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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3

잡을 테면 잡아봐





유승준이 선전했던 모 회사의 광고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 'catch me if you can'을 보았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이 났던 것은 (과연 감독이 스필버그라는 것을 모르고 봤을 때도 내가 그렇게

생각했을까는 또다른 의문이었지만) 연출의 힘이었다. 근래에 한국영화, 외국영화들을 극장에서

그리고 비디오,TV로 접하며 '아! 저것은 연출의 힘이다'라고 절로 탄식하게 하는 부분부분들이 있었

는데 이 영화는 일일이 지적할 수 없을만큼 전체가 하나의 큰 흐름으로, 그런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구별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하나의 유기체처럼 잘 짜여져 있었다. 덕분에 실내가 더웠던 것

과 다음에 나올 장면을 예측하며 토론해 대는 연인들을 빼면 오랜만에 편한 기분으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보여주는대로, 감독이 의도한대로 기분이 따라가도록 내버려 두어도 전혀 어색하거나 불편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던 것은, '거짓말'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영화의 주인공

만큼은 아니지만 타고난 거짓말장이이다. 나는 주로 듣는 사람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고 내 말들은

주로 일상다반사가 아니라 '이야기'이다. (굳이 유종호 교수님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인용해가며

설명하지는 않겠다.) 참된 이야기꾼은 거짓말장이이다. 유려하게 뽑아낸 거짓말 한가락은 그대로 멋

진 이야기가 된다. 소문난 이야기꾼일수록 그의 말 중 거짓말이 차지하는 비율은 커진다. 인생과

진실을 말하는 데도 소문난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는 이야기꾼이 아니라 철학자나 교수일 것이다.


여기서 내가 허연 거짓말이니 어쩌니 하는 식상한 사례들을 나열해 가며 거짓말이 갖는 각종 효험들

을 역설해 보아도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다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거기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면 어떤 식으로든 합리화를 통해 익숙하게

거짓말의 장점들을 인식했을 것이므로. 아니면 그 최초의 고민이 시작되었던 때부터 지금까지 거짓

말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살았거나.


거짓말은 나쁜가? '거짓'을 말하다. '거짓'은 사실이 아닌 것. 사실이 아니면 나쁜가? 그것 자체가

나쁜가, 아니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분이 나빠서 나쁘다는 것인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나는 며칠 전 몇달동안 속아왔던 사실을 알고 근래 유래없이 노한 적이

있었다. 왜 화가 났을까. 생각해보면 거짓말으로 알고 있어도 나한테 피해를 미칠 만한 일은 아니

었는데.


거짓말. 거짓말. 내가 아는 누군가도 나한테 심각한 거짓말을 하고 있을까? 지금까지 지내면서 겪어

본 가장 큰 거짓말은 '크면 알게 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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