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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7

연암 박지원, <伯姉贈貞夫人朴氏墓誌銘 (백자증정부인박씨묘지명)>

유인孺人의 이름은 아무이니, 반남 박씨이다. 그 동생인 지원 중미仲美가 묘지명을 쓴다. 유인은

열여섯에 덕수이씨 택모宅模 백규에게 시집을 가서 딸 하나 아들 둘을 두었는데, 신묘년 구월 1일에

세상을 뜨니 얻은 해가 마흔 셋이었다. 지아비의 선산이 까치골인지라, 장차 서쪽 자리에 장사지내려

한다. 백규가 그 어진 아내를 잃고 나서 가난하여 살 길이 막막하여, 어린 것들과 계집종 하나, 솥과

그릇, 옷상자와 짐궤짝을 끌고 강물에 배를 띄워 산골로 들어가려고 상여와 더불어 함께 떠나가니,

내가 새벽에 두포에서 이를 전송하고 배 가운데서 통곡하며 돌아왔다.


아아, 누님이 시집가던 날 새벽 화장하던 것이 어제 일만 같구나. 나는 그때 갓 여덟 살이었다. 멋대로

드러누워 말처럼 뒹굴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새 신랑의 말투를 흉내 내어 말을 더듬거리며 점잔을

빼니, 누님은 그만 부끄러워 빗을 떨구어 내 이마를 맞추었다. 나는 성나 울면서 먹을 분에 뒤섞고

침으로 거울을 더럽혔다. 그러자 누님은 옥으로 된 오리나 금으로 만든 벌 따위의 패물을 꺼내 내

게 주면서 울음을 그치게 했었다. 스물여덟 해 전의 일이다.


말을 세워 강 위를 멀리 바라보니, 붉은 조기가 바람에 펄럭거리고 돛대 그림자는 물 위에 꿈틀거렸

다. 건너편 물가에 이르러 숲을 돌아가더니 가리워져 다시는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강 위 먼 산은

검푸른 것이 마치 누님의 쪽진 머리 같고, 강물 빛은 누님의 화장 거울 같고, 새벽달은 누님의 눈썹

같았다. 그래서 울면서 빗을 떨구던 일을 생각하였다. 유독 어릴 적 일은 또렷하고 또 즐거운 기억이

많은데, 세월은 길어 그 사이에는 언제나 고생하고 떨어져 있었으며 가난과 곤궁을 근심하였으니,

덧없기 마치 꿈속과도 같구나. 형제로 지낸 날들은 또 어찌 이다지 짧았더란 말인가.



去者丁寧留後期

猶令送者淚沾衣

扁舟從此何時返

送者徒然岸上歸


떠나는 이 거듭해서 뒷기약을 남기지만

오히려 보내는 사람 눈물로 옷깃 적시게 하네.

조각배 이제 가면 언제나 돌아올꼬.

보내는 이 하릴없이 언덕 위로 돌아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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