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지2014.05.07 19:51

 

 

 

 

 

출판사 미디어트리거의 기획작.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세 명의 패널을 초대하여 '대통령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토론을 하고 그 결과물을 정리해서 출간한다. 부제는 '윤여준, 이상돈, 이철희, 대통령을 이야기하다.'.

 

 

 

중앙집권형 국가에서 정치를 말할 때 대통령을 논하는 것은 당연한 첫걸음이다. 그 기획의 패널으로 굳이 이 세

 

명을 부른 이유로는 아마도 '합리성'이나 '관용'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세 명에게는 모두, '속해 있는' 진영의 논

 

리와 완결이 일치하지는 않은 언행을 보인 공통점이 있다.

 

 

 

윤여준은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때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으며 16대에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였다.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의 소장을 지낸 바 있고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는 이회창 후보 캠프의

 

전략을 짠 '책사'로 유명하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후폭풍 때 박근혜 비대위원장에게 '무조건 사과하라'는 전략

 

을 지도하여 참패 위기에 있던 한나라당을 구원했던 것 또한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에는

 

안철수와 박경철의 '희망콘서트'를 후원하기도 했고 2012년 대선에서는 민주당 후보인 문재인을 지지하는 연

 

설을 하기도 했다. 그 뒤로는 안철수의 새정치연합과 함께 하다가 2014년 3월, 새정치연합이 민주당과 합당을

 

하는 과정에서 결별했다. (이 책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창당 이전인 2월에 출간됐다.)

 

 

 

중앙대 법대 교수인 이상돈은 1995년부터 2003년까지 <조선일보>의 비상임 논설위원으로 활약한 바 있다. 당

 

시 대통령이던 김대중, 노무현에게 날린 신랄한 독설은 보수층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잃어버린 10년' 이후 보수의 재집권에 성공한 MB정부 하에서, 이상돈은 정부와 각을 세우는 의견을 내놓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특히 4대강 사업은 추진되고 있는 중에도 그 의도와 부작용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을 하여, M

 

BC 100분 토론에서 화면 왼편에 자리잡은 패널이 정부를 공격하는 진기한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진짜 보수'

 

를 표방하던 그는 19대 대선에서 김종인, 안대회와 함께 박근혜 캠프의 참신함과 합리성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활약했지만 대선 이후로는 그에 값하는 활동상을 보여주지 못했고, 박근혜 정부 집권 1년차가 지난 뒤부터는

 

'비상식적 인사'나 '무너진 신뢰' 등을 근거로 하여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도 하다.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인 이철희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에서 행정관을 지냈고, 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 당대표인 김한길 의원의 보좌관 직을 수행했으며, 노무현 대통령 인수위에 몸을 담기도 했다.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 부소장을 거쳐 현재는 1인 연구소를 운영 중이며 특히 19대 대선을 전후하여 활

 

발한 방송 활동으로 이른바 개혁-진보 진영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평론가가 되었다. 인생 대부분의 이력이 민

 

주당에 놓여져 있지만, 사안을 논함에 있어 당략이나 진영에 얽매이지 않고 공과를 비교적 공정하게 가늠한다

 

는 평을 받아, 급격히 보수화된 방송 환경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평론가로 자리잡았다.

 

방송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본인이 진행하는 라디오나 팟캐스트, 그리고 인터뷰 등에서는 현재의 민주당

 

전략팀에 대한 강한 불만을 숨기지 않는 면도 있다.

 

 

 

이런 이들의 언행은 일각에서 '변절'이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그러나 논거를 바탕으로 상대방을 설득하고 또 자

 

신이 설득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자세'는 진영 간의 극단적인 대립과 정략이 심화되는 정세에서 많은 사람들

 

에게 '합리성'과 '관용'을 지닌 것으로 보여졌다. 특히 그런 일면이, 논쟁적일 수 있는 이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지명된 까닭일 것이다.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최종 제목인 <누가 해도 당신들보다 낫겠다>와 달리 토론의 주제 이름은 <대통령의 과

 

거,현재, 미래>였다. 제목 그대로 이 책에서 이루어지는 토론은 대부분 전현직 대통령에 관한 평가와 서로에 대

 

질의응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 호명되는 대통령은 4대 윤보선과 10대 최규하를 제외한 9명이다.

 

 

 

총 11장 중 1장부터 9장까지가 각각의 대통령을 다루고 있다. 보통 20쪽에서 30쪽 가량의 분량인데, 가장 짧은

 

장은 전두환 대통령을 다룬 10쪽의 4장이며 가장 긴 장은 노무현 대통령을 다룬 38쪽의 7장이다.

 

 

 

각 장은 다시 세 개의 소챕터로 나뉘는데, 책에서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소챕터는 대체로 '그 대통령

 

정권이 갖는 의미', '그 정권의 공', '그 정권의 과'로 구분되어 있는 듯 하다. (노무현 대통령 이후로는 이 구

 

분이 엄밀하게 지켜지지는 않는다. 아울러 세 개의 소챕터라는 기준의 예외는 공이 빠지고 평가와 과만 있는 4

 

장 전두환 대통령이다.) 이 소챕터의 제목만 읽어봐도 -세 명이 파악하는- 한국 현대사의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기 때문에, 책 목차를 이 독후감의 댓글로 첨부하려 한다.

 

 

 

윤여준이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을 높게 평하거나, 이상돈이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공로를 인정하거나, 이철희

 

가 김대중의 전략적 면모를 재조명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평이다. 똑같이, 윤여준이 노무현의 '뺄셈 정치

 

'를 지적하거나, 이상돈이 DJP연합의 정략성을 비판하거나, 이철희가 박근혜의 불통을 거론하는 것도 놀랍지 않

 

다.

 

 

 

러나 윤여준이 김대중의 탁월한 식견을 칭찬하는 한편 이회창의 반개혁적 면모를 공개하는 장면, 이상돈이

 

노무현의 상대방에 대한 관용을 인정하는 한편 박근혜 정부 임기 1년에 대해 혹독한 점수를 내리는 장면, 이

 

철희가 이승만의 정치력이 김구보다 위였다고 평가하는 한편 노무현 정부의 아젠다 세팅 능력을 비판하는

 

장면 등은 무척 신선했다. 특히 여기에 이 패널 조합의 특장점이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흥미로운 것은 토론 과정에서 합의하기도 하고 대립하기도 하는 세 인물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공과이다.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것은 유신 전 박정희가 이룬 성과, 노태우의 북방외교, 김영삼의 하나회 숙청과 금융실명

 

제, 김대중의 IMF극복 등이다. 반대로 입을 모아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이승만의 권력욕, 박정희의 유신, 김영

 

삼의 IMF, 김대중의 측근 비리 등이다. 이렇게 한 명의 대통령이 공이든 과든 대체로 확실한 명암을 갖는 한편,

 

의미와 장단점을 논하는 데 있어 일관되게 부정적 평가를 받는 두 대통령도 있다. 각각 해당 장의 소챕터 제목으

 

로 문장을 만들어 보자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며 '업적은 없고 후유증은 큰' 전두환 대통령과, '건설사 CEO

 

스러웠'으며 '미디어법, 4대강, 대기업 편중'의 과오를 저질렀고 결국 '최악의 경제정책, 최악의 공공부채'를 남

 

긴 이명박 대통령이다.

 

 

 

각각의 대통령에 대한 9개의 장이 끝나고 나면 시점을 한국사회로 옮겨 문제점과 대안을 논해 본 10장 '미래를

 

말하자'와 11장 '지금 선 이 자리'가 시작된다. 여기에서는 정치 구조와 경제 구조의 개혁 방향을 토론하고 향후

 

크게 성장할 정치 인물들을 평가하며 박근혜 정부 하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총평한다.

 

 

 

정리하자. 먼저 장점부터. 하나. 역대 대통령이 집권 순서대로 호명되며 그 공과가 평론의 형태로 드러나기 때문

 

에 한국 현대사에 처음 접근하는 사람에게 거칠게나마 큰 그림을 그리는데 아주 유효할 것이다. 둘. 어떤 형태로

 

든 권력의 최정상에 닿아 본 이들의 '뒷담화'가 섞여 있어 정보의 가치가 높다. 셋. 대담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읽기가 편하다. 넷. 억지 주장을 펴지 않는 패널들이기 때문에 모범적인 토론을 공부하는 데 좋은 참고서가 되어

 

준다.

 

 

 

단점은 장점을 그대로 뒤집은 데서 나오는 것이 많다. 하나. 강연이 아니고 '알 만큼 아는 사람들'끼리 나누는 얘

 

기라서, 평가의 논거로 사용되는 인물, 사건에 대한 정보가 따로 주어지지 않는다. 현대사의 굵직한 정보들을 미

 

리 알고 있지 않다면 어려운 독서가 될 수 있다. 둘. 언급한 것처럼 어떤 형태로든 권력에 맞닿아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 본인이 특히 활약했던 시기의 이야기가 나오면 다소간 감정적이거나 양보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보

 

일 때도 있다. 셋. 대담의 녹취록 형식이라 막상 읽어보면 분량이 그리 길지 않다. 정리된 글이 아니라 발언한 것

 

을 받아쓴 것이라 입말체가 들어가 있기도 하고, 발언자가 바뀔 때마다 한 줄씩 떼어서이기도 하다. 넷. 억지 주

 

장을 하지도 않지만 강한 반대를 하는 장면도 거의 없다. 하나하나의 주제를 놓고 하는 끝장토론이 아니고 정해

 

진 시간 내에 9명을 다루어야 하는, 현실적 한계를 갖는 토론이라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총평.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기 때문에 독자가 독서의 목적만 확실히 정해두고 읽기 시작하면 확실한 성과를 거

 

둘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경험을 풍부하게 갖고 있고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패널들의 발

 

언을 접하는 것 또한 여러 책에서 만나기 어려운 특장점이다. 각 패널들의 팬인 독자나 약간 깊이 있는 현대사

 

개괄서를 원하는 독자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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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본문에서 언급한, 이 책의 목차를 따서 붙인다.


    1. 이승만 대통령
    초대대통령 이승만을 말하다
    부인이 한국인이기만 했어도
    불행이 시작되다

    2.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 그 선연한 빛과 그림자
    유신, 전과 후
    유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다

    3. 전두환 대통령
    태어나지 말았어야
    업적은 없고 후유증은 크다

    4. 노태우 대통령
    민주화의 가교/물통령
    북방정책, 통일정책은 분명한 공
    역사의 의미를 읽어라

    5. 김영삼 대통령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금융실명제, 하나회 척결로 박수 받고
    씻을 수 없는 과오, IMF

    6. 김대중 대통령
    26년만에 당선된 집념의 사나이
    햇볕정책, IMF극복은 공
    게이트로 날이 저물다

    7. 노무현 대통령
    이회창이 진 선거일 뿐?
    개혁을 위해 준비해야할 것들
    ‘참여와 평등’의 가치를 심다

    8. 이명박 대통령
    건설사 CEO스러운
    미디어법, 4대강, 대기업 편중, 그리고
    최악의 경제정책, 최악의 공공부채

    9. 박근혜 대통령
    야당이라는 인식으로 당선?
    변했나, 원래 그랬나
    변화는 가능한가

    10. 미래를 말하자
    개헌은 가능한가
    대한민국 재구성이 필요하다!
    이 사람을 주목하라

    11. 지금 선 이 자리
    다시 이곳과 현재를 말하다
    뭔가 변하고 있다
    윤여준, 안철수의 새정추로

    윤여준·이상돈·이철희 인터뷰

    2014.05.07 19:5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재밌는 조합이네요 윤여준, 이상돈, 이철희라니.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서 언제까지 대통령 개인의 한계로 국가가 흔들흔들 대는 걸 지켜봐야 하는지 걱정됩니다. 여담이지만 아마 MB가 2년만 더 해먹었으면 전두환만큼 분량이 적어지지 않았을가 싶습니다.

    2014.05.10 15:0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네. 세 사람은 공히 그 분을 너무 싫어해서, 2년이라는 시간을 더 같이 보냈더라면 정말 한 쪽 분량만큼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2014.05.11 04:43 신고 [ ADDR : EDIT/ DEL ]

독서일지2013.07.04 20:34

 

 

 

 

 

 

작년인 2012년 12월에 치루어졌던 제 18대 대통령선거는 명백히 사자(死者)들 간의 전투였다. 몇 차례의 선거

 

 성공적으로 이끌기는 하였으나 자신만의 정치 철학이나 구체적 정책 비전을 보여준 적은 없었던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 청와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 등의 정무적 경력은 있으나 실질적인 정치 이력은 전무하였던 민주통

 

합당의 문재인 후보. 인물만을 놓고 보자면 그간의 대선 구도에 비해 다소 심심할 수도 있었던 이 선거가 그토록

 

치열한 경쟁과 정쟁을 거쳤던 것은, 이들이 이른바 '박정희 정신'과 '노무현 정신'의 가장 적확한 대리인이자 구

 

현자라고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5대부터 9대까지 직선과 간선을 포함하여 총 다섯 차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실질적으로 권좌에 있었던 시간

 

은 무려 19년. 해방 이후 남한 정치사에 있어 약 3할에 달하는 기간 동안 제왕적 권위를 누렸던 박정희 전 대통

 

령이기에, 한국 사회에 그가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것은 당연한 추론이다. 따라서 보다 주목되는 특이점은, 87

 

제 이후 선출된 5명의 단임제 대통령 가운데 특별히 박정희 정신의 대척자로 호출된 16대 대통령 노무현

 

이라 하겠다. 역사적 맥락에서 박정희 대통령에 대척되는 인물이라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야말로 그 짝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적격이며, 3당 합당 이전의 김영삼 전 대통령도 일정 부분의 지분은 있다. 그러나 18대 대선은 굳

 

이 노무현을 불러 일으켜세웠다. 시대가 그에게서 강력한 '상징'의 힘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상징'의 내용, 곧 '노무현 정신이란 무엇인가', 조금 더 쉽게 고쳐 '노무현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

 

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자연인 노무현과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은 각각 표상하는 가치와 그 성취에 대한

 

평가가 서로 엇갈리며 또한 논쟁적이기 때문이다. 2009년 5월 그의 자살 이후로 어림잡아도 수십 종의 관련 서

 

적이 출간되었지만 그들 각각이 나름의 맥락을 따로 가졌던 것도 이 때문이라 하겠다. 그 위에,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지도 반 년이나 지나서 또 한 편의 이야기가 얹혀졌다. 2013년 6월 출간된 이동형의 <바람이 불면 당신

 

인 줄 알겠습니다>이다.

 

 

 

 

이 책은, 부동의 1위였던 <나는 꼼수다>가 떠나고 난 팟캐스트 시장에서 아주 낮은 순위로부터 출발해 마침내

 

정상의 자리에 올라선 근현대사 대담 프로그램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의 '노무현 특집' 편 원고를 수정

 

하여 출간한 것이다. 작가의 서문에 따르면 해당 에피소드는 방송 3일만에 프로그램의 에피소드들 중 처음으로

 

백만 다운로드를 넘겼고, 이를 지켜본 출판사 측에서 원고를 책으로 펴 내자고 제안했다 한다.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큰 의미를 갖는 정치, 경제, 사회적 이슈를 잡아내어 호스

 

트 세 명이 대담 형식으로 살펴보는 팟캐스트 방송으로, 현재까지 총 43개의 에피소드가 발행되었다. 우리 사회

 

와 내 삶에 분명한 영향을 끼쳤는데도 잘 모르고 있던 사실들을 다시 알려주는 '의미'가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

 

만, 흥행의 보다 주요한 요인은 쉬운 설명과 효율적인 구성, 그리고 감성적 접근으로 이루어진 '재미'일 것이다.

 

 

 

 

이 책의 모태가 되었던 '노무현 특집' 편은 그 가운데에서도 감성적 접근이 극대화되었던 에피소드였다. 대통령

 

당선의 장면에서 곧바로 퇴임 후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구성은 이러한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지자들 사이

 

에서도 평가가 갈리는 '대통령 노무현', 즉 참여정부 시기의 공과에 대한 설명은 일단 차치하고, 자연인 노무현

 

과 정치인 노무현의 매력과 비극적 운명을 십분 재조명하는 성격이 분명했던 셈이다.

 

 

 

 

활자화 된 책에서도 이러한 기획은 그대로 이어진다. 1부 '떳떳하다면 굴할 이유가 없다'에서는 탄핵과, 퇴임 뒤

 

귀향과 거기에 관련된 논란들, 그리고 검찰의 조사와 자살이라는 세 가지의 사건을 언급하는 것으로 첫 발을

 

뗀다. 셋 다, 자초한 것도 일정 부분 있겠으나 그가 비주류였다는 것이 보다 주요한 요인으로 꼽히는 사건들이

 

다. 비록 대통령직과 관련된 사건들이기는 하지만, 강조되었던 '비주류'는 자연인 노무현과 정치인 노무현의 주

 

요한 약점이자 한편으로 정치적 자산이기도 한 특색이었다.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의 인물 평전 형식 에피소드들이 대체로 연대기식의 구성을 취하고 있다는 점

 

고려해 보면, 이와 같이 생애 말기의 사건들, 그것도 그의 약점 때문에 겪어야 했던 비극적 사건들을 일부러 맨

 

처음에 배치한 것은, 노무현에 관한 다방면적 팩트를 원하는 사람보다는, 자연인 노무현과 정치인 노무현을 추

 

모하고자 하는 이들을 감성적으로 위무하고자 하는 구성이라 보는 것이 옳겠다.

 

 

 

 

2부부터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연대기적으로 그의 삶을 밟아나간다. 2부 '정의를 믿는다면 세상은 살 만하다'

 

에서는 출생과 성장, 그리고 변호사 시기의 활약을 다룬다. 3부 '역사는 진실을 다잡는다'에서는 정치 초년에 대

 

해 다루는데, 그 중에서도 그를 전국적 명사로 만들어 주었던 5공 청문회와, 3당 합당 전후의 이력을 주로 언급

 

한다. 4부 '포기하고 싶을 때 희망은 온다'에서는 생전의 그가 가장 좋아하였다는 '바보'라는 별명을 얻게 된 지

 

역주의에의 도전과 실패의 과정을 자세히 다룬다. 그리고 마지막 장인 5부에서는 2002년 극적인 과정을 통해

 

대선 후보가 되었던 민주당 경선과 대통령 당선의 장면, 그러니까 그의 정치적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보여

 

준 뒤 바로 자살 하루 전날의 밤으로 넘어간다. 실제로, 책에서 승리의 순간과 비극적 장면이 한 쪽 안에 함께 담

 

겨 있다. 이 아찔한 낙차는 감성적 접근이라는 이 책의 특성을 절실히 실감케 한다.

 

 

 

 

살펴본 바와 같이, 이력에서 언급된 사건들도 사회, 역사에 끼친 영향력보다는 그의 매력이 더 잘 빛나는 건들이

 

언급되었고, 구성 또한 이러한 집필의도를 잘 뒷받침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울러 본문에 삽입된 사진

 

들 또한 내용에 잘 조응할 뿐만 아니라 채도와 명도가 높으며 크기 또한 큼직큼직하여, 기획의도에 공감하는 독

 

자라면 독서의 감흥을 배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정리하면. 이 책은 노무현 사후에 출간된 관련 서적들 가운데 가장 감성적인 평전이자 가장 정성스런

 

제문(祭文)이다. 위에까지는 되도록 객관적으로 소개하려 애썼는데, 자연인 노무현과 정치인 노무현에 큰 애정

 

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실제 독서를 하면서 몇 차례나 울컥울컥하게 되는 대목들이 있었다. 언급된 팩트들만으

 

로도 그러하나, 방송의 어투가 그대로 들리는 듯한 입말체로 작가가 내리는 평이 또한 직설적이고 시원해서 더

 

욱 그랬다. 뒤집어서 말하자면, 정갈하고 객관적인 팩트를 원하는 분, 자연인 노무현이나 정치인 노무현에게 비

 

판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분이라면 불쾌한 독서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런 분들에게는 굳이 권하고 싶지 않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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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쏘냐

    언젠가 서점에서 [운명이다]를 집어들어 읽다가 참지 못하고 끅끅거린 일이 있습니다. 그냥 사서 나오면 됐을 것을 처음 몇장이나마 읽어보잔 것이 그렇게 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분을 떠올리는 것조차가 힘이 들어 지레 그만두고 마는 비겁자가 된지 오래지만 서평이 새삼스레 반가워 인사를 남깁니다. 어쩌다 발견했던 블로그인데 일기글이 좋아 즐겨찾기에 두고 종종 찾고 있습니다. 덧글이 실례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2013.07.07 04:00 [ ADDR : EDIT/ DEL : REPLY ]
    • 오히려 감사한 일입니다. 지나치게 주관적인 독후감이라, 읽는 이들 가운데 불쾌함을 토로하는 답글을 다는 사람이 있어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라 생각하고 사과해야지, 하는 각오를 하였는데 도리어 반가운 댓글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07.08 15:50 신고 [ ADDR : EDIT/ DEL ]

독서일지2013.06.07 01:03

 

 

 

 

 

<독서일지> 카테고리에 올리기 위해 독후감을 쓸 때에는,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누구를 위해 쓰고 있는가'라는

 

고민을 갖는다. 나를 위한 것인가, 남을 위한 것인가. 나를 위한다 하더라도 공부를 위해 필요한 지식을 정리해

 

두는 학생으로서의 나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독서의 과정에서 느꼈던 감흥을 어떤 형태로든 표현하고 싶어하는

 

독자로서의 나를 위한 것인가. 남을 위한다 하더라도, 내 독후감에 감흥을 받아 그 책을 구해 읽고 또 언젠가는

 

그 책에 대해 개인적으로 소통할 수도 있는 동지(同志)를 위해서인가, 아니면 저 사람은 저런 많은 종류의 책들

 

을 읽는구나라고 찬탄해 줄 관객을 위해서인가. 글을 쓰는 '자세', 혹은 '위치'에 대한 생각이 끝내 확립되지 못

 

한 채로 마치는 독후감은 대개 다시 읽어봐도 조잡할 때가 많다.

 

 

 

 

오늘 쓸 독후감은 철저히 학생이자 시민인 나를 위한 글이다. 읽는 분들을 위한 배려는 적을 것이나 나 자신으로

 

는 이때까지 썼던 어떤 독후감보다 더 많이 고쳐 읽게 될 글일 것이다. 독후감의 대상이 되는 책은 최장집 교수

 

와 그의 제자, 후배, 동지들의 논문을 묶은 <논쟁으로서의 민주주의>이다.

 

 

 

여러 학자들의 논문집이라고는 하지만, 총 4부 10장 가운데 서언 격인 1부와 결론 격인 4부를 포함해 3부 6장이

 

장집의 논문이고, 다른 네 명의 학자들은 3부에 한 장씩을 기고하였다. 최장집의 논문이 실린 '부'가 '한국 민

 

주주의의 기원과 특징', '민주주의를 둘러싼 갈등들'과 같이 명징한 주제의식을 보여주는 반면 다른 학자들의 논

 

문을 모은 3부의 제목이 '우리는 한국 정치의 문제를 어떻게 보나'와 같이 범박한 것만 보아도, 이 책의 구심점

 

이 최장집의 논의에 놓여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독서는 한층 더 시의성을 갖게 됐다. 대선 후 미국으로 떠났던 안철수 전 후보는 귀국하는 비행

 

기에서 최장집의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을 읽었노라고 밝힘으로써 그가 펼칠 정치적 행보의 성

 

격을 암시하였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4월 재보선을 통해 국회의원에 당선된 안철수 의원은 수 차례 직접 최 교

 

수를 찾아 자신의 정치적 활동의 일익을 담당해줄 것을 간청하였고, 5월 말 출범한 싱크탱크 '정책네트워크 내

 

일'의 이사장 직을 의뢰하였다. 

 

 

 

최장집 교수는 이사장 직을 수락하였다. '정책네트워크 내일'은 기본적으로 싱크탱크이지만 언젠가는 창당될 안

 

철수 신당의 구성에 핵심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 예측되는 조직이었고, 그런 중요한 조직의 이사장 자리에

 

최 교수를 모시기 위해 안철수 의원이 '십고초려'를 마다하지 않았다고도 알려진 터라, 이사장 취임 후에 이루어

 

질 그의 발언은 정치권 초미의 관심사인 안철수 신당의 향방을 점칠 수 있는 풍향계와 같았다.

 

 

 

당연히 언론의 관심이 비상하게 모였다. 최 이사장은 5월 말의 한 강연회에서 안철수 신당은 노동 문제 중심의

 

진보 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6월 초에 이루어진 한 세미나에서는 안철수 의원을 언급하지는 않았

 

지만 '중하층 소외계층의 사회경제적 생활을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한 정치·사회적 의제'라고 주장하면서 기존의

 

주장을 재확인하였다. 이와 같은 그의 주장은 전작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에서 이루어진 논의의

 

연장선 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자 더 크게는 그의 학문적 이력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안철수 의원은 개별 정책 단위에 집중할 것이며 진보냐 보수냐의 이념 성향을 확립하는 것에

 

는 주안점이 있지 않다고 완곡하게 선을 그었고, 특히 6월 초 세미나에서의 최 이사장의 발언에 대해서는 '노동

 

문제 등을 잘 대변해야 한다는 데는 생각이 같지만, 진보 정당은 아니다'라고 보다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하였

 

다. 해당 세미나에서는 안철수 의원이 대선 후보였을 당시 그의 국정자문위원으로 참가한 바 있었던 표학길 서

 

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안철수 현상을 편향된 진보의 시각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강하게 비

 

판하기도 했다. 이 독후감을 쓰고 있는 날은 해당 세미나가 이루어진 2013년 6월 3일로부터 4일 뒤인 6월 7일

 

인데, 이 '논쟁'은 그 이후로 정리되지 않았다. 표면적으로 정책 연구 조직의 수장이긴 하지만, 어쨌든 직간접적

 

으로 현 정국의 가장 큰 파랑 중 하나에 발을 담근 최 이사장에게 최초로 닥친 현실적 난관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때에 앞으로의 그의 행보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역시 과거의 연구 이력일 것이다. 이 책 <논쟁으로서의 민

 

주주의>에 실린 최장집의 6편의 논문들은 2006년에 쓰여진 한 편을 제외하고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의 최

 

근에 쓰여진 것들이다. 그 가운데에는 전작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과 비슷한 시기에 집필된 것

 

도 있다. 말하자면, '현재의 최장집', 혹은 '(현재의 최장집이 아니더라도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을 읽은 안철수가 기대한 모습의) 최장집'을 파악할 수 있는, 유효한 자료라는 것이다.

 

 

 

논문 가운데에는 4.19와 한국 민주주의를 논한 것처럼, 자체로는 대단히 의미 있으나 현재의 정국과 관련해 논

 

의하려면 깊은 분석을 요하는 것도 있다. 가치있는 일이겠지만 당장의 시간과 능력이 닿지 않는 일이라 그런 것

 

들은 일단 접어두고, 내용 중 특히 현재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부분을 발췌하여 싣기로 한다. 독자에게는

 

재미가 없을 것이며 내게는 수 차례 다시 읽어야 할 독후감이 될 것이라던 선언은 이 때문이다. 이 뒤로는 길든

 

말든 필요한만큼 본문을 발췌해 둘 것이고, 이후로 그의 정치적 언행들이 언론을 통해 전해질 때마다 학자로서

 

의 입장이 관철되고 있는지, 다음 행보는 어떻게 될지 등을 예측해 보는 자료로 삼으려 한다. 언젠가 등장할 안

 

철수 신당의 당헌에 그의 정치적 이상향이 얼마나 반영되었는가를 가늠하려 할 때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에서 밝힌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분이라면 똑같은 목적의 자료로 활용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이라면 이

 

쯤 읽으셔도 좋고, 아니면 책을 구해서 전문을 읽어 보셔도 좋겠다.

 

 

 

1. '진영'의 문제 (p 123 - 126)

 

...한국 사회의 정치적 대표 체계와 실재하는 사회경제적 균열 간의 괴리는 점점 심화되어 왔고, 그 결과 정당들은 사회경제적 문제를 풀어 나가는 데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좌, 우나 보수, 진보 뭐라고 부르든, 그간 그런 구분이 있었다면 그것은 친북이냐 반북이냐, "빨갱이"냐 "수구 꼴통"이냐, 친노냐 반노냐와 같이 역사적이고 정서적인 태도를 이데올로기화하는 것에 불과했다.

 

어찌되었든 이 구분은 그동안 갈등하는 두 세력의 안과 밖 모두에서 강한 적대 의식을 동반하며 사용되어 왔다. 그러다 보니 정작 중요한 기준에 있어서 두 세력 간의 유사성은 두드러지지 않았고, 정서적 차이만 과도하게 부각되는 일이 계속되었다. 앞에서 용산 사태와 세종시 문제를 이야기했지만, 두 이슈 모두에서 진보, 보수 정부 사이의 분명한 차이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산 참사에서 보듯 강한 분노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진보적이고, 그렇지 않으면 보수적이 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중략)

 

필자가 보기에, 각 진영의 성원들은 그저 말하기로 되어 있는 것을 말하고 보여 주기로 되어 있는 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강하다. 즉, 정치가 연기 내지 퍼포먼스 하듯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용산 참사에서는 분노하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분노하고, 세종시 문제에서 수정안을 반대해야 하기 때문에 반대하지만, 정작 재벌 건설 기업의 이익과 거대 개발 프로젝트 위주의 국가정책 사이의 오래된 결착 구조에 대한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이런 식의 진영 구분을 편의적으로 지위재positional goods로서의 보수와 지위재로서의 진보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는 각자의 진영 논리를 익히고 말하는 것이 공적 토론을 풍부하게 하는 데 유익하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진보적 지식인이나 보수적 지식인으로서의 위신과 지위를 갖게 만드는 그들만의 담론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략)

 

즉, 보수, 진보는 실제의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해 차이를 만들어 가는 새로운 경쟁의 틀을 만들지 않으면 정치의 언어만 격렬할 뿐 내용은 달라지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실제 보수, 진보 사이의 경쟁에서 성장 지상주의를 넘어 고용, 분배, 노동, 교육, 사회보장 등 자율적 시장경제가 다루기 어려운 영역에서 대안의 개척 가능성은 광범하게 열려 있다.

 

사회경제적 영역에서 새로운 경제 이념을 수용하고 거기에 사회적 시장 원리를 접맥하면서 정책 방향을 유연화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은 예상과 달리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 지금까지 기존의 지위적 보수, 진보의 대결은 분단과 전쟁의 경험을 끊임없이 불러들이면서 강한 적대 의식을 동반하는 민족문제를 중심축으로 했기 때문에 경직되고 격렬한 반면 실제 사회 구성원을 통합하는 기능은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문제 영역에서 중앙과 좌에 걸쳐 넓게 열려 있는 영역의 이슈가 정치에 들어온다면 사회 통합과 합의의 기반은 확대될 것이다.

 

 

 

 

2. '정당'의 역할과 '반정당관'의 패러독스 (p 147 - 149)

 

...정당은 개인의 생활 영역과 국가를 연결, 매개하는 중심적 정치기구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정당은 시민사회에서 시민의 의사를 대표하고 조직함으로써 보통 사람들에게 정치 생활의 공간을 열어 줄 뿐만 아니라, 국가 영역에서 통치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대안 정부alternative government로서의 역할을 한다. 요컨대 그 정치 에너지와 권력이 사회의 저변에서 창출되고 발원한다는 점에서 정당을 민주주의의 중심 제도라 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진보적 지식인과 운동가들은 어떤 공동체적 가치와 목적을 상정하고 그로부터 행위의 정당성을 도출해 냈다. 그 뿐만 아니라 공익을 이해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그것이 대중의 정치 참여와 민주적 절차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념 혹은 이론적 논증을 통해 사전에 결정될 수 있는 것으로 상정했다. "진보는 옳다"는 이들의 주장이 가능했던 것 역시 진보를 현실과는 관계없이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상정했기 때문이었다. 이 모든 것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엘리트주의적, 교조적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통 시민들이 체제의 중심적 행위자이자 주체가 되는 민주주의와 그동안 진보적 지식인들이 운동 과정을 통해 발전시켰던 민주주의에 대한 관념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존재하며 양자 사이에는 심각한 충돌이 일어난다.

 

(중략)

 

(일반 시민들이 체험하고 사는 실제 생활 영역의) 이익, 이익집단, 갈등은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고, 보통 사람들과 사회적 약자들은 정치가 발생하는 그 지점에서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자신들의 이익과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채널을 발견하려고 시도한다. 따라서 정치와 정당을 부정적으로 본다면, 그것은 이런 정치가 발생하는 최초의 지점이자 풀뿌리, 그 원천을 부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주의에서 반정치주의, 반정당관이 위험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중략)

 

오늘날 민주주의가 서있는 사회적, 도덕적 조건은 가치의 다원성, 진리의 다원성과 이들 간의 충돌을 전제한다. 따라서 이런 조건에서 하나의 가치, 하나의 목표를 지향하는 이론이나 사회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 점에서 민주주의란 다원적 가치와 이익이 모두에게 평등한 절차와 제도라는 틀을 통해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체제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절차적 정당성이 실질적 정당성보다 우월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진보적 지식인들이 발전시킨 변혁적 민주주의관에서 대중적 참여의 중심적 채널로서 정당이 기능할 수 있는 공간은 아주 협소하다. 이런 관점에서는 이익 갈등이 분출하고 권력이 충돌하는 사회 저변으로부터 합의를 도출하기가 어렵다. 또한 그런 민주주의관에서는 정당을 우회하거나 뛰어넘어 위로부터의 정치권력에 힘입은 개혁을 선호하기 쉽고, 그에 따라 지식인 엘리트들의 참여와 정책 투입 역할이 과도하게 커질 가능성이 있다. 나아가 이것은 위로부터 이루어지는 일거의 결정이 국가권력과 관료 기구를 통해 사회 전체에 집행되는 것을 정당화하는 부정적 효과를 낳는다.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정치의 중심 매커니즘은 정당이다. 따라서 정당 없이 또는 정당 밖에서 민주주의가 원활하게 작동한다는 것은 상상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발전은 정당 발전의 함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좋은 정당정부를 준비하기 위한 세 가지 제안 (p 348 - 349)

 

첫째, 의제설정에서 변화가 필요하다. 한국 정당정치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당이 사회경제적 문제를 다룰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야당이 특히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어떤 정부가 될 것인지를 준비한다는 것은 경제 운용에 대한 대안을 갖고자 노력한다는 것을 뜻한다. 야당도 유능하고 실력 있는 정부를 만들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여야 간 정치경쟁의 중심축을 이동시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가치와 열정이 격렬하게 충돌하고 타협이 어려워 대결의 정치를 불러오는 민족문제 내지 이념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부터, 협상과 타협이 가능한 부의 분배를 둘러싼 사회경제적 문제로 갈등 축을 이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집권 능력을 제고하기 위해 투입과 산출 측면에서 각각 당의 능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은 누구를 대표하나? 민주당이 허약한 가장 큰 이유는 사회경제적 기반에 구체적으로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데 있다. 당이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사회경제적 힘이 당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해 당사자 집단의 참여를 가능케 하는 투입 측면이 강화될 수 있도록 다양한 직능 대표 채널을 확대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와 동시에 당의 산출 측면의 능력이 또한 제고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당의 선출직 대표와 비선출직 전문가 그룹이 함께 정책을 구체적으로 다룰 수 있는 실력을 조직화하고 집단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셋째, 당 리더십과 대선 후보 선출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그동안 권력의 분산을 통해 당의 중심성과 리더십의 해체를 목표로 한 제도 개혁을 추진해 왔다. 일종의 자해적 정당 개혁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민주주의와 정당의 역할을 잘못 이해한 결과이다. 민주주의에서 정당 조직이 약해지면, 정치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회경제적 약자 집단들의 참여와 대표성이 약해진다. 그리고 이에 따라 행정 권력과 경제 권력을 견제할 힘도 약해진다. 당 대표를 중심으로 일할 수 있는 정당 조직으로의 변화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모바일 투표를 포함해 완전 개방형 경선제를 도입하고자 하는 맹목적 주장들에 대해서도 견제가 필요하다. 그것은 지금도 약해서 문제인 정당의 정체성과 리더십을 더욱 해체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모바일 기제에 친숙한 그룹이 과대 대표되는 문제도 있다. 그렇게 되면 민주당이 대표하고 뿌리를 내려야 할 사회경제적 기반으로서 중산층과 서민 내지 소외 계층과의 괴리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4. 정당이 중심되는 책임 정부를 위해 대통령과 정당이 해야 할 일 (p 356 - 358)

 

그렇다면 정당이 중심이 되는 책임 정부를 실천하기 위해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새로 정부를 구성할 때부터 정다의 적극적인 역할을 수용하는 책임 내각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국무총리와 내각 인사를 당과의 협의를 통해 결정하거나 집권당의 주도권 속에서 선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당정 협의는 단순히 당정 간에 의사소통 채널을 유지하는 수준을 넘어 정부의 구성과 운용을 담보하는 기본 원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당을 대표하는 내각은, 특정 정책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면서 선거 공약을 이행할 정책 수행의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대통령과 더불어 당이 직접 정부를 운영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면 그것 자체가 정당을 강화하는 것이 될 것이고, 정당은 정부를 운영할 능력을 갖춘 리더십을 훈련하고 양성하는 장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정당은 일반 당원의 참여를 확장하고 신규 당원을 늘리면서 지역적, 계층적 기반을 튼튼히 할 수 있고, 수많은 정당 활동가들로 하여금 공익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면서 그들이 정치 경력을 일궈 갈 수 있는 직업 훈련의 장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향에서의 정당 발전은 '대표' 개념의 변화와 함께 이루어질 수 있다. 그동안 정당들은 여성, 노동, 청년, 시민운동 대표를 개별적으로 배려하는, 일종의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대표"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대표를 뽑았다는 것과 그들을 대표하는 정당이 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실제로 정당의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특정 사회계층이나 집단, 기억, 기능적 분야에 속한 사회집단과 실제로 연계되어야 한다. 그런 식으로 당이 바로 설 때 당 밖의 관료나 정치 지망생들 역시 신념은 제쳐 둔 채 이쪽저쪽 눈치 보고 줄서기를 하며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정당 안에서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와 과업에 충실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변화가 연쇄적으로 전개된다면, 대통령은 쇼윈도식의 거대 프로젝트를 졸속으로 추진할 필요도 없고, 임기 말에 이르러 자신의 정당으로부터 버림받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당 간의 경쟁 역시 상대를 모욕하고 상처를 주는 데서 벗어나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정책 대안을 중심으로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문제의 근본으로 돌아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정당을 바로 세우는 것을 통해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일이다. 대통령 개인의 사인화된 정부가 아니라 정당의 정부를 만드는 일은, 오늘의 한국 사회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민주적 리더십의 요체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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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견 범박해 보이지만 꼼꼼히 읽다보면 최장집 이사장이 구상하는 신당의 주요한 외곽들을 몇 군데 예상해 볼 수 있다. 논쟁이 예상되는 부분도 적지 않지만, 나는 대체로 공감한다.

    2013.06.07 01:1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어렵지만.. 이런 책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2013.06.07 01: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선생님 블로그에 가 보았습니다. 그제 올리신 만개한 장미의 사진을 한참 보았습니다. 하숙 들어 사는 제 집 앞에도 똑같은 모양의 장미 줄기가 있고, 바로 며칠 전 아침나절에 집을 나서며 그 모습을 보고는 아, 참 아름답다, 라고 생각했는데, 누구는 그저 그렇게 잠시 쳐다보고 지나갈 뿐인데 선생님은 순간을 담아 놓으셨네요. 저는 사진을 잘 모릅니다만, 그 사진은 참 아름다운 사진이라고 생각합니다.

      2013.06.07 02:40 신고 [ ADDR : EDIT/ DEL ]
  3. 아, 2012년 9월에 올리신 반가사유상 사진!

    2013.06.07 02:5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많은 사람들이 안철수의 무색무취 때문에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면 때문에 싫어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극적으로 지지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정치인의 특권이나 이념적 경계가 모호해진 정치인의 표리부동에 대한 무색무취여야 하지 않을까요.
    최장집 교수의 합류는 이런 면에서 저에게 지지의 가능성을 열어둔 듯 싶습니다. 저에게는 어려운 책인듯 합니다만 한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지 싶기도 합니다.

    2013.06.12 20:07 [ ADDR : EDIT/ DEL : REPLY ]
    • 네. 저도 안철수 의원 본인보다는 안철수 현상 쪽에 좀 더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이처럼 일정한 중력을 가진 분들이 하나하나 합세한다면, '대중이 그리는 정치인 안철수'와 '자연인 안철수' 사이에 혹 큰 간격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이를 채워나갈 수 있겠지요.

      2013.06.13 02:07 신고 [ ADDR : EDIT/ DEL ]

독서일지2013.04.09 08:14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 씨의 34번째 인터뷰집. 한 줄 평 먼저. '정봉주의 대권 프로젝트 선언문?'.

 

 

 

각계 각층의 인사들을 만나 그 내면까지를 파고들어 온 지승호 마저도 '봉도사' 만큼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

 

자발적인 것인지 압도당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읽는 내내 나는 난처한 얼굴로 지나치게 발랄한 개를 산책시

 

키는 주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리 인터뷰집이라지만 인물의 육성이 이렇게까지 생생하게 전달되는 글을 볼

 

줄이야.

 

 

 

<나는 꼼수다>에서 입소 전 그의 마지막 육성을 들은 것도 벌써 재작년의 일이니 오랜만의 목소리에 반가울 법

 

도 하련만, 귀여웠던 '깔때기'가 대책없이 커져버린 탓에 팬이었던 나로서도 경각심의 눈초리가 번뜩 뜬다. 권력

 

자의 치부나 정치 필승 전략의 목소리가 경쾌하게 뽑아져 나오던 그 깔대기에서는 이제 중후한 저음의 미래 비

 

전이 흘러나온다.

 

 

 

1년간의 수감생활은 그에게 많은 것을 남긴듯 하다. 한 권의 인터뷰집 안에서 그는 감옥에서의 일상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얻은 종횡무진의 지식과 깨달음을 전파한다. 그 주제는 정치, 산업, 언론, 외교, 교육

 

에 이른다. 이건 일개 정치인 정도가 아니라 대통령, 혹은 그 이상 가는 사람의 인터뷰집이 아닌가, 하는 나의 의

 

혹의 눈길이 목차 한 곳에 멈춘다. 아아, 5장의 부제는 무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화려한 속도로 우석훈이나 선대인, 장하준을 비평하는 데에는 굳이 놀랄 것이 없다. 제레미 러프킨도 작금의 정

 

치인이라면 충분히 언급할 수 있는 이름이다. 그런데 정봉주는, 이제 자기의 주장을 위해 논어와 맹자를 인용하

 

는 경지에 올라섰다. 게다가 그냥 논어와 맹자도 아니고, 도올 김용옥 선생과 사제 관계를 맺으며 접하게 된 논

 

어와 맹자다. 마침내 '위대한 정치인'의 아우라를 갖추셨다고 순수하게 감탄하지 못하고 '김어준 형이나 주진우

 

형이 얼른 말려줘야 할텐데'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 뿐일까?

 

 

 

아무튼 그는 '정치공학의 명수'나 '최전방 공격수', '나꼼수의 큰형'을 넘어서서 이 책의 부제대로 '미래 한국 마

 

스터플랜'을 제시하는 지도자로 거듭 나고자 하는 것 같다. 전자라면 팬의 한 명으로서 언제까지나 응원할 마음

 

있지만, 후자라면 그라고 해서 특별 대우를 해 줄 수는 없다. 그는 탄돌이 출신의 초선 국회의원이며 조직이

 

싸주지 않은 공격수이다. 말하자면, 정치인으로서의 그는 언론인으로서의 그보다 더 많은 검증을 필요로 하고

 

또 받게 될 것이다. 책의 내용이 암시하고 있는 위치에까지 올라가고자 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물론 나는 건승을

 

바라마지 않지만, 허풍의 기세와 사이즈는 한층 더 커진 채 재미는 빠져버린 그의 거대담론을 읽다 보니 우려의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한번 걱정을 하고 보니 유력하고 유능한 젊은 지도자처럼 보이도록 찍은 것 같은 표

 

지사진마저도 마음에 걸린다. 기왕에 큰 꿈을 품었다면, 다 익기도 전에 그 모양을 뽐내다가 어딘가에서의 화살

 

을 맞아 떨어지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진심이다.

 

 

 

우연인지 의도된 것인지,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이 책의 속표지에 그의 친필 사인이 있었다. 책을 막 펼쳤을 때

 

엔 역시 봉도사! 라며 웃었지만 다 읽고 나서 다시 보니 이러다 허경영? 이라는 생각도 든다. 끝에 덧붙여 둔다.

 

 

 

 

 

 

 

 

 

 

 

 

 

업데이트. 독후감을 쓰고 난 다음날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가 서가에 놓여있는 <대한민국 진화론>을 들춰보니,

 

아래에 사진으로 올려놓은 다른 버전의 사인이 들어 있었다. 밑에 쌓여있는 같은 책들에도 모두 같은 사인이 '인

 

쇄되어' 있었다.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집어든 박경철 씨의 신작에도 이처럼 속표지에 친필처럼 보이는 사인이

 

인쇄되어 있었다. 막 시작된 하나의 유행인 모양인데 큰 호응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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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22012.12.21 21:06

 

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지 이틀이 지났다. 전국 최종 투표율은 75.8%로 이명박 현 대통령이 당선되었던 지난

 

17대 대선의 63.0%에 비해 10% 이상이 상승해, 이 선거에 몰린 국민적 관심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결과는 새누

 

리당의 대통령 후보인 박근혜 씨가 약 1,580만 표를 얻어 51.6%의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양강 구도의 한 축이었

 

던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는 48.2%의 지지율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표 차이는 약 백만 표였다.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정밀한 분석은 후일을 기약해야 하겠지만, 승패의 향배는 50대의 표에 있었다는 것이 선

 

거 직후부터의 중론이다. 20대의 65.2%와 30대의 72.5%라는 투표율은, 그 자체로만 놓고 보면 대선 전의 열기

 

어린 예측에 미치지 못한 것은 사실이나 분명 이전에 비해 진일보한 정치의식을 보여주는, 의미있는 수치였다.

 

그러나 50대의 결집력은 한층 강했다. 이번 선거에서 50대의 투표율은 무려 89.9%로, 그 다음으로 높은 세대인

 

60대 이상의 78.8%보다 11% 이상 높았다.

 

게다가 단지 투표율만 높은 것이 아니었다. 세대별로 지지하는 후보가 명확히 갈리는 특징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었던 16대 대선, 그러니까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맞붙었던 2002년의 대선과 비교해 볼 때, 2030 세

 

대가 전체 유권자 중에 차지하는 비율은 48.3%에서 38.3%로 십 년 간 10% 감소한 반면, 5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29.3%에서 40%로 10%포인트 이상 증가하였다. 사람의 수도 많고 투표율도 높은 세대가 선택한 후보가

 

당선되는 것은 필연이었다는 말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해석의 목소리가 분분하다. 선거 직전 있었던 TV토론에서 이정희 후

 

보의 날선 공격이 안정 희구층인 50대에게 오히려 등을 돌리는 기폭제가 되었다는 분석도 있고, 안철수 씨와의

 

단일화가 무난하지 않은 탓에 그리 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개중에는 박근혜 후보의 우월성 때문이라는 속 편한

 

분석도 있고 하니, 이것만은 좀 더 후일에, 더 많은 목소리를 들어본 뒤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

 

 

 

 

선거가 끝난 뒤 박근혜 후보는 바로 인수위 구성에 착수하였고, 문재인 후보는 실패의 책임을 본인에게로 돌린

 

뒤 더는 대선에 나오지 않을 의사를 밝혔다. 선거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번 대선의 가장 큰 축이었다고 해도 좋

 

을 안철수 전 후보는 투표 직후 미국으로 떠났고, 도착하여 선거의 결과를 들은 뒤, 계속해서 정치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박 당선인의 대통령직 인수위의 구성이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고, 문재인 전 후보는 정계

 

은퇴의 뜻을 넌지시 비추긴 했지만 아직 부산 사상구의 19대 국회의원이기도 하며, 안철수 전 후보는 한동안 국

 

내 정치를 관망하고 있을 듯 하여, 이들의 향배 또한 좀 더 지켜본 뒤 쓰는 것이 맞을 듯 하다.

 

 

 

 

나 개인으로 말하자면, 딱히 무슨 일을 손에 쥐지 못하고 다소간 축 처져 있는 채로 하루를 보냈다. 투표 전일

 

'투표하러 인천 간다'고 여덟 자를 적는데 네 시간을 보냈다고 이 바로 앞의 일기를 쓴 바 있었다. 문재인 후보의

 

당선만을 두손 모아 기도하고 있었더라면 딱히 상념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짧게는 지난 10.26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와 4월 총선부터, 길게 잡으면 참여 정부에서부터까지, 이른바 범진보

 

진영의 '맏형' 민주당의 수권 능력에 대해 의심을 품고 '비판적 지지'에 회의를 가져온 진보 진영 유권자는 나만

 

이 아닐 것이다. 스스로의 능력으로 힘을 발휘하기 보다는, 한나라당의 대척점에서 가장 강한 세력이라는 구도

 

에서만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경우가 많았던 최근 민주당의 역사는, 거칠게 말하자면 끊임없이 북한과의 구도를

 

설정하여 입지의 당위를 증명하는 한나라당의 오랜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왔던

 

민주이 총선과 대선이라는 큰 경연장에서도 혁신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 판에야 열렬한 지지의 마음이 들지 않

 

았던 은 내 안의 당연한 인과라 하겠다.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흠모를 논외로 치고, 대통령 노무현과 참여 정부, 그리고 집권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실정이 이명박 정부라는 괴물을 낳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괴물의 비상식적인 5년을 겪어낸 국민들이 미안함

 

반 기대 반으로, 예를 들어, 이번 대선에서 다시 민주당에게 정권을 넘겨주었다 쳐 보자. 준비되지 않고 의지도

 

없는 채로 또 한 차례의 실정을 보여 준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 5년은, 헌정 이후 바람 잘 날 없었

 

던 진보개혁 세력이라지만 향후의 행보에 유례없는 재앙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

 

다면 박근혜 씨가 19대 대선에서 80% 이상의 지지율로 당선될 가능성도 낮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민주

 

당의 집권을 열렬히 앙망하지는 않았다.

 

 

 

 

한편으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다면 여의도에 가서 할복자살하겠다는 마음도 딱히 갖고 있지는 않았다. 정치적

 

인 호오를 내려두고 지금까지 접할 수 있는 객관적인 정보로만 판단하더라도, 박근혜 정부 5년은 이명박 정부 5

 

년을 잊을 만하기에 모자람이 없을 위정이 펼쳐지리라 본다. 국민 일반의 유신 시대에 대한 향수의 마음을, 과거

 

사 정리와 학술적 연구로 무 베듯 잘라낼 수 없었다면, 차라리 직접 다시 경험해 보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으로

 

털어낼 수 있는 방법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보수 진영의 실상과 무능을 밝히고 때만 되면 고개 드는 박정희 영

 

웅론을 청산하는 데에 박근혜만한 적임자는 다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비록 당기(當期)적 비용은 대단히 비쌀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가치가 있는 수업이다, 라고 최근 들어 생각해 왔던 터이다.

 

 

 

 

결국, 민주당이 집권해도 찝찝함은 있는 것이고 새누리당이 집권해도 -의도치 않게- 역사적 의의는 남겨질 것이

 

라, 마음이 엉덩이 깔 자리를 찾지 못해 심사가 복잡했던 것인데. 박근혜 씨의 당선을 바라보는 내 마음을 관찰

 

해 보자그래도 내심으로는 문재인 씨의 당선을 아주 더 많이 바랬던 것 같다. 담담히 일기를 쓰고 있지마는

 

이틀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내 마음은 '이런 코미디가 있나...'라는 충격에서 몇 발짝 벗어나지 못한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그저 혼자 책이나 읽는 직업을 갖고 사회의 파랑이 적게 미치는 변방에서 지냈던 삶조차 무척이나 피곤했던 5

 

년이 이제 겨우 끝나가는데, 얼마나 더 깜깜한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5년이 새로 추가되었다.

 

그 앞에서 나는 '해는 저물고 길은 멀다'는 뜻의 '日暮途遠'이라는 고사성어를 떠올렸다. 해가 저물고 길은 멀었

 

을 때, 사람마다 그 나름의 해결책이 있을 것이다. 벌써, 여기저기서 '힐링 행사'의 기획이 들려오고, 한겨레 신

 

문이 창간되던 때처럼 국민주를 모집해 국민 방송사를 설립하자는 결기 찬 소리도 들려온다. 새로운 흐름에 내

 

목소리가 섞여들 틈이 있을까는 아직 알 수 없는 노릇이고, 다만 이제까지 간헐적으로 '일기' 카테고리에 올리던

 

정국, 시국 상황 정리와 내 단상을 정리하던 것을, 박근혜 정부에 대한 카테고리를 신설하여 분명하게 기록해 두

 

고자 하는 마음을 먹었다. 이제로부터 며칠 간의 뉴스는 그모아오던 즐겨찾기의 '2012 대선' 폴더에 마저 넣

 

어두고, 인수위의 출범 소식을 1호로 하여 '박근혜 정부 수위' 폴더를 시작할 것이다. 차근차근, 지치지 말고.

 

영웅의 혁명처럼이 아니라 주부의 생활처럼. 이것이 긴 밤을 앞에 둔 나의 첫 발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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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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