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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5

이사

 

 

 

다음달인 구월 초, 인천의 본가가 이사를 가게 됐다. 오륙년 생 아버지는 은퇴를 앞두고 생활의 규모를 줄이고 싶다 하셨다. 기왕에도 우리 가족에게는 큰 집이긴 했다. 쓰러진 할머니를 모시기 위해 들어갔던 집인데 할머니는 이사를 며칠 앞두고 돌아가셨다. 그렇게 이렁구렁 이십여 년을 살아온 집이다.

 

인기 없는 중대형에서 인기 많은 중소형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니 경제적인 손해는 있을지언정, 정들었던 동네를 떠나는 것은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런데 본가에 남아있는 내 짐이 문제가 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대체로 나와서 산 생활이다. 정작 본가에 산 건 조각조각 다 모아봐도 사 년이 채 안 된다. 옷이 됐든 이불이 됐든 매일같이 긴요한 것들은 언제나 서울에 있었다. 본가에 있는 것은 없고서도 십 년이 넘게 잘 살아온 물건들이다. 팔 수 있으면 팔고 팔 수 없으면 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동전 모아 살 때에도 애면글면 사서 모은 책은 잔뜩 가 있다. 좁은 고시원을 전전하던 시절에는 구입할 때부터 아예 본가로 배송을 시킨 책도 많다. 지난 번에 내려갔을 때 눈대중으로 보니 큰 박스로 이삼십 개 정도가 되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술기운을 빌어, 은퇴와 함께 생활 상으로는 완전히 분리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앞가림을 하지 못하는 자식이라 부끄러웠다.

 

올해가 시작되면서 제일 큰 목표로 이사를 잡고 있기는 했다. 십 년 넘게 살아서 익숙하다는 것과 지인들과 만나기 편하다는 것 외에, 신촌 인근에 계속 살아야 한다는 이유는 아무 것도 없다. 계속 공부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바에야 학교 근처를 배회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주로 활동하는 광진구까지는 편도로 한 시간 반이 넘는다. 이사를 가자.

 

본가의 책과 지금도 방 여기저기에 키높이만큼 쌓여있는 책을 모두 보관하려면 넉넉한 집이 필요했다. 그런 집을 구할 만한 돈은 늦가을이나 초겨울쯤 모이겠다 싶었는데 생각보다 두세달 먼저 진행하게 됐다. 덕분에 이번에 이사가는 집은 그저 큰 책장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됐다. 반전세로 구할 것이라 일이년 후에 다시 이사가게 될 것은 차라리 복이다. 열심히 모아서 다음 번에는 더 많은 용도를 가질 수 있는 곳으로 가자.

 

목표했던 시기와 고작 두세달 차이다. 새로 이사를 가려 마음먹은 곳은 강북의 광진구로 계획성 없이 살아온 인생의 결과로도 적당한 장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나는 자유직이고 비정규직이라 집 구하러 다닐 시간도 넉넉하다.

 

무슨 일이든 바라는 것의 칠 할쯤 충족되면 무척 좋은 결과라는 것이 평소의 생각이다. 당장의 사정에 비추어 적당한 때 적당한 조건으로 이사를 가려면서도, 막상 집을 알아보고 짐을 어찌 쌀까 궁리하고 있자니 마음에 소회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어 일기장에 넋두리처럼 적어놓는다. 나는 내일부터 집을 보러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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