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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4

[삼척여행記]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다. 방학때나 되면 두어군데 정도 모르는 곳을 찾아가는 정도이니 여행을

좋아한다고는 자신있게 말할 수 없고, 그저 좋아하는 편 정도라고 해 두는 것이 좋겠다.


여행은 여러가지에 젖어있던 자신을 깨워준다. 일상에서 깨어난대도 좋고, 때로는 일탈에서 깨어난

다고 할만한 때도 있다. 아무튼, 살아있다는 느낌이 절실히 전해져와 좋아하는 것인데, 여러 차례

다니다 보니 어느새 그 여행에도 익숙해진 것은 한편으로 불만이다.


딱 일년전 이맘때쯤에도 나는 여행정보에 심취해 있었다. 여행에 심취한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접할 수 있는 각종 여행정보에 심취해 있었던 것이다. 교통편의 안내를 따라 지도에서 국도를 짚어

가 보기도 하고, 여러 숙소들을 비교해 본 뒤 예산을 짜기도 해 보지만 결국 가 본 곳은 많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그려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그런 때가 있었다. 삼척은 그런 때에 물색해 두었던 곳들

중 하나였다.


삼척. 동해. 영월. 태백. 사회시간에서부터 하나로 묶어 배우는 그곳들은, 실제로는 다른 공간에 위

치한 지명일지 몰라도 내 머리속에는 바다와 모래사장과 해안도로와 횟집과 겨울비가 있는 하나의

이미지였다. 여기에 대항해시대에서부터 시작된 마도로스에의 꿈이 더해져, 강원도는 그야말로

나에게 유토피아이자 서방정토였다.


서해안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때때로 동해안 거주의 사람들에게 피해의식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남한 제 2의 항만도시인 인천에 사는 나도, 도시 이야기가 아니라 바다 이야기가 나오면 어쩐지 위축

되는 것을 숨기지 못 했던 것이다. 마음속 지향점은 저 푸르른 동해라 할지라도 내가 껴안고 자라난

것은 뻘을 바르고 중국황사를 마시고 월미도를 찾은 이들이 던져대는 새우깡을 먹으며 자라난 황해.

오, 나의 황해. 나의 애증하는 황해.


아무튼. 애증이라는 복잡한 감정이 아니라 오로지 우러름이라는 한가지 생각만을 품은 동해, 그 동해

중에서도 삼척. 어쩐지 가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였고 그 삼척이 이백만 석회암 동굴관광객 시대를 맞

이했다는 것과 영화 '봄날은 간다'의 촬영지 중 하나였다는 것을 안 것이 다음이었다. 동해라는 것만

으로도 쓰러질 지경인데 석회암 동굴에 대나무숲, 그리고 사연있는 절 한채라면야 나로서는 다만

감격할 뿐이었다.


그러한 삼척, 나는 떠났다. 여행은 동풍을 타고 나를 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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