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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7

산정호수






도착한 숙소 앞에는 작은 시내가 있었다. 산정호수는 밤에 가 보도록 하고, 일단 저녁을 먹기 전에 물

에 발이나 담궈 볼까 하고 나섰다. 너비로 보고는 시내라고 생각했던 물은 막상 들어가고 보니 계곡

이라고 불러도 약간만 민망할 정도로 흐름이 빨랐다. 처음 서로 물방울을 던질 때에야 민망하기도

하고 물이 차갑기도 하고 해서 조심스러웠지만 물이라는 것이 던지면 던질수록, 맞으면 맞을수록

사람 사이 거리나 느껴지는 온도나 따스해지는 것이라, 해가 제법 기울 무렵까지도 재미있다고 놀

았다. 갈아입을 것은 티셔츠 한 벌뿐이라 속옷과 바지가 젖는 것은 곤란한 일이었지만 그런 것들을

미처 생각하지 못 할 만큼 재미가 있었다.



저녁을 먹고는 산정호수에 갔으나 몇차례 길을 잘못 든 데다가 모두들 약간 피로해져 있었고 무엇보

다 숙소에 남겨 놓고 온 생고기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숙소로 곧 돌아왔다.

그리고는 시작된 술자리. 신각이가 술집 악어에서 배워 온 과일소주를 내 놓았고 나도 경찰에 있을

무렵 배워 온 비장의 녹차소주를 내 놓았다. 결과는 희비가 엇갈렸지만 굳이 자세히 적지는 않는다.

무척이나 고기를 좋아하는 탓에, 입밖으로 내지는 않지만 육질에 따라 꽤나 호오를 달리 하는 나로서

도 흡족하다고 할 만한 고기였다. 술을 마시고, 맛좋은 고기를 먹고, 물소리를 듣고, 사람을 듣느라

나는 한참이나 말을 잊었다. 술먹고 말을 내 놓으면 내 놓을수록 내 바닥이 보이는 것이 씁쓸하여

일부러라도 술자리에서 말을 줄이는 요즘이지만, 덕분에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 재미를 알게 되어

이 날도 한참이나 남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듣고 있었다. 밤도 이슥해질 무렵 신각이가 기타를 꺼내

왔다. 혜민씨가 케이스도 없이 잠실에서부터 신촌까지 들고 온 기타였다. 미안했지만, 기타는 그 수

고로움에 값할 만한 몫을 했다. 한해한해, 즐겁고 슬픈 추억들이 쌓여 갈수록 하나하나 마음에는

맺히지만 입으로는 차마 부르지 못 하는 노래들이 쌓여 가는데, 산속의 깊은 밤과 물소리는 그런 노

래들을 오랜만에 부르게 해 주었다. 나 자신보다 노래를 위해 노래를 불러도, 괜찮은 밤이었다.


두세시쯤에 이르러 자리를 정리하고 혼자서 산책을 했다. 숙소 앞의 작은 다리에서, 관리인이 불을

끌 때까지 굽이치고 돌아가는 물의 흐름을 한참이나 바라 보았다. 요사이의 많은 번민과 고민이 얼

마간 정리되는 듯 했다. 불이 꺼진 뒤에는 귀신이 나올까 무서워 숙소로 얼른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

다. 피곤해서 빨리 쉬고 싶었음에도, 잠이 일찍 오면 밤의 물소리를 더 들을 수 없을까봐 아쉬웠다.


신각이는 제 몸 피곤한 것을 돌보지 않고 사람들을 하나하나 목적지에 내려 주었다. 나는 신촌에

서 내려 또 며칠간 읽을 책을 빌리고, 다음날이면 아홉달간의 한국생활을 마치고 캐나다로 돌아가는

소리씨에게 선물을 전한 뒤 인천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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