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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2

첫 한시를 짓다.

 



 登雪嶽

                                                                     국문학과 0110261 최대호


夏伋謨翁計  茅靴登雪嶽
百潭加一夜  集枝焚 樂

지난 여름 교활한 늙은이의 꾐에 빠져      띠가죽신발 신고 설악산에 오르다.
백담에서 하룻밤을 더하는데                  나뭇가지 모아 화톳불 사르고 즐기노라.


親友歌舞樂  弄弦詠古歌
淋水川感爽  願 明月也


친한 이들과의 춤과 노래는 즐겁기도 하여라   줄들을 희롱하며 옛 노래를 읊조리도다
내천에 물을 뿌리는 마음 시원하여라             저 달을 비끄러 매고픈 마음 간절하다.


明日獨起旦  濯足於寒川
雪嶽有內外  兩足分其線

다음날 아침 홀로 일찍 일어나                찬 냇물에 발을 씻다.
설악에는 내설악과 외설악이 있다던데     내 양쪽 발이 그 경계선을 가르는 것은 아닌가.


  難登迎鳳頂  井名則洗心
  僧 仁一皿  飮水我洗心


힘들게 올라 봉정암을 만났는데         우물 이름이 곧 '세심'인지라
스님이 인자히 건네는 그릇 하나에     물을 마시며 내 마음을 닦는다.


  夕陽登小靑   輒眷無一限
  瓔紅係山上   環珠日余半
  
  
석양이 질 무렵 소청봉에 올라             문득 뒤돌아 보니 막힘이 없어라
목걸이같은 주홍빛이 산위에 걸리고     반지구슬같은 태양이 반쯤 남았다.


   被坐場中   深暗黑幕山
  世中光唯星   男兒目蟠霜


얇은 이불 뒤집어 쓰고 마루에 앉았는데       칠흑같은 어둠이 산중을 덮는다.
세상에 빛나는 것은 오로지 하늘의 별인데    남아의 눈가에 안개로 서리다.





이번 여름방학에 아는 국문과 선배의 꼬임에 빠져 계획에도 없던 설악산에 가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불현듯 떠난 여행이라 준비랄 것도 없었고, 게다가 그 험준하다는 설악산을 가죽샌달을 신고 오르

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몇 번이나 발을 접질렀는지 모릅니다. 중간지점인 백담사에서 첫날밤을 지

내기로 한 일행은 나뭇가지를 모아다가 화톳불을 피워 놓고 커피를 끓여 먹었습니다. 기타를 치며

옛날 노래들을 흥얼거리다가 얼근히 취한 술이 빠져 나가기를 원하면 달아래 바지를 내리고 시원하

니 소변을 보았습니다. 물가에 비친 달은 사진기로도, 캠코더로도 찍을 수가 없었는데 노래 몇 곡이

끝날 때마다 눈에 띄게 움직이는 것이 보여 하늘에 비끄러 매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설악산 내천에 발을 담궈 보았습니다. 물이 차고 시원하여 발보다 조금

위쪽의 물을 떠서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설악산에는 외설악과 내설악이 있다던데, 내 왼발이 외설

악 쪽이고 오른발이 내설악 쪽이려니 하고 제멋대로 생각하며 한참을 햇볕아래 누워 있었습니다. 가

끔 물고기들이 간지럽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봉정암에 올랐는데, 거기에 있는 약수터에는 비석이 서 있었습니다. 그 우물의 이름이

었는데, '세심'이라고 했습니다. '캬, 마음을 닦다!'하고 감탄한 우리는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습니

다. 설악의 물답게 가슴속까지 저릴 정도로 시원하여 어쩐지 마음을 닦고 있다는 실감이 나기도 하였

습니다.



해가 질 무렵 소청산장에 도달했는데, 그때까지는 힘들게 올라가느라고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습

니다. 땀을 닦고 문득 돌아 보았는데, 눈아래로 온통 산이고 눈높이로는 온통 구름이요 눈위로는 노

을이 목걸이처럼 길게 퍼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는 반쯤 모습을 가리운채로 마치 반지의 구슬처럼

사방팔방으로 그 위용을 자랑하며 빛나고 있었습니다. 서쪽으로는 해가 기울고 있어 아직 밝고, 먼

동쪽에는 이미 해가 져서 오징어잡이 배들이 하나둘 불을 켜기 시작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장관이었

습니다.



산에서 새벽이슬에 감기 걸리면 병원도 소용없다는 말이 기억나 모포를 뒤집어쓰고 산장 마루에 앉

았는데, 이미 해는 져 산은 온통 칠흑색이어서 굴곡이 없이 마치 거대한 밭과 같았습니다. 그 맨 윗

선들만을 구별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앞을 쳐다보다가 뒤로 휘익 넘어지면 눈앞으로 별들이 스윽스

윽 스쳐갔는데, 이 밤을 사나이는 절대로 잊을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