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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3

봄비





신촌의 하숙집은 반지하라 그런지, 오래 전부터 고민해 오고 있는 '인천모드'와 '신촌모드'간의 괴리

를 괜찮은 방식으로 해결해 준다. 오늘은 봄비가 거억거억 왔다. 덕분에 빗소리를 들으면서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후후. 거짓말. 실은 누군가의 벨소리에 깼다. 누군가가 누군지는 비밀.)


수업이 끝난 인천거주 후배 한 명과 인천에 내려왔다. 금토일에 있는 네시간짜리 과외를 하기 위해서

이다. 가기로 정해 놓은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부평역에 있는 서점에 들러 지난 겨울방학

옥션에서 샀던 <배가본드> 1권-11권의 다음권인 12권을 사고, 곧 출시될 예정인 플레이스테이션용

게임 <진삼국무쌍 3>에 관한 기사들을 찾아 읽었다.


예전에 일기에 썼던 기억이 있는 것 같다. 한 아웃렛에서 마지막 세일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아 장난

감을 잔뜩 샀다고. 그 아웃렛이 문을 닫고 난 이후로는 분식점 비슷한 것이 들어섰는데, 분식점이라

고 하기에는 규모가 엄청나다. 내가 들르게 되는 시간이 애매한 것인지, 항상 그 넓은 곳에서 혼자

무언가를 먹게 되어 조금은 머쓱하다. 오늘도 약간 머쓱했다. 자리에 앉기를 기다려 주기라도 한

듯 비가 좌악좌악 퍼붓기 시작했다. 배가본드 12권을 펴 놓고 1000원짜리 탕수육 2인분을 시켜서는

후후 불어가며 먹었다. 1인분 정도를 먹고 난 뒤부터는 약간 느끼한 것 같아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천천히 먹었는데, 앉은 자리의 옆에 있는 커다란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것이 마치 영화관의 화면과

같아 지나가는 사람들과 그들이 있는 광경을 흥미롭게 바라 보았다.

참, 바쁘게들도 사는구나. 참, 세상에 웃기게 생긴 놈들도 많구나.


아이의 집으로 가는 길에 새로 아트박스가 하나 생겼다. 가게 밖에 진열해 놓은 엽서들 위에 비가 떨

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비닐을 쳐 놓았는데, 그 비닐 위로 비가 방울방울 지고 있는 것이 아래의 엽

서의 그림과 예쁘게 겹쳐지는 것을 한참 쳐다보고 있었다. 그림이 변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결국

유혹에 견뎌내지 못 하고 지하철 패스값만 뺀 나머지 돈을 모두 엽서에 쏟아 부었다.

(그래봐야 일곱장. 가난뱅이 최대호. 후후후...)


아아, 봄비 덕분에 기분이 묘해졌다. 두어개 이상이 섞여 버리면 촌놈은 설명할 수가 없게 된다.

일기도 영 석연치 않지만 그런 것이 오늘의 영 맥플러리의 회오리같은 기분을 표현해 주는 것 같아

고치지 않고 내버려 둔다.


뭐, 그저 즐기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지금은 그쳤지만 다시 비가 오기 시작하면 롤러코스터를

들어야겠다.


마지막으로, (슬쩍 말하고 넘어가는 것이 간사하지만) 4월 17일 어제였던, 사랑하는 벗 권미랑님의

스물세번째 생일 축하. 죽을 죄를 지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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