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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준

4.19와 광장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13만 5천명의 지상군을 이끌고 쳐들어오며 시작된 한국전쟁은 만 3년이 지난 53년 7 월에야 휴전 상태로 들어갔다. 전쟁 중 최초로 정전회담이 제의된 시기로부터도 25개월 뒤였고, 그간 이루어진 회담만도 총 765회였다. 내전으로 시작했으나 종국에는 냉전의 주요 축들이 모두 참가하게 된 이 전쟁이 한국인에게 남긴 상흔은 깊었 다. 전쟁 중의 사망자는 가장 보수적인 수치로도 300만 명에 달했다. 이는 당시 한반도 인구의 1/10에 달하는 수치였다. 1천만 명의 이산가족이 생겼으며 5백만 명이 난민 신세가 되었다. 한국전쟁은 전쟁사에 여러가지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한 예로, 휴전 1분 전까지 원산에 가해진 미군의 폭격은 총 861 일간으로 이는 아직까지도 현대 미 해군 .. 더보기
이명준, <엔엘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 딴지일보 등의 인터넷 매체에서 연재물의 형태로 접했었는데, 도서관에서 다른 책을 찾으러 갔다가 찾는 책 근 처에 꽂혀있는 것을 보고서야 책으로 묶여 출간된 사실을 알게 됐다. 인터넷의 연재물과 제목이 똑같지 않았더 라면 조갑제 선생의 또 하나의 역작 쯤으로 생각하고 굳이 꺼내들지 않았을 터이다. 부제는 '한 NL 운동가의 회 고와 성찰'. 반독재와 민주화 시기를 걸쳐 96년 연대 사태까지, 개별 사건에 대한 평가는 입장에 따라 갈릴 수는 있으나 적어 도 학생운동사에서 연세대는 분명히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신입생으로 입학하던 2001 년에는, 연대의 학생운동사라는 분명한 주제를 가지고 탐구하지 않는 이상 평범한 학생으로 'NL'이나 'PD'등의 약어를 듣는 일은 흔치 않았다. 청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