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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지승호 外, <시민은 현명하다>

 

 

 

 

 

 

 

박원순 씨가 서울 시장 보궐 선거에서 당선된지 1년하고도 한 달 여가 지났다. 트위터와 진보 성향 언론을 통해

 

간간히 전해지는 시정을 살펴보면, '박 변'이자 '우리의 원순 씨'였던 행정의 달인으로서의 그의 면모는 대체로

 

잘 발휘되고 있는 것 같다. 커다란 공사나 알맹이 없는 구호로 지면을 장식하기보다는 협동 조합이나 도서관 등

 

과 같이 시민의 삶과 직접 맞닿아 있는 곳에서의 성과를 쌓아나가고 있는 듯 하다.

 

 

 

 

 

그의 행정을 평가하는 데 있어 이렇게 좋은 소식을 전해듣는 것도 하나의 참고할 점이지만, 나는 오히려 나쁜 소

 

식이 전해지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참고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독후감을 쓰고 있는 시점은 2012년 11월 21일

 

의 새벽으로, 18대 대선의 야권 단일화 후보로 무소속 안철수 후보와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가 협상을 진행

 

하고 있는 중이다. 박근혜 후보의 여러 막바지 전략들을 뉴스 구석으로 밀어낸 이 단일화 과정에 대해, 새누리당

 

과 보수 언론은 연일 정치적 야합이니, 민생을 도외시한 저질 쇼니 하는 평들을 쏟아내고 있다. 원색적이고 공격

 

적이지만, 더 큰 특징은 추상적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앞의 평들을 시정의 언어로 다시 풀자면,

 

'그것은 나한테 불리하다'나 '그것은 싫다' 정도의 메시지를 담은 말이라고 볼 수 있겠다. 단일화가 새누리당에

 

게 불리하고 새누리당은 단일화를 싫어한다는 메시지는, 굳이 반복하여 전달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것이다.

 

곧, 하나마나 한 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만 만약 안철수 씨와 단일화를 진행하여 서울 시장에 당선된 박원순 시장의 행정이 파열음을 내는 것이었다

 

어땠을까. '단일화'라는 용어를 향한 공격은 각론이 동반된 대단히 구체적인 성격을 띄었을 것이고, '단일화

 

나쁘다'라는 메시지를 대단히 선명하게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대선을 앞두고 온갖 기획성 기사가

 

난립하고 있는 지금, 수도 서울의 시장에 관한 뉴스가 적어도 대선과 관련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는 현재

 

가, 오히려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마저도 그의 행정을 인정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그런 박원순 시장, 박원순 시장의 선거 캠프인 희망캠프에서 총괄기획단장을 맡았던 하

 

창 변호사, 대변인을 맡았던 송호창 현 민주통합당 의원과 함께 지난 선거와 1년간의 행정을 반추해 보았다.

 

호의 2012년 10월 작, <시민은 현명하다>. 부제는 '시민과 함께 승리한 박원순의 희망정치'. (지승호는 지

 

2009년, 당시 희망제작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던 박원순을 인터뷰하여 '희망을 심다'라는 책을 낸 바 있다.)

 

 

 

 

 

독서를 마친 뒤 내가 추려낸 이 책의 가치는 크게 세 가지 정도였다.

 

 

첫번째.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과정의 기록물로서의 가치이다. 10.26 선거는 단순히 서울시장 자리가 여권

 

서 야권으로 넘어갔다는 결과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새누리당의 유력한 차기 최고위원, 대권주자 반열에 있

 

었던 오세훈 전 시장과 나경원 전 의원의 몰락, '안철수 현상'의 등장과 그로 인해 촉발된 새로운 대권주자 구도,

 

이어진 박근혜 대세론의 균열, '나꼼수'의 영향력 강화 등등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하나하나 그 인과와 영

 

향을 되짚어볼 가치가 있는 사건이 즐비하였다. 당시를 반추하는 데 있어 언론 기사 등의 형태로 정제된 팩트들

 

을 연결하는 것도 유의미한 방법론일 수 있지만 그 모든 과정의 당사자였던 이들의 육성을 통해 접하는 '현실'

 

이야말로 재료로서의 가치가 갑절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대부분의 내용이 인터뷰를 통한 회고로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지난 선거의 과정을 잘 몰

 

랐던 사람이 읽는다면 무슨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 잘 모를 수 있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며칠쯤에 안

 

철수 씨가 단일화 제안을 했는지, 나꼼수에서 박영선 의원과 박원순 씨의 양자 토론이 진행된 것은 언제인지, 나

 

경원 1억 피부과 설이 터진 것은 언제 쯤이었는지, 정확한 날짜까지는 몰라도 사건들 간의 선후 관계 정도는 복

 

기해 낼 수 있는 이라면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며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겠지만, 사건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면 열없이 책장을 넘겨야 할 부분이 꽤 된다. 하다 못해 직선형의 표의 형태로라도 서울시장 선거 과정에서 일어

 

났던 일들을 정리해 주었더라면 좀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새 화제가 시작될 때마다 박스 형태나

 

간지(間紙)형태로 무엇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인지 언급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고. 팬북이 아니라 기록물

 

로서의 성격을 기획하였다면 그정도 배려는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첫번째로부터 파생된 두번째 가치. 지난 시장 선거의 기록은 또한 '단일화'의 기록이기도 하다는 점. 박원순 시

 

은 먼저 안철수 씨와의 단일화를 거친 뒤 이어 민주통합당 박영선 의원과의 단일화도 거쳐야 했다. 안과의 단

 

화는 양자가 캠프를 꾸리기도 전 전격적으로 진행된 것이라 이 책에서도 간단한 소회만이 언급되지만,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은 시민사회 세력, 곧 여의도 외부 세력이 기존의 정치 세력과 연합하는 데에 있어 어떠한

 

현실적 문제들이 도출되는지에 대해 교과서로 쓸 수 있는 징후들을 드러내었고 그 세부적인 내용들이 책에 다

 

루어졌다. 단일화를 향한 주목의 열기가 식어버릴 정도의 지루한 룰 협상, 그 안에 숨어있던 '악마적 디테일', 그

 

리고 단일 후보 경선 당일 민주당이 행한 조직적 표 동원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가 이 과정을 복기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개혁-진보 진영의 승리는 언제나 단일화가

 

전제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1997년 김대중과 김종필의 DJP연합, 2002년 노무현과 정몽준의 연합,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2012년 문재인과 안철수의 연합. 바로 전 독후감에서 다루었던 김종배의 <30대 정치학>의 일부

 

분을 인용하자면, 전체 유권자 중 새누리당의 견고한 지지층은 약 45% 가량, 민주당의 경우에는 30%의 중반대

 

이다. 말하자면, 새누리당은 자유선진당이나 국민생각등 여타 범보수세력의 도움 없이도 집토끼를 잘 챙긴 뒤

 

5% 이상만 차지하면 승리가 확실한 한편, 민주당은 분명히 결이 다른 진보 정치세력, 시민사회, 노동사회 등

 

'반새누리'의 기치 하에서만 통일될 수 있는 세력과 잡음 없는 단일화를 이끌어 내야만 승리를 기약해 볼 수 있

 

는 처지라는 것이다. 결국 한동안, 개혁-진보 세력의 지지자들은 단일화의 카드를 놓을 수 없다.

 

 

그러한 단일화를 단순히 지지만 할 것이 아니라 '공부'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지금 당장 눈앞에서도 제기되고 있

 

다. 안철수 후보는 위에서 서울 시장 단일화 후보 경선 기간 중 민주당에 의해 저질러졌던 것과 유사한 성격의

 

일들이 발생하고 있는 점을 들어 며칠 전 단일화 협상을 중단한 바 있었다. 단일화 룰의 지루한 협상은 재차 발

 

생하였고, '안철수 포기론'을 언론에 흘린 점, 문재인 후보의 당위성을 말하는 문자를 대량으로 살포한 점 등 '조

 

직의 힘'이 공정하지 못하게 발휘되었다는 것 등을 예시로 들 수 있겠다. 안 후보는 협상의 중단이 단일화를 향

 

한 야권 지지자들의 열망에 찬 물을 끼얹을 것이며 자신에게도 정치적으로 불리한 수임을 알고 있지만 구태적

 

정치 전략의 반복으로는 참된 정치 개혁을 이룰 수 없다는 요지의 언급을 하였다. 안 후보와 안 후보의 캠프인

 

진심 캠프가 지적하는 이런 일들 중 얼만큼이 사실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단일화 과정에서 민주당

 

이 일종의 '정치 스킬'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 듯 하다. 그렇다면 그러한 '스킬'의 정체는 명명백백하게 밝

 

혀지는 것이 좋다. 단일화를 향한 목소리는 민주당 당원만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첫번째와 두번째에서 이어지는 세번째 가치. 마침내 정치의 전면에 등장한 '시민단체'라는 주어. 특히 이번 정권

 

하에서부터, 개혁-진보 세력 지지자들의 민주당에 대한 시선은 그리 곱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전투력, 선명성,

 

공정성 등의 핵심적인 평가 기준에 있어 실망스러운 이력을 보여왔지만, 어쨌든 반새누리 진영에서는 국회의원

 

을 가장 많이 보유한, 말하자면 '힘이 있는' 세력이어서 '비판적 지지'를 누려왔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때문에,

 

'비지'의 이 에너지는 언제라도 안철수, 박원순과 같은 민주당 바깥의 세력이나 민주당 내부에서도 정봉주, 문재

 

과 같이 탈 민주당적 이미지를 가진 정치인을 발굴해 낼 의지를 가지고 있다. 이 때, 공당(公黨)을 제하고 현실

 

정치에 바로 참여하여 정책 기구와 홍보인단 등을 꾸릴 수 있는 조직은 시민단체가 유일하다. 따라서 앞으로도

 

시민단체는 단일화에 있어 민주당이 누리고 있는 상수로서의 위치에 근접해 갈 것이다. 그 이력이 곧 시민운동

 

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는 '박 변'의 시장 당선과 시정은 그러한 시도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한 증표이다. 이 책에

 

는 그런 시민단체 출신들이 정치에 참여하며 겪게 되는 갈등과 그에 대한 평이 날것 그대로 들어있다. 정치에 참

 

여하게 될 시민단체와 그런 시민단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에게 좋은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총평. 박 시장의 팬에게는 추천. 자세한 서울 시정이나 지난 10.26 선거의 객관적인 기록을 원하는 분에게는 비

 

추. 정치에 관심있는 분이시라면 아직 단일화가 끝나기 전인 바로 지금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