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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7

발레리나 김주원 양 상반신 누드사진에 대해 사과

패션잡지 'Vogue' 10월호에 상반신 누드사진을 공개하여 화제가 되었던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김

주원양이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발레단에 사과한다고 말했단다.


알고 지내던 무용하는 이로부터, 가슴이 보통사람보다 조금만 크다 싶어도 무용을 하는 데에는 치명

적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여러 동작들을 표현하는 데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혹여 큰 가슴

이 자신에게는 방해가 안된다 할지라도, 보는 사람의 신경이 가슴의 움직임으로 가면 결국 메세지를

전달하는 데에는 실패하게 되는 것이 아니냐, 라는 부연도 들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무용을 시

작했던 이들 중 성장기를 거치며 가슴이 커진 여학생들은 품이 넓은 한복을 입는 한국무용 쪽으로 진

로를 택하게 된다고 한다.) 그것 참. 가슴 큰 사람은 무용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라고 정치적으로

온건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지만, 키 작으면 농구도 하면 안 됩니까 와는 차원도 질량도 다른 것이

어서 저어하고 말았던 것이다. 남자관객들한테 '이 무용수는 큰 가슴에도 불구하고 부단한 노력을

하며 이 자리까지 왔으니 여러분은 부디 가슴에 집중하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말해봐야 별 소용없는

노릇이기도 하고.


아무튼 그러한 선지식이 있었던 탓에 얼마전 신문에서 국립발레단의 무용수가 상반신 누드사진을

찍었다는 기사를 보았을 때에도 기실 나는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조금이나마 관심이 갔다면 누드사

진을 찍은 무용수 본인의 '발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일 기회였다고 생각해서 찍었'다는 언급과

그에 대해 국립발레단이 '발레와 국립발레단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발표한 성명이랄까.

어떻게 생각을 하면 가슴을 드러내는 것이 발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이게 되는 것일까. 차라리

젊고 아름다울 때의 몸을 사진을 찍어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고 말했더라면 귀엽기나 했을 것이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면 정말이지 기본의 기본적인 상식을 의심해 볼 수 밖에 없다. 덕분에

Vogue 10월호 판매량은 급증했다고 하는데, 그녀의 말대로 발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일지

어떨지.

대응하는 국립발레단의 입장도 이상했다. 물론 해당하는 무용수가 작년에 무슨 무용수상까지 탔다는

수석 무용수로서 그 언행의 파장이 발레계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은 사람이라지만, 그런 것을 감안

한다 하더라도 발레리나의 가슴을 보이는 것이 왜 발레 전체의 명예실추로 연결되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권장할 행위는 아니지만, 비난할 행위는 더더욱 아니지 않은가? 가슴을 드러내어 대중

의 발레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내겠다는 그릇된 인식 자체에 대해 비판하였다면 타당한 지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정도로 알고 지나갔던 것인데, 오늘자 신문에서 김주원 무용수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사죄한다

는 기사를 읽었다. '발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이겠다'는 야심만만한 포부가, 단 며칠간의 공박으

로 무너졌다는 말인가? 애당초 품었던 생각의 깊이라는 것이 고작 그 정도였으며 기세 당당했던 말은

결국 허울에 지나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명한 꼴이 되고 말았지 않는가. 궁금하다. 사진을 찍고 나서

응한 인터뷰 시에 우쭐한 마음으로 되지도 않는 말을 지껄였던 것인지, 혹은 진심으로 발레계를 다시

일으켜 보자는 지사의 마음이었던 것인지. 하질 말든지. 했으면 버텨나 보든지.


국립발레단은 예술이냐 외설이냐의 문제와 상관없이 발레단의 허락이 없는 채로 외부활동에 참여한

절차상의 문제를 질책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매체의 기사에는 국립발레단 소속 무용수의

사진촬영이나 인터뷰 등은 이전에도 특별한 허락 없이 이루어진 전례가 있었다는 사실도 실려 있었

다. 원 참. 누가 봐도 뻔한 말인데 그렇게까지 체면을 지켜야 할까, 혀를 차게 된다. 국립발레단은 '그

간의 모범적인 행동등을 감안해' 감봉 1개월의 '관대한' 처분을 내렸다고 한다. 이런 코미디가 있나.

채플린인가가 말했었던 것 같다. 삶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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