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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6

인도에서 만났던 동행에게서 온 메일에의 답장

제목 : 인천입니다.




참 재미없는 제목이군요.


델리공항으로 향하는 중간쯤에서, 이미 나의 시간은 멈추었던 것 같아요. 뻥뻥 뚫린 8차로를 타고,

목책들을 지나 반짝이고 깨끗한 델리공항에 도착한 그 순간에, 비록 리컨펌 문제때문에 집으로 갈

수 있을지 아닐지도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어쩐지, 바로 몇시간 전까지 있었던 인도가, 아니, 델리

를 인도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불과 하루전까지 나는 바라나시에 있었는데, 그것이 먼 옛날

의 일처럼만 느껴졌어요.


칼때문에 인도 세관과 한국 세관에서 한차례 소동을 피우긴 했지만, 다행히 티켓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한숨 자고 일어나니 홍콩, 잠깐 책 읽고 나니 인천이었지요.


다녀와서 바로 메일을 보내지 못 해 미안해요. 그제 도착한 나는 어제 오전까지 스스로 풍토병인가

를 의심할 정도로 심한 고열에 시달렸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바라나시에서의 하시시 때문에

응급실에 가 보자는 부모님에게 단순한 노독일 뿐이라고 애써 웃으며 변명하고는 방에서 밤새도록

끙끙 앓았지요. 혈액검사라도 하면 곤란하니까요. 다행히 수진양의 생일날이었던 어제에는 다소간

회복이 되어 신촌에 갈 수 있었어요.


한국에 오면 무언가 굉장히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은 오산이었어요. 넓고 깨끗한 도로와 그 도로를

가득 메운 승용차, 그리고 엄청난 수의 한국 사람들. 익숙해지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오히려 인도에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지만.


공항에서 여행기의 마지막을 고민하다가 적어낸 글귀이지만, 그리고 아주 흔한 말이지만,


인도에 갔던 것은 결국 인도를 보러 갔던 것이 아니라 나를 찾으러 갔던 것이니까요. 내가 서 있는

한 이곳은 인천이고 갠지스인 것이지요. 이것은 문학적인 미사여구가 아니라 내가 얻어낸 진실한

성취입니다. 정민스님이 보시면 또 하나의 거대한 아상我像을 세웠다고 혀를 차시겠지만 말이예요.


마지막까지 설사나 변비 따위에게 지지 말고 건투해 주길 바랍니다. 한국에서 큰 뉴스거리가 생긴다

면 이따금 전할 테니, 돌아간 사람일랑 잊고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 재미있게 살아 주길.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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