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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피터 노왁,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

 

 

 

 

 

이것이 전부다. 문화비평가 이택광 교수의 추천사 중 일부를 인용한다.  

 

 

이 책이 주장하는 것은 간단하다. 현재를 만들어내고 있는 인류문명의 자산이 실은 포르노, 전쟁, 패스트푸드라는 '나쁜 것들'을 통해 발전했다는 사실이다. 엉뚱해 보이는 이런 생각은 저작 동원하는 다양한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 구체적인 설득력을 획득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세 범주는 각기 독립적이라기보다 상호 관련성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이것이 전부다. 저자는 공들인 조사를 통해 위의 주장의 사례들을 계속해서 나열하되, 그것의 선악을 판단

 

하거나 대안을 제시하는 데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미 익숙한 사물이나 기술 등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발견하는 기쁨을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고, 별다른 목적 없이 흥미만을 자극하는 정보의 나열

 

에 진력을 낼 사람이라면 잡지 않는 편이 좋겠다. 나는 후자로 시작해서 전자로 독서를 마쳤다. 재미있더구먼.

 

 

 

 

 

삼자가 서로 간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더욱 자극적이어서 그런 것일까, 책에는 대체로 전쟁 기술이 민간에 도

 

입된 사례를 소개하는 것이 많다. 스팸 햄은 군용 식량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나왔고, 레이더 기술은 전자레인지

 

의 발명을 낳았다. 플루토늄을 수송하는 파이프의 밀폐제로 개발된 물질은 후에 알루미늄 프라이팬에 코팅되어

 

계란 후라이가 들러붙지 않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테프론의 뒷이야기이다. 전쟁장면 촬

 

영에 쓰일 더 좋은 카메라를 개발하기 위해 발족된 군부의 '전쟁표준위원회'에는 헐리웃의 기술 인력들이 대거

 

동원되었고, 이 과정에서 이루어진 부품 표준화와 호화성 개선은 제조비용 절감에 이바지하여 상업 카메라의 대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 뿐 아니다. 전쟁 기술은 상반된 세계인 것만 같은 장난감 업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계단을 내려가는 스프링은 군함 위의 스프링을 사용한 감지 장치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1940년대 일본

 

이 천연고무를 생산하는 태평양 섬을 모두 점령한 탓에 연합국은 자동차 타이어와 군화 밑창에 쓰일 고무 대체

 

제를 개발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나온 한 물질은 고무보다 잘 튀어오르고 잘 녹지도 않았지만, 너무 찐득찐득해

 

서 실용성이 떨어졌다. 이 물질은 나중에 '실리 퍼티'(우리나라의 찐득이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100원 뽑기에

 

서 뽑아서 거울에 던지면 든적든적 들러붙어 있던 그 고무덩어리 말이다.)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

 

다.

 

 

'포르노'와 '햄버거' 부분에서는 각각의 사업이 발전하기 위해 첨단의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는 사례들이 소개된

 

다. 이를테면, 맥도날드가 감자튀김을 위해 냉동 기술에 막대한 양의 투자를 했다든지, 포르노그래피 제작 업체

 

들이 신용카드 결제 기술을 혁신적으로 발전시켰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마지막 장인 '악덕이 베푸는 미덕'에서, 저자는 오늘 날의 기술과 문명 중 꽤 많은 부분이 선한 의도에서 나온 것

 

은 아니지만, 혁신을 이루고 우리의 삶을 향상시키기도 했고, 아울러 이러한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므로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결어를 말한다.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결과적으로 섹스와 폭탄과 버거는 계속해

 

서 우리가 속한 세상과 우리의 삶을 이런저런 모습으로 빚어나갈 것이다.' 초등학생의 독후감과 같은 결론에도

 

불구하고 늘어난 잡지식에 흐뭇해 하며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는 분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선정적인 소재들을

 

속도감 있게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재미는 확실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