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지2014.05.07 19:51

 

 

 

 

 

출판사 미디어트리거의 기획작.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세 명의 패널을 초대하여 '대통령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토론을 하고 그 결과물을 정리해서 출간한다. 부제는 '윤여준, 이상돈, 이철희, 대통령을 이야기하다.'.

 

 

 

중앙집권형 국가에서 정치를 말할 때 대통령을 논하는 것은 당연한 첫걸음이다. 그 기획의 패널으로 굳이 이 세

 

명을 부른 이유로는 아마도 '합리성'이나 '관용'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세 명에게는 모두, '속해 있는' 진영의 논

 

리와 완결이 일치하지는 않은 언행을 보인 공통점이 있다.

 

 

 

윤여준은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때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으며 16대에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였다.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의 소장을 지낸 바 있고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는 이회창 후보 캠프의

 

전략을 짠 '책사'로 유명하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후폭풍 때 박근혜 비대위원장에게 '무조건 사과하라'는 전략

 

을 지도하여 참패 위기에 있던 한나라당을 구원했던 것 또한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에는

 

안철수와 박경철의 '희망콘서트'를 후원하기도 했고 2012년 대선에서는 민주당 후보인 문재인을 지지하는 연

 

설을 하기도 했다. 그 뒤로는 안철수의 새정치연합과 함께 하다가 2014년 3월, 새정치연합이 민주당과 합당을

 

하는 과정에서 결별했다. (이 책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창당 이전인 2월에 출간됐다.)

 

 

 

중앙대 법대 교수인 이상돈은 1995년부터 2003년까지 <조선일보>의 비상임 논설위원으로 활약한 바 있다. 당

 

시 대통령이던 김대중, 노무현에게 날린 신랄한 독설은 보수층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잃어버린 10년' 이후 보수의 재집권에 성공한 MB정부 하에서, 이상돈은 정부와 각을 세우는 의견을 내놓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특히 4대강 사업은 추진되고 있는 중에도 그 의도와 부작용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을 하여, M

 

BC 100분 토론에서 화면 왼편에 자리잡은 패널이 정부를 공격하는 진기한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진짜 보수'

 

를 표방하던 그는 19대 대선에서 김종인, 안대회와 함께 박근혜 캠프의 참신함과 합리성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활약했지만 대선 이후로는 그에 값하는 활동상을 보여주지 못했고, 박근혜 정부 집권 1년차가 지난 뒤부터는

 

'비상식적 인사'나 '무너진 신뢰' 등을 근거로 하여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도 하다.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인 이철희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에서 행정관을 지냈고, 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 당대표인 김한길 의원의 보좌관 직을 수행했으며, 노무현 대통령 인수위에 몸을 담기도 했다.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 부소장을 거쳐 현재는 1인 연구소를 운영 중이며 특히 19대 대선을 전후하여 활

 

발한 방송 활동으로 이른바 개혁-진보 진영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평론가가 되었다. 인생 대부분의 이력이 민

 

주당에 놓여져 있지만, 사안을 논함에 있어 당략이나 진영에 얽매이지 않고 공과를 비교적 공정하게 가늠한다

 

는 평을 받아, 급격히 보수화된 방송 환경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평론가로 자리잡았다.

 

방송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본인이 진행하는 라디오나 팟캐스트, 그리고 인터뷰 등에서는 현재의 민주당

 

전략팀에 대한 강한 불만을 숨기지 않는 면도 있다.

 

 

 

이런 이들의 언행은 일각에서 '변절'이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그러나 논거를 바탕으로 상대방을 설득하고 또 자

 

신이 설득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자세'는 진영 간의 극단적인 대립과 정략이 심화되는 정세에서 많은 사람들

 

에게 '합리성'과 '관용'을 지닌 것으로 보여졌다. 특히 그런 일면이, 논쟁적일 수 있는 이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지명된 까닭일 것이다.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최종 제목인 <누가 해도 당신들보다 낫겠다>와 달리 토론의 주제 이름은 <대통령의 과

 

거,현재, 미래>였다. 제목 그대로 이 책에서 이루어지는 토론은 대부분 전현직 대통령에 관한 평가와 서로에 대

 

질의응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 호명되는 대통령은 4대 윤보선과 10대 최규하를 제외한 9명이다.

 

 

 

총 11장 중 1장부터 9장까지가 각각의 대통령을 다루고 있다. 보통 20쪽에서 30쪽 가량의 분량인데, 가장 짧은

 

장은 전두환 대통령을 다룬 10쪽의 4장이며 가장 긴 장은 노무현 대통령을 다룬 38쪽의 7장이다.

 

 

 

각 장은 다시 세 개의 소챕터로 나뉘는데, 책에서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소챕터는 대체로 '그 대통령

 

정권이 갖는 의미', '그 정권의 공', '그 정권의 과'로 구분되어 있는 듯 하다. (노무현 대통령 이후로는 이 구

 

분이 엄밀하게 지켜지지는 않는다. 아울러 세 개의 소챕터라는 기준의 예외는 공이 빠지고 평가와 과만 있는 4

 

장 전두환 대통령이다.) 이 소챕터의 제목만 읽어봐도 -세 명이 파악하는- 한국 현대사의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기 때문에, 책 목차를 이 독후감의 댓글로 첨부하려 한다.

 

 

 

윤여준이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을 높게 평하거나, 이상돈이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공로를 인정하거나, 이철희

 

가 김대중의 전략적 면모를 재조명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평이다. 똑같이, 윤여준이 노무현의 '뺄셈 정치

 

'를 지적하거나, 이상돈이 DJP연합의 정략성을 비판하거나, 이철희가 박근혜의 불통을 거론하는 것도 놀랍지 않

 

다.

 

 

 

러나 윤여준이 김대중의 탁월한 식견을 칭찬하는 한편 이회창의 반개혁적 면모를 공개하는 장면, 이상돈이

 

노무현의 상대방에 대한 관용을 인정하는 한편 박근혜 정부 임기 1년에 대해 혹독한 점수를 내리는 장면, 이

 

철희가 이승만의 정치력이 김구보다 위였다고 평가하는 한편 노무현 정부의 아젠다 세팅 능력을 비판하는

 

장면 등은 무척 신선했다. 특히 여기에 이 패널 조합의 특장점이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흥미로운 것은 토론 과정에서 합의하기도 하고 대립하기도 하는 세 인물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공과이다.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것은 유신 전 박정희가 이룬 성과, 노태우의 북방외교, 김영삼의 하나회 숙청과 금융실명

 

제, 김대중의 IMF극복 등이다. 반대로 입을 모아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이승만의 권력욕, 박정희의 유신, 김영

 

삼의 IMF, 김대중의 측근 비리 등이다. 이렇게 한 명의 대통령이 공이든 과든 대체로 확실한 명암을 갖는 한편,

 

의미와 장단점을 논하는 데 있어 일관되게 부정적 평가를 받는 두 대통령도 있다. 각각 해당 장의 소챕터 제목으

 

로 문장을 만들어 보자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며 '업적은 없고 후유증은 큰' 전두환 대통령과, '건설사 CEO

 

스러웠'으며 '미디어법, 4대강, 대기업 편중'의 과오를 저질렀고 결국 '최악의 경제정책, 최악의 공공부채'를 남

 

긴 이명박 대통령이다.

 

 

 

각각의 대통령에 대한 9개의 장이 끝나고 나면 시점을 한국사회로 옮겨 문제점과 대안을 논해 본 10장 '미래를

 

말하자'와 11장 '지금 선 이 자리'가 시작된다. 여기에서는 정치 구조와 경제 구조의 개혁 방향을 토론하고 향후

 

크게 성장할 정치 인물들을 평가하며 박근혜 정부 하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총평한다.

 

 

 

정리하자. 먼저 장점부터. 하나. 역대 대통령이 집권 순서대로 호명되며 그 공과가 평론의 형태로 드러나기 때문

 

에 한국 현대사에 처음 접근하는 사람에게 거칠게나마 큰 그림을 그리는데 아주 유효할 것이다. 둘. 어떤 형태로

 

든 권력의 최정상에 닿아 본 이들의 '뒷담화'가 섞여 있어 정보의 가치가 높다. 셋. 대담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읽기가 편하다. 넷. 억지 주장을 펴지 않는 패널들이기 때문에 모범적인 토론을 공부하는 데 좋은 참고서가 되어

 

준다.

 

 

 

단점은 장점을 그대로 뒤집은 데서 나오는 것이 많다. 하나. 강연이 아니고 '알 만큼 아는 사람들'끼리 나누는 얘

 

기라서, 평가의 논거로 사용되는 인물, 사건에 대한 정보가 따로 주어지지 않는다. 현대사의 굵직한 정보들을 미

 

리 알고 있지 않다면 어려운 독서가 될 수 있다. 둘. 언급한 것처럼 어떤 형태로든 권력에 맞닿아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 본인이 특히 활약했던 시기의 이야기가 나오면 다소간 감정적이거나 양보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보

 

일 때도 있다. 셋. 대담의 녹취록 형식이라 막상 읽어보면 분량이 그리 길지 않다. 정리된 글이 아니라 발언한 것

 

을 받아쓴 것이라 입말체가 들어가 있기도 하고, 발언자가 바뀔 때마다 한 줄씩 떼어서이기도 하다. 넷. 억지 주

 

장을 하지도 않지만 강한 반대를 하는 장면도 거의 없다. 하나하나의 주제를 놓고 하는 끝장토론이 아니고 정해

 

진 시간 내에 9명을 다루어야 하는, 현실적 한계를 갖는 토론이라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총평.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기 때문에 독자가 독서의 목적만 확실히 정해두고 읽기 시작하면 확실한 성과를 거

 

둘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경험을 풍부하게 갖고 있고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패널들의 발

 

언을 접하는 것 또한 여러 책에서 만나기 어려운 특장점이다. 각 패널들의 팬인 독자나 약간 깊이 있는 현대사

 

개괄서를 원하는 독자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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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본문에서 언급한, 이 책의 목차를 따서 붙인다.


    1. 이승만 대통령
    초대대통령 이승만을 말하다
    부인이 한국인이기만 했어도
    불행이 시작되다

    2.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 그 선연한 빛과 그림자
    유신, 전과 후
    유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다

    3. 전두환 대통령
    태어나지 말았어야
    업적은 없고 후유증은 크다

    4. 노태우 대통령
    민주화의 가교/물통령
    북방정책, 통일정책은 분명한 공
    역사의 의미를 읽어라

    5. 김영삼 대통령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금융실명제, 하나회 척결로 박수 받고
    씻을 수 없는 과오, IMF

    6. 김대중 대통령
    26년만에 당선된 집념의 사나이
    햇볕정책, IMF극복은 공
    게이트로 날이 저물다

    7. 노무현 대통령
    이회창이 진 선거일 뿐?
    개혁을 위해 준비해야할 것들
    ‘참여와 평등’의 가치를 심다

    8. 이명박 대통령
    건설사 CEO스러운
    미디어법, 4대강, 대기업 편중, 그리고
    최악의 경제정책, 최악의 공공부채

    9. 박근혜 대통령
    야당이라는 인식으로 당선?
    변했나, 원래 그랬나
    변화는 가능한가

    10. 미래를 말하자
    개헌은 가능한가
    대한민국 재구성이 필요하다!
    이 사람을 주목하라

    11. 지금 선 이 자리
    다시 이곳과 현재를 말하다
    뭔가 변하고 있다
    윤여준, 안철수의 새정추로

    윤여준·이상돈·이철희 인터뷰

    2014.05.07 19:5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재밌는 조합이네요 윤여준, 이상돈, 이철희라니.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서 언제까지 대통령 개인의 한계로 국가가 흔들흔들 대는 걸 지켜봐야 하는지 걱정됩니다. 여담이지만 아마 MB가 2년만 더 해먹었으면 전두환만큼 분량이 적어지지 않았을가 싶습니다.

    2014.05.10 15:0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네. 세 사람은 공히 그 분을 너무 싫어해서, 2년이라는 시간을 더 같이 보냈더라면 정말 한 쪽 분량만큼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2014.05.11 04:43 신고 [ ADDR : EDIT/ DEL ]

일기장/20122012.10.16 18:35

 

 

 

 

 

 

지난 9일 국회 교과위 국정감사에서 민주통합당 김태년 의원에 의해, 국사편찬위가 천재교육에서 펴낸 역사교

 

과서의 87년 6월 항쟁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이한열 씨의 사진을 수정하도록 권고한 사실이 밝혀졌다. 국사편찬

 

위원회는 권고의 사유가 "학습자가 중학생임을 고려해 직접적이고 참혹한 사진 제시에 대해 재고려"를 요망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수정을 '권고'하였을 뿐이라면 강제력이 없다는 점에서 그닥 큰 쟁점으로 보이지 않지만,

 

태년 의원실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검정교과서로 채택돼야만 공신력 있는 교과서 업체로 인정받을 수 있

 

고, 참고서 시장에서도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명목적으로는 권고이지만, 사실상 수정지시로 받

 

아들여진다.' 이 사진은 결국 명동성당의 사진으로 교체되었다.

 

 

 

 

 

'YONSEI'라는 글씨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는 저 청년은 87년 6월 9일 당시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한열이다. 66년 생으로 나이는 스물두 살, 생일이 지나지 않아 만으로는 스무 살이었다. 스물두

 

살인데 2학년인 이유는 재수를 했기 때문이다. 종로학원에서 수학했다 한다.

 

 

저 청년이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이유는 머리에 최루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살수차로 최루액을 뿌

 

리거나 하지만 당시에는 유탄발사기처럼 총에 넣어 발사하는 최루탄이 있었다. SY-44라고 한다. 사각 45도로

 

발사하면, 즉 45도의 각도로 하늘을 향해 쏘면 70m까지 날아갔다는 기록이 있다. 이 최루탄을 수평으로 발사한

 

경찰이 있었고, 그 최루탄에 이한열이 맞은 것이다.

 

 

최루탄이 날아다닌 것은 연세대의 학생들이 시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날인 6월 10일에 전국적인 큰

 

시위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 전에 연세대 학생들이 미리 모여 일종의 궐기대회를 열었던 셈이다. 6.10 항쟁이

 

라고도 하고 6월 항쟁이라고 통칭하기도 하는 이 큰 시위의 당시 공식 명칭은 <박종철군 고문살인 조작·은폐규

 

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였다. 말하자면 이한열은 '박종철군 고문살인 조작·은폐규탄'과 '호헌철폐'를 주장하기

 

위해 시위를 하던 중이었던 것이다.

 

 

 

 

 

박종철은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의 학생이자 학생회장이었다. 그는 이한열이 죽던 87년의 1월, 용산의 남영동 대

 

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중 죽었다. 잡혀간 이유는 같은 과의 선배이자 '민주화추진위원회' 지도위원으로 수배

 

중이던 박종운의 거취를 밝혀내기 위함이었다. '민주화추진위원회', 약칭 '민추위'는 서울대학교 학생운동의 비

 

공개 지도조직으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행하는 한편 전두환 정권에 맞서는 활동을 펼쳤다. 전두환 정권은

 

이 민추위에 관련된 조사를 남영동의 대공분실에 일임하였는데, 여기에서 박종철을 잡아들인 것이다. (민추위의

 

위원장이었던 문용식은 현재 민주통합당의 대선후보인 문재인의 캠프 대변인이고, 관련인사였던 김근태 전 의

 

장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작년에 별세하였다. 박종운 씨는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이 소속되어 있었던 민

 

주정의당의 후신인 한나라당에 입당, 2000년과 2004년에 두 차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박종철은 87년 1월 13일 밤에 잡혀서 1월 14일 밤에 죽었다. 경찰은 14일 밤 시체를 서둘러 화장하려고 하였으

 

나 당시 부장 검사는 사체보존 명령을 내렸고, 1월 15일 행해진 부검에서 전기고문과 물고문의 흔적이 발견되었

 

다. 고문의 흔적이 발표되기 전, 치안 본부장 강민창은 '조사를 하다가 (책상을) 탁 하고 치니 (박종철이) 억 하

 

고 쓰러졌다'며 박종철의 사인이 쇼크사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며칠 뒤 직접적인 사인이 고문이었음이 밝혀지

 

자, 정부는 물고문만이 있었을 뿐이며 조사를 담당하였던 두 형사의 소행이라고 결론짓고 박종철의 사체를 화장

 

하였다. 같은 해 5월,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에 의해 전기고문의 사실과 함께 치안본부의 차장급 인사를

 

포함해 다섯 명이 관련되어 있었으며 죄를 뒤집어쓴 두 명에게 금전적인 보상이 있었음이 추가로 밝혀졌다. 이

 

한열이 죽기 한 달 전의 일다.

 

 

 

 

 

'호헌철폐'는 '호헌'을 '철폐'시키자는 말이다. '호헌(護憲)'은 헌법(憲法)을 보호하고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개

 

헌(改憲)의 반대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의 호헌은 특히 같은 해인 87년 4월에 있었던 전두환 당시 대통

 

령의 '4.13 호헌조치'를 지칭한다. 헌법에는 여러 조항이 있지만, 87년의 쟁점들 중 특히 주목되는 것은 대통령

 

선출 방식과 임기에 관한 조항이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피격된 뒤 최규하가 10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지만 다음 해인 80년 8월 사

 

임한다. 79년 12월 12일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 장군이 이미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80년 8월 27

 

일, 유신 헌법에 의거, 국민 가운데 선출된 '통일주체국민회의' 2540명 가운데 2525명이 서울 장충체육관에

 

출석하여 간접선거 방식으로 11대 대통령 선거를 치룬다. 후보는 전두환 단독 출마, 총 2525표 가운데 찬성 25

 

24표, 무효 1표였다.

 

 

1980년 11월, 전두환 정권은 개헌을 단행한다. 종래의 유신헌법에서 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접 선거

 

를 통해 당선되며 임기 6년에 종신 집권이 가능했다. 새 헌법은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 선거라는 점은 동

 

일했지만 임기 7년에 단임제였다. 이 헌법에 의거, 전두환은 81년 치뤄진 12대 대통령 선거에서 90%를 상회하

 

는 득표율로 당선된다.

 

 

왕정이나 다름없던 유신 헌법에 비춰보면야 진일보했다고 할 수 있지만, 형식만을 갖추었을 뿐 사실상 후계자

 

지명을 통해 지속적인 집권이 가능했으므로 대통령 선거를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가 아니라 국민 모두에 의

 

한 직접선거로 전환하자는 것은 시민사회의 오랜 요구사항이었다. 그런데 임기 마지막 해인 87년의 4월, 전두환

 

정권이 이 방식을 고수하겠다는 '호헌 조치'를 발표한 것이다. 누가 봐도 차기 집권자는 전두환의 육사 동기이자

 

쿠데타 세력인 노태우였고, 군정(軍政)은 종식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한열이 죽기 두 달 전의 일이다.

 

 

 

 

 

사인조차 은폐된 박종철의 억울한 죽음과 집권에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 군부 정권. 이에 대한 분노의 표출일로

 

6월 10일이 낙점되었다. 그 하루 전, 연세대에서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가 열렸고 이한열은

 

여기에서 최루탄을 맞았다.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는 사진은 다음 날 아침 뉴욕타임스와 중앙일보 1면에 실렸고,

 

이 사진은 6월 항쟁의 전국적인 폭발에 동력원이 되었다. 보름여 간에 걸친 시위 끝에 민주정의당 대표 노태우

 

는 대통령 직선제와 민주화를 약속하는 개헌안을 발표하였다. 같은 해 12월, 직선제에 의한 13대 대통령 선거가

 

치뤄졌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상징적인 두 축이었던 김영삼과 김대중이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으로 따

 

이 출마하여 각기 28%, 27%의 득표율을 얻음으로써 득표율 36.6%의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었고

 

인의 통치는 5년 연장되었다. 이한열은 이 해 7월에 죽었다.

 

 

 

 

 

 

 

 

 

 

연세대학교를 찾아본 사람이라면 교문에서부터 삼거리까지 길게 뻗은 길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백양목이 많

 

았다 하여 백양로라 불리우는 이 길을 통해 이한열은 세브란스로 옮겨졌고 거기에서 죽었다. 기록을 살펴보니

 

그는 지금도 있는 '만화사랑'이라는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한다. 만화를 읽고 그림을 그리러 오다니던 그 길을,

 

이 날 그는 '열사'가 되어 죽으러 지났다. 교과서의 학습자인 중학생에게 그의 죽음이 더 참혹한 것인지 사진이

 

더 참혹한 것인지, 나는 무서워 말하지 못하겠다. 연세대 앞을 찾은 이한열의 조문객들 앞에 버티고 선 그들의

 

모습이 다만 오래 전 그 날의 흑백사진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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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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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한열 기념사업회는 올해 제 1회 '이한열 만화상'을 제정하여 공모하였다.

    2012.10.16 18:4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여러번 보아온 사진이라 생각했지만,
    그의 티셔츠에 Yensei라고 쓰여져 있는 거라든가. 가만 보니 내가 아는 그 곳이나 하는 것은
    지금에야 다시 보았네요.

    그리 정면으로 얼굴을 들이대고 본 적은 없었나봅니다. 부끄러움에 고개가 절로 숙여지네요.

    2012.10.19 00:4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