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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오카노 유이치,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 (라이팅하우스. 2013, 9.)

 

 

 

 

 

아주 건조하게만 소개하면 이렇다. 이 만화의 주인공은 실제 작가인 '나(페코로스)'와 '나의 어머니'이다. '나'는 1950년 나가사키에서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젊은 시절 도쿄에 나가 일하다가 나이가 든 뒤 다시 고향으로 낙향했다. 젊을 때부터 술만 마시고 제대로 된 일을 하지 않아 어머니를 괴롭히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치매에 걸렸다. '나'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의 일상을 4컷 만화로 그려 내가 일하는 지역 정보지에 싣기 시작했다.

 

소소한 호응을 얻어, '나'는 그간의 4컷 만화를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자비로 출판했다. 그런데 이것이 지역 출판인들과 유명한 시인 등의 눈에 띄어 점차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나가사키 지역 서점에서 1위를 한 뒤, 대형 출판사에서 정식으로 출간되어 전국 서점의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랐다. NHK에서 다큐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극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분류하고 있지는 않지만 실려 있는 에피소드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번째,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나'가 겪어나가는 일상적인 이야기. 여기에서는 원래도 순박했는데 치매에 걸리고 나서 약간 멍청해지고 아기 같아진 어머니, 그리고 그런 어머니를 사랑하고 이해하려는 '나'와의 관계가 가볍고 유머러스하게 묘사된다. 이 작품에서 '따뜻하다'라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은 거의 이 부분에서이다. 작품 전체의 기본적인 톤 또한 이러한 첫번째 갈래에 맞추어져 있다.

 

두번째,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회상하는 예전의 인생. 남매가 많아 학교에 가지도 못하고 일만 하던 소녀 시절, 속썩이는 남편을 이해하고 도닥이던 신혼 시절, '나'와 형제들을 한참 키우던 주부 시절 등이 나온다. 자위를 한 뒤 주위를 치우거나 속옷을 입지 않고 그대로 잠들어버린 '나'를 발견하고 다음날 잔소리를 하는 에피소드처럼 소소하고 우스운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위에 소개한 바와 같이 고생하고 힘들었던 에피소드들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속한 세대를 감안해 보면 형제들을 돌보며 고생했다든지, 적은 수입을 쪼개어 매일을 꾸려나간다든지 하는 것은 개인적 비극이라고만 하기는 어렵다. 아울러 '어머니'의 작중 캐릭터가 깊은 생각을 하거나 유난스런 서정감을 갖고 있지 않고, 작가의 의도가 어머니 인생의 슬픔이나 참혹함을 강조하는 데 있지도 않으며, 게다가 그림체도 동글동글 귀엽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는 딱히 슬픔이나 연민의 감정을 갖기 어렵다. 이런 두번째 갈래의 에피소드들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가장 강하게 느낀 독후감은 주인공 중 한 명인 어머니를 좀 더 잘 이해하게 되어 캐릭터에 애착을 갖게 되었다는 것 정도이다. 

 

세번째 갈래는 어머니가 현재 겪고 있는 치매 속 환상 세계이다. 두번째 갈래인 '과거의 회상' 또한 치매 속 세계이긴 하지만, '과거의 회상'을 겪고 있는 어머니와 '현실 속 환상'을 겪고 있는 어머니는 캐릭터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현실 속 환상'의 어머니가 홀로 겪는 에피소드들은 읽는 독자가 인생의 여러 면모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이 많다. 어머니가 이 환상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며칠 전에 죽은 소녀 시절의 친구, 어린 시절의 자신 등도 있지만 압도적인 비율로 등장하는 것은 죽은 아버지이다. 아버지는 살아있을 때와 달리 상냥하고 세심하며 자신이 잘 못해주었던 것에 대해 늘 미안해하고 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와 나누는 대화, 함께 하는 경험 등을 통해 '부부란 무엇인가', '삶의 기쁨이란 무엇인가', '삶의 고통스러운 순간이 왔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에 대한 하나의 답을 보여준다. 물론 이 작품 속 '어머니'라는 캐릭터의 기본적인 특성과 이 책이 4컷 만화라는 압축적 형식을 택하고 있는 만큼, 갑작스레 철학적 용어를 줄줄줄 늘어놓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다른 갈래의 에피소드에서와 마찬가지로 짧은 문장이나 한 컷의 동작 정도로 메시지를 전하는데, 이것이 오히려 더 큰 심상을 남긴다. 다음은 그런 에피소드 중 하나를 발췌해 온 것이다.

 

 

 

 

 

 

 

나는 내 시간이 많지 않아 이 세번째 갈래 중 하나의 에피소드만을 뽑아 소개할 수밖에 없는 것에 일종의 죄책갖는다. 위의 두 에피소드만이라면 어머니의 캐릭터를 '치매에 걸려서도 순종적이고 관용적인, 뻔한 옛날 아내 상'이라고 오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것처럼 책 내용의 대부분은 작가인 '나'와 어머니가 겪는 따뜻하고 다소 유머러스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렇게 해서 조금 아기 같고 조금 멍청해져서 귀여워진 어머니 캐릭터가, 문득 모성이나 사랑, 인생에 대한 고찰 등을 보일 때 느끼게 되는 감동이란 매우 크다. 고백하자면, 나는 공강 시간에 동네 수퍼의 파라솔 아래 앉아 떡으로 저녁을 때우며 이 책을 읽다눈물이 났다. 살면서 내내 고생하고 늙어서는 치매에 걸렸지만 수선스레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그저 주진 하루하루를 평범하게 살아가는 한 인생선배의 강인함, 그런 어머니를 효성과 사랑으로 대하는 아들, 그 와에 문득 전해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느끼게 되는 '살아있음의 슬픔' 때문이었을 것이다. 귀엽고 슬픈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찾는 사람에게라면 앞으로 한동안은 이 책을 소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