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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3

중복을 기다리며 특별 보너스






농담이다. 농담. 난 개를 무척 좋아하고 (애완용으로도 식용으로도) 내일 점심도 보신탕을 끓여

먹을 것이지만, 개를 먹는다고 굳이 먼저 말하지는 않는다. 듣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데에야,

일부러 말할 것까지는 없으니까.


이놈은 시베리안 허스키라는 놈이다. 개를 개과라고 불러야 하는 것은 이놈들처럼 애매한 종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름도 말하기 싫은 치와와나 시츄라는 놈들의 경우는

개과에서 추방시켰으면 좋겠다. 어디 고양이과같은데로. 그리고 호랑이는 개과로 편입시키고.)


'동물의사 닥터 스쿠르'라는 만화를 사 모으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놈은 언제나 내게 소유욕의 대상

이었다. 게다가 순종은 강아지 한 마리에 300만원이나 한다는 것을 들으면서부터는 묘하게 남자의

성공심리와 결합되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정에는 시베리안 허스키가 뛰노는 정원이 빠지지

않게 되었다. ( 몇 장면을 덧붙이자면, 얼굴이 하얀 아내는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고 딸아이는 피아

노 학원을 다녀와서 오늘 배운 곡을 치고 있다. 딸의 눈은 나와 똑같이 생겼다. )



재수를 할 무렵에 나는 한가지 결심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애완동물을 키우기 위한 책임감이 부족

한 것 같다. 그러니 가장 책임감이 적게 요구되는 것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올라가자.

그렇게 해서 키우기 시작한 것이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채송화 '다희'다. 나름대로 말도 걸고 우유도

따라주고 했는데. 첫 꽃을 피웠을 때가 아직도 기억나는데. 다희는 그만 잡초들의 틈에 끼어 죽어

버렸다. 옆에 난 것들도 다희의 잎들인 줄 알고 그냥 내버려 뒀더니만 양분을 빼앗겨 죽어 버린 것이

다. 다희의 씨를 샀던 꽃집에 가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한참동안이나 마음이 쓸쓸하였다.


그 뒤로, 꼭 한 번 사고 싶었던 길거리 토끼를 사다가 재수가 끝나면 길러 보려고 인천 집에 데려다

놓고는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두마리 중 한마리가 물묻은 잎사귀를 먹고 죽었고 나머지 한마리는

그 근처를 계속 맴돌다가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학교 1학년때에 과다한 과외로 들어온 200여만원의 공돈을 쥐고, 나는 무척이나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꼭 한 번 시베리안 허스키를 길러 보고 싶었는데, 하고. 그 돈은 결국 디지털 캠코더를 사

느라 날아가 버렸지만, 지금 내게 그 돈이 다시 쥐어진대도 나는 아마 그 놈을 사지 못할 것 같다.

다희가 생각이 날 것 같아서. 이름도 지어주지 못 한 토끼가 생각이 날 것 같아서.


언젠가, 북실북실한 그 놈을 앉혀 놓고 아내와 딸과 이 글을 읽고 있게 되면, 정말로 내 자신이

자랑스러울 것 같다. 그 이름이 다희라면, 더 말할 것도 없겠지. ( 그러나 사실 개의 이름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름은, '개'다. '어이, 개!'라고 소리치면 개가 뛰어온다. 이건 정말이지 생각만

해도 유쾌해지는 일이다. 수컷이라면, 꼭 개라고 지어 줘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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