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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7

연극과 인생 제 27회 정기공연 '라디오의 시간' 연출의 글






인도에서 있었던 일이다.



갠지스 강가에서 머물며 산책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일로 소요하던 나는 며칠 전부터 눈여겨 보던 보트를 흡

족하게 그리고는 신이 나서 걷고 있었다. 거리에서 산 인도옷의 허리춤에는 인도피리가
꽂혀져 있었고, 짐이라

고는 바지끈에 매달아 놓은 숙소의 열쇠 뿐이었다. 화장터를 지날 무렵 강가에
앉아 있던 늙은 힌두교 사제가

그 쪽으로 가는 나를 한참이나 바라 보다가 목소리가 들릴 만한 거리가
되자 ‘너는 참 행복해 보이는구나’라고

말을 건네왔다. 이전의 나였다면 멈춰 서서 감사의 인사를 하
든지, 혹은 앉아서 대화를 시작했겠지만, 그날의

나는 웃음을 짓거나 멈추지도 않고, 자신의 입에서
대답이 나오는지조차 의식하지 못 한 채, 마치 들이마쉰 숨

을 내뱉는 만큼이나 자연스럽게,


‘그렇소’

라고 대답한 뒤 걷던 길을 그대로 갔다. 아마도, 그 순간을 위해 나는 인도에 갔던 것이다.



일상에서의 탈출과 영혼의 구도를 바라는 이들에게 이것은 마치 천상의 우화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마

음가짐이 될 때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어 버렸던가. 사기를 당하고, 짐을 도
둑맞고, 큰 싸움에 휘말리

고. 더 이상 잃어 버릴 것들이 많지 않은 시점에서야 나는 마침내 평화를 맛
보았던 것이다.



노짱을 청와대로 보내고 부당한 탄핵에 가슴을 찢어가며 울분하던 가슴 속 투사는 청년실업 육십만 시대와의

불화로 요절했다. 3년만의 복학을 앞둔 예비취업전사로서의 내 소원은 이명박을 청와대로
와 로또 당첨이다. 당

연히 이 현실을 앞으로 내가 나아갈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인도에서의
하루 또한 생애를 바쳐 이루어야 할

무엇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삶은, 갠지스와 신촌 사이의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혹은 삼미슈퍼스타즈와 현대 유니콘스 사이에.
 
혹은 과정과 결과 사이에. 그리고 혹은, 인생과 연극 사이에.




필사적으로 좌표를 찾지만 쉽게 찾아지리라 생각하지 않고, 찾아질지 아닐지조차 모르지만, 그래도 찾으려 발

버둥치는 행위 그 자체가 소중하다 여긴다. 어렵고 어려운 길이고, 타협하고 타협하면서
나아가는 길이다. 그래

도 나는, 언젠가 나와, 내 인생과 관련된 모두가 행복하게 생각하는 좌표가, 찾
아지리라 믿는다. 적어도, 믿고

싶다.




그 길 가운데에서 하나의 발걸음을 취해 공연으로 내어 놓는다. 창대했던 연출목표와 수많은 변명거리를 뭉뚱

그린 채로, 또 하나의 막을 연다. 무척이나 부끄럽지만, 그래도 이름은 올린다. 이건 내 작
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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