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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9

화나고, 무섭고, 밉다.

애독하는 딴지일보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노제에 얽힌 비화'라는 기사를 읽었다. 당시 노제의 기획

자, 연출자와의 인터뷰인데, 이 정권이 얼마나 졸렬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키는지, 그

리고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들이 어떻게 공포를 내면화하고 있는지에 대해 새삼 일깨워줘서 화가 울

컥 났다. 주적인 대악당이 있고 그를 해치우는 것이 사회의 발전에 거름이 된다는 인식이 있으면 영

웅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그러나 졸렬하게, 밥줄을 끊고, 사회적인 관계를 끊어놓고, 그것에 저

항하는 것이 아무런 소득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것을 끊임없이 보여준다면 집권 세력의 의지가 관

철되는 것은 더욱 용이할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입을 모아 무식하기 짝이 없다고 비판하며 하찮디

하찮은 쥐에 비유하는 저 자는, 어쩌면 광대뼈나 대머리보다 더 영리하고 큰 악당인지도 모른다.


대통령의 얼굴을 큰 삽에다가 그려넣은 전시물이 국정원과 광주 시청의 압박을 받고 전시회에서 빠

졌다고 한다. 각 포털의 유명 블로거들의 메일함은 몇 달 전에 이미 수색이 끝났다고도 한다. 정치

관련 글들에서 현 정권에 대한 비판은, 철벽과 같은 논리를 갖춘 - 곧,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 유포

따위의 명목에 걸려들 일이 없는 - 전문적 성격을 갖춘 것이나, 저급한 풍자, 혹은 감정만이 가득한

욕설 수준의 것들로 양분되어 가는 것 같다. 곧, 보통의 학식, 보통의 양심, 보통의 용기를 가진 이들

의 비판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독자래봐야 두 손에 꼽고 말 조그만 블로그를 운영하는 나도, 무섭다. 후에 그와 같은 인물이 계속

집권하게 된다면, 그리고 이러한 일기들이 빌미가 되어 나같은 조무래기조차 '사상범'으로 찍혀, 이

를테면, 내가 속한 팀이 나 때문에 학진 프로젝트 선정에서 떨어진다면 어떨까. (정치와 학문, 양쪽

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은 알고 계시겠지만, 이것은 실제로 근래에 전례가 있었다. 학술 진흥금 지

원의 사전 심의에서 1순위를 차지한 진보 성향의 연구팀이 최종 선정에서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탈

락한 것이다.) 만약, 서울 시내의 대학들에 최씨 성의 그 친구 강의를 안 시키는게 어떨까, 라는 공문

비스무리한 것이 전달된다면 어떨까. 무슨 일이 더 일어날지 모른다는 공포의 감정을 차치하고라

도, 당장 나는 지방으로 강의를 가는 시간과 차비를 지불하는 불편을 감내해야 한다. 어쩌면 평생

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때에, 만약 몸을 바치는 정도가 아니라 정권에 아주 가벼운 충성을 보이는 것

만으로, 나와 내 가족이, 영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배 채우고 따뜻하게 자는 정도의 행복은

되찾을 수 있노라는 제의가 온다면, 나는 단칼에 거절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든 저 자와

저 자들이 나는 무섭고,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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