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지2014.05.07 19:51

 

 

 

 

 

출판사 미디어트리거의 기획작.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세 명의 패널을 초대하여 '대통령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토론을 하고 그 결과물을 정리해서 출간한다. 부제는 '윤여준, 이상돈, 이철희, 대통령을 이야기하다.'.

 

 

 

중앙집권형 국가에서 정치를 말할 때 대통령을 논하는 것은 당연한 첫걸음이다. 그 기획의 패널으로 굳이 이 세

 

명을 부른 이유로는 아마도 '합리성'이나 '관용'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세 명에게는 모두, '속해 있는' 진영의 논

 

리와 완결이 일치하지는 않은 언행을 보인 공통점이 있다.

 

 

 

윤여준은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때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으며 16대에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였다.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의 소장을 지낸 바 있고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는 이회창 후보 캠프의

 

전략을 짠 '책사'로 유명하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후폭풍 때 박근혜 비대위원장에게 '무조건 사과하라'는 전략

 

을 지도하여 참패 위기에 있던 한나라당을 구원했던 것 또한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에는

 

안철수와 박경철의 '희망콘서트'를 후원하기도 했고 2012년 대선에서는 민주당 후보인 문재인을 지지하는 연

 

설을 하기도 했다. 그 뒤로는 안철수의 새정치연합과 함께 하다가 2014년 3월, 새정치연합이 민주당과 합당을

 

하는 과정에서 결별했다. (이 책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창당 이전인 2월에 출간됐다.)

 

 

 

중앙대 법대 교수인 이상돈은 1995년부터 2003년까지 <조선일보>의 비상임 논설위원으로 활약한 바 있다. 당

 

시 대통령이던 김대중, 노무현에게 날린 신랄한 독설은 보수층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잃어버린 10년' 이후 보수의 재집권에 성공한 MB정부 하에서, 이상돈은 정부와 각을 세우는 의견을 내놓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특히 4대강 사업은 추진되고 있는 중에도 그 의도와 부작용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을 하여, M

 

BC 100분 토론에서 화면 왼편에 자리잡은 패널이 정부를 공격하는 진기한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진짜 보수'

 

를 표방하던 그는 19대 대선에서 김종인, 안대회와 함께 박근혜 캠프의 참신함과 합리성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활약했지만 대선 이후로는 그에 값하는 활동상을 보여주지 못했고, 박근혜 정부 집권 1년차가 지난 뒤부터는

 

'비상식적 인사'나 '무너진 신뢰' 등을 근거로 하여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도 하다.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인 이철희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에서 행정관을 지냈고, 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 당대표인 김한길 의원의 보좌관 직을 수행했으며, 노무현 대통령 인수위에 몸을 담기도 했다.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 부소장을 거쳐 현재는 1인 연구소를 운영 중이며 특히 19대 대선을 전후하여 활

 

발한 방송 활동으로 이른바 개혁-진보 진영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평론가가 되었다. 인생 대부분의 이력이 민

 

주당에 놓여져 있지만, 사안을 논함에 있어 당략이나 진영에 얽매이지 않고 공과를 비교적 공정하게 가늠한다

 

는 평을 받아, 급격히 보수화된 방송 환경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평론가로 자리잡았다.

 

방송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본인이 진행하는 라디오나 팟캐스트, 그리고 인터뷰 등에서는 현재의 민주당

 

전략팀에 대한 강한 불만을 숨기지 않는 면도 있다.

 

 

 

이런 이들의 언행은 일각에서 '변절'이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그러나 논거를 바탕으로 상대방을 설득하고 또 자

 

신이 설득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자세'는 진영 간의 극단적인 대립과 정략이 심화되는 정세에서 많은 사람들

 

에게 '합리성'과 '관용'을 지닌 것으로 보여졌다. 특히 그런 일면이, 논쟁적일 수 있는 이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지명된 까닭일 것이다.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최종 제목인 <누가 해도 당신들보다 낫겠다>와 달리 토론의 주제 이름은 <대통령의 과

 

거,현재, 미래>였다. 제목 그대로 이 책에서 이루어지는 토론은 대부분 전현직 대통령에 관한 평가와 서로에 대

 

질의응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 호명되는 대통령은 4대 윤보선과 10대 최규하를 제외한 9명이다.

 

 

 

총 11장 중 1장부터 9장까지가 각각의 대통령을 다루고 있다. 보통 20쪽에서 30쪽 가량의 분량인데, 가장 짧은

 

장은 전두환 대통령을 다룬 10쪽의 4장이며 가장 긴 장은 노무현 대통령을 다룬 38쪽의 7장이다.

 

 

 

각 장은 다시 세 개의 소챕터로 나뉘는데, 책에서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소챕터는 대체로 '그 대통령

 

정권이 갖는 의미', '그 정권의 공', '그 정권의 과'로 구분되어 있는 듯 하다. (노무현 대통령 이후로는 이 구

 

분이 엄밀하게 지켜지지는 않는다. 아울러 세 개의 소챕터라는 기준의 예외는 공이 빠지고 평가와 과만 있는 4

 

장 전두환 대통령이다.) 이 소챕터의 제목만 읽어봐도 -세 명이 파악하는- 한국 현대사의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기 때문에, 책 목차를 이 독후감의 댓글로 첨부하려 한다.

 

 

 

윤여준이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을 높게 평하거나, 이상돈이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공로를 인정하거나, 이철희

 

가 김대중의 전략적 면모를 재조명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평이다. 똑같이, 윤여준이 노무현의 '뺄셈 정치

 

'를 지적하거나, 이상돈이 DJP연합의 정략성을 비판하거나, 이철희가 박근혜의 불통을 거론하는 것도 놀랍지 않

 

다.

 

 

 

러나 윤여준이 김대중의 탁월한 식견을 칭찬하는 한편 이회창의 반개혁적 면모를 공개하는 장면, 이상돈이

 

노무현의 상대방에 대한 관용을 인정하는 한편 박근혜 정부 임기 1년에 대해 혹독한 점수를 내리는 장면, 이

 

철희가 이승만의 정치력이 김구보다 위였다고 평가하는 한편 노무현 정부의 아젠다 세팅 능력을 비판하는

 

장면 등은 무척 신선했다. 특히 여기에 이 패널 조합의 특장점이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흥미로운 것은 토론 과정에서 합의하기도 하고 대립하기도 하는 세 인물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공과이다.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것은 유신 전 박정희가 이룬 성과, 노태우의 북방외교, 김영삼의 하나회 숙청과 금융실명

 

제, 김대중의 IMF극복 등이다. 반대로 입을 모아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이승만의 권력욕, 박정희의 유신, 김영

 

삼의 IMF, 김대중의 측근 비리 등이다. 이렇게 한 명의 대통령이 공이든 과든 대체로 확실한 명암을 갖는 한편,

 

의미와 장단점을 논하는 데 있어 일관되게 부정적 평가를 받는 두 대통령도 있다. 각각 해당 장의 소챕터 제목으

 

로 문장을 만들어 보자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며 '업적은 없고 후유증은 큰' 전두환 대통령과, '건설사 CEO

 

스러웠'으며 '미디어법, 4대강, 대기업 편중'의 과오를 저질렀고 결국 '최악의 경제정책, 최악의 공공부채'를 남

 

긴 이명박 대통령이다.

 

 

 

각각의 대통령에 대한 9개의 장이 끝나고 나면 시점을 한국사회로 옮겨 문제점과 대안을 논해 본 10장 '미래를

 

말하자'와 11장 '지금 선 이 자리'가 시작된다. 여기에서는 정치 구조와 경제 구조의 개혁 방향을 토론하고 향후

 

크게 성장할 정치 인물들을 평가하며 박근혜 정부 하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총평한다.

 

 

 

정리하자. 먼저 장점부터. 하나. 역대 대통령이 집권 순서대로 호명되며 그 공과가 평론의 형태로 드러나기 때문

 

에 한국 현대사에 처음 접근하는 사람에게 거칠게나마 큰 그림을 그리는데 아주 유효할 것이다. 둘. 어떤 형태로

 

든 권력의 최정상에 닿아 본 이들의 '뒷담화'가 섞여 있어 정보의 가치가 높다. 셋. 대담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읽기가 편하다. 넷. 억지 주장을 펴지 않는 패널들이기 때문에 모범적인 토론을 공부하는 데 좋은 참고서가 되어

 

준다.

 

 

 

단점은 장점을 그대로 뒤집은 데서 나오는 것이 많다. 하나. 강연이 아니고 '알 만큼 아는 사람들'끼리 나누는 얘

 

기라서, 평가의 논거로 사용되는 인물, 사건에 대한 정보가 따로 주어지지 않는다. 현대사의 굵직한 정보들을 미

 

리 알고 있지 않다면 어려운 독서가 될 수 있다. 둘. 언급한 것처럼 어떤 형태로든 권력에 맞닿아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 본인이 특히 활약했던 시기의 이야기가 나오면 다소간 감정적이거나 양보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보

 

일 때도 있다. 셋. 대담의 녹취록 형식이라 막상 읽어보면 분량이 그리 길지 않다. 정리된 글이 아니라 발언한 것

 

을 받아쓴 것이라 입말체가 들어가 있기도 하고, 발언자가 바뀔 때마다 한 줄씩 떼어서이기도 하다. 넷. 억지 주

 

장을 하지도 않지만 강한 반대를 하는 장면도 거의 없다. 하나하나의 주제를 놓고 하는 끝장토론이 아니고 정해

 

진 시간 내에 9명을 다루어야 하는, 현실적 한계를 갖는 토론이라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총평.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기 때문에 독자가 독서의 목적만 확실히 정해두고 읽기 시작하면 확실한 성과를 거

 

둘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경험을 풍부하게 갖고 있고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패널들의 발

 

언을 접하는 것 또한 여러 책에서 만나기 어려운 특장점이다. 각 패널들의 팬인 독자나 약간 깊이 있는 현대사

 

개괄서를 원하는 독자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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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본문에서 언급한, 이 책의 목차를 따서 붙인다.


    1. 이승만 대통령
    초대대통령 이승만을 말하다
    부인이 한국인이기만 했어도
    불행이 시작되다

    2.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 그 선연한 빛과 그림자
    유신, 전과 후
    유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다

    3. 전두환 대통령
    태어나지 말았어야
    업적은 없고 후유증은 크다

    4. 노태우 대통령
    민주화의 가교/물통령
    북방정책, 통일정책은 분명한 공
    역사의 의미를 읽어라

    5. 김영삼 대통령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금융실명제, 하나회 척결로 박수 받고
    씻을 수 없는 과오, IMF

    6. 김대중 대통령
    26년만에 당선된 집념의 사나이
    햇볕정책, IMF극복은 공
    게이트로 날이 저물다

    7. 노무현 대통령
    이회창이 진 선거일 뿐?
    개혁을 위해 준비해야할 것들
    ‘참여와 평등’의 가치를 심다

    8. 이명박 대통령
    건설사 CEO스러운
    미디어법, 4대강, 대기업 편중, 그리고
    최악의 경제정책, 최악의 공공부채

    9. 박근혜 대통령
    야당이라는 인식으로 당선?
    변했나, 원래 그랬나
    변화는 가능한가

    10. 미래를 말하자
    개헌은 가능한가
    대한민국 재구성이 필요하다!
    이 사람을 주목하라

    11. 지금 선 이 자리
    다시 이곳과 현재를 말하다
    뭔가 변하고 있다
    윤여준, 안철수의 새정추로

    윤여준·이상돈·이철희 인터뷰

    2014.05.07 19:5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재밌는 조합이네요 윤여준, 이상돈, 이철희라니.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서 언제까지 대통령 개인의 한계로 국가가 흔들흔들 대는 걸 지켜봐야 하는지 걱정됩니다. 여담이지만 아마 MB가 2년만 더 해먹었으면 전두환만큼 분량이 적어지지 않았을가 싶습니다.

    2014.05.10 15:0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네. 세 사람은 공히 그 분을 너무 싫어해서, 2년이라는 시간을 더 같이 보냈더라면 정말 한 쪽 분량만큼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2014.05.11 04:43 신고 [ ADDR : EDIT/ DEL ]

독서일지2014.04.25 23:38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이철희 씨의 신작. 연구소나 저자의 이름이 낯설다 할지라도 사진을 보면 '아, <썰전>

 

서 강용석 맞은편에 앉은 그 아저씨' 할거다. 부제는 '알아서 기지 맙시다. 담벼락에 욕이라도 합시다.'.

 

 

 

책은 총 2부 4장으로 나뉜다.

 

1부는 주로 '리더급 정치인'에 관한 인물 평론이다. 먼저 1장에서는 '진보' 진영을 다룬다. 전임 대통령인 김대중

 

과 노무현에 대한 분석이 먼저 나오고, 뒤이어 현재 야권의 대선 후보급 정치인 3명을 언급한다. 재미있는 것은

 

지난 대선에서 후보로 경합을 벌였던 안철수, 문재인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먼저 호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2

 

장에서는 '보수' 진영의 인물들을 다룬다. 전임 대통령인 이명박과 현 대통령인 박근혜에 대한 분석이 나오고,

 

이어서 현 정부의 시스템을 관장하고 있는 김기춘 비서실장을 언급한 뒤, '차기권력'의 자리에 가장 유력한 한

 

사람으로 김무성 의원을 해부한다.

 

2부에는 3장과 4장에 걸쳐 한국정치의 문제점과 제언, 대안이 실려있는데, 그 내용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아 다소 아쉽다.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문제는 정당정치의 중요성, 지역주의의 폐해, 부활하는 관료

 

주의, 정언유착, 지금 필요한 리더쉽 등등이다. 

 

 

 

오늘의 독후감은 그리 길지 않을 것 같다. 일단 책장을 덮고 가장 먼저 든, 다소간 사적인 독후감부터. 썩 신선하

 

지 않다. 나는 개인적인 관심을 갖고 있어 정치/시사 분야의 도서, 논문, 기사, 팟캐스트 방송 등을 접하는 데 여

 

가 시간의 대부분을 쓰고 있다. 하지만 그런 쪽에 나보다 관심이 덜 있거나 시간을 덜 투자하는 이라 할지라도,

 

책날개의 소개에 나오듯 '지난 대선 정국에서 가장 많은 방송 출연 횟수를 기록한 바 있는 시사 평론가'인 이철

 

희와 그의 주장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 평론계에서 가장 명성 높고 영향력

 

큰 이 가운데 한 명이므로 그의 의견은 거의 모든 사안마다 지면과 방송을 통해 자세히 발표되고, 또 언론 등에

 

의해 수차례 재확산된다. 이런 다종한 루트를 통해 이미 대강의 내용을 접한 바 있는데도 활자로 굳이 다시 접하

 

는 건, 좀 더 깊거나 새로운 분석을 원했던 독자에게나 '<썰전>의 귀여운 이 소장님'을 상상하며 책을 집어든 독

 

자에게나 큰 만족감을 주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애석하지만 이건 유명 평론가가 내는 평론집의 필연적인 한계

 

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 책의 내용에 깊이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진보 계열의 평론가' 들이 지난 정권부터 시작해

 

하나둘씩 방송가에서 퇴출되고 지금은 출판이나 팟캐스트에서 암중모색하고 잇는 한 때, 공중파는 물론 종합편

 

성채널, 그리고 퇴근길 라디오에서까지 이철희가 종횡무진으로 활약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의 화술에

 

허허실실의 전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을 '박정희의 유산을 날로 받은

 

상속자'로 폄하하지도 않고, 문재인 의원을 '노무현 정신의 현현자'로 치켜세우지도 않는다. 독재 정권에 저항하

 

고 지역주의 조장에 분노하고 부당한 대통령 탄핵에 절망했던 이라면 같은 하늘을 이고 싶지도 않을 김기춘 비

 

서실장이라 하더라도 그가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어떤 정책을 냈다면 이철희는 그 정책에 한정해 분

 

명히 칭찬을 한다. 젊은 시절 민주화 운동과 국민 주권 실현의 전위에서 싸웠던 투사라 할지라도 그가 국회의원

 

이 되어 자리 보전이나 계파 형성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면 이철희는 실명을 들어 비판을 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분노와 저주의 목소리가 오가는 말의 전장에서 '여유'와 '소통'의 자세를 갖추었다는 인상을 얻었으며 나아가 평

 

론가서는 최대의 찬사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공정하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그런데 작심하고 싸우는 사람들이

 

많은 중에 상대방을 인정하면서도 조곤조곤 맞는 말을 하는 그의 자세가 꼭 모든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본질보다는 전략을 앞세우는 '화술꾼'으로 폄하하는 이도 있고, 뼈가 없다고 비난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는 보다 분명한 자기 목소리가 들어가 있다. 특히 인물의 분석이나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점으로

 

시하는 분야를 살펴보면 그가 고민하고 탐구해온 바와 지향하는 방향이 선연하게 드러난다. (사실 앞 문단에

 

서 소개한 '평론가 이철희의 특성'은 대체로 MBC <100분 토론>이나 JTBC <썰전> 정도만을 통해 그를 접한 이

 

들이 갖는 인상에 지나지 않는다. 프레시안에서 진행하고 있는 <이철희의 이쑤시개>나 TBS에서 방송 중인 <퇴

 

근길 이철희입니다>를 들어보면 때로 허지웅 뺨치게 시니컬한 지경에까지 이르는 그의 날카로움과 냉철함을 한

 

껏 맛볼 수 있다.)

 

 

 

묶어서 다시 한 번 총평. 나는 사실 '이철희 빠'에 가깝기 때문에 아무러나 즐겁게 읽었다. 하지만 위에서 지적한

 

바를 읽고 우려의 마음이 드신 분이라면 굳이 이 책의 독서를 강권하지는 않겠다. 특히 1부 인물평론 같은 경우

 

는, 한국 정치의 역동성을 고려해 볼 때 3년 후인 다음 대선 쯤에 가면 이미 다시 읽어야 할 필요가 크지 않은 글

 

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정치의 주요한 문제점과 몇몇 제언 등을 포함한 2부는 정치에 막 관심을 갖게 된 이

 

들이 읽어보면 좋을 듯 싶다.

 

 

 

추가로 덧붙이는 아쉬운 점 하나. 일단 글은 쉽게 읽힌다. 전문 분야에 관한 글을 쉽게 쓰는 것은 보통 내공이 아

 

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철희의 '말'은 쉽게 이해되는 수준을 넘어 강렬한 재미나 큰

 

감동, 카타르시스를 주는 경지에 르러 있다. 무의식 중에 그 경지를 기대하고 있었던 탓에 글로 쓰여진 이 책

 

의 독서가 덜 재미있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쉬운 점 둘. 인물평론과 사회평론보다 내가 정말로 읽고 싶은 이철희의 저작은 화술과 정치에 있어서의 전략

 

에 관한 것이다. 여러 사람과 함께 한 토의의 형식이거나 혹은 외국의 참모들이 보여준 전략을 케이스 스터디한

 

저작들은 있었지만,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전략이나 혹은 지금 여기에 꼭 필요한 전략을 제시한 것은 아직 없었

 

다. 사회인으로서의 마지막 목표로 '2017년 대선 전략가'를 꿈꾸는 이이자 '가장 토론을 잘 하는 패널' 중 하나

 

로 꼽힌 그가 직접 말해 주는 자기 이야기가 듣고 싶은 것이다.

 

방대한 정치전략을 여기서 거론하기는 어렵고, 보다 범위를 좁혀 화술에 관해서 그의 전략의 한 예를 들자면. 평

 

소 <100분 토론>을 보면서 내가 의문점을 가졌던 것은 그의 '웃음'이었다. 상대방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 때,

 

'말씀하신 것 가운데 이런이런 것은 분명히 일리가 있습니다. 다만...'이라고 발언하는 것은 무작정 싸울 것이 아

 

니라 일단 줄 건 주고 받을 걸 확실히 받아오자는 그의 허허실실 전략이다. 그 뿐 아니라 많은 평론가, 정치인이

 

취하고 있는 효과적인 전략이기도 하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들으면서도 해

 

맑게 띄고 있는 그 미소. <이철희의 이쑤시개>나 <퇴근길 이철희입니다>를 통해 내가 알고 있는 이철희라면, 속

 

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썩소'도 아니고, 저렇게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이라니. 와

 

중 얼마 전 <딴지일보>와 함께 한 인터뷰를 읽고 마침내 그 의문이 풀렸다. 부분 인용을 해 보자.

 

 

 

 

김창규 (이하 김): <썰전> 때문에 일반 사람들 머리 속에 강용석의 반대는 이철희, 이철희의 반대는 강용석. 이런 구도가 있잖아요. 그런데 강용석의 반대는 절대 이철희가 아닌데?

이철희 (이하 이): 강용석 류가 내 카운터파트라고 한다면 그건 좀 불만이지. 대중적인 평가를 떠나서. 난 그건 아니라고 봐. 더 멋진 보수와 맞짱 뜨고 싶어.

김: 그럼 누가 반대편에 앉아 있음 좋겠어요?

이: TV토론 했던 사람 중에 젤 상대하기 힘들었던 사람은 이혜훈이에요. 잘해. 테크닉도 좋고 관점이 좋아. 쉽지 않은 사람이야.

김: 상대로 인정이 된다?

이: 난 그런 과들은 해 볼 만해요. 막 투지가 생겨. 함 붙어보자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급도 안 되는데 주장만 내세우는 사람 있잖아.

김: XXX같이?

이: 그런 사람은 그냥 웃어버리면 돼. 한 번 해맑게 웃고 한 번 비릿하게 웃으면 끝나. 사람들이 다 평가해. 논박할 것도 없어요.

 

 

 

 

'한 번 해맑게, 한 번 비릿하게'. 풀어 설명하자면, '무슨 말을 하든 일단 들어줄게'라고 포용력을 보여 일단 전략

 

적 우위에 올라선 뒤, '네가 하는 말이 그렇지 뭐'나 '여러분,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다 들으셨죠?'라고 승부를 

 

끝내버린다는 것이다. 나는 한 번 칼을 휘두르지도 않았는데 상대가 제풀에 힘이 빠져 쓰러져버린 셈이다. '싸우

 

지 않고 이긴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전략을 체득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당대 일급으로 활용

 

하고 있는 사람이 쓴 전략의 비술서. 돈 주고 열 권이라도 사고 싶다. 기회를 봐서 그가 진행하는 팟캐스트의 게

 

시판이나 관심 있어 할 출판사에 건의 메일이라도 한 번 보내봐야 하겠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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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위에서 인용한 인터뷰의 전문이 궁금한 분도 계실 것 같고 출처를 정확히 밝혀두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해서 원문의 주소를 적어둔다.

    http://www.ddanzi.com/ddanziNews/2327205


    책과 겹치는 부분이 꽤 있으니, 책과 인터뷰를 둘 다 보시면 '좋은 글, 더 좋은 말'이라는 내 감상에 공감은 못 하셔도 이해는 하실 수 있을 것이다.

    2014.04.25 23:5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신사동 고양이

    고려대, 이철희 논문 표절로 판정

    2014.07.18 15:35 [ ADDR : EDIT/ DEL : REPLY ]
    • 나는 이철희 씨에게 도덕적 문제가 있음에도 계속해서 공적 활동을 해주어야 한다고 우길 정도로 그를 좋아하지는 않는데.


      해당 기사에 소개된 고려대의 공식 답변을 보면.

      “(이철희 씨 석사논문에서) 다른 저작에 사용된 ’도식‘ 등의 인용없는 사용은(논문의 56쪽, 59쪽) 표절에 관한 규정의 위반 사항에 해당될 수 있으므로, 필요하다면 이 부분에 대한 확인이 있어야할 것으로 보인다”

      “논문의 필자가 논문작성법을 위시한 각주처리 방식 등에 소홀하였거나 이에 대한 훈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논문을 집필한 것으로 보인다”

      라는 의견도 있으나,

      “표절로 의심받는 자료(허종호 등)에 대해 논문작성자가 인용부분과 이에 대한 구체적인 쪽수까지 각주 등에 기재하였다는 점”

      “논문의 필자가 사용한 자료가 당시 비공개 자료 등으로 분류될 수 있어 표절 여부에 관한 판단은 최종 확인을 거쳐야 할 것”

      이라는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는데, '고려대, 이철희 표절 공식 판정'이라는 기사 제목이 타당한 것인지는 의문.


      아울러,


      고대에 논문 표절 여부 문의는 연구진실성검증센터에서. 고대의 답변 단독 보도는 미디어워치에서. 해당 기사에 인용된 전문가 의견은 변희재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 회장께서.

      서로 다른 세 주체에서 정말 고생 많으셨다.

      2014.07.18 21:25 신고 [ ADDR : EDIT/ DEL ]

독서일지2014.04.24 10:39

 

 

 

 

'청년논객' 노정태의 2014년 신작.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에 '노정태의 논객시대'라는 코너로 진행했던 내용

 

을 묶어 한 권으로 출간했다. 부제는 '인문, 사회 담론의 전성기를 수놓은 진보 논객 총정리'.

 

 

 

정리부터 하고 넘어가자.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이 책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대해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의 결과물이다. '어떻게 이렇게'가 아니라 '어쩌다 이렇게'라는 표현에서, '지금'은 매우 부

 

정적이거나 비극적인 상황이며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긍정적이었던 '옛날'이 있었다는 저자의 인식을 읽을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지금'과 '옛날'이 언제였는지를 적시하는데 별다른 망설임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오직 SNS에서만 뜨거웠던,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었던 2012년 대선의 과정과 결과가 적나라하게 보여주듯이, 우리는 이미 죽어버렸고 열정이 식어가는 사회 속에서 간신히 숨만 쉬면서 살아가고 있다. (p 29)

 

 

...'그때'(따옴표는 내가 강조)는 상황이 이렇지 않았다. 분당 이전의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던 나는, 그 진보정당이 국회에서 10석을 차지하던 짜릿한 순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1997년에는 역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고, 2002년에는 몇 번이나 낙선할 줄 알면서도 지역갈등 구도에 정면도전한 어떤 신념의 투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을 사용하던 한국인들은 온 국민의 숙원이었던 월드컵 16강을 넘어 4강에 오르는 위업을 목격했고, 1인당 GDP는 2만 불을 넘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인 1997년이 한 차례 언급되고 있긴 하지만, 진보 정당의 국회 10석 차지, 노무현의 당선,

 

월드컵 4강, GDP 2만 불 등의 다른 모든 사건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지점은 2002년이다. 조금 더 범박하게

 

말하자면 노무현의 시대라고 해도 좋다. 그러니까 저자에게 있어 한국 현대사의 '긍정적' 최고점은 2002년, 혹

 

은 노무현 시대의 출발점이다. '진보' 정권이 '신념의 사'를 후보로 하여 재집권에 성공하였고, 사회 인프라는

 

명백한 발전 도상에 있었으며, 문화와 경제에 걸쳐 유미한 가치들을 성취해 냈던 한 때이다.

 

그러나 10년 후, IMF 위기 이후 꾸준히 이어져 온 왜곡된 사회 구조는 경제 뿐 아니라 정신, 사상적 측면에서까

 

지 그 구성원들을 적극적으로 압박하게 되었고, 보수 정권은 두 차례의 집권에 성공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그

 

때 그 시절'을 이끌었던 빛나는 담론들은 제한된 공간에서만 맹위를 떨친 뒤 사라져 버렸다.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이렇다. 아니, 2002년에는 그렇게 좋았는데, 그동안 뭐가 어떻게 됐길래 이런 2012년이 온

 

거야?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여 사건을 순서대로 재구해도 좋고, '강준만 식'으로 연표를 짤 수도 있다. 그러나 노정태

 

는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사건에 개입하고 발언해야만 했던' 여러 논객들의 이력과 전술을 교직하는 편이 지난

 

십 수 년간을 '입체적이고 총체적으로' 되살리는 데 가장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한국 사회가 '이렇게' 되어온 과

 

정 속에서 그 때 그 때마다 논객들이 글과 책의 형태로 내놓았던 발언들을 찾아내어 교차시킨다, 는 것을 구체적

 

인 방법론으로 택한 것이다. 평론의 대상이 되는 논객은 총 9명이다. 목차의 순서에 따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강준만. 진중권. 유시민. 박노자. 우석훈. 김규항. 김어준. 홍세화. 고종석.

 

 

 

여기까지 정리해 놓고 한 차례 쉬도록 하자. 한윤형이나 박가분 등의 이름과 얽어 노정태를 이미 알고 있다면 이

 

야기는 빠르다. 이들은 현재 진보 계열의 언론-평론가에서 손꼽히는 30대 초중반의 필진들이다. 몰랐더라도, 유

 

시민이나 김어준부터 출발하여 김규항과 박노자까지를 '우리'의 논객이라고 칭하는 데에서 그 정치적 당파성을

 

찾기란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명백히 2014년 현재 위기에 놓였다고 할 수 있는 진보-개혁

 

세력과, 좌절감과 불안함을 느끼고 있는 그 지지자들의 시선에서 쓰여진 결과물이다. 따라서 그 시선에 동의하

 

는 독자라면, 말하자면 스스로가 노정태의 '우리'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여기는 독자라면, 이 시도와 결

 

과가 통째로 무미해 보이거나 불쾌할 수 있다. 이것이 본문을 설명하기도 전에 정리에 정리를 거듭한 이유이

 

다. 이 책은 '어느 한 편'의 이야기이며 그것을 굳이 숨기지도 않는다. 여기에 시비를 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쓸데없는 논쟁이 벌어질 여지를 줄였으니 이제 다시 책으로 돌아가기로 하자. 위에서 말한 것처럼 노정태에게

 

있어 현재란 '실패'한 역사이기 때문에, 그 과정과 영향을 주고받은 논객들의 현재 좌표 또한 추락의 선상에 있

 

는 것으로 파악된다. 쉽게 말하자면, '이런 사람들까지 이런 실패를 할 정도였으니', 혹은 '이런 사람들이 이런

 

실패를 했으니',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 꼭지마다의 주제는 '그가 어떻게 실패했나', 혹은 적어도 '왜 상승하지 못했나'를 밝히는 데에 놓여

 

있다. 구체적으로는 해당 논객의 1997년부터 2014년까지의 이력 가운데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주요한 변곡

 

점들을 소개하고, 그에 따른 말하기/글쓰기의 전략의 생성, 변화를 분석한 뒤, 그 영향을 고찰하는 식으로 구성

 

된다. 무슨 일을 겪었으며, 그래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됐으며, 어떤 식으로 말/글을 내뱉었나, 그리고 그 말과 글

 

은 어떤 영향을 끼쳤나, 라는 것이다.

 

 

 

노정태의 시선에 동의하거나 공감한다면, 인물과 그 이력의 선택이 대체로 효율적이라는 것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과연 저 이름들과 그들의 언행은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강준만의 실명비판, 유시민의 지식소

 

매와 현실정치 참여, 박노자의 '냉소주의'나 김어준의 '선동', 그리고 고종석의 절필 선언 등은 분명 해당 시기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적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노정태에게 동의하거나 공감한다면', 바로 여기에 이면의 칼날이 있다. 거듭 말하는 바와 같이 저 인물

 

과 그 이력이 한 단면을 넘어 사회 전체에 분명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으며 또한 재구해 내어 다시 곱씹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노정태의 '우리'에 불과하다. 본래부터 '우리'가 아니었던 이들만 해도 사실은 현대사를

 

관통해 늘 다수였을일지도 모를 일이며, 적어도 노정태가 파악하는 '최고점'에 한정하여 '우리'였던 이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수가 여전히 '우리'로 남아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책은) 내가 나의 20대를 바라

 

보며 쓴 책이기도 한 셈'이라는 서문의 한 줄을 흘려읽을 수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이 말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보자면, 노정태의 '우리'란 실은 노정태 머리 속의 '20대의 나'를 수없이 복제한 가상의 집단일 수도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논객시대'를 재구해 내어 현재사를 다시 '현재화'하겠다는 이 책의 기획의도는 그 혼자나 혹

 

은 그를 둘러싼 소수집단의 욕망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인가. 한 쪽에 속한 정치적 입장을 함부로 '우리'라고 표현한 경솔함, 폭력성을 걷어내고 나

 

면, 청년 논객 한 명이 자기의 시선으로 본 한국사회 이야기를 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라는 반론, 있을 수 있다.

 

 

 

나로 한정해 말하자면 위의 문제점을 딱히 문제점으로 여기지 않는다. 저자인 노정태와 생물학적 나이가 비슷한

 

덕에 나는 그와 비슷한 관점에서 현대사를 겪었다. 대통령과 왕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을 때쯤에는 이미 문민 정

 

부가 들어서 있었고, 청소년기에 김대중의 집권과 6.15 공동선언을 목도하였으며, -실제로는 응원 외에 딱히 한

 

일도 없었지만- 세계를 놀라게 한 월드컵 4강의 '주역'이었고, 지지율 2%의 대선 후보를 당선시켰다. '우리'에게

 

있어 개인과 세계(사회, 구조)의 거리는 그 어떤 세대보다 가까웠다. 개인이 마음을 먹고 집단을 이루면 개인을

 

둘러싼 세계는 반드시 변했다. '우리'는 그 물적 증거를 몇 개나 손에 쥐었다.

 

때문에, 개인과 세계와의 거리가 다시 현격하게 멀어져 버린 지금을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까지'로 여기게 된

 

은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논객 개개인에 대한 노정태의 평론 중 몇 개의 말단에는 동의하지 않지

 

만, 그 주된 문제의식에는 격심하게 공감한다.

 

 

 

공감하면 즐겁게 읽으면 될 것을 굳이 문제점을 찾으려 하게 된 것은 근래에 읽은 두 권의 책 때문일 것이다. 얼

 

마 전에 독후감을 올린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와 아직 독후감을 올리지 않은 권혁태의 <일본 전

 

후의 붕괴>이다. 각기 한국과 일본의 청년 세대를 다루고 있지만 그 안에 보이는 경향성 가운데에는 섬뜩하게

 

닮은 장면들이 있다.

 

'청년 세대'라고 범박하게 칭했지만,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거대 서사'가 지나가고 난 다음에 나고 자란 10대,

 

20대를 가리킨다. 이들은 더이상 개인이 세계를 변혁하거나 뒤엎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혹은 아예

 

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다. 세계는 원래 그렇다. 그래서 이들은 진보-개혁 세력이 입만 열면 내세우는 '전후 평

 

화'나 '민주화', '5월 광주' 따위의 입바른 소리에 '질려 버렸다'. 그건 내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거니와

 

'지겹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피해이기까지 하다. 그 소리를 듣고 앉아있을 바엔 남들 다 비정규직으로 나가떨어

 

지더라도 나만은 살아남을 수 있도록 '자기계발'에 매진하거나, 혹은 오타쿠나 히키코모리, 니트 족이 되어 자신

 

만의 마이크로 월드로 침잠한다. 세계가 더 이상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회학적으로 진실로 판명된다면, 이들

 

의 행동은 '합리적이고 현명한' 것이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좀 싸가지 없거나 한심하긴 하지만, 남한테 피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뭐 어때. 라는 의견. 있을 수 있다. 문제

 

는 그러한 경향성의 극단에서 분명한 연관성을 갖는 위험한 현상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일베'나 '재특회'로 상징되는 병적 증후들이다. 이들은 개인과 세계와의 연결을 차단하고 자신만의 내

 

면으로 침잠하는 데에 이르렀다가, 그 외로움을 달래고 자기를 인정받기 위해 한 발 나아가 '천황'이나 '독재 정

 

권'과 같은 위악적 상징들을 선택하기 시작한다. 민주화니, 전후 평화니, 외국인과의 평화로운 공존이니, 지겹

 

다. 결국 너희들 잘났다는 소리이고, 나한테는 아무 득도 없는 지겨운 말 아니냐. 나는 너희가 싫고, 너희를 조롱

 

하기 위해서라도 정확히 그 반대되는 지점을 일부러 택할란다. 나는 약자를 괴롭힌다는 평을 듣든 악마의 길을

 

택했다는 평을 듣든 그를 통해 즐거움을 느끼고 연대감과 소속감을 확립하고 나 자신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들이 바로, 노정태와 내가 속해 있는 '우리', 그러니까 '논객시대' 등의 고유한 이름을 갖고 호칭될 수 있는 거

 

대서사의 마지막 세대 바로 뒤에 오는 세대들이다. 그래서 위험하다. 재특회나 보수 우익이 '전후'의 대척점을

 

찾아 둥지를 틀고, 일베가 '안티 - 민주화'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했듯이, 고작 몇 살 차이이긴 하지만 형 뻘인

 

'우리'가 '우리 때엔 진중권이 날라다녔지', '나꼼수 집회 때 십만 명이 모였었어'라며 으스대고, '너넨 씨발 젊은

 

놈들이 그런 것도 없냐?' 라고 몰아부칠 때,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물론 그렇게 '20대 개새끼론'에 몰려버린 이들이 반드시 일베나 재특회로 흘러들어가 평온을 찾게 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이전에는 열심히 참여하지 않았던 투표에 한 번쯤 나가볼까 하는 생각을 하는 이도 있

 

을 수 있고, 분명한 동기를 갖고 진지하게 현대사 공부에 매진하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는 변하

 

지 않는다 - 나는 그걸 확실히 알고 있다 - 그런데 저 꼰대는 내 판단과 삶의 방식을 조롱하며 자신의 오래 전 훈

 

장을 갖고 으스대기만 한다'는 의식의 흐름 쪽이 훨씬 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나는 우려하는 것이다. '재

 

수 없으니까 피하자' 정도라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뭐가 됐든 큰 거 한 방 준비해서 저 새끼한테 반격하자'

 

가 나와도, 이상할 것이 없다.

 

 

 

관련하여 권혁태의 책에서 읽었던 인상적인 언급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1995년, 일본에는 '옴 진리

 

교 사건'이라는 테러 사건이 있었다. '옴 진리교'는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1984년 일으킨 신흥종교단

 

체로, '옴 진리교 사건'은 이 종교단체가 1995년 3월 20일 도쿄 지하철에 사린가스를 살포해 스물아홉 명이 사

 

망하고 6천여 명이 부상을 당한 사건을 가리킨다. 주동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들의 부모 세대는 물질만 주고 정신은 교육해주지 않았다. 우리는 공허함을 느꼈다. 하지만 '옴 진리교'와

 

'전통적 일본 공동체(여기에서는 천황을 상징으로 하는 극우적 내셔널리즘을 가리킨다)'는 우리의 정신이 기댈

 

곳을 주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거대 서사를 잃어버린 세대'를 중심으로 하여 이들의 죄를 묻지 않거나, 나아가 옹호, 동경

 

하는 발언들이 나왔다는 것이다. '옴 진리교를 악으로 규정하고 뿌리를 뽑으려는 '사회의 정의' 쪽에 더 큰 공포

 

를 느꼈다'든지, '옴진리교 신자들에게는 나에게는 없는 삶의 의미가 있는 것 같아 열광했다'든지 하는 것이 그

 

것이다. 이 발언들에서 선악의 경계는 이미 보이지 않는다. 지긋지긋한 꼰대들의 거대서사에 카운터로 날릴 '큰

 

한 방'이 있었을 뿐이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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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늘은 독후감을 통해 최근의 어지러운 생각을 한 차례 정리하는 데 주력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부쳐, 책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적지 못했다. 노정태의 필력은 이미 정평이 난 것이고, 언급, 비판되는 인물과 역사 또한 그가 많은 애정을 갖고 있는, 혹은 있었던 것이므로 깊이도 웅숭하다. 진보의 입장에서 2000년대를 추억하거나 비판적으로 되돌아보고 싶은 이라면 대체로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2014.04.24 10:4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독서일지2013.06.07 01:03

 

 

 

 

 

<독서일지> 카테고리에 올리기 위해 독후감을 쓸 때에는,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누구를 위해 쓰고 있는가'라는

 

고민을 갖는다. 나를 위한 것인가, 남을 위한 것인가. 나를 위한다 하더라도 공부를 위해 필요한 지식을 정리해

 

두는 학생으로서의 나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독서의 과정에서 느꼈던 감흥을 어떤 형태로든 표현하고 싶어하는

 

독자로서의 나를 위한 것인가. 남을 위한다 하더라도, 내 독후감에 감흥을 받아 그 책을 구해 읽고 또 언젠가는

 

그 책에 대해 개인적으로 소통할 수도 있는 동지(同志)를 위해서인가, 아니면 저 사람은 저런 많은 종류의 책들

 

을 읽는구나라고 찬탄해 줄 관객을 위해서인가. 글을 쓰는 '자세', 혹은 '위치'에 대한 생각이 끝내 확립되지 못

 

한 채로 마치는 독후감은 대개 다시 읽어봐도 조잡할 때가 많다.

 

 

 

 

오늘 쓸 독후감은 철저히 학생이자 시민인 나를 위한 글이다. 읽는 분들을 위한 배려는 적을 것이나 나 자신으로

 

는 이때까지 썼던 어떤 독후감보다 더 많이 고쳐 읽게 될 글일 것이다. 독후감의 대상이 되는 책은 최장집 교수

 

와 그의 제자, 후배, 동지들의 논문을 묶은 <논쟁으로서의 민주주의>이다.

 

 

 

여러 학자들의 논문집이라고는 하지만, 총 4부 10장 가운데 서언 격인 1부와 결론 격인 4부를 포함해 3부 6장이

 

장집의 논문이고, 다른 네 명의 학자들은 3부에 한 장씩을 기고하였다. 최장집의 논문이 실린 '부'가 '한국 민

 

주주의의 기원과 특징', '민주주의를 둘러싼 갈등들'과 같이 명징한 주제의식을 보여주는 반면 다른 학자들의 논

 

문을 모은 3부의 제목이 '우리는 한국 정치의 문제를 어떻게 보나'와 같이 범박한 것만 보아도, 이 책의 구심점

 

이 최장집의 논의에 놓여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독서는 한층 더 시의성을 갖게 됐다. 대선 후 미국으로 떠났던 안철수 전 후보는 귀국하는 비행

 

기에서 최장집의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을 읽었노라고 밝힘으로써 그가 펼칠 정치적 행보의 성

 

격을 암시하였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4월 재보선을 통해 국회의원에 당선된 안철수 의원은 수 차례 직접 최 교

 

수를 찾아 자신의 정치적 활동의 일익을 담당해줄 것을 간청하였고, 5월 말 출범한 싱크탱크 '정책네트워크 내

 

일'의 이사장 직을 의뢰하였다. 

 

 

 

최장집 교수는 이사장 직을 수락하였다. '정책네트워크 내일'은 기본적으로 싱크탱크이지만 언젠가는 창당될 안

 

철수 신당의 구성에 핵심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 예측되는 조직이었고, 그런 중요한 조직의 이사장 자리에

 

최 교수를 모시기 위해 안철수 의원이 '십고초려'를 마다하지 않았다고도 알려진 터라, 이사장 취임 후에 이루어

 

질 그의 발언은 정치권 초미의 관심사인 안철수 신당의 향방을 점칠 수 있는 풍향계와 같았다.

 

 

 

당연히 언론의 관심이 비상하게 모였다. 최 이사장은 5월 말의 한 강연회에서 안철수 신당은 노동 문제 중심의

 

진보 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6월 초에 이루어진 한 세미나에서는 안철수 의원을 언급하지는 않았

 

지만 '중하층 소외계층의 사회경제적 생활을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한 정치·사회적 의제'라고 주장하면서 기존의

 

주장을 재확인하였다. 이와 같은 그의 주장은 전작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에서 이루어진 논의의

 

연장선 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자 더 크게는 그의 학문적 이력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안철수 의원은 개별 정책 단위에 집중할 것이며 진보냐 보수냐의 이념 성향을 확립하는 것에

 

는 주안점이 있지 않다고 완곡하게 선을 그었고, 특히 6월 초 세미나에서의 최 이사장의 발언에 대해서는 '노동

 

문제 등을 잘 대변해야 한다는 데는 생각이 같지만, 진보 정당은 아니다'라고 보다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하였

 

다. 해당 세미나에서는 안철수 의원이 대선 후보였을 당시 그의 국정자문위원으로 참가한 바 있었던 표학길 서

 

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안철수 현상을 편향된 진보의 시각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강하게 비

 

판하기도 했다. 이 독후감을 쓰고 있는 날은 해당 세미나가 이루어진 2013년 6월 3일로부터 4일 뒤인 6월 7일

 

인데, 이 '논쟁'은 그 이후로 정리되지 않았다. 표면적으로 정책 연구 조직의 수장이긴 하지만, 어쨌든 직간접적

 

으로 현 정국의 가장 큰 파랑 중 하나에 발을 담근 최 이사장에게 최초로 닥친 현실적 난관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때에 앞으로의 그의 행보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역시 과거의 연구 이력일 것이다. 이 책 <논쟁으로서의 민

 

주주의>에 실린 최장집의 6편의 논문들은 2006년에 쓰여진 한 편을 제외하고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의 최

 

근에 쓰여진 것들이다. 그 가운데에는 전작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과 비슷한 시기에 집필된 것

 

도 있다. 말하자면, '현재의 최장집', 혹은 '(현재의 최장집이 아니더라도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을 읽은 안철수가 기대한 모습의) 최장집'을 파악할 수 있는, 유효한 자료라는 것이다.

 

 

 

논문 가운데에는 4.19와 한국 민주주의를 논한 것처럼, 자체로는 대단히 의미 있으나 현재의 정국과 관련해 논

 

의하려면 깊은 분석을 요하는 것도 있다. 가치있는 일이겠지만 당장의 시간과 능력이 닿지 않는 일이라 그런 것

 

들은 일단 접어두고, 내용 중 특히 현재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부분을 발췌하여 싣기로 한다. 독자에게는

 

재미가 없을 것이며 내게는 수 차례 다시 읽어야 할 독후감이 될 것이라던 선언은 이 때문이다. 이 뒤로는 길든

 

말든 필요한만큼 본문을 발췌해 둘 것이고, 이후로 그의 정치적 언행들이 언론을 통해 전해질 때마다 학자로서

 

의 입장이 관철되고 있는지, 다음 행보는 어떻게 될지 등을 예측해 보는 자료로 삼으려 한다. 언젠가 등장할 안

 

철수 신당의 당헌에 그의 정치적 이상향이 얼마나 반영되었는가를 가늠하려 할 때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에서 밝힌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분이라면 똑같은 목적의 자료로 활용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이라면 이

 

쯤 읽으셔도 좋고, 아니면 책을 구해서 전문을 읽어 보셔도 좋겠다.

 

 

 

1. '진영'의 문제 (p 123 - 126)

 

...한국 사회의 정치적 대표 체계와 실재하는 사회경제적 균열 간의 괴리는 점점 심화되어 왔고, 그 결과 정당들은 사회경제적 문제를 풀어 나가는 데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좌, 우나 보수, 진보 뭐라고 부르든, 그간 그런 구분이 있었다면 그것은 친북이냐 반북이냐, "빨갱이"냐 "수구 꼴통"이냐, 친노냐 반노냐와 같이 역사적이고 정서적인 태도를 이데올로기화하는 것에 불과했다.

 

어찌되었든 이 구분은 그동안 갈등하는 두 세력의 안과 밖 모두에서 강한 적대 의식을 동반하며 사용되어 왔다. 그러다 보니 정작 중요한 기준에 있어서 두 세력 간의 유사성은 두드러지지 않았고, 정서적 차이만 과도하게 부각되는 일이 계속되었다. 앞에서 용산 사태와 세종시 문제를 이야기했지만, 두 이슈 모두에서 진보, 보수 정부 사이의 분명한 차이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산 참사에서 보듯 강한 분노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진보적이고, 그렇지 않으면 보수적이 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중략)

 

필자가 보기에, 각 진영의 성원들은 그저 말하기로 되어 있는 것을 말하고 보여 주기로 되어 있는 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강하다. 즉, 정치가 연기 내지 퍼포먼스 하듯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용산 참사에서는 분노하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분노하고, 세종시 문제에서 수정안을 반대해야 하기 때문에 반대하지만, 정작 재벌 건설 기업의 이익과 거대 개발 프로젝트 위주의 국가정책 사이의 오래된 결착 구조에 대한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이런 식의 진영 구분을 편의적으로 지위재positional goods로서의 보수와 지위재로서의 진보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는 각자의 진영 논리를 익히고 말하는 것이 공적 토론을 풍부하게 하는 데 유익하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진보적 지식인이나 보수적 지식인으로서의 위신과 지위를 갖게 만드는 그들만의 담론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략)

 

즉, 보수, 진보는 실제의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해 차이를 만들어 가는 새로운 경쟁의 틀을 만들지 않으면 정치의 언어만 격렬할 뿐 내용은 달라지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실제 보수, 진보 사이의 경쟁에서 성장 지상주의를 넘어 고용, 분배, 노동, 교육, 사회보장 등 자율적 시장경제가 다루기 어려운 영역에서 대안의 개척 가능성은 광범하게 열려 있다.

 

사회경제적 영역에서 새로운 경제 이념을 수용하고 거기에 사회적 시장 원리를 접맥하면서 정책 방향을 유연화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은 예상과 달리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 지금까지 기존의 지위적 보수, 진보의 대결은 분단과 전쟁의 경험을 끊임없이 불러들이면서 강한 적대 의식을 동반하는 민족문제를 중심축으로 했기 때문에 경직되고 격렬한 반면 실제 사회 구성원을 통합하는 기능은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문제 영역에서 중앙과 좌에 걸쳐 넓게 열려 있는 영역의 이슈가 정치에 들어온다면 사회 통합과 합의의 기반은 확대될 것이다.

 

 

 

 

2. '정당'의 역할과 '반정당관'의 패러독스 (p 147 - 149)

 

...정당은 개인의 생활 영역과 국가를 연결, 매개하는 중심적 정치기구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정당은 시민사회에서 시민의 의사를 대표하고 조직함으로써 보통 사람들에게 정치 생활의 공간을 열어 줄 뿐만 아니라, 국가 영역에서 통치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대안 정부alternative government로서의 역할을 한다. 요컨대 그 정치 에너지와 권력이 사회의 저변에서 창출되고 발원한다는 점에서 정당을 민주주의의 중심 제도라 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진보적 지식인과 운동가들은 어떤 공동체적 가치와 목적을 상정하고 그로부터 행위의 정당성을 도출해 냈다. 그 뿐만 아니라 공익을 이해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그것이 대중의 정치 참여와 민주적 절차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념 혹은 이론적 논증을 통해 사전에 결정될 수 있는 것으로 상정했다. "진보는 옳다"는 이들의 주장이 가능했던 것 역시 진보를 현실과는 관계없이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상정했기 때문이었다. 이 모든 것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엘리트주의적, 교조적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통 시민들이 체제의 중심적 행위자이자 주체가 되는 민주주의와 그동안 진보적 지식인들이 운동 과정을 통해 발전시켰던 민주주의에 대한 관념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존재하며 양자 사이에는 심각한 충돌이 일어난다.

 

(중략)

 

(일반 시민들이 체험하고 사는 실제 생활 영역의) 이익, 이익집단, 갈등은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고, 보통 사람들과 사회적 약자들은 정치가 발생하는 그 지점에서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자신들의 이익과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채널을 발견하려고 시도한다. 따라서 정치와 정당을 부정적으로 본다면, 그것은 이런 정치가 발생하는 최초의 지점이자 풀뿌리, 그 원천을 부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주의에서 반정치주의, 반정당관이 위험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중략)

 

오늘날 민주주의가 서있는 사회적, 도덕적 조건은 가치의 다원성, 진리의 다원성과 이들 간의 충돌을 전제한다. 따라서 이런 조건에서 하나의 가치, 하나의 목표를 지향하는 이론이나 사회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 점에서 민주주의란 다원적 가치와 이익이 모두에게 평등한 절차와 제도라는 틀을 통해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체제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절차적 정당성이 실질적 정당성보다 우월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진보적 지식인들이 발전시킨 변혁적 민주주의관에서 대중적 참여의 중심적 채널로서 정당이 기능할 수 있는 공간은 아주 협소하다. 이런 관점에서는 이익 갈등이 분출하고 권력이 충돌하는 사회 저변으로부터 합의를 도출하기가 어렵다. 또한 그런 민주주의관에서는 정당을 우회하거나 뛰어넘어 위로부터의 정치권력에 힘입은 개혁을 선호하기 쉽고, 그에 따라 지식인 엘리트들의 참여와 정책 투입 역할이 과도하게 커질 가능성이 있다. 나아가 이것은 위로부터 이루어지는 일거의 결정이 국가권력과 관료 기구를 통해 사회 전체에 집행되는 것을 정당화하는 부정적 효과를 낳는다.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정치의 중심 매커니즘은 정당이다. 따라서 정당 없이 또는 정당 밖에서 민주주의가 원활하게 작동한다는 것은 상상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발전은 정당 발전의 함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좋은 정당정부를 준비하기 위한 세 가지 제안 (p 348 - 349)

 

첫째, 의제설정에서 변화가 필요하다. 한국 정당정치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당이 사회경제적 문제를 다룰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야당이 특히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어떤 정부가 될 것인지를 준비한다는 것은 경제 운용에 대한 대안을 갖고자 노력한다는 것을 뜻한다. 야당도 유능하고 실력 있는 정부를 만들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여야 간 정치경쟁의 중심축을 이동시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가치와 열정이 격렬하게 충돌하고 타협이 어려워 대결의 정치를 불러오는 민족문제 내지 이념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부터, 협상과 타협이 가능한 부의 분배를 둘러싼 사회경제적 문제로 갈등 축을 이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집권 능력을 제고하기 위해 투입과 산출 측면에서 각각 당의 능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은 누구를 대표하나? 민주당이 허약한 가장 큰 이유는 사회경제적 기반에 구체적으로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데 있다. 당이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사회경제적 힘이 당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해 당사자 집단의 참여를 가능케 하는 투입 측면이 강화될 수 있도록 다양한 직능 대표 채널을 확대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와 동시에 당의 산출 측면의 능력이 또한 제고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당의 선출직 대표와 비선출직 전문가 그룹이 함께 정책을 구체적으로 다룰 수 있는 실력을 조직화하고 집단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셋째, 당 리더십과 대선 후보 선출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그동안 권력의 분산을 통해 당의 중심성과 리더십의 해체를 목표로 한 제도 개혁을 추진해 왔다. 일종의 자해적 정당 개혁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민주주의와 정당의 역할을 잘못 이해한 결과이다. 민주주의에서 정당 조직이 약해지면, 정치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회경제적 약자 집단들의 참여와 대표성이 약해진다. 그리고 이에 따라 행정 권력과 경제 권력을 견제할 힘도 약해진다. 당 대표를 중심으로 일할 수 있는 정당 조직으로의 변화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모바일 투표를 포함해 완전 개방형 경선제를 도입하고자 하는 맹목적 주장들에 대해서도 견제가 필요하다. 그것은 지금도 약해서 문제인 정당의 정체성과 리더십을 더욱 해체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모바일 기제에 친숙한 그룹이 과대 대표되는 문제도 있다. 그렇게 되면 민주당이 대표하고 뿌리를 내려야 할 사회경제적 기반으로서 중산층과 서민 내지 소외 계층과의 괴리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4. 정당이 중심되는 책임 정부를 위해 대통령과 정당이 해야 할 일 (p 356 - 358)

 

그렇다면 정당이 중심이 되는 책임 정부를 실천하기 위해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새로 정부를 구성할 때부터 정다의 적극적인 역할을 수용하는 책임 내각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국무총리와 내각 인사를 당과의 협의를 통해 결정하거나 집권당의 주도권 속에서 선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당정 협의는 단순히 당정 간에 의사소통 채널을 유지하는 수준을 넘어 정부의 구성과 운용을 담보하는 기본 원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당을 대표하는 내각은, 특정 정책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면서 선거 공약을 이행할 정책 수행의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대통령과 더불어 당이 직접 정부를 운영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면 그것 자체가 정당을 강화하는 것이 될 것이고, 정당은 정부를 운영할 능력을 갖춘 리더십을 훈련하고 양성하는 장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정당은 일반 당원의 참여를 확장하고 신규 당원을 늘리면서 지역적, 계층적 기반을 튼튼히 할 수 있고, 수많은 정당 활동가들로 하여금 공익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면서 그들이 정치 경력을 일궈 갈 수 있는 직업 훈련의 장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향에서의 정당 발전은 '대표' 개념의 변화와 함께 이루어질 수 있다. 그동안 정당들은 여성, 노동, 청년, 시민운동 대표를 개별적으로 배려하는, 일종의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대표"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대표를 뽑았다는 것과 그들을 대표하는 정당이 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실제로 정당의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특정 사회계층이나 집단, 기억, 기능적 분야에 속한 사회집단과 실제로 연계되어야 한다. 그런 식으로 당이 바로 설 때 당 밖의 관료나 정치 지망생들 역시 신념은 제쳐 둔 채 이쪽저쪽 눈치 보고 줄서기를 하며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정당 안에서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와 과업에 충실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변화가 연쇄적으로 전개된다면, 대통령은 쇼윈도식의 거대 프로젝트를 졸속으로 추진할 필요도 없고, 임기 말에 이르러 자신의 정당으로부터 버림받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당 간의 경쟁 역시 상대를 모욕하고 상처를 주는 데서 벗어나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정책 대안을 중심으로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문제의 근본으로 돌아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정당을 바로 세우는 것을 통해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일이다. 대통령 개인의 사인화된 정부가 아니라 정당의 정부를 만드는 일은, 오늘의 한국 사회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민주적 리더십의 요체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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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견 범박해 보이지만 꼼꼼히 읽다보면 최장집 이사장이 구상하는 신당의 주요한 외곽들을 몇 군데 예상해 볼 수 있다. 논쟁이 예상되는 부분도 적지 않지만, 나는 대체로 공감한다.

    2013.06.07 01:1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어렵지만.. 이런 책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2013.06.07 01: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선생님 블로그에 가 보았습니다. 그제 올리신 만개한 장미의 사진을 한참 보았습니다. 하숙 들어 사는 제 집 앞에도 똑같은 모양의 장미 줄기가 있고, 바로 며칠 전 아침나절에 집을 나서며 그 모습을 보고는 아, 참 아름답다, 라고 생각했는데, 누구는 그저 그렇게 잠시 쳐다보고 지나갈 뿐인데 선생님은 순간을 담아 놓으셨네요. 저는 사진을 잘 모릅니다만, 그 사진은 참 아름다운 사진이라고 생각합니다.

      2013.06.07 02:40 신고 [ ADDR : EDIT/ DEL ]
  3. 아, 2012년 9월에 올리신 반가사유상 사진!

    2013.06.07 02:5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많은 사람들이 안철수의 무색무취 때문에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면 때문에 싫어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극적으로 지지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정치인의 특권이나 이념적 경계가 모호해진 정치인의 표리부동에 대한 무색무취여야 하지 않을까요.
    최장집 교수의 합류는 이런 면에서 저에게 지지의 가능성을 열어둔 듯 싶습니다. 저에게는 어려운 책인듯 합니다만 한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지 싶기도 합니다.

    2013.06.12 20:07 [ ADDR : EDIT/ DEL : REPLY ]
    • 네. 저도 안철수 의원 본인보다는 안철수 현상 쪽에 좀 더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이처럼 일정한 중력을 가진 분들이 하나하나 합세한다면, '대중이 그리는 정치인 안철수'와 '자연인 안철수' 사이에 혹 큰 간격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이를 채워나갈 수 있겠지요.

      2013.06.13 02:07 신고 [ ADDR : EDIT/ DEL ]

독서일지2012.11.21 01:18

 

 

 

 

 

MBC 라디오 프로그램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11년간 '뉴스 브리핑' 코너를 진행하다가 이 정권 하에서 퇴출

 

당하고 현재는 인기 팟캐스트 <이슈 털어주는 남자>를 매일 진행하고 있는 시사평론가 김종배 씨의 9월 신작.

 

일찌감치 예약을 걸어두었는데도 몇 바퀴나 돌아 11월 중순인 이제에야 손에 떨어졌다. 바로 전의 저작인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의 경우 예약을 하지 않고도 바로 서가에서 빌릴 수 있었던 것을 떠올려 보면 적어도 연

 

대 도서관 사용자들에게 있어 이 주제가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었던 것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위의 사진에서 표지를 두껍게 가린 띠지를 벗겨내고 나면, 정장을 입은 채 백팩을 메고 있는 젊은 남자의 사진이

 

나온다. 짧게 잘라 세운 머리, 몸에 다소 밀착되어 있는 느낌을 주는 정장, 그리고 언뜻 정장과는 잘 매치되지 않

 

는 백팩. 모두 30대 직장인의 전형적인 외양이다. 사진을 흑백 처리한 것은 피사체인 이 특정 인물의 개성을 지

 

우고 이러한 외양을 가진 세대 전체를 다루는 책이라는 이미지를 전달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한다. 띠지에서 '30

 

대 정치학'이라는 제목의 배경으로 쓰이고 있는 직선과 원의 조합은 표지에도 그려져 있는데, 이 책이 '구조적'

 

인 '분석'을 주로 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나타내려 했던 것 같다. 한참 들여다 보고서야 그 의도를 추론했을 뿐으

 

로, 사실 나한테는 그렇게 직관적인 표지 디자인이 아니었다.

 

 

 

 

 

제목 그대로, 시사평론가인 저자가 30대의 정치의식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정리한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그가

 

처음부터 30대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네이버 프로필 상 서강대 84학번인 저는 속한 세대

 

와 이력 모두 386 세대의 전형과 같은 인물이다. 저서에서도 고백하고 있듯 저자를 포함한 386 세대가 바로 뒤

 

의 90년대 학번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따뜻하지 않다. 80년대의 학생들만큼 사회를 위해 뜨겁게 투쟁하지 않은

 

채 경제 성장의 풍요만을 누린 세대. 'X세대'라는 모호한 소비 지향적 호칭 정도로만 규정할 수 있는 세대. 책에

 

서는 이 정도의 표현만을 접할 수 있지만 오마이뉴스에서 제공하는 저자 강연 영상을 보면 훨씬 더 강성의 발언

 

을 들을 수 있다.

 

 

 

 

 

그랬던 30대에게 저자가 눈을 돌리게 된 것은 MBC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게 된 뒤라고 한다. 시사평론가로서 저

 

자는 한국의 정치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인 '부동층'에 대해 탐구해 보고자 하는 욕구를 오랫

 

동안 가져 왔는데 마침 넉넉한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몇 달에 걸쳐 수치와 씨름을 하였으나 확연한 일관성을 주

 

장하기에는 어려운 가설들만이 남아 한 차례 포기한 뒤, 얼마 후 아쉬움을 가진 채 우연히 자료를 다시 들추어

 

보다가 부동층 만을 염두에 두고 접근하였을 때에는 보이지 않았던, '30대'라는 계층의 정치적 성향이 뚜렷하게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이러한 30대의 특징을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기 위해, 저자는 선거 전후의 여론조사 결과와 연령대별 FGI를

 

접근의 방법론으로 삼았다. FGI(Focus Group Interview)는 표적집단면접법, 혹은 집단 심층면접 등으로 번역된

 

다. 일정한 특성을 공유하는 6에서 12인의 집단을 설정하여 수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일종의 인터뷰라고 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의하면, 이러한 방식은 개별 면접은 갖지 못하는 '예기치 않았던 사실의 발견과 아이디

 

어의 도출'이라는 특성을 지닌다고 한다. 예를 들자면, 40대의 설문자들을 한 데에 모아 놓고 '지금의 30대에 대

 

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는 식이다. 개별 면접에서라면 이전에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제에 대해 질문에

 

바로 답을 하기가 쉽지 않았겠지만, FGI에서라면 옆에 앉은 사람들이 '30대는 이기적인 것 같아요'나 '30대는

 

정치 의식이 없는 것 같아요'와 같은 발언으로 생각의 물꼬를 터 준다. 그에 자극받은 나의 발언이 다른 사람들

 

의 또다른 생각의 물꼬를 터 줄 수도 있는 일이다.

 

 

 

 

 

저자는 그 분석의 결과를 총 6장에 걸쳐 정리했다. 서론 격인 1장에서는 30대에 주목해야 할 당위성을 설명하였

 

고, 2장에서는 30대가 보이는 정치의식의 실체를 규명하였다. 3장과 4장은 그러한 정치의식이 등장하게 되

 

배경에 대해 사회경제적인 측면과 정치문화적인 측면을 나누어 접근한다. 5장은 그러한 정치의식과 새로이

 

장한 미디어인 SNS와의 상관관계를 다루고, 결론부인 6장에서는 그때까지의 논의를 다시 한 번 정리하는 한편

 

30대 정치의식의 한계와 극복 방안을 제시한다.

 

 

 

 

 

수많은 여론조사와 긴 분량의 심층 면접을 꼼꼼하게 분석하는 과정이 이 책의 몸통을 이루는 대부분이라 개개의

 

내용을 모두 전달하는 것은 무리이다. 여기에서는 6장에 요약된 결론을 소개하되 본문 중의 관련 있는 내용을

 

부분부분 덧붙이는 소개가 효율적일 것 같다.

 

 

 

 

 

저자가 보는 30대 정치의식의 성향은 명백한 진보이다. 단지 진보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만이 아니라, 2040 세

 

대의 전위에 서 있는 '꼭지점 진보'이기도 하다. 이들은 크게 세 가지 특징을 갖는다.

 

 

하나. 이들은 '생활 진보'다. 진보라는 이념적 가치에 조응하여 스스로 각성하였다기보다는 취업 시기의 IMF,

 

사회 진입 시기의 벤처 버블과 카드 대란, 그리고 결혼 적령기에 찾아온 부동산 대란 등 외부적인 환경에 의해

 

진보로서의 정치 의식을 형성한 면이 크다.

 

둘. 이들은 '참여 진보'이다. 이들이 세대로서의 정치 의식과 그 경향성을 뚜렷이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2002년

 

대통령 선거부터였다. 2002년 대선은 누구나 알고 있듯 포스트 3김 시대의 첫 선거였다. 제왕적 리더쉽과 지역

 

에 근거한 강고한 세력을 보유한 정치인의 시대가 지나간 뒤, 유권자가 자신의 요구에 의해 대표성을 지닌 인물

 

을 발굴해 내는 시대의 첫 기수 역할을 행하였다. 이들에게 있어 정치 지도자는 수직적 질서의 최상위가 아니라

 

유권자들이 모여서 발현시키는 팬덤의 대상에 가깝다.

 

셋. 이들은 '소통 진보'이다. 트위터와 같은 온라인 정치 참여 공간에서 30대가 발휘하는 힘은 막강하다. 이들은

 

자신들과 정치적 의사를 같이 하는 소식들을 퍼나를 뿐 아니라 그 안에서 자체적으로 컨텐츠를 생산해 내기도

 

한다.

 

 

이러한 특성들은 때로 어두운 면을 갖기도 한다. 이들의 정치의식은 강고한 이념보다는 정서적인 측면에서 발원

 

한 측면이 커서, 하나하나의 정치 이벤트에 일희일비하거나, 지지의 정도가 일관되지 않기도 하고, 때로 '우리

 

편'이라면 무조건 감싸고 도는 맹목적 진영 논리에 함몰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사실에 굳

 

이 실망할 필요는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정치와 이념의 성향은 개개인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불변의 것

 

이 아니라 '시대의 산물이고 삶의 귀결'이다. 진보적인 '30대 정치학'을 잉태한 사회, 경제, 정치 환경은 이미 상

 

당 부분 구조화되어 단기간 내에 해소될 전망이 없다. 30대는 앞으로도 정치적 당위성 때문이 아니라 자기 삶의

 

소구 때문에 스스로의 진보 성향을 진행시켜 나갈 것이다.

 

 

 

 

 

일반적으로 현재의 40대를 형성하고 있는 60년대 출생들을 '386 세대', 20대를 형성하고 있는 80년대 이후 출

 

생들을 '88만원 세대'라고 부른다. 각자가 처한 사회경제적 입지에 따라 붙여지고 생명력을 얻은 호칭들이다. 하

 

지만 70년대에 태어난 세대에게는 마땅한 이름이 없었다. 근래에 와서 '건축학 개론 세대'라는 호칭이 반짝 힘을

 

얻었던 바 있지만 이는 한 편의 영화라는 개별적 문화 현상에 근원한 것으로 그 세대의 현재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저자는 30대의 정치의식에 관한 치밀한 탐구를 마치며 애정어린 시선으로 '리모델링 세

 

대'라는 호칭을 제안한다. 30대는 '정치권'의 정치에서 벗어난 새 구조를 짜고자 하며 정치를 리모델링한다. 30

 

대는 자신의 탈정치적 속성을 벗고 정치의 한가운데로 진입하며, 단지 대중문화의 소비자일 뿐이었던 과거에서

 

능동적 유권자로 진화하는, 자기 자신의 리모델링을 행하고 있기도 하다. 정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본

 

질적 골조를 유지한 채 구습은 발라내고 능동적 재미라는 새 장식들을 추가하는 중이다. 저자는 이 '리모델링 세

 

대'의 방향성이 실현할 수 있는 가치들이 다른 어떤 세대가 담보하는 가능성보다 크기에, 더 객관적인 논의와 더

 

냉정한 선택을 부탁하며 글을 맺는다.

 

 

 

 

 

'세대론'은 말하자면 요검(妖劍)이다. 사람을 홀딱 홀리는 요기를 지녀서, 보는 사람이라면 한번은 꼭 손에 들고

 

휘둘러보고 싶게 만드는 요검. 십 년 단위의 한 세대가, 동일한 사회 환경을 겪으며 통일된 정치 의식을 갖게 되

 

고, 그 의식이 현실 정치에 선연하게 드러난다. 사회를 이해하는 효율적인 도구를 갖고자 하는 사람에게 매혹적

 

인 논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개인의 요구가 다변화되고 사회의 변화상이 일 년 뒤도 알 수 없는 이 때에, 그

 

처럼 광범위한 수의 사람을 '세대'라는 호칭으로 묶는 것이 과연 얼마나 진실을 담보하는 일일까. 손꼽히는 한

 

시사평론가가 이 질문에 최대한 성실하게 답변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바로 이 책이다. 자신이 30대가 아니라 할

 

지라도 함께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이들의 특징을 일람하는 것은 호사라기보다는 필수가 아닐까 한다. 해당 화

 

제에 관심이 없더라도 수치를 통해 주장을 끌어내는 논리적 분석의 과정 자체를 즐길 수도 있다. 숫자와 표가

 

많이 나오지만 간명하고 실증적인 문체가 이해를 돕는다. 이 정도면, 읽는 것이 옳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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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목에 로마자와 숫자가 들어가면 메인 페이지에서 확인이 안 된다. 때문에 <30대 정치학>을 <삼십대 정치학>으로 표기하였다.

    2012.11.21 01: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이 책에서 분석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얼마전 독후감을 올렸던 <NL,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에서 다루고 있는 세대와 같다. 함께 읽으면 생각의 꺼리가 더 많아지지 않을까 한다. 한편 내가 포함된 81년생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경제적 환경으로는 88만원 세대에 가깝지만, 정치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면 리모델링 세대에 더 가까운 측면이 더 많이 발견된다. 이 부분을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2012.11.21 01:2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비밀댓글입니다

    2012.11.29 11:37 [ ADDR : EDIT/ DEL : REPLY ]
    • 현선 님, 안녕하세요. 다시 반가운 소식을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주가 넘어가는 수요일이네요. 나머지 이틀도 평온한 근무 되시기 바랍니다.

      2012.11.29 15:23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