온 뒤 쥐순이는 추웠는지 콧물이 나 있었다. 그 추운 길을 다시 가서 또 그 유리 상자 안에 가둬두고 수액을 맞추고 싶지는 않았다. 눈 앞에 손가락을 흔들어 보니 반응이 있지 않았다. 나는 이불을 덮고, 이따금 틀어주면 편안해 하는 것 같았던 하프 음악을 틀어 주었다. 이불 속으로 손을 넣어 몸을 쓰다듬으면서 이런저런 말을 걸어보았는데 눈물이 나서 여의치는 않았다. 중간에 잠깐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아서 혹시나 하고 설탕물을 먹여 보았지만 쥐순이는 삼키지 못했다.

 

두어 시간 정도 쓰다듬으면서 맥박이 차츰 약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간 몸을 돌려 가방 정리를 하다가 문득 쳐다보자, 방의 불을 켜 놓았기 때문에 가로로 길쭉해져 있던 쥐순이의 눈이 처음 데려오던 새끼 때처럼 크고 새까매져 있었다. 천천히 다시 몸에 손을 대어보니 맥박이 멎어 있었다.

 

나는 다이소에 가서 호미와 삽을 샀다. 철제로 된 큰 삽은 없었다. 친구의 차를 얻어타고 남양주로 갔다. 남양주의 한강변에는 큰 식당이 많은데, 일전에 갔던 닭백숙 집에서 그 앞으로 큰 갈대밭과 자전거길, 그리고 남한강이 넓게 펼쳐져 있던 풍광을 보고 좋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한 살 생애 내내 서울 촌년이었던 쥐순이게는 굉장한 광경일 것이다. 인적이 드물고 또 큰 나무가 있어 기억하기 좋은 곳을 골라 땅을 파고 쥐순이를 묻었다. 구멍이 평평하지 않고 오목하게 패여서 쥐순이를 누이자 웅크린 것 같은 자세가 되었는데 그것이 평소에 편해 하던 자세라 다시 눈물이 났다. 엉엉 울면서 흙을 덮고, 땅을 다져 밟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쥐순이를 덮었던 이불과, 쥐순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오는 동안 입었던 옷을 모두 빨았다. 쥐순이가 쓰던 화장실의 모래도 모두 버리고 화장실은 왁스로 소독을 했다. 어제의 일이다.

 

자고 일어나서 중성화 수술을 한 곰순이가 먹어야 할 약을 먹이고, 쥐순이의 보양을 위해 쿠팡에서 새로 시켰던 특식이 그새 배달 와 있길래 곰순이에게 먹였다. 수술하고 나서 식욕이 줄은 것 같아 걱정이었는데 그나마 입을 좀 대어서 마음을 놓았다.

 

한 친구가, 사람이 죽으면 먼저 죽은 가장 사랑했던 동물이 마중을 나온다는 카툰 컷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고 여겨 나는 그리 마음에 두지 않았었는데, 그것이 단지 내 경험이 부족해서였을 뿐임을 알게 됐다.

 

어제는 황망하여 챙길 정신이 없었다. 봄이 오면 좋아했던 간식과 장난감을 가지고 다시 찾아가겠다. 내 손으로 처음 데려왔고 가장 예뻐했던 고양이라 사진이 많지마는 오늘은 그간 찍었던 것 중에 가장 쥐순이다운 사진을 올려둔다. 사랑스럽고 당당한 고양이였다. 또 보자.

 

오랫동안 일기를 쓰지 않았다. 특별히 쓸 것이 없기도 했고 다시 쓰려니 어떻게 써야 하는지 그 사이 잊기도 했었는데, 친구 같고 새끼 같았던 쥐순이와 헤어진 다음날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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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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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종우

    자전거 국토종주로 처음 블로그를 찾아, 글들이 맘에 들어 방과후수업 팟캐스트도 찾아 듣곤 했습니다.
    오랫동안 업댓이 안되어 접으셨나 했더니, 간만에 가슴 아린 글을 올리셨네요.
    대호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을테니 가는 길이 춥지는 않았을 겁니다.
    뒤늦게나마 위로의 말씀 드립니다.

    2018.01.22 19:27 [ ADDR : EDIT/ DEL : REPLY ]

일기장/20152015.08.29 11:01

 

 

지금은 이사를 하고 맞는 첫 토요일의 아침. 지난 한 주간 있었던 일을 기억의 재료 삼아 간단히 정리해두려 한다.

 

 

 

 

 

이사 일주일 전. 광명의 이케아 가서 휩쓸어온 가구들이 배송됐다. 그 가운데 혼자서 조립할 수 있어뵈는 것은 미리 좀 해두기로 했다. 손맛도 익힐 겸 스툴부터 조립해봤다.

 

 

 

 

 

 

 

 

요런 박스에 담겨있는 것을 까내어 하나하나 맞춰나가고 마침내 완성된 형태의 물건이 나타나면 스스로가 일등 목공이나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연극부 때 무대 만들던 실력 어디 안 갔구만, 하는 개인적인 소회도 덧붙는다. 이것이 패착의 지름길이다.  

 

 

 

 

 

 

 

 

다음 난이도인 티 테이블에도 도전해본다. 내가 쓸 일은 없고 이따금 방문할 손님용으로 산 것이다. 물건의 크기만 커졌지 조립의 난이도가 올라간 것은 아니지만 그 사실을 통찰하기란 쉽지 않다. 그저, 큰 물건도 잘만 만드는구만! 이때껏 적성을 몰랐었구만! 하는 대견함만 커진다.

 

 

 

 

 

 

 

 

이것이 이른바 '이케아 국민책상'이라 불리운다는 HELMER 6단 서랍장. 저렴한 가격에 6단이라는 수납 공간, 그리고 꽤 높은 채도로 쨍 하는 색상 등이 어우러져 인기가 많은 모양이다. 이거 뭐, 철판 몇 개 끼우면 되겠네 하고 들러붙었는데 여기서부터 뭔가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든다.  

 

 

 

 

 

 

 

 

 

완성은 했지만 흐뭇한 미소와 자뻑은 없다. 시간과 노동력을 감안했을 때 이것이 과연 DIY로 할 만한 일이었을까 하는 근원적인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냉장고 옆 선반. 생수와 각종 양념장, 그리고 밥솥 등을 올려놓기 위해 산 물건이다. 수 차례의 욕설과 몇몇 기적 같은 순간을 거쳐 마침내 완성하긴 했다. 그러나 혹 이 제품, 'HEJNE'의 구입을 고려하는 분이 이 글을 보신다면, 가격 대비 만족도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혼자서 조립할 생각은 하지 마시라고 강권하고 싶다. 이 기둥을 고정시키고 있으면 저쪽 기둥이 빠지고 저쪽 기둥 잡으러 간 사이 이쪽 기둥 빠지고. 덕분에 아크로바틱한 자세로 조립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날 생긴 근육통이 정말로 일주일 갔다.

 

 

 

 

 

 

 

 

이사 전 주의 일요일. 일주일 중에 하루 쉬는 사촌형이 와 주었다. 먼저 조립한 것은 이층침대 SVARTA. 좁은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서라는 둥 책장이 너무 많아 어쩔 수 없었다는 둥 등의 핑계를 갖다붙이긴 했지만 그저 한 번은 갖고 싶었을 뿐이다. 어른이 되고 나서 다시 레고를 샀을 때의 마음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둘이 하니 일이 확실히 빨랐다. 이번에 내가 샀던 제품들에 한정해서 말하는 것이지만 이케아의 제품들은 대체로 아귀가 잘 맞는다. 이쯤이면 되겠지 하고 어림짐작으로 나사를 끼워넣으면 대부분 맞아들어간다. 그러니까 조립의 난점은 못이나 나사에 있지 않고 맞는 위치를 잡는 데에 있다. 둘이서 하니 무척 쉬웠다. 셋이나 넷이 붙었으면 훨씬 쉬웠을 것이다. 이케아 가구 조립할 분들은 참고하시라.

 

 

 

 

 

 

 

 

안방의 핵심인 책장의 조립. 이 책장은 깊이 30cm, 폭 60cm, 높이 180cm의 FINNBY라는 제품이다. 천장까지의 공간이 많이 남고 뒷판은 조금 두꺼운 하드보드지 정도 두께라 미덥지 않지만, 높이도 더 높고 뒷판도 두꺼운 책장들의 반값 이하라 어쩔 수 없었다. 여남은 개의 책장을 산 터라 개당 만 원만 올라가도 십만 원 씩 올라가는 셈이기 때문이었다.

 

 

 

 

 

 

 

 

두 면은 빨간 색, 두 면은 검은 색의 책장으로 채웠다. 열두 개를 샀으나 마냥 채워넣을 것이 아니라 동선을 고려해야 한다는 형의 주장에 따라 하나는 밖으로 뺐다.

 

조립의 과정이 단순해서, 첫 책장을 만들 때엔 삼십 분 가량 걸렸는데 점차 손에 익게 되어 마지막에는 십오 분 이하로 떨어졌다. 형과 나는 녹초가 된 몸인데도 새 박스를 하나 까면 착, 착, 착 하는 분업의 마약에 취해 정신없이 일했다. 즐겁긴 하지만 이게 어찌 보면 노예근성이지, 그러고 보면 분업을 만들어낸 자식이 똑똑하긴 되게 똑똑한 자식이다, 등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립을 했다.

  

 

 

 

 

 

 

 

일요일이 끝나고 형은 갔다. 나는 수요일의 이사를 앞두고 월, 화요일에 잠깐씩의 짬이 날 때마다 들러 나머지 조립을 이어갔다.

 

 

 

 

 

 

 

 

일의 시작 전과 일이 끝난 후에 공구를 가지런히 정리해 놓으면 기분이 좋다. 이런 소소한 재미라도 없으면 일하기가 싫기 때문에 억지로 느끼는 즐거움일 수도 있다.

 

 

 

 

 

 

 

 

3단 서랍장과 5단 서랍장. 제품명은 KULLEN이라 한다. 이 또한 동종의 카테고리 내에서 가장 저렴한 서랍장이다. 3단은 재미난 팟캐스트 하나 틀어놓고 조금 낑낑대면 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땀 흘리지 않고 5단을 조립하려는 자는 천벌을 받을 것이다.

 

 

 

 

 

 

 

 

이삿날 아침. 주워와서 잘 썼던 좌식의자도 내 놓고.

 

 

 

 

 

 

 

 

오래 살았는데도 낯선, 처음 집을 둘러볼 때나 보았던 텅 빈 방의 모습.

 

 

 

 

 

 

 

 

창문으로는 학교 뒷산인 무악산이 보인다. 서른 넘어 오 년 가량 살았던만큼 많은 영욕을 함께 하였던 방이다. 스무 살부터 살아왔던 신촌에서의 마지막 방이기도 하다. 앉아서 차라도 한 잔 마시며 지나간 시절을 떠올려보면 좋겠지만 마치 노래 가사에 나오듯 창 밖에서 이삿짐 아저씨의 클랙션 빵빵 소리가 들려온다. 내 아버지보다 윗 연배인 것 같은 기사님들이 가쁜 숨 내쉬며 짐 나른 것을 보고난 터라 소회를 위해 잠시 기다려달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지나고 보면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은 대부분 그랬던 것 같다. 가슴 졸이며 기다렸던 긴 시간에 비해 정작 중요한 순간 자체는 덤덤하게, 특별할 것 없이 휙 하고 지나간다. 당연한 일인데도 겪을 때마다 새롭다.

 

 

 

 

 

 

 

 

이사는 잘 끝났다. 대강의 정리는 끝났지만 인천 본가에서의 짐이 또 한차례 올라올 예정이라 완전히 정리가 끝나면 사진을 찍어 올리려 한다. 이사일은 서른다섯 살의 생일이었다. 며칠 뒤, 생일을 기억해준 제자들이 선물도 사주고 케잌도 사주었다. 맛은 이사를 마치고 사먹은 치킨이 훨씬 나았지만 마음은 이쪽이 분명히 더 기뻤다. 고맙다.

 

 

 

 

 

 

 

 

 

 

 

이사를 앞두고 바쁜 걸음으로 이곳저곳을 오가다 보았던 장면이다. 새 집으로의 이사가 삼십 대의 실버 라이닝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찍었다. 구름 너머에는 밝은 날이 있겠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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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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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52015.08.11 15:39

 

 

 

다음달인 구월 초, 인천의 본가가 이사를 가게 됐다. 오륙년 생 아버지는 은퇴를 앞두고 생활의 규모를 줄이고 싶다 하셨다. 기왕에도 우리 가족에게는 큰 집이긴 했다. 쓰러진 할머니를 모시기 위해 들어갔던 집인데 할머니는 이사를 며칠 앞두고 돌아가셨다. 그렇게 이렁구렁 이십여 년을 살아온 집이다.

 

인기 없는 중대형에서 인기 많은 중소형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니 경제적인 손해는 있을지언정, 정들었던 동네를 떠나는 것은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런데 본가에 남아있는 내 짐이 문제가 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대체로 나와서 산 생활이다. 정작 본가에 산 건 조각조각 다 모아봐도 사 년이 채 안 된다. 옷이 됐든 이불이 됐든 매일같이 긴요한 것들은 언제나 서울에 있었다. 본가에 있는 것은 없고서도 십 년이 넘게 잘 살아온 물건들이다. 팔 수 있으면 팔고 팔 수 없으면 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동전 모아 살 때에도 애면글면 사서 모은 책은 잔뜩 가 있다. 좁은 고시원을 전전하던 시절에는 구입할 때부터 아예 본가로 배송을 시킨 책도 많다. 지난 번에 내려갔을 때 눈대중으로 보니 큰 박스로 이삼십 개 정도가 되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술기운을 빌어, 은퇴와 함께 생활 상으로는 완전히 분리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앞가림을 하지 못하는 자식이라 부끄러웠다.

 

올해가 시작되면서 제일 큰 목표로 이사를 잡고 있기는 했다. 십 년 넘게 살아서 익숙하다는 것과 지인들과 만나기 편하다는 것 외에, 신촌 인근에 계속 살아야 한다는 이유는 아무 것도 없다. 계속 공부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바에야 학교 근처를 배회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주로 활동하는 광진구까지는 편도로 한 시간 반이 넘는다. 이사를 가자.

 

본가의 책과 지금도 방 여기저기에 키높이만큼 쌓여있는 책을 모두 보관하려면 넉넉한 집이 필요했다. 그런 집을 구할 만한 돈은 늦가을이나 초겨울쯤 모이겠다 싶었는데 생각보다 두세달 먼저 진행하게 됐다. 덕분에 이번에 이사가는 집은 그저 큰 책장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됐다. 반전세로 구할 것이라 일이년 후에 다시 이사가게 될 것은 차라리 복이다. 열심히 모아서 다음 번에는 더 많은 용도를 가질 수 있는 곳으로 가자.

 

목표했던 시기와 고작 두세달 차이다. 새로 이사를 가려 마음먹은 곳은 강북의 광진구로 계획성 없이 살아온 인생의 결과로도 적당한 장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나는 자유직이고 비정규직이라 집 구하러 다닐 시간도 넉넉하다.

 

무슨 일이든 바라는 것의 칠 할쯤 충족되면 무척 좋은 결과라는 것이 평소의 생각이다. 당장의 사정에 비추어 적당한 때 적당한 조건으로 이사를 가려면서도, 막상 집을 알아보고 짐을 어찌 쌀까 궁리하고 있자니 마음에 소회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어 일기장에 넋두리처럼 적어놓는다. 나는 내일부터 집을 보러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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