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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

첫 녹음 전날 감기몸살의 여파가 있는 몸을 이끌고 토요일 아침 일찍 서초동의 국립중앙도서관으로 향했다. 스튜디오 녹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서 우쿨렐레도 쳐보고 그림도 그려보고 한다지만 여러 사람과 함께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은 학부 졸업 뒤로 적은 경험이었다. 일기에도 자주 등장하는 동생 신각이와 함께 이렇게도 구상해 보고 저렇게도 구상하기를 몇 년에, 올 여름 오랫동안 격조했던 동생 원준이를 다시 만나 계획에 힘이 붙었던 것이다. 원준이는 신각이와 마찬가지로 연극부의 후배이자 친동생처럼 아끼는 동생이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고 특별히 기대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우리의 구상에는 제한이 별로 없었다. 각종의 아이디어들을 수합하는 과정에서 크게 영상 아이템과 음성 아이템으로 구분이 되었고, 그 중 현실적으로 시.. 더보기
서울에서 나이 서른셋에 제약회사의 전무가 되게 되었다. 삼 년 전, 제약회사 회장의 딸과 결혼했기 때문이다. 회장의 딸 은 재혼이었다. 노리고 만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된 결혼이었다 생각했다. 장인이자 회장은 전무가 되기 전 일주일의 휴가를 주었다. 딱히 갈 곳이 없어 고향엘 갔다. 고향도 서울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서울이 아닌 주제에 서울이 되고 싶어 발버둥치는 것은 오히려 서울만 못 했다. 오랜만에 만난 고향 후배는 순박하기 짝이 없어 한심했고, 일찍 세무서장이 된 친구는 적어도 고향에서는 갑 중의 갑인 자신의 처지가 서울에서의 성공보다 결코 못하지 않음을 나타내기 위해 갖은 거드름을 다 피웠다. 여자를 만났다. 순박한 후배로부터는 러브레터를 받았고, 세무서장인 친구와는 자는 사이인 여자였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