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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야스다 고이치, <거리로 나온 넷우익> (후마니타스. 2013, 5.)

 

 

 

 

 

1.

 

기자 출신인 프리랜서 작가 야스다 고이치의 2012년 작. 책날개의 소개에 따르면 작가는 이 책으로 2012년 일

 

본저널리스트 회의상과 제 34회 고단샤논픽션상을 수상했다 한다.

 

 

 

이 책에서 주된 취재의 대상으로 삼고 그 연원과 활약, 의의를 다루고 있는 모임은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在日特権を許さない市民の会', 약칭 '재특회'이다.

 

 

 

일어로 '자이니치'라고 읽는 '재일在日'은 일본에 살고 있는 남한과 북한 국적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본

 

래대로라면 '재일 한국인'이나 '재일 조선인'이라는 말이어야 할텐데도 그저 '재일'로 통칭한다는 데에서 그 사

 

회적 맥락이 간단하지 않은 용어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개인적 차원의 차별, 멸시 등은 물론 참정권이나

 

공무담임권과 같은 행정적 절차에서까지 한, 일 양국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해 왔다. 특히 3세대, 4세대

 

에 이르면 부모로부터 국적을 승계했을 뿐 정체성은 일본인인 이들이 나타나면서 이들이 일본 사회와 맺는 갈등

 

이 본격적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Go', '박치기!', '우리 학교'등의 일본 영화에서는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서, 그 때까지 '자이니치'를 대체로 소수자, 피해자로 인식해 왔던 일본 사회에 새로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그들이 '보통의 일본인'에 비해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 가운데 단

 

눈에 띄는 것은 블로그 활동을 통해 주목을 모으기 시작해 출판, 방송으로 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한 사쿠라이

 

코토(桜井 誠)였다. 말쑥한 정장 차림에 보우타이를 매고, 냉정한 태도로 주장을 펼치다가 격정적인 화술로 선

 

을 하는 그는 곧 인기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2007년 1월, 사쿠라이 마코토는 온라인 상의 지지자들을 규합

 

여 실제 단체를 구성했다. '재특회'의 시작이다.

 

 

 

온라인의 '동호회'가 오프라인에서의 단체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것은 그 자체로 큰 뉴스였다. 게다가 재특회는

 

해가 갈수록 크게 성장하여 몇 년 만에 전국 단위의 지부를 두었으며 2010년도에는 1,500만엔이 훌쩍 넘는 기

 

부금을 받기도 했다. 일본 내의 '혐한(嫌韓)' 기류와 맞물려 이 단체는 사회 각계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재특회 활동의 중심에 카리스마적인 리더 사쿠라이 마코토가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단체의

 

구성원들이 보여준 '행동력' 또한 여타의 시민사회 활동에 비하면 대단히 적극적인 것이었다. 이들은 지하철 역

 

앞이나 공원 등의 일반적인 시위 장소를 벗어나 '자이니치' 어린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또는 '자이니치' 학생

 

들이 다니는 학교에 기부금을 보낸 교직원 조합 사무실 등에 직접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본 사회는 이들의 활동

 

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2.

 

사회 문제를 다루어 온 저널리스트로서 저자 또한 이 소재를 주목하였다. 저자는 1인 저널리즘의 결과물인 이

 

책을 통해 취재와 연구의 과정 및 성과를 자세히 소개하였다. 탄탄히 구성된 책의 목차를 읽어 보면 이 책이 단

 

순한 흥미 본위에서 기획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책은 총 9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내용을 살펴보면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분은 '재특회란 무엇인가'에 답해 나가는 과정이다. 1장 '재특회의 탄생'에서는 제왕적 리더인 사쿠라

 

이 마코토의 이력과 함께 이단체의 연원 및 발전상을 소개한다.  2장 '회원들의 본모습과 속마음'에서는 그를 따

 

르는 회원들이 실제로는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단체의 활동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 주는지를 밀착 취재하였

 

다. 3장 '범죄 또는 퍼포먼스'에서는 이들이 벌였던 활동 가운데 논란이 되는 사건의 전말을 정리하였고, 4장 '반

 

재일(反在日) 조직의 뿌리'에서는 일본의 여러 우익 세력들을 소개하고, 그 가운데에서 재특회가 갖는 위상, 다

 

른 단체와 맺고 있는 관계를 분석한다.

 

 

두 번째 부분은 이들의 주장에 대한 검증이다. 5장 '재일특권의 정체'에서는 그들이 주장하는 이른바 '4대 특권',

 

그러니까 '특별 영주 자격', '조선학교 보조금', '생활보호 우대', '통명 제도'에 대해 논박하고 있다.

 

 

세 번째 부분은 현재의 재특회에 관한 것이다. 6장 '떠나가는 어른들'에는 활동의 방식과 방향에 환멸을 느끼고

 

나가고 있는 참가자와 동조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7장 '리더의 표변과 허실'에서는 점점 더 비논리적이고

 

공격적이 되어가고 있는 리더 사쿠라이 마코토를 취재하였고, 8장 '늘어가는 표적'에서는 원전 반대, 파친코,

 

후지 TV 등, 마음에 들지 않는 주제라면 '재일 특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 않더라도 모두 '반일'로 몰고 가는

 

현재 재특회의 파행적 활동상을 고발했다.

 

 

네 번째 부분은 나가는 글이다. 9장 '재특회에 들어가는 이유'를 통해 저자는 재특회라는 단체의 출현이 일본

 

사회의 어떤 단면을 보여주는 것인지, 그 안에 들어가 활동하거나 혹은 먼 발치에서 응원하는 행위들이 현대 일

 

본인의 어떤 정서를 반영하는 것인지에 대해 고찰한다.

 

 

 

3.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저자 스스로 고백하고 있듯, 이 글을 발표하고 난 뒤 그에게 쏟아진 비난은 재특회 쪽

 

에서만이 아니었다. 재특회 회원 개개인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너무 온정적이었다든지, 재특회가 보여주는

 

파시즘적, 인종차별적 메시지들에 대해 진지한 비판이 부족했다든지 하는 지적이 있었다고 한다. 나도 읽는 과

 

정에서 재특회 회원에 대한 저자의 인식이 객관적 비판이라기보다는 연민이나 구제해 주고 싶다는 시선이 전제

 

되어 있는 것을 지나치게 자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취재와 분석을 통해 얻어지는 인식, 판단의 과정을 촘촘히 적고 있고, 독자는 그런 재료들을 통해

 

충분히 저자와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시의성 있는 소재 뿐 아니라 사려 깊은 접근 방법의 선택에 있어서도

 

무척이나 매력적인 저널리즘인 셈이다. 

 

 

 

전통적인 우익과의 차별성, 온라인에서 시작되었다는 점, 극단적 성차별이나 인종주의 등의 특성에 있어 재특회

 

는 한국의 '일베'와 관련해 여러 차례 언급된 바 있다. 나 또한 가까운 나라에서 앞서 발생한 사례의 분석을 통해

 

우리 사회의 논쟁적 현안인 일베 현상의 이해를 깊게 하려는 목적을 갖고 시작한 독서인데, 읽는 도중 문득문득

 

떠오른 모습들은 단지 일베 뿐은 아니었다. 그 가운데에는 내 지인, 내 친구, 그리고 나도 있었다. 찜찜하고 불쾌

 

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 책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인 작가 특유의 곰살맞은 문체 덕에

 

쉽게 읽히는 메리트가 있으니, 주위에 가을 독서를 원하는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다.

 

 

 

4.

 

여기에는 독서를 하며 특히 인상적이었던 두 부분을 인용해 둔다.

 

 

 

재특회가 (강한 신뢰와 서로를 인정하는 분위기와 같은) 그런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한 사람은 재특회

 

와 간사이 팀의 구성원이었던 30대 남성이다. 그는 "동지들과 있을 때만큼은 즐거웠다."라고 솔직하게 말했

 

다.

 

 

"집회 중에 갑자기 훼방꾼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어요. 저도 모르게 '쫓아내라!'라고 외쳤는데, 그때 주위 동지

 

들이 다들 동조해 주었어요. 큰 소리로 지시를 내렸을 때의 쾌감과 동지들이 지켜 준다는 안도감, 한때 재특

 

회에 빠졌던 건 그런 기분 때문이었어요. 살면서 그만큼 도취된 적도 없었어요. '아, 동지는 좋은 것이구나.'

 

하고 진심을 생각했어요. 솔직히 우리는 부모에게도, 세상에서도 좋은 평가를 못 받고 있잖아요. 그런데 활동

 

할 때 동지들은 반드시 저를 인정해 주었어요..."

 

 

 

(중략) 그러나 그런 성취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간사이에 살다 보면 아무래도 재일 코리안 친구들이 있기 마련이에요. 처음에는 '조선인을 쫓아내라.'라고

 

외치면 기분이 좋았는데, 머릿속에 점점 재일 코리안 친구들이 떠오르는 거예요. 제 친구가 어릴 적에 재일

 

코리안 동네에 있는 판자촌에 살아서 저도 그 근처에서 같이 놀았는데, 거기 사람들 얼굴도 떠올랐어요. 도대

 

체 그 사람들에게 무슨 특권이 있단 말인가. 차츰 냉정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되

 

면 어쩔 수 없어요. 아무와도 상담할 수 없죠. 제가 적으로 규탄당해 버리거든요. 같은 길을 똑바로 의심 없이

 

걸을 때만 가족이고 형제인 거지, 활동 그 자체를 의심하면 용서받을 수 없어요. 뭐, 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가

 

족이죠."

(p 326 - 327)

 

 

 

 

교토 시내의 고깃집에서 교토 조선제1초급학교 졸업생들을 취재했을 때였다. 그중 하나인 김성규(36세)가

 

짧게 말했다.

 

 

"근데 진짜로 무서운 건 재특회가 아닌 것 같아요."

 

 

그는 이미 상당히 취해 있었고 "술 취한 사람의 헛소리라고 생각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런 '헛소

 

리'에서 인간의 절실한 생각을 발견한다.

 

 

"재특회는 명쾌하죠. 화도 나고 슬프기도 하지만, 너무 명쾌해서 공포를 느끼지는 않아요. 제가 무서운 건 재

 

특회를 인터넷에서 칭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을 거라고 생각하면

 

솔직히 너무 괴로워요. (중략) 단지 정치적인 문제라면 다양한 의견이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일본인

 

들은 속으로 '지금까지 재일 코리안에게 너무 잘 대해 줬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재일 코리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성가신 존재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얼마 전 김성규는 교토 시내에서 분위기가 좋은 작은 술집을 발견했다. 가족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몇 번

 

다녔고, 점장과 마음이 통했다고 생각되자 자신이 재일 조선인임을 밝혔다. 그러자 점장의 태도가 어딘가 서

 

먹서먹하게 변했다고 한다. 어느 날 밤 술에 취한 점장이 돌연 "자네들, 일본에 살게 해주고 있으니까 일본에

 

더 감사해야 해."라고 김성규에게 말했다.

 

 

"아무 말도 못했어요. 점장은 착해 보이는 사람이었고, 저를 적대시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의 주장 자체는 재특회와 별로 다를 바가 없죠. 쫓아내라거나 바퀴벌레라거나 그런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않을 좋은 사람이지만, 저는 그 점장이 재특회보다 더 무서웠어요. 무엇보다도 그런 주장이 일상적인 대

 

화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게 안타깝지요."

(p 368 - 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