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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한동원, <나의 점집 문화 답사기> (웅진지식하우스. 2014, 4.)

 

 

 

 

영화평론가이자 소설가인 한동원의 신작. 부제는 '수상하지만 솔깃한 어둠 속 인생 상담'.

 

 

<한겨레>의 온라인 매거진인 '한겨레 esc'에 연재되었던 동명의 칼럼을 모은 결과물이다. 주말에 발간되는 '한겨레 esc'는 여행, 요리, 스타일과 같은 생활밀착형 카테고리를 정해 두고 해당 분야에 이름난 외부 필진의 기사를 다양하게 소개하는 잡지이다. 그때그때마다 이런저런 외부 필진이 자유롭게 써서 올리는 글도 좋지만 특히 재미있는 것은 요상한 주제를 정해두고 한 명의 필진이 매 주 올리는 '기획연재' 코너이다. 현재 연재 중인 십여 개의 코너만 해도 맥주가 됐든 콘돔이 됐든 직접 가서 일해 보고 느낀 바를 적은 공장 체험기라든지, 북극에 진짜로 다녀온 사람이 쓰는 북극여행기라든지, 화장품 비평가가 분석해 주는 화장품 성분표라든지 하는 재기발랄한 것들이 가득하다. 그 가운데에서도 한동원의 이 '나의 점집문화답사기'는 흥미로운 소재 선정과 유쾌한 문체 등에 힘입어 많은 화제를 모은 바 있었다. 나도 매 주 즐겁게 읽고 새 글을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책의 본문은 한동원이 직접 답사를 다녀온 여섯 개의 '점집 문화'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작가 나름의 기준으로 선정해 본 여섯 개의 '점집 문화'는 신점, 사주, 성명점, 관상, 손금점, 그리고 타로이다.

 

순서는 이렇다. 일단 하나의 '점집 문화'를 선정하고 나면 작가는 인터넷 검색과 '업계 사람들'의 정보를 통해 해당 분야에서 가장 이름난 '선수 목록'을 뽑는다. 그 중에서 이동 거리와 가격의 적정성 등을 따져 최종 방문처를 정하고 나면 드디어 관찰이 시작된다. 작가는 특유의 시선으로 '점집 문화'의 모든 것을 시간과 공간 순으로 관찰한다. 점집의 접수 문화, 지리 정보, 인테리어, 점술가의 첫인상과 어투, 그리고 그가 보여주'신령함'과 전략 사이의 양동 작전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점술가가 내려준 정보 들을 다시 한 번 객관적으로 평가하며 하나의 꼭지가 끝난다.

 

구성만 보면 한 편의 보고서와도 같은 이 글을 맛깔나게 해 주는 것은, 유명 영화 프로그램의 인기 코너였던 '결정적 순간'의 작가 출신다운 재미있는 비유와 문체의 활용, 그리고 객관적이려고 발버둥치다가 끝내 삐딱해지기까지 하는 특유의 시선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일단 시선 이야기를 먼저 해 보자. '작업'이 시작되기 전에 점술가 참고할 만한 디테일을 조금도 흘리지 않으려 입단속을 하고 앉아있다든지, 혹시라도 점술가가 몰래 예약자의 정보를 검색 볼까 싶어 일부러 온라인 상에 아무런 개인 정보도 없는 친구를 동행으로 섭외한다든지 하는 장면부터 객관적이라기보다는 어쩐지 찌질한 것 같아 웃음이 난다. 크게 개연성 있는 것 같지 않은 점술가의 세밀한 언행까지 일일이 기록해 가며 의혹의 시선을 늦추지 않는 것 또한 열의 넘치는 엉터리 시골 탐정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읽으며 유쾌하다. 최종적으로 평가할 점술가의 멘트를 선정하는 데 있어 '점집 고객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만한 갈등에 대한 멘트는 뺀다. 누구나 자신은 그렇다고 생각하게 할 법한 멘트도 뺀다. 대충 그 연령대의 남녀가 일반적으로 할 만한 고민에 대한 멘트도 뺀다. 고객이 무의식중에 흘린 힌트로 추측한 것 같은 멘트도 뺀다. 외모를 보고 추정할 수 있는 내용을 기반으로 한 멘트도 뺀다.'와 같은 기준들을 촘촘하게 세우고 그 기준의 사유를 짐짓 진지하게 설명하는 데에 이르면, 점집 문화를 검증해 보겠다는 작가의 방법론이 <그것이 알고 싶다> 식이 아니라 애초부터 <딴지일보> 식이었음을 잘 알 수 있다. (작가는 실제로 <딴지일보>의 기자와 편집장을 맡은 적이 있다.)

 

요컨대 이것은 '잉여적' 답사기이다. 업계의 평균 가격을 알려주고, 업계 선수들이 집적해 있는 지리 정보를 알아내어 적어주고, 점술가 뿐 아니라 접수원의 인상까지 평론하고, 마침내는 본인이 선정한 기준에 의한 점술가의 적중률까지 퍼센트로 환산해 알려주는 성실한 모습은, 실은 '저런 걸 뭐 저렇게까지 진지하고 성실하게 하나'하는 웃음을 의도한 전형적 장치들이다. 작가의 대표 컨텐츠인 '결정적 순간'에서 엄청나게 진지한 목소리의 성우가 영화 속의 아주 세밀하고 쪼잔한 장면을 잡아내어 심각하게 평론하던 장면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독후감의 관건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잉여적 글쓰기'의 느낌, 인터넷의 비평 용어로는 '병맛'에 얼마나 익숙한가, 혹은 얼마나 익숙해질 수 있는가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읽으면서 들었던 개인적 감상을 하나만 덧붙이도록 하자. '잉여', 혹은 '변죽'은, 필자와 독자가 모두 이것이 잉여이고 변죽임을 인식하고 있을 때에야 개그 코드가 된다. 필자가 자신의 감상이나 말맛에 빠져서 합의한 바 이상으로 진지해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잘난 척이나 일기가 되기 쉽다. '병맛'을 가지고 노는 칼잡이라면 제 손베지 않도록 항상 유의해야 할 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