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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2

상상의 공동체

 

 

 

 

 

작년 여름부터 사회 일반의 화제에서 내려가 본 적이 없는 4.11 총선이 끝이 났다. 개표의 과정이나 선거법 위반

 

등에 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나 아무튼 숫자로서의 결과는 나왔다. 연초 100석도 지키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던 한나라당은 152석으로 1당의 자리를 지켰고, 민주통합당이 뒤를 이어 127석, 통합진보당이 13

 

석, 자유선진당이 5석, 무소속이 3석을 차지하였다. 총합은 300석으로, 4년 전의 18대보다는 한 석이 늘었다.

 

 

 

여권과 야권, 각각의 승패요인에 대해서는 더욱 훌륭하게 분석한 글이 많을 것이다. 워낙 화제가 되었던 선거라,

 

당선자와 낙선자 개개인에 관한 감상, 비평들은 이미 차고 넘친다. 내 입에서 나온다는 것만이 다른 글줄을 굳이

 

붙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선거날 저녁, 나는 할아버지의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 큰집에 가 있었다. 기일은 사실 다음날인 목요일인데, 목요

 

일에 하면 오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공휴일인 선거날의 자정에 지내기로 한 것이다. 자정이 넘어가

 

면 날짜로는 목요일이니 안 될 것은 없었다.

 

 

 

자정의 몇 시간 전부터 모두들 마루에 앉아 TV를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선거방송을 틀어놓게 됐다. 시청을 하며

 

내내 어색한 느낌이 들어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친척들과 함께 선거방송을 보는 일이 처음이었다. 아버지와는

 

대체로 큰 선거마다 함께 술을 마시며 관전평을 나누는 편이지만, 친척들과는 그 중 단 한 명과도 그런 경험을

 

갖거나, 심지어는 치에 관해 이야기를 해 본 일조차 없었다. 말하자면, 피로 이어졌다고는 하나 사실은 사회에

 

서 만난 평범한 지인들만큼도 그들의 정치관을 알 수 없는 한 무리의 집단과 함께 선거방송을 보게 된 것이다.

 

 

 

사회에서였다면 함께 하는 사람들의 연령에 관계 없이, 평소 정치라는 주제에 대해 관심이 있고 소신이 있으므

 

로 필요한 순간에 내 정보와 주관을 밝힐 수 있었을 것인데, 어른들 말씀하실 때에는 가만히 있는 것이 학습이

 

되어 있는 공간에 있자니 충분히 반론을 할 수 있을만한 의견들이 막무가내로 오고 가는 와중에도 쉽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딱히 입을 열 필요가 없었다. 내 고향 인천은 시도별 투표율이 주로 꼴등이거나 기껏 벗어났다 해도 최

 

하위권에 맴돌기 일쑤인데, 인천은 왜 그럴까, 라는 비교적 건강한 자아 비판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그게 다 전라도 놈들이 올라와서 인천땅을 차고 앉아서 그렇다, 남의 땅 와서 사는데 휴일날 투표를 할 애향심인

 

들 있겠느냐, 등의 발언이 시작되더니만, 김용민이라는 같잖은 뚱뚱한 놈 있던데 그런 걸 국회의원이라고, 하는

 

한탄이 이어지는가 하면, 요새 젊은 애들이 듣는 빨갱이 방송에 나오는 놈이라는 누군가의 아는 체도 덧붙고, 와

 

중에 김을동 여사의 재선 확정 선고에는 저 냥반이 김두한 딸이라는 거 말고 뭐 있어, 라는 여야를 가리지 않는

 

공격도 있고. 향방을 알 수 없는 갑론을박은, 제사를 지내기 위해 다 같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큰아버지께서 '그

 

러니까 한나라당이 몽땅 차지해서 저 전라도 놈들하고 시민단체 빨갱이 놈들을 다 죽여야 돼'라는 말씀으로 갈

 

음하셨다.

 

 

 

그러니까, 내가 일기를 쓰고 관련된 책을 읽고 논쟁의 한 주체로 참여하였던, 즉 이번 총선을 결정짓는 이슈라고

 

생각되었던, FTA, 민간인 사찰, 헛점 많은 자원외교, 내곡동 사저의 탈법적 구입 문제 등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

 

도 나오지 않은 것이다. 아니, 그런 거국적, 가치판단적 문제를 제쳐 놓고라도, 아주 개인적이고 천근한 주제만

 

이라도, 말하자면, '새끼들'의 문제인, 중소 브랜드 카센터의 수리사인 큰 형과 관련된 대기업의 공정거래 문

 

라든지, 구청이나 장애학교 등 공공 기관의 기간제 체육 교사인 동생의 비정규직 처우 문제라든지, 혹은 미국

 

까지 가서  학위를 따고 오고도 배고파 목매죽는 사람도 있는 직업인 시간 강사로 오랜 기간 입에 풀칠을 하게

 

될 나의 교원법 문제 같은 것도, 어느 당이 우리 운호, 대호, 경호 제대로 밥먹여 준다더라, 그동안 받을 거 못 받

 

은 걸 챙겨준다더라 하는 이야기조차 나오지 않았다.

 

 

 

서너 시간에 걸쳐 지금이 박통 때인지 전통 때인지 모를 것 같은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는 언제부턴가 자연스럽

 

게 써 오던 '대중', '유권자', '민심'등의 실체적 주체가, 그야말로 '상상의 공동체'일 수 있다는 아찔한 감촉을,

 

오랜만에 다시 느꼈다. 분당에 집을 샀는데 혹시나 뉴타운 사업 같은 거 해줄까 싶어 새누리당 찍었다는 친구와

 

의 전화통화는 듣기 좋지는 않았을지언정 차라리 납득이라도 되었다. 못 살기로 유명한 인천에서도 중하류 층이

 

라는 이름에조차 때때로 민망한 내 친척들이 도대체 왜. 그리고 내 친척조차 설득하지 못 하면서, 나는 도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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