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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2

[반지의 제왕 - 탑 두개]를 보다.

날씨가 조금만 더 추웠으면 눈이었을 비를 후두둑 후두둑 맞으며 오랜만에 연수동을 찾았다. 인천 안

쪽으로 들어가서 아늑한 느낌도 있고, 약간 다녀본 동네이기도 하고 해서, 버스를 잘 못 탔는데도

여유롭게 아무데서나 내렸다. 그냥 서 있기 뭐해서 붕어빵 1000원어치를 사 들고서는 붕어빵 아

저씨와 이번 대선의 문제점에 관한 토론을... (아저씨가 보너스로 하나 더 줬다가 노무현 찍었다니까

도로 빼앗아 갔다. 어흑. 정치적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기란 정말이지 힘든 일이다.)  그러나 아저씨

를 비롯한 연수동 주민이 약속장소인 롯데마트로 간다고 말해 주었던 시내버스 46번은 올 줄을 모

르고, 빗방울은 점차 더 가늘어지고 많아지는 바람에 흡사 안개 속에 서있는 기분이 들고, 설상가상

으로 아까 그 붕어빵을 사 먹는 바람에 택시비로 하기에는 너무 적은 돈만이 남아 버렸다는...

우여곡절 끝에, 봤다.



포스터가 그리 예쁘지 않아 올리지 않는다.

나는 반지 원정대가 유명세를 타기 전에 읽었던 축이다. (판타지 매니아여서가 아니라 어릴 적에

엄마가 사준 몇십권짜리 전집에 우연히 끼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탓에 화면에서 나오는 이미지와 이미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가 끊임없이 충돌하는 바람에 마음

놓고 영화를 볼 수가 없었다. 해리 포터도 읽기는 했지만 이미지 캐스팅에 있어서도 반지원정대보

다는 몇 배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하고, 게다가 해리 포터는 한번밖에 읽지 않은 터라 그다지

이미지라고 할 것이 없기도 하여... 여하튼 개인적으로는 해리 포터보다 반지원정대가 훨씬 더 감상

하기 불편한 영화이었음에는 틀림없다. 그 자체로 즐기면 좋을 것 같지만, 그게 잘 안 되더라고.


아라곤이 너무 비열하게 생겼어...레골라스 너무 못 생겼어...김리 너무 코믹 캐릭터로만 굳혔어...


최강 개그 콤비 메리와 피핀의 격조높은 유머는 다 어딜 간거야... 끝도 없었다. '팬'이라고 할 수도

없는 나도 이런 불만들이 나는데, 골수 매니아 층들의 잔소리를 예상해 가면서 영화를 만들었을

피터 잭슨 감독이 많이 불쌍했다. 개인적으로도 다시는 시리즈는 만들지 않겠다고 공언했다던데...


글쎄, 다 합쳐서 열시간도 안 되는 시간내에 반지원정대 이야기를 영상으로 모두 전달한다는 것이

애초에 무리한 시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혹여나 몇십년이 지나 내 죽기 전에 리메이크 판이

만들어진다면 -아마 만들어질 것임에 틀림 없지만- , 그때에는 제발 좀 이미지 캐스팅을 염두에

두어 주길... 호빗족들이 너무...너무...재수없게 생겼어... 간달프 너무 멋없어...)



영화를 보면서 탐나는 역할이 아무리 못 되어도 하나 정도는 있는 법인데, 그 조명 그 분장 그 의상

모든 것이 갖추어지고 내가 쏙 들어가 연기해 보고 싶은 역 말이지. 오늘의 선택은 뱀의 혀 글리마.

시퍼런 얼굴에 눈 데굴데굴 비열한 얼굴. 꼭 한 번 해 보고싶어. '평소에도 그래'라면 할말없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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