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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한겨레21 올해의 판결 취재팀, <올해의 판결> (북콤마. 2014, 3.)

 

 

 

시사주간지 <한겨레 21>의 '올해의 판결 취재팀'은 2008년부터 해마다 연말이 되면 변호사, 시민단체 위원, 법대 교수 등의 위원을 위촉하여 그 해 있었던 판결 가운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 사회의 스펙트럼이 어디까지 가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올해의 판결'을 선정해 왔다. 그렇게 2008년부터 2013년까지 6년간 모인

92개의 판결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표지 디자인이 간결하고 제목도 명확하다. 본래 시사주간지의 기획이었던 만큼, 총 92편으로 이루어진 꼭지 하나하나의 구성도 한 편의 기사처럼 군더더기 없이 논증적이다.

 

 

 

 

 

이것이 한 꼭지의 첫번째 장에 해당하는 편집 양식이다. 맨 윗 칸에는 해당 판결을 내린 소속 법원과 사건번호, 공식 사건명이 기록된다. 책의 안내에 따르면,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홈페이지에 이 사건번호와 사건명으로 검색을 하여 판결 내용과 결정 요지, 판례에 대해 알 수 있다 한다. 독후감에 뻥을 치면 안 되니까 직접 한 번 해 봤다.

 

 

법원 홈페이지(www.scourt.go.kr) > 대국민 서비스 > 정보 > 사건검색 > 나의 사건검색 의 순으로 따라갔다. 다른 루트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따라간 루트에서는 사건 당사자 이름까지 적어야 검색을 할 수 있었다. 위에 그림파일로 소개한 사건은 당사자 이름이 가명으로 되어 있어 검색할 수가 없어, 당사자 이름을 확실히 알고 있 서울시청 간첩 조작 사건 판결을 검색해 봤다. 다음은 그 결과이다.

 

 

 

 

 

 

 

 

처음 찾아간 본 곳이라 사용이 익숙치 않았지만 시간을 들여 살펴보거나 사건 검색법을 검색해 보면 과연 관련 정보들을 찾아볼 수 있겠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 '사건검색' 란에서는 일반내용과 진행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옆 카테고리를 보니 '판결서 사본 제공신청', '판결서 인터넷 열람' 등의 항목이 눈에 띈다. 그럼 다시 본문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위에서부터 두 번째 칸에는 '올해의 판결 취재팀'이 구분한 이 판결의 카테고리와, 쟁점적 이슈를 뽑아내어 따로 붙인 기사 제목이 실려 있다. 6년 동안 진행되어 온 기획인 만큼 판결 카테고리의 이름은 조금씩 변화가 있지만 그 내용으로 거칠게 정리해 보자면 '제일 좋은 판결', '좋은 판결', '나쁜 판결'의 세 가지이다. 위에 그림파일로 게시한 사건은 2013년에 선정된 '제일 좋은 판결'이다. ('최고의 판결'과 '제일 좋은 판결'이라는 호칭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독후감의 독자를 위해 거칠게 정리한 것이라는 사실을 감안해 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기사가 시작된다. 한 꼭지의 분량은 4쪽에서 10쪽 가량이다. 모든 꼭지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내용은 사건소개, 사건 당시의 사회환경, 판결과 그 영향, 그리고 이 사건을 뽑은 심사위원들의 20자 평 등이다. 사건에 따라 붙기도 하고 없기도 하는 것은 해당 사건을 판결한 판관과의 인터뷰, 해당 사건의 피고인과의 인터뷰 등이다.

 

하나 대단히 인상적인 것은 '일러두기'에서 밝힌 바와 같이 '(해당 판결의) 선정 이후 상급심에서 판결의 내용이 달라졌거나 현재 시점에서 바뀐 인식과 함께 돌이켜볼 필요가 있을 때는 현재(2014년 2월)의 상황 변화를 적시했다'는 점이다. 상급심이나 최종심에서 판결이 내려지면 이행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힘의 강약이나 권력의 향방에 따라 그렇게만은 되지 않는 씁쓸한 현실 때문에 생겨진 코너일 것이다.

 

하나의 꼭지가 4쪽에서 10쪽 가량의 분량이니 문학적 수사나 사후 감상평 등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 문체는 대체로 건조하고 구성은 일관되게 논증적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갖는 '법'의 이미지와도 유사하다.

 

그러나 하나하나의 판결을 들여다 보면 법과 그 적용이라는 것이 사회의 변화와 조응하여 끊임없이 유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힘의 강약, 정권의 성향 등을 감안하여 오로지 법리만을 엄격하게 적용해 현실과 동떨어진 결과를 내놓은 판결도 있지만, 법이란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그 때 거기에 살고 있는 사회 구성원의 합의라는 고민을 보여주는 판결도 있었다. 

 

총평 하나. 소개된 사건은 모두 판결이 나 행정적 구속력을 갖게 된 사례이다. 말인즉슨, 현재 한국 사회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자료 가운데 가장 일반적 객관성을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마다 업계마다 저만의 논쟁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겠지만, 적어도 눈에 띄는 한에서는 우리 사회 외연의 최전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시각을 확립해 놓고 그 시각에 어떻게든 맞춰 보려고 사회를 억지로 재단하는 몇 권의 책들에 조금 지쳐 있던 나는 이 건조함과 객관성에 몹시 끌렸다.

 

총평 둘. 법리를 해석하고 갈등의 쟁점을 논리적으로 도출해 내는 과정 등을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사회를 바라보는 법,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법, 그리고 정리된 생각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으로 쓰일 단어와 논리 등을 배울 수 있다. 대학에서도 그런 건 안 가르쳐주는 판에 삶에 직접 맞닿은 문제를 예제로 하여 흥미와 관심을 가진 채 이런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것은 축복과 같다. 학생들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이유 중 하나이다.

 

총평 셋. 이 책을 기획한 <한겨레 21>은 진보 계열의 언론이다. 당연히, 그 시각은 소수의 권리와 다수의 편익 가운데 소수의 권리를 강조하는 데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개개인의 반성이나 엄벌 보다는 구조의 변혁에 방점을 둔다. 따라서 이 책에 '올해의 판결'로 소개된 판결은 대부분 소수-다수, 개인-사회(정부, 기업, 사회구조) 간의 갈등에 관련된 것들이다. 이념적 성향이나 정치적 성향을 함께 하지 않는 분이라면 '뭐 이런 판결을 뽑아 놓았어?'하고 성이 날 수도 있음을 미리 알려 드린다. 책에서 다룬 판결의 시기가 이른바 보수정권인 이명박 정부 5년, 박근혜 정부 1년임을 감안하시면, 성이 날 것 같으면 차라리 처음부터 읽지 않는 것도 건강을 위한 한 방법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