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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우석훈, <일인분 인생>

 

 

 

 

오랜만의 독서일기이다. 시간이 되는 한 독서는 늘 하고 있는 일이니 책을 읽지 않아 쓸 것이 없었다는 변명은

 

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왜 쓰지 못하는 것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이 카테고리의 독자를 명확히 타케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답이 나왔다. 읽어보고 책을 살지 말지 고민하는 이에게 건네는 글이라면 명확한 목차 정리

 

와 체계적인 요약이면 된다. 이전부터 내 블로그를 읽어와서 나 개인에게 애정을 갖고 있는 이에게라면 내 기준

 

에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재편집하여 에세이 형식으로 쓰면 된다. 어느 쪽이든 분명하게만 정해 두었더라면

 

좋았을 것인데, 원인은 생각하지 않고, 요약만 하는 글은 내가 쓰나 남이 쓰나 똑같지, 그렇다고 나한테 의미있

 

는 부분만 떼어내서 마음대로 써 버리면 책 내용은 전혀 안 나올수도 있는데, 하고 이런저런 불평들을 붙여왔던

 

것이다.

 

 

답해야 할 질문을 찾아내었을 뿐 답은 찾지 못한채로 이러구러 지내는 와중에 다시 독후감을 쓰게 만든 책, 'C급

 

경제학자'로 자처하는 우석훈 씨(이하 우석훈)의 <1인분 인생>이다.

 

 

 

 

 

같이 경제 문제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팟캐스트 방송인 '나는 꼽사리다'를 함께 진행하고 있는 선대인 씨(이

 

하 선대인)의 책들이 철저하게 경제 현안에 주목하여 수치와 도표로 논리를 쌓고 구체적 정책 등의 대안을 제시

 

하고 있는 것에 비해, 우석훈의 책들은 일단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경제 현상들에 착안한 뒤 그 근저의 사회문화

 

적 동인을 탐색하여, 부당한 권리를 누리는 이들에게는 일갈하고 소외된 이들에게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래

 

서 선대인의 책은 명쾌하고, 우석훈의 책은 따뜻하다.

 

 

이 책은 그 중에서도 우석훈은 어떤 문제에 눈길을 돌리나, 어떤 과정으로 그 원인을 찾는가 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말하자면 우석훈의 인문학적 시선에 관한 일종의 에세이이다. 5-10페이지 가량에 걸쳐 하나의 주제

 

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적어나가고 있는데, 직업이 경제학자이니만큼 경제 문제들이 간간히 등장하기는 하지만

 

대체로 소재 수준을 넘어가지 않고, 대부분은 그가 살면서 겪었던 경험에 관한 내용들이다.

 

 

나는 사실 에세이집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접해 본 에세이집 가운데에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성찰

 

하고 고백하거나 혹은 세상 사람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신념, 메시지 등을 담고 있기보다는, 제3자가 보아도 편

 

집된 것이 분명한 편린적 추억들을 나열하여 자신이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를 끊임없이 강요하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는 이렇게 보이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상은, 대개 재미가 없다.

 

 

그런데 <1인분 인생>에는 - 내가 보기에 - 글 전편을 유기적으로 관통하는 테마가 두 가지 있었다. 자신에 관해

 

다룰 때 드러나는 '마흔넘이', 그리고 타인에 대해 다룰 때 드러나는 '사회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그것이

 

다.  

 

 

오래 전부터 마흔이 되면 은퇴하려 했다는 언술에서 보이듯, 우석훈 개인에게 마흔은 상징적인 나이였던 것 같

 

다. 이전의 삶에서 포기했던 정신적 가치들을 되찾고, 그 댓가로 물질적인 성공을 반납하였을 뿐인데 그의 삶에

 

서는 단지 수입이 줄어들은 것 외에도 많은 것들이 변했다. 우석훈은 이 과정에서 느꼈던 것들을 솔직하게 차근

 

차근 적어두었다. 읽다보면, 아, 마흔에도 이렇게 고민하고 변화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한편으로,

 

이런 형하고 같이 일을 하면 무척 피곤하겠다 하는 생각도 든다. 말하자면, '인간 우석훈', 혹은 '우석훈이라는

 

이름의 한 40대 인간'에 대한 이해가 더 자세해진다는 것이다. 우석훈을 공부하는 데에도, 인간을 공부하는 데에

 

도 모자람이 없을 교재이다. 이 부분은 마흔의 성장통을 겪고 있거나 혹은 아직 그 나이가 되지 않았을 뿐 마흔

 

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타인과 사회에 보내는 우석훈의 시선을 살피다 보면, 그가 왜 매력적인 문필과 맥동하는 가슴을 가졌음에도 문

 

학이나 사학이 아니라 경제학, 사회학을 선택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개인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

 

이 대체로 개인의 재능이나 무능함, 성실과 나태함 등 보다는 그를 둘러싼 사회 환경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고

 

여기는 것 같다. 이 연장선 상에서 아마도 <88만원 세대>나 <문화로 먹고 살기>등이 태어났을 것이다.

 

알바해서 등록금 대 가며 대학교 다니느라 연애도 못했는데, 그렇게 겨우 졸업을 했더니만 이번엔 취업이 안 되

 

어 혼자 소주 먹는 한 청년아, 그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다. 스스로와 다른 이들에게 꿈을 전달하고 싶었을 뿐이

 

었는데 유수의 학교를 졸업하고도 밥을 굶다가 죽어버린 한 시나리오 작가여, 그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다. 문제

 

는 너희를 구조적으로 착취하도록 견고하게 설계된 '제도'이다. 그러니 울지 말고, 죽지 말아라.

 

여기에 우석훈의 연구의 '따뜻함'이 있다. 개별 주제에 대해 논리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여타의 저서들에 비해 에

 

세이 형태인 이 책에서는 이 '따뜻한 시선'을 좀 더 자주, 그리고 직접적인 형태로 접할 수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테마 모두 개인적으로 큰 감흥을 받아, 답도 없고 정리도 잘 안 되는 독후감이나마 오랜만에

 

끄적거리게 됐다.

 

첫 번째 테마인 '마흔넘이'에서는 글쓰는 이로서 자극을 받았다. '1981년생을 위한 책을 쓰고 싶다'는 것이 오래

 

전부터의 욕망이었다. 생의 어떤 때에는 위로가 주제이고 어떤 때에는 성찰이, 그리고 마지막 권 쯤에서는 회고

 

가 주제가 될, 장르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시리즈가 될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는 욕망. 그 한 현실적 이상향을

 

발견하고 자극을 받았다.

 

두 번째 테마에서는 결혼 적령기의 한 30대 초반으로서 공감하였다. 90년부터 2010년까지 초혼 연령은 4-5세

 

정도가 올라갔는데, 우리가 형들에 비해 연애에 더 탐닉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연예인이나 사회 저명 인사들이

 

늦게 결혼하니까 그 영향을 받은 것일까? 아니, 문제는 집값이다. 평범한 직장생활로는 둘째 치고, 양가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 하더라도 평범한 집안끼리 만났다면 서울에 전세 한 채 얻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돈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결혼 직전까지 부모와 사는 '캥거루족', 잠시나마 나와 살다가 다시 본가로 돌아

 

가는 '연어족'등의 신조어는 왜곡된 사회 구조가 어떻게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준다. 엄청난 결

 

혼 준비 비용에 서로나 서로의 집안의 경제적 무능함을 탓하다가 헤어져 버린 커플, 늦어진 결혼만큼 늦어진 출

 

산에 건강한 아이를 낳지 못하거나 아니면 셋쯤 낳으려던 계획에서 둘이나 하나로 줄여버린 아이 엄마, 서른이

 

넘도록 부모님과 아침저녁 얼굴을 맞대다가 감정적인 싸움을 벌이고 짜증을 내거나 후회를 하고 있는 청년. 이

 

들의 '개인적' 문제는 과연 개인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