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일지

심진송, <신이 선택한 여자 두 번째 이야기> (느낌이있는책. 2012. 6.)

 

 

 

 

 

 

벌써 18년이나 됐나 싶다. 1995년 출간되었던 전작 <신이 선택한 여자>는 무당으로서 겪어야 했던 극적인 여력

 

당시 한국 사회의 주요한 쟁점에 관련된 예언 등이 어우러져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거기에 연예인 못지

 

않은 미모와 재력가, 정치가들이 고액을 지불하며 앞다투어 상담을 한다는 뒷소문 등이 합해져 저자는 꽤 큰 사

 

회적 영향력을 누렸다. 마야력이나 노스트라다무스 등의 단어가 시사 프로그램의 한 코너를 당당히 차지하던 세

 

기말의 분위기 또한 그러한 흐름에 한 몫을 거들었다.

 

 

 

고대 문명이나 예언, 외계 등에 내밀한 취미를 갖고 있는 나도 그 책을 구하여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뚜

 

렷하지는 않지만, 어떤 사건들이 일어났을 때 그 책에 실려 있는 예언들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며 달뜬 기분이 되

 

었던 것도 몇 장면 떠오른다.

 

 

 

그러나 저자는 그 이후로 별다른 활동을 보이지 않았다. 이따금 그 소식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총선, 대선 관련

 

인터뷰 등에서였는데, 한참 인기를 몰던 90년대 중반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을 예측했다고도 볼 수 있는 예

 

언을 내놓기도 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었던 2002년에는 이제는 이름도 생소한 '민주광명당'의 명승

 

씨를 지목하였고,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었던 2007년에는 손학규 씨가 한나라당 후보로서 당선될 것이라고 예

 

측하였다.

 

 

 

못 맞추는 무당집에 발길이 있겠나. 불투명한 기억을 확인하기 위해 기사를 검색해 보니 2002년까지만 해도 아

 

공신력 있는 언론사와의 지면 인터뷰들이 남아있지만, 2007년쯤 되면 점차 줄어들다가 2012년 대선을 앞두

 

고는 향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한 종합편성 채널과의 영상 인터뷰 정도가 유일하다.

 

 

 

'국사 무당'으로서의 체면을 지키지는 못했던 그 시기, 저자는 개인적으로도 무척 어려운 한 때를 보냈던 듯 하

 

다. 그 때의 일들과 새로운 예언을 묶어 전작과 유사한 구성으로 낸 것이 바로 이 책, <신이 선택한 여자 두 번째

 

이야기>이다. 부제는 '무녀 심진송이 17년 만에 전하는 신의 말'. 알라딘 중고책방에서 발견하고 깜짝 놀라 샀

 

다.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신이 선택한 여자, 그 후'에서는 대중적인 성공 이후 저자에게 찾아 온 실패,

 

배신, 좌절 등의 경험을 에세이 형식으로 다룬다. 2부 '천심天心을 읽다'에서는 출간 시기로부터 반 년 후에 치

 

루어질 18대 대통령 선거와 우리 나라, 그리고 우리 나라의 대표적 기업인 삼성과 현대의 운세 등에 대한 예언

 

을 싣는다. 3부 '아픈 그대, 약손 되는 비방법'에서는 일상생활에서의 간단한 행위로 길한 일을 불러들이거나

 

흉한 일을 피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1부 '신이 선택한 여자, 그 후'는, 실재하는 사람의 인생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전형적인 서사구조를 띄고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제일 열없게 읽게 되는 부분이었다.

 

큰 성공 - 교만과 낭비 - 새로운 분야로의 확장 - 이 때 돈을 노리고 접근해 온 남자 - 그 남자와 눈이 맞은 친구

 

의 배신 - 새로운 도전의 실패 - 전문 분야에서의 실패 - 참회 - 부활

 

물론 이 일들이 모두 실제로 일어났다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것이며 그에 대한 연민

 

이 일지 않을 수 없다. 저자 개인에 대한 애정을 갖고 계신 분이나 남다른 공감 능력을 가진 분이시라면 같이 마

 

음 아파하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2부 '천심天心을 읽다'는 총 아홉 개의 소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한민국, 북한, 대선, 대기업 등의 주제가 어

 

럽게 섞여 있다. 대한민국 경제가 계속 어렵겠지만 희망을 가지라느니, 일본에서 화산이 분출할 것이라느니

 

는 말은 '국사 무당'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것이니 아무래도 눈길이 가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과

 

18대 대선 예측이다. 그 가운데, 애석하게도 김정일의 사망은 2011년 12월의 일이고 이 책은 2012년 6월에 출

 

된 것이라, 본인은 이미 예측했던 일이라고는 주장하지만 완전히 믿기는 어렵다. 그래서 남는 것은 출간일로

 

부터 반 년 후에 치루어질 대선 예측 하나.

 

 

 

결과부터 말하자면 저자는 이번에도 틀렸다. 박근혜 - 안철수 - 문재인의 삼자를 놓고 논의를 진행시킨 면에서

 

는 명승희나 손학규를 짚었던 이전에 비해 분명한 진일보를 이루었지만, 마지막의 승자로 문재인 후보를 지목한

 

것이다. 실명을 거론한 박근혜 후보, 안철수 후보와 달리 책에는 '문재인'이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고 '이긴다'는

 

명시적 표현도 없어 맥락만으로 추측해야 하는데, 기사를 찾아 보니 대선을 석 달 앞둔 9월, TV 조선에 출연한

 

저자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사실 올해 운이 없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올해 천운이 있다. 대통

 

령이 되면 통일 대통령이 될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보석으로 표현된다. 근데 빛이 지금은 아니다'라고 단언

 

한 바가 있었다. 

 

 

 

97년 대선부터 해서 승률이 2할 5푼이니, 이쯤 되면 다음 대선에는 저자가 점지하지 않은 사람 쪽에 판돈을 거

 

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2007년 손학규 후보의 당선을 점치고 난 뒤 이명박 정부 내내 직간

 

접적인 사업 방해로 고생을 하였다 하는데, 이번 정권에서는 부디 평온하시길 바란다.

 

 

 

3부  '아픈 그대, 약손 되는 비방법'에서는 저자가 중국과 연변 등지에서 모은 20여 가지의 비방이 실려 있다.

 

'바람난 남편, 속옷으로 되돌린다', '사과로 짝사랑 종결하기', '호랑이 그림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등의 소제

 

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장삼이사들이 겪을 수 있는 일상적 문제들에 아주 쉬운 처방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

 

들을 소개한다.

 

 

 

 

총평. 쓰다보니 삐딱해졌는데, 기실 독서를 마치고 났을 때의 내 감정은 연민과 안타까움 등이 섞인 것이었다.

 

이 책은 내는 것보다는 안 내는 것이 본인에게 더 유리했을 것이다. 에세이 식으로 쓴 본인의 실패담은, 앞서

 

지적한 것처럼 하나의 이야기로 여기고 공감하기에는 지나치게 전형적이며, 중간중간에 설핏 드러나는 지나

 

친 자존감, 자신감 등은 도리어 거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아울러, 나는 장난처럼 평했지마는, 문재인 후

 

보를 점지한 무당에게 협박 전화 한 통쯤 안 갈 리 없었을 것이다. 선거 후에야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고. 그리

 

고 삶의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한 비방이라고 소개된 방법들도 그 내용을 살펴 보면 고래의 민간 신앙 수준의

 

것들이 많다. 말 그림을 지갑에 넣고 다니면 일이 풀린다든지 하는 것도 그렇지만, 탄생석 반지를 선물하면 받

 

은 사람에게 애인이 생긴다는 비방은 차라리 유머에 가깝다.

 

 

 

하지만 저자는 시종일관 진지하다. 기승전결 구조의 실패담은 본인이 한결처럼 믿고 있는 무속에 대한 간증 고

 

백이자 혹독한 자기 반성으로, 읽는 이에게 일종의 교훈을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대선 예측 또

 

한, 다소간 치우친 경향은 있지만, 애국심에서 발로한 것임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의 전문적 직능으로

 

내 나라와 내 국민을 좋게 해 줄 이를 필사적으로 탐색해 본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얼핏 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게 하는 20여 개의 비방들도, 한 번 만나려면 얼마가 들지 몰라 자신과 같은 유명한 무당을 찾아오지 못하

 

는 이들을 위해 쉽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골라 공개한 내용이다. 잘라 말하자면 사업 아이템의 무료 배포라

 

해도 좋다.

 

 

 

이러한 시도들에서는 일관된 선의가 느껴진다. 판별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의 몫이지마는, 어쨌든 저자 입장

 

에서는 자신이 믿고 또 믿게 하고 싶은 바를 성실하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근래 보기 드문 만 원이라는 가

 

격에도 혹여 그런 의도가 포함되지는 않았나 멋대로의 추측도 든다. 그러나 한 명의 독자로서의 나에게 그 의도

 

가 온전한 결과로 전달되지 못했고, 또 꽤 많은 사람에게 그렇지 못할 것 같아, 독서를 마친 후 내게 연민과 안타

 

까움이 들었을 것이다.

 

 

 

아무튼. 긴 방황을 끝내고 본업으로 돌아가시겠다 하니, 청소년기의 난잡한 독서 중에 큰 흥미를 얻었던 팬으로

 

서, 더는 큰 고난 겪지 않고 행복하게 잘 지내시길 바란다. 언젠가, 대선 급 말고, 총선 급 정도에서 한 자리쯤 맞

 

추셨다는 기사 읽게 되면 잘 지내시는 줄 알고 반갑게 웃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