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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8

웃음의 대학






벼르고 벼르던 '웃음의 대학'과 오래 전에 보았던 '더 유쵸우텐 호텔'을 연이어 보았다. 가장 좋

아하는 이야기꾼들 중 하나인 미타니 코키의 작품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점차 일본의 제국주의가 비참한 결말을 예상하게 하던 1940년, 국가는 시국을

고려해 서민들의 오락거리인 희극을 차츰 없애기로 결정하고 검열관 제도를 운영한다. 여기에 새

로 부임해 온 한 검열관과 젊은 희곡작가 간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다. 한 번도 진지하게 웃어 본

적이 없어 적역으로 판명된 검열관과 어떠한 경우에도 웃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희곡작

가. 검열관은 무리한 조건을 들어 계속 상영불가 판정을 내리지만, 작가는 그 때마다 조건에 상응

하게 작품을 고쳐오는데, 이 과정에서 작품은 차츰 더 다채로운 재미를 갖게 되고, 검열관과 작가

는 점점 가까워진다. 그러나 극의 재미가 한껏 달아오른 어느 순간, 작가는 수차례의 검열에도 좌절

하지 않는 이유는 서민에게 웃음을 주고 싶어 국가에 반항하는 자신만의 투쟁 방법이라는 고백을 해

오고, 오로지 국가만을 생각하던 검열관은 이 고백에 자신의 본분을 새삼 깨닫고 단 한 부분이라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면 허가하지 않겠다며 냉혹한 선언을 한다. 마지막 날인 검열 칠일째,

검열관은 한 번도 웃은 적이 없던 자신이 무려 83회나 웃었다며 대로한다. 시키는대로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화를 내는 검열관에게 작가는 입영 통지서를 내민다. 마지막으로 한 번, 검열에

신경쓰지 않고, 극단 단장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작품을 써 본 것이다. 결연하게 뒤돌아 서는

작가에게, 검열관은 꼭 살아 돌아와서 이 연극을 연출하라고, 그 때까지 자신이 이 걸작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겠다고 소리치며 작품은 끝이 난다.


2004년 영화화된 작품으로 미타니 코키는 각본만을 담당했지만 특유의 유머와 미감은 이 작품이

그의 원작에 크게 빚지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올 해인 2008년 여름 문성근씨와

황정민씨 주연으로 연극무대에 올라간다고 하니 그 때를 기다려 보는 것도 좋겠다.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라디오의 시간)'처럼 '웃음의 대학' 또한 미타니 코키가 속해 있는 극단 '도쿄

선샤인 보이스'에서 1996년에 상연되었던 작품이라고 한다. 영화의 90%이상이 검열실 안에서 일어

나는 일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연극으로 보는 것이 더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라디오의

시간도 그랬어야 했는데... 좀처럼 ...을 쓰지 않는 나로서도 어쩔 수 없이 쓰게 되는 대목이다.)


야쿠쇼 코지의 호연도 인상적이었다. '딱딱하다'라는 한 단어로 표현될 수 있는 인물을 대단히 입체

적이면서 사실적으로 그려내었다. 덕분에 결말에 가까워지는 순간까지도 캐릭터를 발견하는 신선

함이 계속된다. 입체적인 캐릭터 메이킹이라는 것만 해도 보통의 배우에게는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

이 가능한 배우에게도 적절한 수위를 맞추기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연기력을 과시하다가 전체

작품과 어울리지 않거나 오히려 방해가 되는 연기가 나오면 평범한 연기만 못 한 법이다. (이를테면

홍상수 영화의 많은 부분들이 그렇다. 유럽에선 환호한다지만, 나는 거품 혹은 잘난 척이라고 생각한

다. 인간성, 그리고 특히 일상성에 대한 해답 없는 의문은 한 번으로 족하다. 차라리 강우석의 강철중

은 속시원하기나 하지.) 그런데 야쿠쇼 코지는 이러한 연기를 어색하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작품의

정수를 표현해 냈다고 할 수 있는 정도까지 보여 주었다. 이런 배우를 만날 수 있는 연출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다만 결말은 마음에 걸렸다. 작가는 결연히 전장을 향해 떠나고 검열관은 그의 뒤에 명예로운 일이

니 꼭 살아 돌아 오라고 눈물을 머금으며 소리치지만 살아 돌아와 다시 작품을 쓸 수 있는 그의 손에

는 아마도 아시아인들의 피가 묻어 있을 것이다. (작가의 실제 모델 인물은 징집당해 결국 35세에

군대에서 죽었다고 한다.)'국가'를 일본어로 '오쿠니'라고 하는 모양인데, 이 '오쿠니'를 사용한 일본

식 말장난이 여러 차례 나온다. 극화를 염두에 두고 보기 시작한 탓에 지난 번 '라디오의 시간' 극화

과정에서 일본식 말장난을 한국식으로 바꾸었던 경험을 반추하며 이 번엔 어떻게 해 볼까 생각을

했는데, 이 '국가'가 최종적으로는 중요한 결말의 단서로 작용하기 때문에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는 더 씁쓸해졌다. 영화는 영화, 라고 웃어야 하는 것일까.

(예전 지브리 스튜디오의 '반딧불의 묘'를 보고서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2005년인가 200

6년인가, 아카데미에서 니콜 키드먼은 '예술은 예술일 뿐'이라고 말했고 '화씨 9/11'로 수상을 했던

마이클 무어는 부시보고 부끄러운 줄 알라고 했다. 예술은 어디까지를 포함하는 것일까.)


아무튼, 미타니 코키 특유의 휴머니즘, 그리고 연극에 대한 애정, 글쓰기에 대한 고민등이 그대로

묻어 나와 더욱 즐겁게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여러분에게도 권한다. 다소간 지루한 부분은 있으나,

빛나는 장면들로 덮을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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