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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8

안대회 선생님과 통화를 하다.

속해 있는 연세대학교 대학원은 몇몇 개의 타 대학원들과 학점 교류를 맺고 있다. 단 50%이상은 모교

에서 수학할 것, 이라는 대단히 관대한 조건만이 붙어있을 뿐 수강신청란에서 타대학을 선택하기만

하면 모든 수업을 일거에 볼 수 있다. 카이스트나 서울대, 심지어 고려대까지 리스트에 있기는 하지

만 대개 세 시간이 연강으로 있는 대학원 수업의 특성상 같은 날에 다른 학교에서 수업이 있기라도

하면 곤란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선택지는 대체로 신촌권의 대학인 서강대와 이화여대이다. 그러나

나는 서강대로 등교하는 선배의 이야기를 듣지 못 했고, 이화여대로 등교하는 여자선배의 이야기를

거의 듣지 못 했다.


공간을 바꿔 공부를 해 보는 것이, 단순히 아침에 다른 학교로 가는 것 뿐 아니라 자신이 '공부'를

직업으로 택했다는 것에 새삼 실감을 부여해 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그럴듯 하다 여겨 기회를 엿보던 차였다. 와중 2학기 수강신청을 앞두고 이화여대의 수강편람을 확

인해 보다가 안대회 선생님의 이름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안대회 선생님은 '조선의 프로페셔널'이나

'선비답게 산다는 것'등의 저작으로 대중에게 친숙한 작가일 뿐 아니라 학계의 조무라기인 나조차도

수없이 그 논문을 인용한 학자이시기도 하다. 좀 더 가깝게는 연세대 국문과 대학원의 선배님으로,

열 살 이상 터울이 지는 선배들에게서 학부 때부터 원문을 번역하던 이라는 등의 용자급 전설을 수

차례 전해들은 바 있다. 그, 안대회 선생님이다.


다시 연세대학교의 포탈로 돌아와 신청을 하려고 하자, 이화여대의 수강편람에는 나와 있던 선생님

의 수업은 연세대 포탈에서 제공하는 타대학의 수강편람에서는 볼 수 없었다. 학교의 국문과 사무실

에서는 아마도 수강인원 제한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는 설명을 해 주었다. 과연. 국문과 대학

원이라 하더라도 인기있는 선생님의 수업은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인가. 몇 번이고 다시 접속을 해 봐

도 마찬가지이고, 선생님의 수업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수업들도 듣고 싶은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포

기하기로 하고서는 다음 학기부터 시작하게 될 조교 일과 관련해 한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것

저것을 물어보고 난 뒤 근황을 말하다가 그 경험을 말하자, 선배는 선선한 목소리로 안대회 선생님

의 연락처를 가르쳐 줄테니 전화를 해 보라고 말했다.


몇 시간 뒤에, 나는 진짜로 안대회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선생님은 타대학으로 출강하는 것이라

자신도 제도에 익숙하지 못 하니, 이화여대 국문과 사무실에 알아봐서 자신이 인원제한을 풀어줄

수 있는 것이면 얼마든지 해 줄테고, 혹시나 안 되면 청강을 해도 괜찮다고 말해 주셨다. '들을 것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이라는 주인공의 멘트도 잊지 않으셨다.


지금 내 통화목록의 맨 위에 '안대회'가 있다. 오래 전 지인 중의 한 명이, 우연히 이효리의 술자리

에 합석하여 그의 전화번호를 알게 되고, 이후 한 차례 전화를 한 뒤 그 통화목록을 사진으로 찍어

남겨 두었다는 이야기를 해 줬던 적이 있었다. '효리님'이라는 글자가 적힌 사진을 들이대며 열변을

토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유명인과 통화하는 그 기분이란 어떤 것일까 궁금해 했었는데, 이렇

게 말하면 국문과 geek으로 비칠 것이 적지 않이 두려우면서도,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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